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창작집단 미아’의 두 작업,  <(주)미아스마트택배>와 <무임승차>를 횡단하기

2020. 7. 27. 15:37Review

 

 

 

‘창작집단 미아’의 두 작업,  <(주)미아스마트택배>와 <무임승차>를 횡단하기 

 

 

글_김민관

 

 

 비평은 어떤 하나의 예술 작업을 온전한 하나의 작품으로 갈음하는 데 그 목적이 있지는 않다. 분석과 해체의 작업으로써 비평은 작업을 조각내고 파편화하여 그 가능성과 한계를 동전의 양면으로 제시할 수 있다. 그리하여 어떤 작업은 미리 와 있거나 또는 너무 늦게 온다. <(주)미아스마트택배>(2020. 6.27-28)는 <무임승차>(2019. 10.26-27)가 그 전신이다. 그 두 작업은 판이하게 다른데, 작업의 변경은 작업의 형식과 관점 모두의 측면에서 그러하다. 그러니까 <무임승차>는 <(주)미아스마트택배>보다 뒤늦게 도착한다. 

서울 광나루역에 일종의 임시 직업 체험 부스를 구성하고 여기서 관객 각자가 지하철 택배의 미션, 곧 하나의 택배를 고객 한 명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공연은 진행된다. <무임승차>의 이러한 미션을 관객 각자의 시간으로 수렴하게 하는 방식, 그리고 지하철 택배를 ‘스마트택배’로 브랜드화하는 과정에서 현재는 미래이자 근과거가 된다. 우리의 노년이 우리의 현존 위에 쓰인다. 우리의 몸은 공연의 주요 재료이고, 노인 스마트택배 노동자를 보는 바깥의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게 되는 가운데 나(퍼포머)와 또 다른 나(관객) 사이의 대자적 관계가 구성된다. 우리의 몸은 노동자를 흉내 내는 게 아니라 그것에 사로잡히게 되며 우리의 의식은 현재적 균열을 겪는다. 곧 의사(疑似) 시간은 현재를 침식해 들어간다. 

사진출처_창작집단 미아

택배 노동자가 걸치는 그물망 조끼 앞주머니에는 소정의 비용이 든 교통카드가 있다. 지하철 역사에서 직업 소개 당시 암기했던 지식을 답변하며 임시 입사 테스트를 다시 한번 거치고 체조를 통해 워밍업을 한 후 열차에 탑승한다. 스타벅스 커피숍에 도착해 물건을 배송하고 나자 이내 (주)미아스마트택배의 임직원에게서 연락이 온다. 바로 같은 장소에 있었고, 그는 너무 훌륭하게 미션을 수행했다는 칭찬과 함께 계약서 1부를 제공한다. 흐릿한 기억에 의존하건대, 이는 노동자들의 처지를 고려해 더 나은 노동 환경에 대한 일종의 (미래적) 지침을 만들려 한 것이라고 하고 이후 읽어보라고 한다. 여기서 물건의 주인이 되는 사람은 일반인을 가장한 퍼포머일 것이고, 관객 저마다 다른 미션을 가지는 것, 곧 선택의 루트가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 곧 공연의 다른 가능성, 아니 무한한 가능성의 이상향적 이념은 아마도 그 택배 물건은 달랐다고 해도 같은 장소―고객―와 절차―임직원과 계약서 수령―로 수렴할 것으로 생각된다.

택배 노동을 하는 할아버지 노동자를 추체험하는 <(주)미아스마트택배>는 수유동 일대의 골목길을 다니며 퍼포머의 뒷모습에 대한 시각적 응시와 이에 대해 현장 중계에서 다큐멘터리 내레이션으로 나아가는 사운드의 무선 헤드폰 청취는 시청각적 ‘연접’, 그리고 지연과 전유를 통한 ‘분리’를 동시에 가져간다. 헤드폰은 관객을 개체로 분리할 뿐만 아니라 시각적 거리를 재분절한다. 우리가 보는 것은 우리가 듣는 것으로 대치된다. <무임승차>의 현존이 관객의 신체로 대부분 수렴한다면, <(주)미아스마트택배>의 현존은 택배 노동자의 흐릿한 몸―뒷모습―과 헤드폰을 낀 관객의 진동하는 신체로 분절된 채 드러난다. 

