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가 없으면 유동식으로, 하지만 : 자유표현집단 20도씨 <Under the Sea>

2020. 11. 4. 15:01Review

 

 

이가 없으면 유동식으로, 하지만 : 자유표현집단 20도씨 <Under the Sea>

자유표현집단 20도씨 소통3부작 '열띤 토로네' 중 <Under the Sea> 리뷰 @Studio1992

 

글_김민수 

 

<열띤토로네>공연 포스터 사진출처_자유표현집단20도씨

 

신도림역과 구로역 사이의 주택가에 입술이 크게 그려진 포스터가 골목 사이사이에 붙었다. 아주 작은 연극이 하루 동안 진행된다며 소음에 양해를 부탁하는 글과 함께였다. 포스터가 가리키는 길을 따라 닿은 곳은 흔한 빨간 벽돌 다세대 주택의 반지하 방이었다. 스튜디오1992라는 이름이 붙은 이 공간에서 자유표현집단 20도씨는 주변의 눈치를 보듯 하루 만에 6회 차의 공연을 올렸다. 세 편의 연극이 대문 안 계단 아래 공간, 반지하 방의 거실, 그 안의 작은 방으로 옮겨가며 조금씩 더 깊고 어두운 곳에서 진행되었다. 그들은 어쩌다 이런 눈치까지 봐가며 극장공연도 거리예술도 아닌 이상한 공연을 만들게 된 것일까?

 

조금씩 아래로

 

연출을 중심으로 프로덕션을 꾸리는 팀이 아닌, 다인의 극단이 연중으로 운영되기란 쉽지 않다. 가천대 극회 출신 연극인들을 중심으로 모인 자유표현집단 20도씨는 매년 4편 내외의 작품을 올리고 있으나 눈에 띄는 성취는 크지 않았다. 배우 대부분이 대학교 조교, 바리스타, 콜센터 상담사 등의 서브 직업을 가지고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따금 지원 사업에 선정되면 극장을 대관하고, 프린지페스티벌 같은 무대에 꾸준히 문을 두드리며 역량을 쌓아가는 과정은 쉽지 않지만 많은 독립예술가에게 익숙한 일일 것이다.

 

사진출처_자유표현집단 20도씨

 

전혜정 작·연출의 <Under the Sea>는 스튜디오1992와 공동 기획된 소통 3부작 <열띤 토로네>의 첫 공연이다. 반지하 방으로 들어가는 쪽문 안쪽,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의 좁은 공간이 그들의 무대였다. 그곳에서 빨간 머리의 주인공은 사회에서 쏟아지는 쓰레기를 분리하고 플라스틱을 녹여 공예품을 만들어 먹고 자고 살아간다. 그를 찾아오는 사람은 그에게 푼돈을 쥐여주고 착취하며 ‘그래야 착한 아이지’라고 하는 이뿐이다. 그는 그 집 같지 않은 집에서 나가는 것을 포기하고, 발언하는 것을 포기한다. 그리고 그곳에 불쑥, 지나간 연인이 찾아오면서 극은 시작된다.

 

찾아가 보니까 집이 없어졌더라, 아예 동네가 없어졌던데?

 

70년대 다세대 주택들이 방공호로서 반지하 공간을 조성했다는 사실은 영화 <기생충>의 흥행 이후 많이 알려진 이야기일 것이다. 외부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썩 쾌적하지만은 않은 공간. 스튜디오1992는 그런 곳에 자리를 잡았다. 평소 음악가, 안무가, 독립출판 작가 등이 모여 글쓰기 모임을 열고, 단편영화 한 두 편을 연출한 감독의 상영회를 여는 이 공간에서 연극을 올리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문득 이곳이 방공호였다는 사실을 떠올려본다. 어떤 위협을 대비하는 공간, 자본의 위협을 피해 수요가 폭증하여 막을 수 없이 늘어난 공간에서 연극은 시작되었다.

 

사진출처_자유표현집단 20도씨

 

주인공의 옛 연인은 그를 얼마나 애타게 찾았는지 얘기하며, 그의 집뿐 아니라 아예 동네가 없어졌더라고 말한다. 주인공은 비극적일 만큼 그곳에서 만족하며 지낸다고 말한다. 아니 정확히는 마임으로 그것을 표현한다. 푸른 조명으로 가득 찬 그 공간은 마치 어항 같다. 목소리를 잃은 그의 눈과 손은 옛 연인의 도움을 끝내 뿌리친다. 

 

자유표현집단 이십도씨는 본격적으로 활동한 지 오래된 팀은 아니다. 아직 집이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동네가 없을 일인가? 이 대사를 연극계에 대한 은유로 읽는다면 과대해석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보다 큰, 이 도시에 관한 은유로 읽는다면 적절한 해석일 것이다. 평생을 생존을 위해 발버둥 쳐야 하는 이 도시에서 우리는 우리의 몸 뉘일 곳을 찾아다니지만, 그곳은 늘 재‘개발’되듯 밀려나곤 한다. 도시의 틈바구니에 자리를 잡고, 사회가 내뿜는 쓰레기들을 처리하는 주인공은 그래서 더 관객을 몰입시킨다.

