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 17. 00:22ㆍFeature
하이드는 잡히지 않았다
<메이크 업 투 웨이크업 2>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
<불편한 연극>말하기 - '국가지원 연극의 성평등 모니터링'은 젠더비평의 관점으로 연극을 보고 말하는 모임이다. 작품 내에 주변부를 소외시키거나 혐오의 이미지를 재생산하는 등 가부장제 질서에서 행해지던 폭력을 인식하고 재현윤리를 검토한다. 국가의 지원을 받는 동시대 연극이 추구해야 하는 방향성이 무엇인지 실마리를 찾는 프로젝트이다. |
일시 : 2019년 8월 12일 오후 1-3시
장소 : 삼일로창고극장 갤러리
참석자 : 대도루팡, 명탐정코난, 모두까기, 무민, 앵두, 초코송이
모더레이터 : 졸리에르
공연명 : <메이크업 투 웨이크업2>
졸리에르_<메이크업 투 웨이크업1>은 옷을 입고 메이크업을 함으로써 맡은 역할로 변신하는 배우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메이크업과 옷(에 맞는 몸)에 집착하고 있는 ‘여자’배우의 이야기였다. 김정, 황은후 두 배우의 고민이 출발점이었던 거 같다. 그런데 그것이 여배우만의 일상은 아닌 거다. 일반 여성들도 그렇게 매일 옷을 입고 메이크업을 하면서 자신이 여성이란 것을 표현한다. 이 연극은 배우의 자기 고민을 드러내면서도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기대받는 여성의 역할을 수행하는 그 과정에 문제를 제기한다. 반면 <메이크업 투 웨이크업2>에서는 탈코르셋에 좀 더 초점을 맞춘 것 같다.
모두까기_재밌게 잘 봤다. 마지막 장면도 서로 연대 가능한 지점을 보여준 것 같아서 되게 좋았다. 아쉬웠던 것은 하이드의 정체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코스메틱 산업 표상 이면에 숨은 하이드의 정체를 푹 찌르면 좋았을 것 같다.
졸리에르_내 생각에는 하이드가 초연보다는 훨씬 많이 드러났던 것 같다. 2017년 공연에서 아쉬웠던 것은 하이드의 존재가 잘 안 드러났다는 거다. 하이드는 그저 사람들의 말 속에만 있다가 사라지는 존재였다. 그런데 이번 재공연 때에는 하이드라는 존재가 우리 사회의 코스메틱 산업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명징하게 드러내고 우리도 모르게 그런 것들에게 잠식당하고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가 잘 드러나게 각색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하이드는 그렇게 간단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화장품이나 성형, 패션 산업, 방송이나 광고뿐만 아니라 일상 속 자기 검열까지도 늘 우리를 지켜보는 하이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민_중간에 하이드에게 잡혀가고 정말 공격당하는 것 같은 장면이 상상력을 제한시켜버린 것 같아 아쉽다.
졸리에르_난 그 장면을 거식증처럼 우리 스스로를 갉아먹는 어떤 것을 보여주는 설정이라고 봤다.
무민_인물들이 코르셋을 하면 하이드는 존재하는 것인가? 탈코르셋을 하면 하이드는 사라지는 것인가?
모두까기_하이드의 정체가 모호할 때, 이것이 여자들의 문제로만 보여지는 것 같아 인식의 폭이 좁다고 느꼈다. 내가 억압되어 살고 있는 것이 자기의지만 작용하는 건 아니지 않나. 탈코르셋을 하는 것도 자기의지만 작용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대적 변화와 흐름이 있어야 가능한 지점인데.
