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베리어 컨셔스 연극 <국가공인안마사>

2023. 7. 5. 02:39Review

 

우리에게 연극이란 가능성 입니다. 

 

누가 그렇게 free 할까 : 배리어 컨셔스

“배리어컨셔스연극_<국가공인안마사>”는 시각장애인의 생존권을 위한 유보직종인 ‘국가공인안마사’를 다룬 작품으로, 시각장애 당사자인 극작가 겸 연출가와 배우, 비장애인 배우, 연주자 스텝들이 기획에서부터 제작, 홍보, 현장까지 호흡을 맞추며 진행한 공연이기도 합니다. 세 국가공인안마사와 각자의 일터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마치 옴니버스 활극처럼 경쾌하게 엮어 선보였죠. 그리고 작품의 제목 앞에는 ‘배리어컨셔스’라는 말이 뗄 수 없는 수식어처럼 붙어있습니다.

배리어프리Barrier Free라는 말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요즘입니다, 라고 시작하려다 말을 멈춥니다. 마을의 활동가로, 관계 집단의 기획인력으로, 개인 창작자로 지내면서, 종종 가까운 이들의 이해를 쉽게 일반화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습관은 주변에 대한 오해 이전에 스스로에 대한 착각을 먼저 일으키기도 합니다. 내가 마을활동가인데 설마 배리어프리 정도를 모르겠어, 같은 식으로요.

용어로써의 배리어프리는 ‘장벽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어떤 것’이라고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70년대의 건축학 분야에서라고 알려져 있고, 한국에서는 2008년부터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Barrier Free) 인증제도 시행지침>에 따라 ‘BF인증제도’라는 것을 실시하고 있기도 합니다.(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본격화된 것은 무려 2001년입니다만) 장애인을 포함한 교통약자의 물리적 접근성에 관한 논의에서 시작된 이 개념과 관련 요소는 가까운 일상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지하철의 휠체어 공간, 저상버스, 건물 입구의 경사로에서부터, 아마 손에 쥐고 있을 수도 있는 스마트폰이나 눈앞의 PC에도 설치되어 있는 접근성 서비스까지 아우르지요.(설정이나 음성인식으로 ‘접근성’을 검색하시면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런 요소와 실천은 최근 다양한 활동과 정서적인 부분에까지 적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술계는 이를 꽤 적극적으로 실행하려 애쓰고 있는 곳 중 하나입니다.

배리어프리를 직역하면 ‘장벽으로부터 자유롭게’이고, 실행 단계에서는 ‘장벽의 제거’를 지향한다고 합니다. 예술계에서의 배리어프리는 ‘누가 이것을 즐길 것인가’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죠. 공연에서는 주로 ‘관객’일 겁니다. “관객 없이는 연극도 없”으니까요. 일단 작품을 완성한 뒤, 음성해설과 점역, 오디오북, 수어 통역, 경사로 등의 시설을 점검하고 안내하는 일들이 상황에 따라 이뤄집니다. 하지만 열심히 고민하고 시도하는 종종, 프리free한 이와 프리하지 못한 이를 분리/대립하게 만드는 기현상이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프리하지 못한 이’들을 일시적인 ‘프리한 세계’에 잠시 초대했다가 돌려보내는 일이 반복되죠. 대체 프리한 이들은 누구고 프리하지 못한 이들은 누구일까요. ‘(non)free’는 고정된 정체성일까요. 무엇을 해야 이곳은 완벽하게 프리해질까요. 장벽만 제거된다면, 세계는 실로 아름다워질까요.

