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밥 9월 레터] 쌓인 것들, 쌓을 것들


쌓인 것들, 쌓을 것들

 

9월의 시작은 가오슝에서 했습니다. 구체적인 이유도 계획도 없이 가선 걸으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가오슝시립미술관, 가오슝시네마테크, 가오슝문학의집, 보얼예술지구를 들르고 지역의 독립서점 여러 군데에 갔어요. 우리가 서울에 모든 것이 편중되어 있다고 느끼듯 대만 사람들도 타이베이와 다른 지역의 문화적 불균형을 지적하고는 합니다. 그럼에도 가오슝은 지역 문화예술이 활발히 생동하는 곳이어서 이곳만의 값진 것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물론 그것이 타이베이가 가진 문화적 어드밴티지를 완전히 상쇄할 수 있거나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수도의 흉내, 재연, 아류거나 원로 예술인들의 헌정무대로서가 아닌 지역예술, 현지에서 활동하는 젊은 기획자, 작가, 관객, 플랫폼 운영자의 존재는 틀림없이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다니는 곳곳에서 가오슝에서 만들어지는 잡지, 가오슝 출신의 영화인들, 가오슝에서 기획된 전시들이 차곡차곡 쌓이는 것이 눈에 보였습니다. 서점 한쪽 벽을 꽉 채운 ‘9월의 행사포스터를 서너 살배기 어린이 사장님(의 딸)과 함께 보면서 여기서는 시를 읽어 주고 여기서는 영화를 보여 준대, 어디에 가면 좋을까?’ 이야기하던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더불어 기억나는 것은 미술관에 간 날입니다. 시립미술관은 큰 공원 안에 있었는데, 저는 공원 반대편에서부터 걸어가느라고 숲길을 통과했습니다. 전시를 다 보고 근처에서 저녁을 먹은 뒤 숙소로 가려는데 슬슬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날씨가 좋아서 일몰이 잘 보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헐레벌떡 공원 안으로 다시 들어갔어요. 천변 다리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전시를 보고 온 사람들, 미술관 앞 조각공원에서 노는 사람들, 모여서 포크댄스를 추고 라디오 음악채널을 틀어놓은 사람들도 함께 눈에 들어왔습니다. 다리는 폭이 좁은 난간을 댄 것이 아니라 석재가 바닥부터 난간까지 유선형으로 두툼하게 이어진 형태여서 여러 사람이 걱정 없이 몸을 기대고 해가 지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중 한 할아버지는 아예 등을 대고 누워서 거꾸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계시더라고요. 저도 냉큼 따라 누워서 하늘을 보았습니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 10주년 포스터가 거꾸로 보는 아이인데같은 시덥잖은(?) 생각을 하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노래하고 춤을 추고 전시를 보는 곳에 또 오고 싶다며, 다시 만날 남국을 생각하면서요.

 

추석 연휴에는 상하이퀴어필름페스티벌에 갔습니다. 그러고 보니 작년 요맘때에도 다녀와서 편지를 썼었지요. 상하이에선 상반기에는 상하이프라이드페스티벌의 일환으로 프라이드영화제를, 하반기에는 상하이퀴어필름페스티벌 집행부에서 퀴어필름페스티벌을 엽니다. 여기에 지역의 언더그라운드 바를 비롯한 공간에서 간헐적인 스크리닝이 열리기도 합니다. 독립, 예술영화 개봉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정보력이 있는 사람들이나 다운로드를 통해서 관람한다고 하니 이런 공공상영의 역할이 더더욱 중요할 것입니다. 더군다나 퀴어가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처럼 여겨지는 이곳에서는요.

