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7. 2. 11:09ㆍFeature
제19회 서울변방연극제 들여다보기
제19회 서울변방연극제 프리뷰
글_전강희
많은 사람이 쓰고, 만들고,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축제
‘서울변방연극제’가 어느덧 19회를 맞았다. 1999년에 시작해서 올해 2019년까지 21년 동안 총 19번의 축제가 있었다. 연혁을 살펴보면 소극장 한 곳에서만 축제가 올라간 해도 있었고, 국제적인 공연예술제로 축제의 규모가 확장되던 시기도, 거리에서만 축제를 열었던 때도 있었다. 당시에는 ‘이게 어떻게 연극이냐?’ 하는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지금은 연극 장르에 안정적이게 안착한 연출가들이 있었고, 무용 작품을 연극제에서 발표해서 이력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현재는 누구나 작업하기를 원하는 대상이 된 안무가들도 보였다. 여전히 경계를 떠돌면서 장르의 문법을 비켜 가고 있는 예술가들도 있었다. 또, 사회적 사건의 당사자로서, 축제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예술 언어로 바꾸어 목소리를 내는 작업을 했던 사람들의 이름도 있었다.
지난 축제들은 정확한 문구 아래 놓여 있었다. ‘보통시에 사는 특별 시민들’, ‘연극 없는 연극, 정치 없는 정치’, ‘사건일지: 과거의 미래’, ‘연극이라는 광장에서’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사회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모토는 2대 예술감독인 임인자 이후 만들어진 서울변방연극제만의 특징으로 3대 예술감독인 이경성이 열었던 18회 축제 ‘25시-극장전’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25시-극장전’이라는 모토는 사회적 맥락이 강한 이전 모토들과는 차이가 있었다. 사회적 사건들을 극장으로 ‘어떻게’ 가져올 것인지를 내용보다는 형식에 더 무게를 두고 고민했다. 이어 19회 축제는 모토를 만들기보다는 축제의 플랫폼을 다시 구성하는 것에 집중했다. 새로운 시선을 더하고자 3대 공동예술감독으로 호주의 연출가 아드리아노 코르테제(Adriano Cortese)가 합류했다. 또한, 18회부터 축제의 대표이면서 드라마터그와 사무국장의 역할을 겸했던 전강희의 포지션을 대표이자 프로그래밍 디렉터로 재편하였다. 그리고 18회 축제에서 홍보마케팅을 담당해주었던 이정은 피디의 역할을 총괄 피디로 확장하였다. 역할이 세분되고 나니 축제의 플랫폼을 다시 짜기가 더 수월해졌다.
3대 공동예술감독인 아드리아노 코르테제는 작년에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작품을 찾아보고 예술가들을 직접 만나기 위해서였다. 여러 논의를 거친 후, ‘공연’, ‘워크’, ‘토크’로 구성된 플랫폼을 구상했다. ‘공연’은 무대에 최종작품을 올리기, ‘워크’는 작업 과정을 공유하기, ‘토크’는 축제 혹은 현장의 이슈를 담론화하기가 목표이다. ‘공연’ 7개, ‘토크’ 3개, ‘워크’는 ‘워크룸’이라고 이름을 붙여 2개의 작품 창작과정을 공유한다. 이번 축제에 올라가는 작품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는 공연’과 ‘관객의 위치/자리를 바꿔보는 공연’으로 크게 나눠볼 수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기’
丙 소사이어티, 김원영×0set프로젝트, 아니아 바레즈(Ania Varez), 정세영, 공놀이 클럽의 공연은 자기 자신에서 출발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를 전하며, 자신이 누구인지를 사회적 맥락 안에서 확인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대부분이 작가이자 출연자이기 때문에, 글쓰기와 연기하기를 병행했다.