2010년 경, 비슷한 맥락의 ‘저항감’을 앞서 느낀 미쓰시마 다카유키라는 예술가가 미학자 요시오카 히로시의 강연 중 질문을 던지며 ‘배리어컨셔스Barrier Conscious’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배리어를 제거한 자리에도 여전히 배리어가 있음을 의식’하여 ‘장벽을 계속해 의식하는 태도’ 자체에 방점을 찍는 이 말은, 예술계를 벗어나면 의미가 왜곡될 여지가 많아 아직 배리어프리만큼의 보편성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의식만 하는 건 너무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죠. 하지만 제거가 아닌 의식에 집중한다는 건, 완성된 세계에 포함되어 있거나 그것을 지을 수 있는 ‘배려의 주체’와 장벽에 막힌 ‘초대할 대상’의 대립을 ‘배리어를 의식하는 우리’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때문에 <국가공인안마사>는 장애인 연극이나 장애 연극이 아닌 ‘우리의 공연’으로서, “배리어컨셔스연극_<국가공인안마사>”라는 긴 이름으로 시작됩니다. 

이야기를 깨트리는 장치들

그들은 적어도 한 가지는 안다. (...) 능동성과 수동성을 분리하는 심연을 넘을 필요가 있음을.

<국가공인안마사>가 진행된 천장산우화극장은 단차가 없는 블랙박스 공연장입니다. 무대와 객석이 고정되지 않은 공간은 작은 벌판을 닮았습니다. 휠체어 이용자는 물론 시각장애인에게도, 오르내리는 걸 좋아하지 않거나 불편함을 느끼는 작업자, 관객에게도 유용하고 상대적으로 안전한 공간입니다. 단차가 꼭 필요한 상황이라면 임시 구조물을 설치할 수도 있고요.

공연에는 음성해설, 자막 등이 마련되는 것에 더해 인근 대중교통 정차지에서 극장까지의 스텝 동반 지원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공연 시작 전의 안내가 세밀하게 기획된 소리 정보로 전달된 것도 인상적입니다. 가령 안내자는 발소리를 부러 크게 내어 공연장을 구석구석 안내하고, “여기를 보시면”, “이것이”, “저곳은” 같은 시각 정보 기반의 어휘를 사용하지 않았죠.

더 늦기 전에 <국가공인안마사>의 메인 홍보물인 음성포스터를 함께 보고 갈까요. 흑백의 명암대비로만 디자인된 국공안의 포스터는 단순히 공연 안내를 읊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콘텐츠로써 실제 출연진들이 성우로 출연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고, 공식SNS의 첫 번째 홍보물로 게시됐습니다. 다행히 지금도 클릭 한 번이면 다시 만날 수 있어 아래 링크를 첨부합니다. 

다시 공연장으로 돌아오겠습니다.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되면 몇 없는 소품 중 하나인 무대 중앙의 안마베드를 축으로 해설자와 배우, 연주자가 반원 형태로 둘러앉습니다. 먼저 해설자가 자기소개, 공연 소개, 무대 묘사를 들려줍니다. 그리고 각 배우들의 소개가 이어집니다. 본명과 극에서의 역할, 자신의 위치를 목소리와 말투를 직접 설명합니다. 이 과정에만 족히 10분 정도가 소요된 것 같습니다. 

공연의 도입부뿐 아니라 극이 진행되는 내내 해설자는 한 명의 배우이자 캐릭터로 끊임없이 등장합니다. 장면이 바뀌는 지점에서는 물론 배우의 특정 행동, 자세를 트는 순간까지도 등장하죠. 국가공인안마사로 살아가는 시각장애인의 삶에 한껏 빠져보고 싶었던 분들이라면 조금 의아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많은 예술작품이 자신을 감상하는 이들에게 (의도된) 영향을 끼치고 싶어합니다. 기쁨과 행복일 때도 있지만, 적극적인 슬픔이나 불편함에 집중하기도 합니다. 특히나 서사narrative 기반의 작품들은 흡입력 있는 이야기나 등장인물에 감상자를 깊이 이입시켜 새로운 세계로 데려가려는 욕구를 더 거세게 뽐내곤 합니다. 개중에서도 공연예술은 그 특유의 현장성 덕분에, 이를 여느 분야보다도 생생하게 해낼 가능성을 가지고 있죠. 그런데 이런 특성은 종종, 실시간으로 대면하는 순간에까지 서로를 같은 감정에 가둬둬야 하는지, 라는 반문으로 이어지며 이야기로 끌어오는 게 아닌 밀어내는 시도가 행해지기도 합니다. 낯설게하기 혹은 소격효과라는 개념으로 설명되기도 하죠. 

