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연극인 젠더감수성 워크숍] 4.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

2020. 10. 28. 12:56Feature

 

[전국 연극인 젠더감수성 워크숍] 4.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

 

 

2020 연극의 해 사업 중 하나인 <전국 연극인 젠더감수성 워크숍 : 연극x젠더감수성, 대체 뭔데?>는 연극 안의 젠더감수성이 무엇인지 함께 알아보고 토론하고, 직접 글을 쓰는 과정입니다. 전국의 7개 지역에서 진행되는 워크숍은 강의와 토론의 의미를 넘어 각 지역에서 비슷한 고민과 불편함을 가진 동료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새롭게 연대하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단어 ‘젠더감수성’이란 무엇일까요? 그리고 ‘젠더감수성’이 있는 작품은 어떤 작품일까요? 

이번 연재는 워크숍에 참여해주신 안산, 광주, 대구, 부산, 춘천, 대전, 전주지역의 연극인들이 보내주신 원고로 이루어집니다.
 

주최/주관 2020연극의해집행위원회

주관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후원 문화체육관광부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은 개인 및 단체들과 연대하여 성폭력에 맞서고 안전한 창작환경을 위해 노력하는 수평적인 연극인들의 운동입니다.

 

출처_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

뮤지컬 <레드북> 젠더 감수성으로 읽기

글_이단비(워크숍 참여자)

 

뮤지컬 <레드북>. 어쩌면 내 인생에서 처음 본 여성 서사극 일지도 모르겠다.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가장 찬란했던 시절이었지만 여성들에게도 그랬을까? 당시 영국에서 말하는 여성의 역할은 좋은 아내 좋은 어머니의 역할이 강요되었고 교육 역시도 좋은 아내 좋은 어머니가 되기 위한 것에 불과했다. 여성들은 영국 사회가 만들어 놓은 여성의 역할을 강요받으며 살아가야 했다.

뮤지컬 <레드북>의 주인공인 안나는 이해할 수 없는 세상에서 스스로를 ‘야한여자’라고 말하며 자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안나는 약혼자에게 첫경험을 고백했다가 파혼을 당하고 도시로 도망치듯 건너온다. 공연의 첫 시작부터 일자리를 구하는 안나에게 상점주인은 ‘여자잖아? 왜 여자가 일을 하려고 그래 남자가 없어?’ 라는 속된말로 ‘빻은말’을 하며 안나를 희롱하지만 안나는 ‘왜이렇게 저한테 찝쩍거리세요? 아 발정나셨어요?’ 하여 받아친다. 

불쾌한 상황을 유쾌하게 표현하려고 했겠지만 이미 기분이 나빠진건 뭐 어쩔 수 없으니까. 하지만 잘잘못을 떠나 여자가 단순히 말이 많다는 이유로 안나는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렇게 감옥에 갇힌 안나는 그 안에서 슬퍼하는 거지를 만나게 된다. (사실 이름이 누군가가 아니라 거지라는것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슬퍼하는 거지에게 안나는 ‘난 슬퍼질 때마다 야한 상상을 해’라고 하며 안나가 올빼미라고 부르는 첫사랑과의 추억을 들려준다. 그 추억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어쩌면 버텨나가는) 안나.

영국은 신사의 도시라고 말하듯 어김없이 신사의 도리를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신사는 무엇을 위해 살고 신사의 도리는 무엇인지. 

 ‘낮은 곳에 머무는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죽음을 무릅쓰고 숙녀를 위해 온몸을 던져야 하고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예의를 갖추고 아무나 차별하지 않는다.’ 

 ‘명예를 위해 사랑을 위해 정의를 위해’

뭐 이런 얼토당토 않는 말을 해 가며 신사의 도리를 말하는데 ‘엥? 저건 도리가 아니라 당연한 예의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시대적 배경을 생각해 보면 그들한테는 그게 ‘도리’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안나는 바이올렛 집에서 하녀로 일했었다. 자신을 추천하는 것이니 스스로를 제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안나는 추천서를 직접 썼고 그 당돌함에 바이올렛은 안나를 직접 뽑는다. 바이올렛이 죽고 안나 앞으로 유산이 남겨졌지만 안나는 재산을 소유할 수 없다. 왜냐고? ‘미혼 여성’이니까! 그리고 바이올렛의 손자 브라운은 말한다. ‘배우자를 찾는 일에 전념하세요. 여성의 가장 훌륭한 덕목이자 직업은 한 남자의 아내가 되는것이니까요.’ 안나는 그게 무슨 대단한 일이냐는 듯 대수롭지 않게 ‘나와 생각이 너무나 달라 듣고도 까먹었어요’ 하며 넘겨 버린다.

여성 문학회 로렐라이 언덕. 우연히 알게된 문학회에 안나는 들어가게 되고 로렐라이 언덕에서는 여성들이 받은 상처와 아픔을 글로 표현 해 내고 있었다.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법을 알고 있을 뿐 글을 쓰는 여자들이 이상하지 않은 곳. 안나는 이곳에서 첫사랑과의 추억을 글로 적었고 그 글이 실린 잡지 레드북은 샀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모르는 사람도 없을만큼 입소문을 타고 동네를 떠들썩하게 만든다. 그리고 최고의 평론가(라고 불리는) 딕 존슨은 안나의 뮤즈가 되는 일을 자처하겠다고 하면서 안나를 최고의 작가로 만들어주겠다는 말을 하며 추행을 한다. 

