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키라라의 그냥하는 단독공연 Final : 거기에 무엇이 있길래

2020. 7. 14. 14:50Review

 

 

키라라의 그냥하는 단독공연 Final : 거기에 무엇이 있길래

 

 

키라라의 그냥하는 단독공연 Final @프리즘홀

 

글_김민수

 

사진_필자제공

 

딱 1년 전, 전자음악가 키라라가 트위터에 올렸던 글을 기억한다. 음악가가 잘 되기 위해선 공연이 아니라 유튜브의 영상 같은 콘텐츠가 더 중요한 것 같다고 시작하는 글이었다. 공연을 많이 했기 때문에 지금의 관객 수를 모은 것이 아닌 것 같다며, 공연 열심히 한 보상이라 생각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그렇게 착각하기 쉬웠다고 고백하는 글이었다. 그녀는 어떤 이미지를 만드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하였다. 거기엔 트랜스젠더로서 느끼는 디스포리아에 대한 고민도, 회사 없이 혼자 활동하는 독립음악가로서의 걱정도 섞여있었다. 그러고도 키라라는 <그냥하는 단독공연>이라는 이름의 자체 기획 공연을 20달 째 스스로 만들어오고 있었다. 도대체 그 공연에 대체 무엇이 있길래, 그녀는 매달 무료입장 유료퇴장 형식의 공연을 만들어온 것일까?

 

씬을 만드는 사람

 

키라라의 <그냥하는 단독공연>은 키라라가 한 달에 한 번 씩 키라라의 음악을 90분 동안 연주하는 자리를 가지기 위한 자체 기획 공연이었다. 2017년 겨울, 지금은 폐업한 한잔의 룰루랄라에서 시작해 작은물, 명월관, 일민미술관, 생기스튜디오, 아이다호, 신도시, 복합문화공간 에무, 채널1969등의 공간에서 진행되었다. 단독공연이지만 매회 오프닝 게스트를 섭외해, Room306, NET GALA, 코스모스슈퍼스타, 기나이직 같은 일렉트로니카 뮤지션이나 김사월, 천미지, 김뜻돌, 시와 등 포크/록 기반 음악가들들 소개하기도 했다.

 

사진_공연현장(필자제공)

 

키라라는 여러 인터뷰를 통해 전자음악 씬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해왔다. 블랙뮤직 기반의 이태원 씬이나, 신도시와 같은 공간에서 활동하는 음악가들이 있지만, 댄스뮤직을 만드는 다른 사람들과 연대감이나 소속감을 가진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DJ도 아닐뿐더러, 기존 씬에 있는 예술가들과 무대를 대하는 태도에서 가진 차이들 때문이다. 씬 안에서 늘 외로웠다는 그녀에게 <그냥하는 단독공연>은 그 외로움을 동력삼아 만들어낸 성취였을지 모른다. 그녀는 직접 공간들과 인연을 만들고, 공연을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가들을 소개했다. 축제에선 밴드들 사이에 이름을 올리고, 친구들은 포크 싱어송라이터지만 본업은 전자음악가인 그녀 스스로 씬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리믹스앨범<KM>, <KM2>는 그가 다른 인디음악가들과 교류하는 중요한 방식을 보여준다. <KM2>의 앨범소개는 이것을 ‘사랑으로 만든 음악’으로 묘사한다. 믹싱 이전의 발가벗은 곡을 받는 것도 쉽지 않지만, 원곡에 부끄럽지 않으면서도 다분히 키라라답게 재창작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원곡과 원곡자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일 거다. 첫 리믹스 음반인 <KM>에서 퍼스트에이드, 새벽, 커널스트립 등 같은 일렉트로니카 음악가들의 음악을 리믹스 하는 것에서 확장돼 <KM2>에선 슬릭, 아마도이자람밴드, 허클베리핀, 퓨어킴 등 힙합부터 포크, 록까지 그 범주를 넓혔다. 

 

음악 외에도 키라라는 유튜브 채널 <아니 어떻게 이렇게>의 진행을 맡기도 했다. 동료 인디뮤지션들을 찾아가 그들의 작업방식, 장비, 음악세계, 가치관 등을 얘기 나누는 작업이었다. 키라라 아카데미를 통해 장명선 같은 음악가를 키워내기도, 정은영 작가를 비롯해 시각예술작가들과 꾸준히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이는 외로운 한 음악가가 씬을 스스로 넓혀가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사진_공연현장(필자제공)

 

 그냥하는 단독공연Final

 