시각장애인이면 무조건 서로 다 아는 사인 줄 아시나? 

공원에서 산책시키던 강아지들끼리 인사시키는 것도 아니고

1장, 개업식날, 부분

<국가공인안마사>의 서사는 비교적 단순하면서도 무척 잘 짜여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 에피소드인 ‘국가공인안마원’에 주요인물이 모입니다. 주인공인 ‘저시력’과 ‘선천맹’, ‘안보아’, 그와 동행하는 활동지원사들까지요. ‘저시력’과 ‘선천맹’, ‘안보아’는 모두 시각장애인이자 국가공인안마사이지만, 안마원을 갓 개원한 창업자, 안마 40년 경력의 엔젤안마시술소 원장, 모 기업의 무기계약직 헬스키퍼라는, 서로 다른 직업으로 자기만의 삶을 꾸려가는 이들입니다. 각자가 지닌 장애의 종류와 정도도 모두 다르죠. 이는 안보아와 선천맹이 국가공인안마원의 개원을 축하해주러 오는 길의 지하철에서 두 활동지원사에 의해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강제로 접촉해야 했던 상황과 대조되며 앞으로 진행될 이야기의 방향을 어렴풋이 예고합니다.

세 안마사의 일상은 말 그대로 좌충우돌입니다. 공인된 자격증으로 직업을 구해 살아가는 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자꾸만 지워지고 그냥 장애인으로 ‘퉁쳐진’ 말들이 관계와 상황을 방패 삼아 날아들죠. “내가 일어난 건 어떻게 알았어요? 안 보인다면서요?”(2장 엔젤안마시술소 선천맹), “장애인들 입장 잘 알죠. 사회복지 복수전공 했거든요.”(4장 헬스 키퍼 안보아), “맹학교 같은 데서 대충 시간만 때우면 그 잘난 국가자격증이 아무한테나 다 나온다”(6장 비슷하면서 다른 존재) 등, 극에서 재현된 비장애 관계인들이 내뱉는 편견의 말들은 비슷한 톤으로 극의 곳곳에서 반복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선 뱉어지고 있을지 모르는 이런 말들은 <국가공인안마사>의 공연 현장에서도 위력적으로 작동합니다. 모든 에피소드가 안마사들의 일터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유난히 날카롭게 들리기도 하죠. 

말의 폭력성은 아주 복잡한 것 같습니다. 상황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 폭력인 말들도 있지만 어떤 말은 똑같은 발음임에도 관계와 정황에 따라 농담이 되기도, 어느 때보다 강력한 혐오로 작동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생계의 문제가 위계 구조로 착실하게 짜여 수많은 군상을 받치고 있으면서 상당수(거의 대부분)가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조성되어있는 일터는, 차별과 혐오의 말에 유달리 취약한 공간이기도 합니다.

베리어 컨셔스 연극 <국가공인안마사> 일부_사진제공 성다인, 사진촬영 정길우

“옷은 왜 그렇게 입고 다니냐, 그러니까 시집 못 가는 거 아니냐, 

(베드를 쾅 치고 벌떡 일어나며) 아, 생각할수록 열받네, 진짜!”