 

신도림역과 구로역 사이는 1호선 철길을 중심으로 크게 다른 풍경을 가진다. 고층 아파트와 주상복합, 디큐브 시티같은 백화점과 호텔이 있는 신도림동과 오래된 주택이 많은 구로5동은 누구라도 격차를 감각할 수 있다. 그 사이를 지나기 위해선 길고 긴 지하보도를 지나야 한다. 구로5동의 반지하 공간에서 공연을 올리며 이십도씨는 이 공간을 지하보도와 같이 길이자 통과의례로 읽었을까? 혹은 그곳이 정주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지라고 느꼈을까?

 

사진출처_자유표현집단 20도씨

 

이가 없으면 유동식으로?

 

주인공의 옛 연인은 자신이 준 상처는 오해였다며 기회를 달라고 그를 거칠게 끌어낸다. 그곳은 사람 살 곳이 못 된다며 두더지냐고 질책하고, 자기가 도와주겠다며 달랜다. 주인공은 그녀를 밀쳐내고 말한다. 나는, 너를, 믿을 수가, 없어. 나는, 나도, 믿을 수가, 없어. 이때 극 초반에 등장했던 쓰레기 수거꾼이 다시 등장한다. 그의 성대를 사갔던 자기 친구에게 더 팔 장기가 있는지 묻는다. 주인공은 옛 연인을 뒤로하고 고막과 눈도 가져가라고 말한다. 그는 물거품 같은 플라스틱 구슬을 흘려보내고 연인은 끝내 자리를 떠난다. 무대는 적막하다. 

 

자유표현집단 이십도씨는 극 중 주인공처럼 개인의 삶에서 많은 것을 포기하면서 창작을 이어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방식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와 같은 방식으로 더 큰 무대에 도전하고 더 열심히 하는 방식과는 다르다. 그들은 극장 대관이 힘들면 반지하 스튜디오를 빌려 더 작은 규모의 공연을 만든다. 한 회차 당 다섯 명의 관객밖에 받지 못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수백 명의 객석을 채우지 못하는 부담을 줄여준다. 안 되는 것에 도전하는 대신,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그것에 열심을 다하는 것이다. 그들은 8명이 만 원씩 모아서 2주 만에 단편영화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웹 예능을 자체 제작해서 유튜브로 배포하며 이를 작품 제작 과정을 담는 홍보영상과 연결하기도 했다. 작지만 꾸준할 수 있는 방식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은 굳이 표현하자면 ‘이가 없으면 유동식으로’ 전환하는 것에 가까운 움직임들이었다.

 

 

차라리 제의적인, 열띤 토로네

 

하지만 그런 삶은 과연 버티는 것을 넘어 안정된 모델이 될 수 있을까? 주인공은 모두가 떠난 적막한 무대를 지나 관객들 사이에서 초를 하나 꺼낸다. 조용히 초가 타고, 주인공은 그 열로 플라스틱을 쓰레기를 녹인다. 그것은 꼭 향을 태우는 제의의 한 장면 같다. 방금 떠나보낸 연인을 향한 것인지, 또 다시 팔아넘길 자신의 몸과 소통에의 가능성에 대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그의 삶을 위한 것인지 작품은 굳이 드러내지 않는다. 이를 통해 만들어낸 공예품-예술-이 어떤 의미인지 설파하지 않는다. 배우는 말이 없고, 담벼락에 붙여놓은 바다가 그려진 천만 바람에 파도친다. 작품은 끝이 난다.

 

이 작품에 이어 <고아의 집에서 열린 토론회>와 <미제>에서 역시 이십도씨는 끊임없이 소통을 포기한 사람들이 스스로를 가두는 모습을 그린다. 타인의 절규마저 층간소음이 되는 공동 주거공간이, 누군가가 느끼는 실존의 위협을 소재주의적으로 해석하고 즐거워하는 사람이 그려진다. 그들은 알고 있다. 이대로 반지하에 갇힐 수만은 없다는 것을, 어떤 위협을 딛고 계속 누군가와 호흡하고 눈을 맞춰야 한다는 것을. 그 방법으로서 그들은 자기표현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새롭게 발굴해내고, 그 공간의 한계를 더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그 아이러니가 주는 씁쓸함은 이 작품이 가진 가장 큰 힘일 것이다.

 

온갖 소통이 불발하기만 하는 본 작품은 <열띤 토로네>가 열띤 토론회가 될 수 없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이 열띤 토론회를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이야기를 던진다. 자유표현집단 이십도씨는 지금, 긴 터널 속에서 이가 없으면 유동식으로라도 영양분을 섭취해가며 영구치가 날 수 있게 애쓰고 있다. 

 

필자소개

김민수_거리예술을 비롯한 공연예술축제를 만듭니다. 가끔은 음악가로도 불립니다. 서울프린지네트워크, 민수민정, 민필, 블루프린드 같은 소속과 친구들을 자랑스러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