[리뷰] 국립극단 청소년극 릴-레이 <고등어> 생동(生動)하라!

2016. 6. 3. 16:56Review

 

생동(生動)하라!

국립극단 청소년극 릴-레이 <고등어>

배소현 작/ 이래은 연출

 

 

   

_권혜린

 

 

 

청소년이라는 단어는 아동과 성인의 중간에 위치한다는 것 외에도, 어른의 시기로 넘어가기 전의 경계라는 느낌이 강하다. 그러나 문지방에 위치한다고 해서 그 중요성이 덜하지는 않다. 오히려 그 시기만의 섬세한 감수성과 생각들을 살아가면서 놓치지 않는다면 덜 무심한 어른이 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이유로 ‘2016년 국립극단 청소년극 릴-레이시리즈를 통해 청소년극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 반가웠다. 그 첫 번째 작품인 <고등어> 역시 청소년극에 걸맞게 청소년기의 진한 감정과 경험 등을 포착하여 생생하게 그려냈다. 특히 이 작품은 양쪽에 미끄럼틀처럼 설치된 무대를 통해 배우들이 생동감 있는 몸짓을 보여주고, 한바탕 놀이를 하듯이 함께 즐기게 하며, 대사를 통해 영상을 상상하게 한다. 어른들에게는 과거의 추억에, 청소년들에게는 현재진행형의 경험에 풍덩 빠져들게 하는 마력을 지닌 것이다.

 

 

 

 

살아 있는 의성어와 의태어의 세계

 

이 작품은 토독, 이라는 의성어로 시작한다. 경쾌하게 싹을 틔우는 소리는 어둠 속에서 자라는소리이기 때문에 단순한 의성어가 아닌, 의태어의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다. 자라는 것은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이렇게 생생한 소리를 지니고 있다. 그러니 시작 부분에서 나타나는 이 소리는 보이지 않더라도 청소년들이 자라는 소리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전달하려는 듯하다.

그 소리는 곧 교실에서 떠드는 소리로 이어진다. 선생님의 말에 순종적으로 침묵해야 할 의무와는 달리, 쉬는 시간의 활기찬 소리들이야말로 청소년들의 본 모습을 보여준다. 떠드는 소리는 중창처럼 다채로운 멜로디를 이루고, 배우들이 보여주는 랩과 춤 역시 청소년기의 경쾌한 리듬을 드러낸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교실은 폐쇄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수조에 비유된다. 수조 안에 갇힌 물고기들은 아무리 그 안에서 자유롭게 헤엄친다고 해도 공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진정한 자유를 찾기 어렵다. 진정한 자유를 위해서는 수조를 나와야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존재감 없이 지내는 지호와,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충실하기에 교실에 적응하기 어려운 경주는 수조 바깥을 꿈꾼다. 겉으로는 대조적인 것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 친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도 수조 안에만 머무를 수 없는 두 사람으로서 물고기를 닮은 소녀인 경주를 지호가 동경하면서 먼저 친구가 되자고 용기를 내고, 고독했던 경주도 이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작품을 전반적으로 관통하는 의태어는 팔딱팔딱이다. 이는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수조 속의 고등어를 보며 느끼는 의태어인 동시에, 수조를 탈출하고 싶은 욕망을 상징하기도 한다. 팔딱팔딱 살아 있는 심장을 갖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 바다에 가서 진짜 고등어를 보고 싶은 두 사람이 통영에 가는 것은 교실이라는 수조를 탈출하고자 하는 움직임에 해당할 것이다. 이들의 일탈적인 움직임 역시 팔딱팔딱이라는 의태어로 말할 수 있다.

 

 

 

 

쏟아지는 말들

 

무엇보다 이 작품에서 돋보이는 것은 존재감 없던 지호의 변화이다. 그 변화는 지호가 하는 말의 변화로 나타난다. 이 작품에서는 중학생 소녀들의 생동감 있는 말들이 쏟아지고, 넘쳐난다. 지호는 말수가 적고 숫기가 없지만 혼자 일기를 쓰는 것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독백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지호의 모습을 폐쇄적이라고 독단할 수 없다. 지호는 작은 소리를 온 세상처럼 듣입천장에 붙은 고등어 껍질에 민감한 섬세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섬세한 감수성은 물고기를 닮은 경주를 포착하며, 독백의 일기장에서 대화의 쪽지로 향하는 변화를 이끌어낸다. 처음에 지호가 경주에게 건넸던 쪽지는 두 사람이 교실에서 몰래 주고받는 쪽지로 발전한다. 이는 두 사람의 교감을 상징하는 동시에, 청소년기를 이루는 주된 구성 요소가 관계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교실 안에서는 이렇게 긍정적인 관계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지호의 일기장을 훔쳐 본 친구들이 지호를 압박하고, 경주에 대해 나쁜 소문을 퍼뜨리면서 공기는 어두워진다. “말이 말을 먹는소문은 이해가 아닌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수조 안에 갇힌 채 그 안을 맴돌기만 하는 것처럼 지호와 경주에게 출구 없는 고통을 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호와 경주는 수조를 박차고 나온다. 그리고 지호는 경주를 통해 발산하는 법을 알게 된다. 경주는 참지 말고 소리를 지르는 것, 화분을 부수는 것, 마음껏 사랑하는 것에 대해 지호에게 가르쳐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통영으로 가게 되는 것은 고등어를 닮은모습으로 행동할 수는 있지만, 진짜 고등어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들은 흉내 내기를 멈추고 통영으로, 진짜 바다로, 진짜 고등어를 향해 가는 것이다.