4장, 헬스 키퍼 안보아 부분

사회적 이미지보다는 가족의 경제적 돌봄을 우선한 선천맹, 창업을 통해 성공하고 싶은 저시력,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삶을 원하는 안보아는, 한 덩이의 시각장애인이 아니라 각자의 바람과 상황에 어울리는 직업과 일터를 선택해 한 사람으로 존재하고 살아가려는 이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일터에서 겪는 갈등은 주로 안마가 아프다는 불평을 웃어넘기거나 안마를 잘 받고 나간 손님이 안마사가 자기를 더듬었다고 신고하는 바람에 영업이 정지되거나 힘든 이야기를 다 듣고 열심히 공감한 대가로 휴가를 왜 한 달 전에 신청하지 않냐는 타박을 듣는 일들이죠. 이런 상황은 특정 정체성에 한정짓지 않아도 가까운 일터, 특히나 서비스업의 현장에서라면 드물지 않게 맞닥뜨리는 일들인데, 비장애인을 위주로 직조된 노동망은 장애인에게만은 한 단계의 고난을 더 요구하곤 합니다. “특별히 챙겨드리는 거예요, 선생님 사정 아니까”, “왜 그런 유명무실한 법 때문에 우리가 역차별을 받아야 되는 건데요?” 같은 말들에, 원인을 예측할 수 없는 폭음(베드를 쾅 치고 벌떡 일어나며)에 견디고 대응해야 하는 일들이요. 우습게도 이런 고됨은 제한된 시각이라는 시각장애인 당사자의 신체적 특성이 아니라, 시각장애인을 대상화한 사회 통념에 의해, 바깥으로부터 부과된 고난입니다. 이 안팎에서 튀어나오고 들이치는 일들을 대체 어쩌면 좋을까요. 관객들이 한껏 그 곤란함과 울분을 들이키려 하는 순간, 해설과 테마송이 등장합니다.

베리어 컨셔스 연극 <국가공인안마사> 일부_사진제공 성다인, 사진촬영 정길우

국가공인안마사를 둘러싼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대립은 <6장, 비슷하면서 다른 존재>에서 극대화됩니다. 미용업으로 위장한 안마시술소를 역 근처에서 운영하는 비장애인 마사지사와 주택가 깊은 골목의 국가공인안마원 원장 저시력의 극렬한 말의 난투가 펼쳐집니다. ‘역차별이다’, ‘시간만 때우면 나오는 자격증’, ‘장애를 무기 삼는다’ 같은 날카로운 말들이 마구 쏟아져 관객의 감정도 최대치로 치솟아야 할 순간이죠. 이 싸움을 멈추려면 천재지변이라도 일어나야 할 것 같은 절정의 순간에 해설은 천연덕스럽게 스탠드 마이크를 들고 무대로 들어왔다 나가기를 반복합니다. 그걸로 모자라 조명 변화와 상황 해설, 저시력과 마사지사의 상태까지 설명하며 싸움의 사이사이를 서슴없이 활보하죠. 가장 날카로워야 할 장면이 자꾸만 경쾌한 만담이 되어버립니다. 날카로우면서 경쾌한, 어딘가 이상한 둘의 싸움은 마사지사의 ‘장애를 무기 삼’는다는 해설의 개입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일방적 비난에, 한껏 가라앉은 말투의 저시력이 ‘장애를 무기로 삼은 적 없습니다. 그게 가능하지도 않’다고 대답하며 어색하게 마무리됩니다. 이후 흘러나오는 저시력송. “얼마나 보일까? 그건 나도 몰라. 의사도 모른다구요. (...) 난 그냥 나야. 난 저시력이야.”

공연의 마지막 장면에서 마이크는 안보아에게 넘어갑니다. 한 직장에서만 너무 오래 머무는 것에 갈증을 느낀 안보아가 서울역에서 도보 3분 거리에 일자리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는 복지관에 지원문의를 하는 장면이지요. 복지관은 해당 일자리는 계약직이며, 이미 지원자가 53명이라는 대답을 늘려줍니다. 놀라 굳어버린 안보아를 세워둔 채 무대가 서서히 암전됩니다. 