사진출차_창작집단 미아 ⓒ황가림

 

중간에 초등학교 옆 보도의 차양막을 거치면서 지하철에 들어온 것을 언어와 사운드로 표현하며 현장과 동기화하고자 하지만, 사실 이는 공연 전체를 지배하지는 못한다. 초과하는 장소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수유동 일대라는 역사적이고 물리적인 장소의 현존은 공연의 직접적인 매개 대상이 아니다. 결국 ‘흐릿한 몸’은 극장을 설정하는 관객의 자발적인 거리 두기와 최소한의 가이드를 통한 물리적 거리에서뿐만 아니라 그 몸 자체에 덧씌워지는 목소리의 보이지 않는 현존이 노동자와 갖는 거리를 통해 일차적으로 생성되는 한편, 이러한 장소와 이를 이동하며 관계 맺는 관객 스스로의 현존으로 인해 공연은 축소되고 두 개의 몸―퍼포머와 보이스 퍼포머(의 녹음된 판본)―은 더욱 흐릿해지기에 이른다.

 

이러한 장소적 조건을 단지 택배를 하는 과정의 물리적 지형이나 관객의 동선을 고려하는 공간 디자인 차원에서만 가져간다는 것은 꽤 놀라운 일이다. 곧 이는 이 작업이 수유동이 아닌 다른 어떤 도시의 골목을 사용하더라도 가능함을 의미한다. 공연 전반의 시간적 구성을 차지하는 골목과 길의 장소적 현존은 매우 크다. 이러한 장소 현존의 축소 혹은 경감은 이 공연이 어떤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곧 길 자체를 풍경과 같은 미학적 대상으로 둘 수 없는 가장 빠르고 이동 가능한 최적의 경로를 선택해야 하는 택배 노동자의 삶을 추적함이 중요한 것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노동이 그다지 사실적으로 비치지 않는 것 역시 사실인데, 이는 할아버지를 젊은 퍼포머가 그다지 잘 표현하(려)는 바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택배 노동자의 코스를 일종의 관광객의 차원으로 밟아나가기 때문이다. 

사진출처_창작집단 미아 ⓒ황가림

 

실제 헤드폰의 사운드는 퍼포머에게 전달되지 않고 관객에게만 비밀리에 전달되기도 하지만, 택배 노동자는 우리를 응시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가 예외적으로 앞을 볼 때는 형광 조끼와 긴 양말을 신은 코러스가 개입된 중간중간의 무대가 구성될 때이다. 이는 구체적으로 택배 한 건을 배송할 때 전달하는 순간과 배송 직후를 율동적인 몸짓으로 구현하게 될 때이다. 이러한 순간은 사실 물리적 휴지기와 극적 이완을 만들기 위한 차원에서 만들어진다고 보인다. 그러니까 의사 다큐멘터리적 차원을 공연은 가짜의 틈을 갖고 수행하고, 이를 밋밋하게 따라가고 체험하는 가운데 실재하는 이의 가상 현존을 추정하고 또한 풍경을 체험하며 관광객과 관람객 사이에서 관객은 이 공연을 완성해 간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보는 건 더 정확히는 듣는 것을 통해 보는 건, 할아버지 택배 노동자의 현존보다는 이와 거리를 둠으로써 구성하는 타자성이다. 실제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극 끝에 녹음된 형태로 출현하는데, 이러한 직접적 현존을 비워둔 채 작업 전반을 구성한 건 작업의 ‘온전한 재현’, 곧 ‘통제할 수 있고 실수 없이 재연할 수 있음’―무려 이틀 동안 다섯 번의 공연이 이뤄졌다―을 위한 차원을 넘어 그들을 대하는 공연자의 관점을 구성하려는 의도에 따른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작업은 택배 노동자와 나 사이의 윤리를 구성하는 차원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주기보다 그를 중계하고 중개하는 데 그친다. 

 

<(주)미아스마트택배>는 결국 타자성을 다루는 작업이다. 그렇지만 타자성이 주체와 타자의 거리와 이를 통한 주체의 윤리적 차원을 구성함으로써 생겨난다면, <무임승차>는 여기에 대해 특별한 발화가 없다. 단지 타자의 표피적인 대상화의 한계에 머무른 듯 보인다. 적확하게 택배 노동자를 재현하기보다 지연되는 집단 이동의 프로세스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더딘 움직임에는 어떤 언어도 부착되지 않는다, 또는 부착될 수 없다. 그들의 삶을 조심스럽게 다루려는 목소리의 내용에는 그 삶의 중량이나 질감이 들어 있지 않다, 또는 들어 있을 수 없다. 