아니 뮤즈가 스스로 되어주겠다는건 무슨 말도 안되는 말인지. 안나는 그런 딕존슨에게 한방을 먹이고 가까스로 도망친다. 하지만 반성이라곤 눈꼽만큼도 하지 않는 딕존슨은 이번일을 조용히 넘어가 주겠다고 말을 하고 브라운은 그걸 ‘다행히도’라고 강조하며 말한다. 강제로 추행하고 없던일로 만드는게 어디가 다행이라는건지. 심지어 브라운은 안나가 ‘그런 소설’을 쓰니까 사람들이 함부로 생각하고 함부로 판단한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건 분명 스스로에게도 잘못이 있다면서.

결국 안나는 딕존슨에게 고소를 당하고 안나는 단순히 ‘야설’을 썼다는 이유로 법정에 서게 된다. 브라운이 남성작가가 쓴 야설에 비해 그렇게 야하지도 않다고 항변을 해 보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여자가 함부로 자신의 몸에 대해 말했다는게 문제라는것. 브라운은 이것저것 판례를 찾아보며 그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고 안나에게 정신에 문제가 있었다 라고 말하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는 안나. 그렇게 감옥에 또 갇힌 안나는 그 안에서 처음 감옥에 갇혔을 때 만난 거지를 다시 만난다. 돈이 없어 책을 훔쳐 본 그 거지는 안나에게 ‘안나가 그때 그랬잖아요. 슬퍼질때마다 야한 상상을 하면서 버틴다고. 책 속의 그녀가 행복 해 지면 나도 행복 해 질 수 있을 것 같아요.’라는 말을 남기고 끌려간다. 안나는 자신이 정신병이 있다는 말을 할 수 없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자기가 정신병이 있다고 인정해 버리는 순간 안나의 글을 읽은 독자들도 저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살아온 날들과 사랑한 이들이 너무나 소중한 사람

  지금의 나보다 내일의 내가 더 중요한 사람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

  내가 나라는 이유로 죄가 되고 내가 나라는 이유로 벌을 받는

  문제 투성이 세상에 하나의 오답으로 남아

  내가 나라는 이유로 지워지고 나라는 이유로 사라지는

  티없이 맑은 시대에 새까만 얼룩을 남겨

  나를 지키는 사람

  누군가에게 이해받지 못해도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나는 나로써 충분해 괜찮아 이젠’

정말 너무나 많이 울었다. 세상은 문제 투성이 이지만 그 문제투성이 세상속에서도 오답이 되는 나. 하지만 그게 문제라면 나는 얼룩이 되어 남더라도 나를 지키고 아무도 날 이해하지 못하고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나를 지키겠다는 안나. 브라운은 안나를 지키기 위해 레드북을 읽은 백명의 독자의 이야기를 모아낸다. 레드북을 읽고 난 후 남편을 처음 본 날을 떠올리는 여성, 레드북을 읽고 자신에게 한 청혼을 한번 더 고민하는 여성, 레드북을 읽고 난 후 열여섯의 소녀가 된 것 같다는 여성. 그 이야기들을 통해 판결 자체가 레드북 완결이후로 유보되고 안나는 풀려나게 된다.

안나의 이야기는 소문이 퍼졌고 그 소문을 듣고 로렐라이 언덕에는 가입을 하고 싶어하는 회원들로 넘쳐난다. 제2의 누군가가 아니라 제1의 내가 되라고 말하는 로렐라이.  ‘당신이 누구라도 거기 그 자리에서 지금 그 모습으로 당신이 누군지 말해줘요. 당신의 얘기를 들려줘요.’ 너무나 나에게 위안이 되었던 말. 내가 누구더라도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나의 모습 그대로 내가 누군지 말해달라고 하는 말이 위안이 되고 또 내가 받았던 상처가 치유되는 기분이었다.

나는 여자라는 이유로 그리고 어리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는 관심의 대상이기도 했고 누군가에게는 무시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들이 말하는 친밀의 유대가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단순히 친근감의 표시로 다가왔던 그들의 행동은 나를 충분히 불편하게 만들었고 그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그들은 기억이나 할까? 내 대답은 아니다.

내 손을 잡고 깍지를 끼고 어깨동무를 했던 그 행동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로 넘어갔고 나는 그 순간들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 도움을 받지 못했던 나는 몸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불쾌함에 그 순간을 바라만 보고 있을 수 없었고 그 누군가를 데리고 자리를 도망치듯 나왔다. 그리고 그때 내가 겪었던게 그들이 말하는 ‘친밀의 유대’가 아니라 나를 충분히 불편하게 한 행동이었고 난 ‘불편해요’라고 말했어야 한다는걸 알았다. 그 행동은 나 이전에도 나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었던 것 일 뿐 이해하지 않아도 되었던 행동이었던 것이다.

아직도 나는 어리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여자일텐데 불편함을 불편함으로 받아들이는 안나를 보고, 참지 않는 안나를 보고 많이 위로받고 많이 배웠던 것 같다. 아마 안나를 만나지 못했다면 여전히 나는 참고 있지 않았을까? ‘친해질려고 하는건데 왜그래?’ 웃기지도 않다. 친해지는것도 쌍방이 되어야 하지 일방적이면 폭력일 뿐이다.

세상의 많은 딕존슨들에게 말하고 싶다. 나에게 있어 당신들은 그저 나이많은 선배일뿐 잘보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면 나도 좋은 사람으로 다가갈 수 있겠지만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경험이 많다는 이유로 다가오는거라면 받아줄 생각도 없다고. 그리고 내가 어리고 새로운 사람이라는 이유로 관심을 갖는거라면 더더욱. 그건 1년짜리 관심 일 뿐이다. 어쩌면 더 짧을수도 더 길수도 있겠지만 그들은 또 다른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면 그 관심은 그 사람에게 쏠릴것이고 난 그런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지 않다. 내가 바라는게 거창하다고 생각할까? 난 그저 당신들과 똑같은 동료로서 일하고 싶은 것일뿐 전혀 거창한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