베리어 컨셔스 연극 <국가공인안마사> 일부_사진제공 성다인, 사진촬영 정길우

세 안마사의 에피소드는 비록 충분하진 않더라도 충실하고 세심하게 안마사들의 일터를 재현합니다. 그리고 각 에피소드들의 집합체인 <국가공인안마사>의 세계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가리지 않고 위협하는 직장내 괴롭힘과 각종 부조리, 업계 내 사생활 침해, 부동산 문제, 사각지대 노동, 젠더 문제가 종류와 정도를 가리지 않고 얽혀있지요. 세 안마사가 한 공간에서 만나는 장면에서 출발하는 <국가공인안마사>는, 각 안마사의 독립된 에피소드와 테마송을 통해 (시각)장애인의 단편적 개념을 깨트려 개별 주체의 고유성을 드러내고, 후에 추가된 것이 아닌 전체 퍼포먼스의 일환이자 극의 핵심 장치로써의 음성안내와 해설, 각종 소리 콘텐츠를 통해 무대와 객석 사이의 장벽을 깨트립니다. 그렇게 조각난 사연과 무대는 이제 더 이상 세 안마사만을 대상으로 하지도, 시각장애인 관객만을 대변하지도 않게 됩니다. 시각장애인의 일상에서 감지되는 문제는 언제나 비장애인을 아우르는 보편적 사회문제가 포개진 상태였음을 알리면서, 배우와 관객, 스탭은 물론 공연장의 먼 바깥에 있는 떠오르는 기억과 온갖 사람들을 하나의 벌판에 놓아둡니다. 이 벌판이 바로 우리의 이야기를 새로 시작할 장소입니다.

저에게 안마란 ___입니다.

베리어 컨셔스 연극 <국가공인안마사> 일부_사진제공 성다인, 사진촬영 정길우

<국가공인안마사>는 ‘저에게 안마란 ___입니다.’라는 질문에 답하는 안마사 당사자들의 인터뷰 음성으로 공연 전체의 시작과 끝을 알립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이 소리 장면은 극을 끌어안고 있는 형상이지만, 오히려 극을 통과한 마음을 확산시키는 기능이자 장치에 가깝습니다. 프롤로그의 인터뷰는 주인공인 선천맹과 저시력, 안보아의 목소리이고, 에필로그의 인터뷰는 극에 등장하지 않는 안마사 12명의 목소리거든요. 주인공 격인 세 안마사가 자신에게 안마란 어떤 의미인지를 알리는 것으로 시작된 극이 무대에 (아직) 들어오지 않은 안마사들의 목소리로 끝을 맺는 구조는 마치, 오늘 우리가 함께 있었던 건 예시이자 시작일 뿐이고, 앞으로 나누어야 할 이야기가 한참은 더 남았다는 걸 예고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이야기들은 장벽을 제거free를 선보이며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conscious으로 새로 지은 이야기여야겠지요. 

비-연극인이자 관객이었던 사람으로서, 무대에 초대해주어 고마웠습니다. 장벽을 함께 바라보게 자세를 틀어 앉는 일이 이야기가 될 수도 있군요. 이를 감히, 연극의 가능성 중 하나라 믿어보겠습니다. 

 




배리어컨셔스 연극 <국가공인안마사>

일자 2023.5.18 ~ 5.21,
장소 천장산 우화극장
연출 이성수 이성수, 허영균 출연 최경천, 이성수, 장근영, 이우람, 정혜민, 도현, 쓰다 
조연출 정혜민 액팅코치 도현 기획·홍보 성다인 음악감독 쓰다 무대·조명디자인 김지우 
문자통역 제작 이우람 포스터디자인 김승후 주최·주관 선장 
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협력 천장산우화극장, 협동조합고개엔마을, 성북문화재단, 성북구청
관련정보 https://www.instagram.com/official.massage/

 

추일범
시 쓰고, 문화·예술 집단에선 주로 기획인력으로 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