파워코드를 긁으며 에너지를 뿜어내는 오칠의 오프닝 공연이 끝나고, 키라라가 무대에 섰다. 어두운 조명을 부탁하고는 소주 한 모금을 마신 그녀가 튼 첫 곡은 <아침 이슬> 아카펠라였다. 이내 ‘키라라는 이쁘고 강합니다. 여러분은 춤을 춥니다.’라는 목소리가 들리고 본격적인 연주가 시작되었다. 음산한 베이스 위로 금속성의 소리가 쌓이다가 키라라스럽게 컴프레서가 강하게 들어간, 건조한 비트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숨을 아껴야하는 시간들’을 말하는 슬릭의 목소리 샘플이 들어오고, 절반은 앉거나 벽에 기대 음악을 듣고 절반은 춤을 추는 애매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붉고 푸른 조명이 계속 돌아갔다. cts시리즈의 수록곡들이 어떤 곡에서 어떤 곡으로 넘어갔는지 알아채기 힘들게 이어졌다. 흥이 올랐다. 키라라 역시 소주를 마시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춤추는 사람이 늘어갔다. <Wish>의 멜로디가 나오면 입으로 따라 부르기도 했다. 매 곡마다 새로운 사운드를 직조하는 데 몰입하기보다 적재적소에 샘플링을 쓰거나 시그니쳐 같은 사운드를 잘 시퀀싱하는 그녀의 작업은 어쩌면 이런 연주와 공연에 특화되어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리뷰에 대한 생각을 잊고 춤을 추고 있을 즈음이었다. 전형적인 EDM믹스에 쓰일법한 카운트다운이 올라오다 불쑥, 음악이 죽고 웃음소리인지 울음소리인지 모를 사운드가 들렸다. 손뼉을 치며 웃는 소리 같기도 하고, 가쁜 호흡에 악도 잘 나오지 않는 울음소리 같기도 한 3초가 지나고 음악은 다시 때리고 부수기 시작했다. 따라 춤을 추면서도 묘한 아릿함이 입안에 남았다. 

 

점점 고조되던 90분이 지났을 즈음 다시 한 번 녹음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정확하지 않은 청음으로 적어보자면 아래와 같은 문장이었다.

 

하나 둘 셋

안녕하세요, 받는 사람도 보내는 사람도 가려진 편지는 처음 써보는 것 같아요, 로 시작했던 사연을 다시 읽게 되었네요. 새롭네요, 라고도 했었는데 여전히 새롭고요.

 

당신덕분에 다시 없을만큼 즐거웠어요.

나는 섣불리 당신은 나에게 위로가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는데

돌아보니 기대보다 많이 위로 받았네요. 고맙다는 말을 다 못한 것 같아서 아쉬워요.

우리가 그때의 그 관계를 마저 이어나가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겠지만 

그래도 그쯤에서 마무리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서로를 위해서라고 한다면 변명이겠죠. 

 

그렇다면 나를 위해서라고 이야기할까요?

 

나는 종종 상처받았어요. 끝내는 그 악의 없는 말과 행동들에 상처받지 않는 방법을 찾았지만 문득 나는 내 상처를 핑계로 당신을 갉아먹고 있더라고요. 나는, 난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우리 인연이 남아있다면 우리 새로, 새롭게 만나요

 

당신도 건강하게 지내세요.

 

이후로 키라라는 2시간 반 가량을 더 연주했다. 때리고 부수는 음악이 계속되었다. 사람들은 춤을 추고 나는 공연장을 나섰다. 어떤 커다란 숙제를 얻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분명 즐거웠고 고맙다는 말을 듣고 나왔는데 왜였을까.

 

사진_공연현장(필자제공)

 

공연이 끝나고

 

그날 새벽 키라라는 작은 설문 하나를 트위터에 올렸다. “평생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 음악을 해왔습니다. 그것은 당신이었을까요 저였을까요”로 시작하는 설문은 성별과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성별, 그리고 키라라의 음악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묻고 있었다. 트랜스젠더로서 그녀가 경험하는 상처와, 홀로 남아 작은 씬을 일구는 예술가로서의 외로움은 <그냥하는 단독공연 Final>속 비트가 걸어온 길일 것이다. 

 

앨범 <Sarah>를 만든 뒤의 회의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작했다는 <그냥하는 단독공연>시리즈를 마치며 그녀는 얻을 걸 다 얻은 것 같아 마무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공연의 의미를 미학적으로 비평하는 것에 실패하고는 다시 묻는다. 도대체 거기에 무엇이 있길래 그녀는 이 공연을 스무 달이나 만들어오고 얻을 걸 다 얻었다고 느낄 수 있었을까? 

 

어쩌면 키라라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음악이 사실은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졌음을, 그리고 그것이 누군가를 춤추게 하고 울게 하고 또 위로했음을. 그것은 척박한 씬의 전자음악가로서 스스로 자신의 자리를 만들고, 동료를 모으고, 그들과 나누는 일이었을 것이다. 혐오의 시대 속 한 명의 트랜스젠더로서 할 수 있던 최선의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그 몸부림에 함께 위로받은 한 명의 관객으로서 그녀의 목소리를 빌려 글을 마무리 짓는다.

 

당신도 건강하게 지내세요.

 

 


 

필자소개

김민수_거리예술을 비롯한 공연예술축제를 만듭니다. 가끔은 음악가로도 불립니다. 서울프린지네트워크, 민수민정, 민필, 블루프린트 같은 소속과 친구들을 자랑스러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