 

작년엔 영국문화원과 레즈비언 바에서 두 섹션을 관람했는데, 올해는 현지 전시공간이 밀집한 M50창의원구의 갤러리 스펙트럼에서만 세 섹션을 봤습니다. 이 공간에서 전 섹션을 상영했기 때문이에요. 이곳저곳의 상영공간을 전전하는 것보다 관객에게도 운영진에게도 편한 선택이었지만 전용 상영공간이 아니다 보니 객석이나 상영 시스템엔 불편이 따르기도 했습니다. 좋은 영화들을 보았고 가치 있는 행사에 참여했지만 동시에 현실적으로 미흡한 부분들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멈추기 힘들었습니다. 행사 성격상 나쁜 평가를 저어하고 대강 긍정적으로 넘어가는 피드백을 받는 경우도 있고(‘좋은 뜻으로 한 건데 뭘같은), 이번에도 관객설문을 열었습니다만 컨텐츠와 퀴어 커뮤니티 자체에 대한 것이지 인프라와 관련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행사는 컨텐츠가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에 운영 역시도 전문적인 영역임을 간과하는 건 아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작년의 경험이 올해의 발전을 만들었듯, 올해의 경험이 내년 축제를 더 멋지게 만들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9월의 마지막 날엔 지난해 <리어왕> 공연을 보았던 염소의 노래 극단이 만든 <햄릿>을 보았습니다. 음악과 신체연기, 모놀로그를 핵심적으로 사용한 이번 <햄릿>은 염소의 노래의 강점을 살려 힘있고 직선적인, 선명한 메타포를 보여주었습니다. 매혹적이고 흡인력 있었지만 동시에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필리아를 모욕하지 않는 것이 많이 어려운지. 왜 오필리아에게 일어난 일은 직접적인 폭력과 정신적 강간으로 묘사되어야 하는지요. 셰익스피어의 원전을 변형하는 것은 당연한 시도로 여겨지지만 셰익스피어 작품 속 여자들은 그대로 두거나 더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듯합니다. 레이디 맥베스와 세 마녀를, 캐서린을, 코델리아와 그 언니들을 묘사할 때를 생각해 보아도요. <햄릿>에서도 그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이들은 <햄릿>의 도처에 도사리는 광기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광기를 여성명사로 서술하기란 버릇처럼 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제 10월입니다. 10월을 생각하면 올해는 가지 못하는 부산국제영화제부터 떠올라요. 제가 가장 보고 싶은 국내작은 오지필름의 <라스트 씬> 입니다. 부산의 터줏대감 같던 극장 국도예술관이 문을 닫는다고 했을 때 떠오른 건 그럼 이제 오지의 다큐 상영회도 끝나겠구나였습니다. 오래된 극장의 복도와 상영관, 관람하는 영화 포스터 이미지가 들어간 티켓, 새 독립영화가 개봉했을 때 지역 릴레이 GV를 하던 것 또한 오랫동안 추억할 테지만, 그럼에도 처음 생각난 것이 그거였어요. 부산을 기점으로 활동하며 오랫동안 밀양 고압송전탑 건설에 맞서 싸우는 마을 할머니들, 4대강 공사로 인해 인적 드문 마을이 된 영주 기프실 등을 카메라로 담아 관객을 만난 오지필름은 국도예술관에서 정기적으로 다큐멘터리 상영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지역의 독립예술공간이 사라진다는 건 그 공간에 얽힌 기억이 사라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공간에서 현재진행형으로 일어나던 지역의 독립예술활동이 갈 곳을 잃는 것이기도 하단 걸 느꼈습니다. 그런데 바로 오지에서 국도예술관과 함께한 시간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부산에서 상영한다고 하니 기쁘다고도 슬프다고도 할 수 없는, 그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오지필름에서 국도 핀뱃지와 엽서를 모아 만든 관객 선물을 나누어드린다고 하니, 관람을 하게 되면 영화로도 물건으로도 그리고 하나의 관계로도 추억거리를 늘리게 되는 셈일 것입니다. 쌓인 것들 앞에서 쌓을 것들을 계속 찾는 시간, 그게 좀 가을과도 닮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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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밥 필자

김 송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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