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모범생들>, 그러나 완성될 수 없는 '모범생들'

2009. 4. 20. 02:23Review

 

사진 | 빵과물고기 제공


개인적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은 고3시절이다.

평준화가 되지 않은 지역에서의 입시는 이미 고등학교 입학부터 시작되며, 그로 인한 유언비어 -예를 들어 ○○고등학교에서는 친구의 능력을 파악하기 위해 모르는 척 문제를 풀어달라고 한다더라. 등-에 우리는 꽤 일찍부터 시달려야했다. 선택하는 주체가 되기 위한 노력이라는 긍정적 변명을 등에 업고, 우리는 가능한 괜찮은 ‘끼리끼리’에 속하기 위해 애쓴 것이었다. 그럼에도 난 그 시절이 그립다.


나는 이해찬1세대이다. (아닌 세대가 어디 있겠냐마는)왈가왈부 속에서 주체성은 잃은 채 시달려야했던 지금의 02학번들은 공교육이 지향하던 자율적 공부의 모델로 특기적성교육을 받았고, 결국 ‘머리 나쁜 애들’로 전락했다. 보다 나은 그룹에 속하고자 일찍부터 노력했던 주체들의 결과가 ‘기초 부실’이라니, 억울했다. 그럼에도 난 고3시절이 그립다.




실험결과를 비교하고 보다 나은 답을 구하기 위해서, 그 실험대상의 조건은 같아야만 한다. 따라서 새로 등장하는 16~19세의 학생들은 같은 조건 안에 구겨 넣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무서운 사실은 이것이 아니라, 이미 결론은 어른들에 의해 결정되어있었다는 것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그 시절(청소년기)은 과정이어야 한다. 누구는 변화를 시도하는 청소년시기의 고민들을 ‘사춘기’란 말로 싸잡아 단정지려 하는 것 자체가 오류라고도 했다. 결국 문제는 고등학생 시기가 ‘결과를 위한 것들 중 하나’로 취급되거나, ‘정해진 결과로 유입시키기 위한 과정’으로 치부된다는 것에 있다. 또한 과정에서의 시행착오는 있을 수 없는 문제로 낙인찍힌다는 것이고. 왜 우리는 과정을 만들어나가는 주체가 아닌, 마치 보다 나은 교육법을 만들어내기 위한 실험양인 냥 다루어져야 했나. 그리고 과연 다른 사람에 의한 완벽한 결론이 가능한 것일까.




연극 <모범생들>의 배경은 마지막 학력고사 때이며, 주인공은 특목고 학생들이다. 그러나 극의 핵심처럼 거론되는, 오류를 남긴 대표적 교육법처럼 비춰지는 학력고사는 그저 배경처럼 여겨질 뿐이다. 아쉬움은 결국 ‘모범생들’ 사이에는 그 시절만이 가지고 누릴 수 있는 사회가 없다는 점에 있다.

자신들이 정한 결론에 다음세대를 보다 빠르게 도착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윗세대들이, 그 실험용으로 계속 새롭게 교체되는 우리들을 활용하면서 새롭게 발생한 문제는 이것이다. 이미 고등학생 시절부터 ‘모범생들’은,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사회 속에 던져져야 했다는 것,  어른이 되어서 접할(부정의 의미를 가진) 사회를 일찍부터 흉내 낼 수밖에 없었다는 것 말이다.


과정과 결과를 떠나서 개인적으로 고3시절을 그리워함은 그 때에만 누릴 수 있는 문화와 사회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우리라고 분명하게 일컬을 수 있는 나와 친구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 역시 ‘머리 나쁜 애들’로의 결과는 예감하지 못한 채 아등바등 거렸으며, 지금의 나이에 들어서는 주변을 의식하고 노후를 걱정하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다양성속에 내던져진 덕분에 나의 삶을 모색함에 있어서만은 주체가 될 수 있었고, 그 무엇보다도 진실한 친구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모범생들>엔 사회도, 주체도 그리고 친구도 없었다.



씁쓸함이 감돈다. 결국 강자의 편에 서서 혜택을 받으려는 존재로 성장한 그들의 과거, 그것을 ‘입시’라는 교육여건의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성적비관으로 죽으려던 친구의 결심마저도 조롱하듯 비웃는 친구, 잘못을 숨기기 위해 옳지 못한 일에 친구를 끌어들이는 친구, 함께 살기까지 했음에도 졸업이후 연락조차 없었던 친구. 대체 그들 사이에 ‘친구’가 가진 의미는 무엇일까. 누군가가 제시한 사지선다형 답안지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성장한 그들은 과연 이 질문에 답을 쓸 수 있을까. 거짓된 이름으로 관계 맺고 서로를 속이고 속는 ‘모범생들’의 사회가 어른이 되어 맞닥뜨려야 하는 그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에 슬픔마저 느껴졌다.


마지막 장면, 검사가 된 민영의 결혼식에서 마주친 명준과 수환의 뒷모습을 보며 종태는 말한다. 여기 오면 너희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고…. 그러나 그 말은 마치 명준과 수환을 그곳에서 볼 수 없길 바랐던, 과거 친구라 믿었던 그들이 진정한 주체로 성장했길 바랐던 종태의 실낱같은 희망이 무너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학력고사의 폐해를 나타내고 당시의 추억을 회상하고자 함이 연극 <모범생들>의 전부는 아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현실을 읽고, 변화해야한다. 세대가 바뀌어도 변함없는 상위3%의 법칙을, 그리고 결코 깰 수 없는 법칙이라 하더라도 그 속에 주체는 성장하는 그들이어야 함을, 또한 그 사회를 어른들이 가진 그것에 귀속시킴으로써 그들이 ‘친구’가 의미를 잃는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함을 말이다.



<모범생들>

작 | 지이선
연출 | 김태형
배우 | 홍우진(민영 역), 이호영(명준 역), 김슬기(수환 역), 김대종(종태 역)

일시 : 2009. 4. 1(수) - 4. 26(일) / 화-금 8시, 토-일 3시 7시, 월요일 쉼
장소 : 원더스페이스 동그라미극장

티켓 : 일반 20,000원 / 학생 15,000원
예매 : 인터파크 1544-1555, 티켓링크 1588-7890
문의 : 빵과물고기 프로덕션 02)               6381-4500       
주최 : 창작집단 토마토
제작 : 창작집단 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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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