 

재현의 불가능성에 대한 어려움이 관점의 축소로 연결될 수는 없다. 작업은 택배 노동자의 재현을 위한 것이 아니다. 동시에 재현의 불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에 그쳐서도 안 될 것이다. 곧 온전한 재현을 충족하는 대신에 어설픈 재현을 통해 그를 보는/대하는 나의 윤리가 촉발되는 지점, 그리하여 왜 노년의 택배 노동자여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정초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실체적 진실의 파편을 마지막에 확인하지만, 이는 공연의 근거와 과정을 일컫는 반면 공연의 언어를 재구성하는 마지막 매듭이 되지 못한다. 

사진출처_창작집단 미아

<무임승차>는 지하철이라는 장소 특정적 경로를 체험하며, 가상의 미래 택배 회사의 법인격을 띤 주체와 노동자의 정체성을 수행하는 관객 사이의 관계로써 시스템과 개별 주체의 세계를 구성한다. 여기에는 타자화되는 노동자와 나의 거리를 상정하기보다 그 타자화되는 나로부터 현재를 반추하는 어떤 통찰 같은 것이 실리게 된다―이는 대상화에 대한 조심스러움의 태도를 훌쩍 뛰어넘는다. 택배 노동자를 수행함은 나를 일시적이지만 실제로 상징계 내에 등록하는 작업이고, 이 세계를 추동하는 그리고 이 세계가 구성하는 현실에 대한 어떤 낯선 느낌을 제공한다. 이는 가상의 미래에 속해 있기보다 현재의 균열에서 드러나는 실재의 차원에 있다.

 

<무임승차>는 어쩌면 <(주)미아스마트택배>의 배경과 시작 지점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차라리 <(주)미아스마트택배>의 프리퀄로 뒤늦게 등장했어야 했다. <(주)미아스마트택배>의 시간은 단지 현재에 고착되어 있다. 여기서 한 발자국도 시간은 나아갈 수 없다. <무임승차>의 상상력은 왜 실종되었을까. (만약 팬데믹 사태가 원인이라면, 오히려 집단적인 이동 형태가 아니라 개별적으로 미션을 수행하는 <무임승차>가 더 합리적인 공연 형태가 아닐까.) 

 

결과적으로, <(주)미아스마트택배>는 노동자의 현존의 무게를 (재현하는 대신) 장소와 관객 각자의 몸으로 분산시키며 사라진다. 어쩌면 <(주)미아스마트택배>는 <무임승차>의 미래 시간을 노인-노동자-퍼포머로 옮겨 와서, 도시의 유령적 신체로서의 관객에게 이를 전지적 시점으로 시각화하게 하며 노동이 희미해지는 어떤 미래를 징후적으로 보여주는 듯도 하다. 그렇다면 ‘스마트’는 이런 현존―장소와 몸―의 상실, 그리고 그것의 어떤 것의 치환에 맞닿아 있는 개념일까. 그런 부분을 상상하는 것은 아마 <(주)미아스마트택배>의 또 다른 미래를 그려보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필자소개

김민관_아트신(artscene.co.kr)편집장. 예술을 체험하고 기록한다. 다양한 예술 아카이브에 관심을 갖고 실천하고자 한다. 좋은 예술이란 무엇일까라는 탐문과 함께 비평적 관점으로 동시대 예술의 계보를 재구성해 나가려고 노력 중이다. 한편으로 예술(계)이 더 좋아질 수 있는 환경과 이를 위한 개인적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다.


공연소개

사진출처_창작집단 미아 <무임승차> 포스터 ⓒ이서연

<무임승차>

일시 2019.10.26.(토) ~ 10.27.(일) 13:00~16:00 (1일 9회 매시간 00, 20, 40분)

장소 광나루역 2번 출구

쇼케이스 40분 ※사전예약 전시 180분

"2050년 (주)미아스마트택배 직업체험 <무임승차는 가성비 최고의 노인복지@>"

2050년, (주)미아스마트택배의 작동 원리부터 역사, 수익 구조의 면면을 살펴보고, 지하철 택배 작업 체험을 해 볼 수 있다. 

 

사진출처_창작집단 미아 <(주)미아스마트택배> ⓒ이서연

(주)미아스마트택배

일시 2020. 6. 27(토) 16시/19시,  6. 28(일) 12시/16시/19시

수유동 일대를 걷는 이동형 공연.

수유동의 작은 사무실, 시장 상점과 주택 골목, 계단과 에스컬레이터 위

지하철택배 노동자의 하루를 따라 걷는 '(주)미아스마트택배'(2020)는

미아의 전작 '무임승차'(2019)을 기반으로 한 후속작이자 프리퀄이자 오늘의 이야기이다.

 

제작

창작집단 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