초코송이_이 극의 결말이 한 사람이 구조 밖으로 나가고 또 다른 사람을 끌고 나가면서 구조가 깨지는 건데, 처음에는 무척 힘들었다. ‘결국 개인에게 기대를 거는구나. 내가 너무 힘든데 이것마저 내가 깨트려야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그런데 고민하고 고민하다보면 결국 그 결말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결국 인간에게밖에 기댈 수 없고, 구조를 깨부술 사람도 인간이니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모두까기_탈코에 대한 의견도 여전히 분분하다. 어떤 사람들은 투블럭에 화장을 안 하고 해야지만 탈코야. 라고하고, 그렇게 정해진 것이 코르셋이다. 라는 의견이 분분한데, 두 분이 마지막에 (외적인 것이) 조금 비슷하게 보이는데, 그렇지 않은 방식으로 탈코를 하고 있는 사람들 이야기도 포괄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졸리에르_탈코의 방식이 꼭 헐렁한 옷을 입고 화장을 안 하는 그런 것만이 아닐 텐데 싶어서 우려스럽긴 했다. 안 그래도 요즘 탈코 논쟁도 있고 해서 좀 더 이 부분을 잘 다루었으면 했다. 마지막 장면에 두 배우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춤을 추는데 <메이크업 투 웨이크업1>에서도 같은 장면으로 끝이 났다. 그래서 한편 반가우면서도 익숙한? 식상한? 느낌이었다. 일단 <메이크업 투 웨이크업1>에서 봤던 춤은 정말 즐거웠다. 정말 날것의 춤이었는데 일부러 못 추려고 해도 그렇게 추기는 힘들 거 같았다. 보통은 무대 위에 서면 예쁘고 섹시하게 보이는 춤을 추지 않나. 그런데 이 두 배우는 꾸미지 않은, 정말 집에서 혼자 추는 것 같은 막춤을 췄다. 근데 그게 너무 신나는 거다. 하지만 2에서는 같은 장면으로 끝나는 건 좀 급하게 마무리한 느낌이었다.
모두까기_평상시에 화장을 잘 안 해도 무대 위에서는 화장을 해야 하지 않나. 하고 의심 없이 해왔다. 학교에서는 속눈썹 붙이고 어마어마하게 대극장용처럼 했다. 오히려 현장에서 메이크업을 조금씩 안하기 시작했다.
명탐정코난_학교 다닐 때, 배우가 공연 날 속눈썹을 붙이고 풀메이크업을 하고 왔다. 나는 당황하고(미리 협의 안한 부분이라), 배우 입장에서는 공연 직전이니 당연히 화장을 한 거다. 당황했던 기억들이 있다.
초코송이_공연 티켓팅할 때 ‘네가 공연을 보러오면 가장 먼저 보이는 꽃인데’ 이런 얘기도 들었다. 항상 공들여서 화장했던 것 같다. 내가 관객과 만나고 공적인 업무를 볼 때는 화장을 해야 한다는 압박.
명탐정코난_2년 전만 해도 공연 날은 나도 화장을 했다. 연출로서 공적인 인사를 하는 자리라는 생각이 들어서. 작년부터는 그냥(화장 안 하고) 가는데. 공공극장에서 티켓팅할 때는 어셔분들은 유니폼 입고 매니저분은 멋있는 정장입고 출퇴근 하시는데, 내가 그 분들의 문화를 침범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더라.
무민_대학 들어갈 때부터 츄리닝을 입고 다녔기 때문에 극 안에 몰입이 되고 그런 건 아니었지만. 연출적, 연기적으로 군상들 자체를 재밌게 표현했다.
초코송이_뱃살을 보면서 친다든지 그런 포착들이 재미있었고 사소한 지점에서 공감이 늘어났다.
모두까기_누워서 옆으로 다리 올리는 거 많이 해 봐서 빵 터졌다.
명탐정코난_사실 이런 일상의 차별들이 쉽게 포착할 수 있는 것들만 가져다 놓은 것과 문제제기 그 이상이 안 되고 있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문제제기가 코스메틱 산업으로 쏠려 있는데 그렇다면 그것만 문제인가? 화장과 옷만? 이런 문제제기가 되는 건 너무 좋고, 이런 공연이 너무 필요한데 그럼에도 단순하지 않았나.
앵두_이야기나 문제에 대해서 깊은 스펙트럼을 갖지 못해서 아쉬웠고, 에디터분들 나올 때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는 것들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모르겠더라. 그런 모습들이 예전부터 개그콘서트에서 우스꽝스럽게 해왔는데. 어떤 부분만 부각해서 혐오를 표현할 때 그것이 여성의 목소리로 다시 재현되는 게 한계처럼 느껴졌다.
졸리에르_‘겟잇뷰티’ 같은 프로그램 보면 맨날 하는 얘기. 너무 그런 게 떠오르니까, 과장되었지만 그 비판을 재밌게 봤던 것 같다.
모두까기_사진 찍을 때 몸을 굉장히 이렇게(소위 모델포즈) 뒤틀지 않나. 여성들의 기본적인 몸 상태를 이 사회가 부정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코송이_모델 선발하는 프로그램을 본 적 있는데, 사진 찍을 때 모델에게 ‘자세가 불편해야 사진이 예쁘게 나와’라는 말을 하더라.
모두까기_불편한 자세가 왜 예쁠까. 어쩌면 인간답지 않아야 대상화하기 수월한 존재로 느껴져서 그런 걸까.
졸리에르_여성이 인형인 거다.