 

 

 

 

생기 있는 탈출

 

통영에서 고깃배에 오른 뒤 지호와 경주는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게 된다. 지호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오후 3시와 일요일 낮의 빨래 냄새라고 말할 때 경주는 자신이 싫어하는 것이 집구석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지호와 경주는 수조를 탈출한 뒤에 진짜 자신을 마주한다. “자신이 답답한 것을 하찮게 여기지 말 것이라고 했던 경주의 말처럼 두 사람은 수조 속에서 봉인되었던 마음을 해제하는 것이다.

이는 심장처럼 팔딱팔딱 뛰는, 살아 있는 고등어 떼를 놓아 주는 것을 통해 더 자유로운 몸짓을 항해 나아간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살아서 튀는 고등어를 공으로 표현해서 생기 있는 모습을 극대화한다. 공처럼 통통 튀는 고등어를 바다에 놓아주면서 지호와 경주도 자신들이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고등어를 잡기 위해탄 어부들과 놓아 주기 위해탄 소녀들은 대척점에 놓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장이 고등어회를 주면서 하는 말은 진짜 고등어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선장은 고등어는 잡힌 뒤에도 살아 있는 게 기적이며 성질이 급해 잡히자마자 죽고, 살아 있지 않은 정도만 산다고 이야기한다. 몸부림이 몸이 되고, 죽을 만큼 살다가 죽는 것이다. 즉 이는 고등어가 처음부터 진짜 살아 있는 것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고등어의 몸부림을 통해 비로소 살아 있음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급식실에서의 죽은 고등어가 아닌, 살아 있는 고등어회를 먹으면서 지호와 경주는 고등어의 몸이 되는 경험을 한다. 고등어를 바라보면서 흉내 내는 것에서 나아가 고등어의 몸이 되는 것은 살아 있겠다는 목소리를 몸으로 발화하는 것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청소년기

 

통영에서 고등어를 먹고, 고등어의 몸이 되는 경험을 했던 지호와 경주의 탈출은 영원하지 않다. 진짜 고등어가 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고등어도 바다에서 살 때 가장 생기가 있듯이, 원래 살아 있던 곳에서 생기를 갖는 게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지호와 경주도 팔딱이던 곳에서 다시 돌아와 땅을 딛게 되지만 두 사람은 함께 돌아가지 않고, 경주는 통영에 남고 지호 혼자만 올라온다.

그러나 일종의 제의처럼 통영에 갔다 온 뒤 지호는 더 이상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하늘과 바다처럼 따로 떨어질 수 있어야 계속 볼 수 있는 것으로서, 분리되어 있지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의 연장선에서 통영에 가기 전의 지호가 일기장이라는 독백에서 쪽지라는 대화로 변화했다면, 바다에 갔다 온 뒤 다시 돌아온 곳에서는 대화를 포함한 독백이 이루어진다. 혼자 돌아온 지호는 화분을 보며 독백을 하는데, 이는 더 이상 외로운 외침이 아니라 경주라는 존재를 자신의 안에 품고 있기에 진짜 혼자인 법을 배우면서하는 독백에 해당한다. 고등어처럼 살아 있는 몸부림이 몸이 되는 법을, 몸부림 자체가 삶이라는 것을 배우게 된 것이다.

또 다른 몸부림은 깨진 화분에서 꽃이 피는 것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자신을 보호해 주는 울타리인 화분이 깨져도 스스로 뿌리를 내려 재생되는 꽃처럼 학교라는 울타리가 깨져도 청소년은 자라는 것이다. 그러니 청소년이 자라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라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청소년들 역시 수조 안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도 그 안에서 질식하는 것이 아니라 고등어처럼 생동(生動)하며 몸부림쳐야 할 것이다. 수조 안에서 시들어가기에 청소년들은 너무나도 섬세하고, 소중한 존재들이므로. 이 작품을 보고 나니 아름다운 소망을 하나 말하고 싶어진다. 청소년을 지나온 모든 이들, 청소년인 이들, 그리고 청소년이 될 이들이 모두 생동(生動)하기를!

 

 

 

*사진제공_국립극단

**국립극단 웹페이지 바로가기 >>> http://www.ntck.or.kr/ko

 

 

 필자 : 권혜린 (http://blog.naver.com/grayhouse31)

 소개 : 작은 매처럼 책과 책 사이를 날아다니고 싶은 골방 탐험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