丙 소사이어티의 <신토불이 진품명품>은 송이원, 오수환, 허지우의 이야기이다. 배우 권형준, 송하늘, 유이든이 세 사람의 역할로 분한다. 배우들은 세 명에게 다가가고자 노력하지만, 동시에 연습실에 놓인 인형도 되어야 하며, 레오나르도, 링링, 토마스도 되어야 한다. 한국인이자 지구인이며 외계인이기도 하고, 성소수자이자 병역기피자이며, 또한 사물일 수도 있는 자신을 보여준다. 정체성을 고민하며 여러 갈래 길 위에서 갈등하고 흔들리는 존재가 아닌, 자신을 셀 수 없이 분열하고 끝없이 확산하는 긍정적인 존재로 만들고 있다. 초고는 안정민 작가가 丙 소사이어티의 정기적인 글모임에서 소재를 서로 나누고 발표한 조각 글들을 모아 만들었다. 그 후 연출가 송이원이 다시 재구성하고, 프로덕션 구성원들과 공유하고, 수정과 재구성을 여러 차례 반복하면서 대본을 만들었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의 저자인 김원영은 0set 프로젝트와 <사랑 및 우정에서의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을 만든다. 김원영의 고민과 질문들을 풀어놓는 모노드라마 형식을 취하고 있다. 김원영은 차별을 금지할 것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개인의 구체성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차별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기도 한다. 부당한 차별을 배제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타인과 ‘차별되는’ 구체적인 개인이 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다. 연출가 신재와 0set 프로젝트의 창작진들은 김원영 개인의 이야기가 사회의 이야기로 확장되는 방식을 강연 형식과 공연 형식을 교차시키면서 구성하고 있다.
이번 축제의 해외초청작인 <Guayabo>는 베네수엘라말로 번역하자면 ‘애도 파티’ 정도로 옮길 수 있다. 아니아 바레즈는 베네수엘라 출신의 연출가로 현재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영국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베네수엘라에 있는 연출가의 가족과 영국에 있는 사람들이 문자 메세지를 교환하는 것이 컨셉이다. 베네수엘라는 1998년 차베스가 정권을 잡은 이래로 28년간 독재 정권하에 있으며 사회 기간 산업이 대부분 파괴되어 기본적인 안전망을 구축할 수 없는 사회가 되었다. 연출가의 말에 따르면, 아침에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이 그날 살아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곳이다. 연출가는 <Guayabo>를 만든 이유로 “우리 가족은 여전히 베네수엘라에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있습니다. 나는 그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라고 말한다.
정세영의 <Shame Shame Shame>에서 부끄러움의 원인은 사회적으로 어떤 중대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것에 대해서 발언하지 못하는 혹은 발언 기회를 계속해서 놓치고 마는 예술가 자신에게 있다. 셜리 앤 컴퍼니(Shirley & Company)의 노래에서 제목을 따왔다. 가사는 ‘춤을 출 수 없다면, 부끄러운 줄 알아라. 나는 너무나 춤을 추고 싶다.’라는 의미이다. 당신과 지금 함께 춤을 추고 싶은데, 왜 그렇게 움직이지 않고 있느냐는 뜻이다. 다양한 매체를 무대에서 활용하며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하는 정세영은 이번에는 ‘연극’이 하고 싶다고 말한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부당함에 대해서 거의 동시에 의견을 개진하곤 했던 연극이라는 장르의 속성에 비추어 예술가인 나의 선택과 입장을 돌아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공놀이 클럽의 <테이크 미 아파트>는 아파트에서 태어나고 자란 청년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배우 중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가 아파트에서 살았던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대부분이 평수를 늘려서 좋은 브랜드 아파트로 이사하는 것이 삶이 나아지고 있는 증거라고 믿었다. 연출가 강훈구는 이런 삶의 방식이 예술을 해나가는 방식과도 만나고 있다고 말한다.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이런 극장에는 꼭 서봐야 한다, 이제는 이 지원금을 꼭 받아야 한다.’처럼 성취할 다음 단계를 정해 놓고 사는 삶이 아파트의 삶을 통해 학습된 것은 아닌가 고민하고 있다. 대본은 연출가이자 작가인 강훈구의 글을 초고로 삼고, 연습실에서 서로 나눈 경험을 토대로 각자 글을 더 써오고, 연출가가 다시 재구성하고 살을 덧붙이는 형식으로 만들었다. 익숙한 삶이 아닌 다른 삶을 꿈꾸듯이 이번 공연 형식도 익숙하지 않은 어딘가 불편한 형식을 만들어보고자 한다.