명탐정코난_메이크업 강요. 다이어트를 위한 자극적인 홍보문구. 가해자를 간단하게 보여주는 느낌이었다고 해야 할까.
모두까기_그래서 하이드가 더 드러났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부장제 문화가 어떻게 여성을 비인간화하고 멸시하고 있는지, 여성을 교환가능한 존재로 만들고, 여성 신체에 대한 억압이 누구의 욕망을 반영한 것인지.
초코송이_80분이란 시간 안에 그 모든 것들을 담기엔 힘든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창작진들이 선택과 집중을 한 것 같다.
졸리에르_나는 3편을 기대한다. 1편과 2편이 연속성을 갖고 있지만 다루고 있는 내용이 완전히 달랐기 때문에 이 한 작품에서 모든 걸 다 얘기하기보다 그냥 다음 작품을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무민_여성의 코르셋을 문화적인 콘텍스트 안에서 어떤 군상들이 있는지 다루면 좋지 않을까.
졸리에르_이 작품이 두 배우에게서 출발해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본인의 진짜 이야기든 아니든 1편에서 황은후 배우는 메이크업에 굉장히 관심이 많다고 소개했고, 김정 배우는 의상과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그래서 1편에서 메이크업을 안 하거나 살이 쪘을 때 불안한 마음 같은 걸 굉장히 잘 보여주었는데 일단배우들의 관심이 그런 부분에 있어서 그렇지 않았나 싶었다. 그 다음에는 정말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가지 문화 콘텍스트에서 찾아봐도 정말 재밌을 것 같다. 제발 누가 써주시면, 누군가가 해주시면 좋겠다.
명탐정코난_저는 이 두 배우분들을 잘 모르는데, 구성과 작업을 다 직접 하셨다는데 정말 멋있다.
졸리에르_사막별의 오로라가 두 배우를 중심으로, 1년에 한 편씩 창작을 하겠다는 모토로 만들어졌다고 들었다. 요즘에 보면 여배우들이 1인 창작을 하거나 몇 명이 의기투합해서 자기 이야기를 하는 작품이 늘어났다. 사막별의 오로라 두 배우는 함께 작업하기도 하지만 두 사람이 각각 창작하기도 하는데, 김정 배우는 올해 초에 <기록을 찾아서: 연기를 해야지 교태만 떨어서 되겠느냐>에 참여했고 황은후 배우는 퍼포논문 <좁은몸>을 공연한다. 배우들이 자기의 목소리를 만들어가는 과정들인 것 같아서 흥미롭다. 이전에 두 사람이 체홉의 <바냐아저씨>를 각색한 <반야삼촌>을 한 적이 있다. <메이크업 투 웨이크업1>에 그 작품 오디션 이야기가 나온다. 보통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역할인 ‘엘레나’를 탐낸다. 그런데 엘레나는 어떤 사람인지 깊은 탐구를 하기 전에 예쁘고 매력적이고 꾸미는 캐릭터라는 편견을 갖고 배우를 캐스팅하고 배우에게도 그런 역할이 되도록 강요 아닌 강요를 한다. 그러면 배우는 진한 화장에 예쁜 옷을 입고 또 그런 옷을 입을 수 있게 늘씬한 몸을 만들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배우가 자신의 분석과 해석을 담아내는 게 쉽지 않다. 게다가 배우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분석과 해석을 하는 걸 안 좋아하는 연출이 있다고 들었다. 이 두 배우는 1편에서 <바냐아저씨>를 다시 쓴다. 그 장면이 그래서 특히 전복적이라고 느껴졌다.
명탐정코난_퍼포논문 ‘성별화 된 몸이 여자배우의 연기를 위한 창조적 준비상태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정말 궁금하다.
대도루팡_기관은 어떤 가능성을 기대했기에 한문위의 창작산실로 올라갈 수 있었을까?
졸리에르_몇몇 심사위원분들께 얘기 들어보면 페미니즘연극이라고 해서 많이 올라오는데, 작품성이 있는 것을 찾기 어렵다더라. 시류에 편승하는 것으로 의심이 되는 작품들이 많고, 안정적인 작품이 없다는 거다. 하지만 이 작품은 비교적 그런 것들이 보장이 되어있으니 그런 것 아닐까.
초코송이_앞으로도 (심사위원들이) 계속 이런 선택을 했으면 좋겠다.
*한줄평
모두까기_하이드는 잡히지 않았다
졸리에르_<메이크업 투 웨이크업3>를 기다린다
※ 이 좌담은 한국여성재단 2019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으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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