‘관객의 자리 바꾸기’
황수현, 허윤경, 제너럴 쿤스트×프로젝트 이인, 문화다방 이상한 앨리스가 준비하는 작업은 관객이 없으면,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관객의 몸이 무대에 함께 서주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공연이다. 자신이 느끼는 사적인 감각을 타인과 나눌 수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황수현의 <나는 그 사람이 느끼는 것을 생각한다>는 ‘아는 감각’에 대한 탐구이다. ‘아는 감각’이란 안무가에 따르자면 누구나가 경험해 본 적이 있어서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는 ‘공동의 감각’이다. 중력을 디디고 서 있는 신체의 감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공연 안에 관객이 어떻게 위치할 것인가를 넘어서 관객의 신체 자체가 어떻게 포함될 것인가에 더 집중하고 있는 공연이다. 누구나 아는, 공동의 감각을 공연장에서 바로 나누고자, 관객의 위치를 공연자의 위치와 같도록 배치했다. 관객이 무엇인가를 적극적으로 수행하지 않더라도 공동의 감각을 나눌 수 있는 방법을 탐구 중이다. 결국에는 아는 감각이 ‘모르는 감각’으로 넘어갈 수 있을까, 얼마나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을까를 시도해 보는 작업이다.
<미니어처 공간 극장>은 허윤경이 최근 몇 년간 고민했던 문제들을 안무 스코어로 만든 공연이다. 스코어는 몸에 관련된 지시문과 공간에 관련된 지시문 두 가지로 분류되어 있다. 총 100개가 넘는 지시어가 있지만, 실제 공연에서는 30개 정도가 쓰일 예정이다. 지시문의 수행자는 모두 관객이다. 관객의 역할은 지시문의 실제 수행자로, 수행하고 있는 관객을 바라보는 관찰자로, 혹은 두 가지 모두를 실행하는 사람으로 끊임없이 변모할 것이다.
제너럴 쿤스트×프로젝트 이인의 <질문들>과 문화다방 이상한 앨리스의 <내 눈 안의 너>는 워크룸 프로그램에 속해 있다. 앞서 설명한 작업들이 공연 자체로 관객과 만난다면, 이 두 작업은 관객이 공연보다는 과정과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 7월 9일 최종 발표일 전, 총 8차례의 워크숍을 진행한다.
<질문들>은 제너럴 쿤스트의 이전 작업 <내가 아는 누군가>의 연장선에 있다. 관객들이 헤드셋에서 들리는 안내를 듣고 수행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한다. 예를 들면, “나는 최대한 친절하게 말하려고 노력합니다. 가끔은 위협받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를 이해할 수 있나요? 예라면 그대로 오른발을 천천히, 높이 들어 올립니다. 아니라면 왼발을 들어 올립니다. 천천히”가 있다. 프로젝트 이인이 질문들에 답이 될 수 있는 움직임들을 리서치 중이다. 관객이 답변을 주기도 하지만 무용수가 답을 전하는 장면 또한 구성되어 있다.
<내 눈 안의 너>는 프랑스의 그래픽 노블 작가 바스티앙 비베스(Bastien Vives)의 작품으로 사랑에 빠진 한 남자의 시야에 보이는 여자의 모습을 그렸다. 독자는 책에 그려진 공간 안에 있고, 주인공 여자를 바로 눈앞에서 대면하고 있는 것처럼 그림이 그려져 있다. 2차원적인 매체로 3차원에 있는 듯한 효과를 내고 있다. 연출가 윤사비나는 차원이 변하는 이 지점을 매일 매체를 달리해가며 조명이나 사운드 만으로 구성해보는 실험을 하고 있다. 독서하기를 능동적인 작품 감상 형식으로 보고, 공연보기 형식과 어떻게 만나게 할 것인지, 이런 환경이 구성된다면 관객의 자리는 어디에 있을지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지금까지 19회 서울변방연극제에 올라오는 작업들을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는 공연과 관객의 자리를 바꿔보는 공연으로 분류해서 살펴보았다. 작품의 형식을 구축해나가는 방법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모두 강력한 리더가 모든 것을 통제하는 공연이 아니기 때문에, 작품별 창작 주체가 다양하다. 그만큼 글쓰기 방식, 형식을 만드는 방식이 다양해졌다. 실질적으로 관객에 대해서 고민하는 작품이 많아지면서 보는 법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것들을 자유롭게 실험해보고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는 축제 플랫폼으로서 서울변방연극제가 제 역할을 해내기를 기대한다. 또한, 페미니즘 연극제 등 이웃 축제와 공동포럼을 기획하고 현장의 동시대 연극 담론을 견인해 나가는 플랫폼의 역할도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 사진출처 _ 제19회 서울변방연극제
* 제19회 서울변방연극제 홈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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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_ 전강희 서울변방연극제 대표/프로그래밍 디렉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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