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변방을 모험하기 : 관객 1인의 2023 서울변방연극제 극장 밖 정주행 일기 <2023변방연극제>

2023. 10. 5. 14:11Review

 

변방을 모험하기 : 관객 1인의 2023 서울변방연극제 극장 밖 정주행 일기

 

<2023변방연극제> 리뷰

 

김기일

 

*필자는 어떤 계기로 2023 7 7일부터 7 23일까지 진행된 ‘2023 서울변방연극제의 모든 공연을 관람하게 되었다. 보았던 모든 공연이 인상 깊었지만, 정주행한 관객의 입장에서 특별히 오래 마음에 남았고, 또 내 안에서 나만의 특별한 서사가 그려졌던 극장 밖 작업들의 기록을 남겨보고자 한다. 어쩌면 이 글은 비평보다는 기행문, 리뷰보다는 관객 1인의 체험 혹은 모험담이다.

 

#1

2023 7 8, 변방농장 <공중제B> @고양찬우물농장 내 텃밭 마요문명

 자연 환경으로부터 인간이 완벽히 보호되지 않습니다. 가령, 모기, 벌레, 더위 등이 공존합니다.”

비가 오지 않을까 걱정했다. 사실 나는 공연 예매 확인 문자와 변방연극제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위와 같은 특이 사항에 조금 긴장하고 있었다. 거기에 비가 와도 진행한다는 공연 전날의 안내 문자까지. 누구에게도 말하진 않았지만 사실 나는 이미 며칠 전 온라인에서 오늘을 대비해 우비와 장화까지 장만을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공연 일, 다행히 날은 조금 흐렸지만 비는 오지 않았고, 덕분에 더위도 크지 않았다. 좋으면서 아쉬운 마음으로 우비는 집에 두고, 장화도 신고 가면 부끄러울 것 같아 집에 두었다. 대신 텃밭에 들어가서 무엇인가를 할 것 같으니, 더러워져도 되는 신발과 꼭 가지고 오라던 마실 물을 챙겼다. 흐리니까 권장 사항이었던 모자는 챙기지 않아도 되겠지? 가져오라던 수저와 포크도 챙겼다. 2023 서울변방연극제의 자체 첫 을 보기 위한 나름의 단단한 준비를 했다.

도착한 고양찬우물농장은 말 그대로 주말농장이었다. 삼삼오오 관객들이 모였다. 극장이 아닌 텃밭 공간이라 소풍을 나온 것 같기도 했다. 여섯 명 정도의 관객이 있었던 것 같다. 모인 관객들에게 창작자는 우선 농장을 거닐어 볼 것을 주문했다. 그리고 보고 듣고 느껴지는 것을 마음에 기록해 달라고 했다. 익숙하지 않은 형식에 조금 낯설었지만, 주문대로 농장을 거닐었다. 정돈되지 않은 제각각의 텃밭들이 눈에 들어왔다. 오기 전 찾아보니 고양찬우물농장은 무농약, 무화학비료, 무비닐 멀칭을 원칙으로 텃밭 하는 주말 시민농장이었다. 제멋대로 모여있는 각각의 농장들이 인상적이었다.

이후 변방농장 <공중제B> 공연은 창작자들이 재배한 작물을, 설명을 들으며 관객이 직접 채취하고, 또 직접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 구성으로 진행되었다. 모인 사람들은 밭을 거닐며 보고, 듣고, 느꼈던 농장의 모습을 마음에 기록하고, 마트에 진열 상품이 아닌, 그 이전의 작물들을 직접 손으로 따고 뽑았다. 또 자신이 재료를 선택하고 오늘의 경험을 담아 손수 이름 짓고 만든 샌드위치를 모여 먹으며 음식에 대한 각자의 기억을 나누었다.  

소소해 보일 수도 있는 <공중제B>에서의 텃밭 경험은 생각보다 나에겐 강렬하게 다가왔다. 그것은 먹고 요리하는 감자의 익숙한 부분은 알지만, 감자의 잎과 줄기는 절대 알아볼 수 없는 나를 발견하는 일 같은 경험이었다. 먹는 당근의 뿌리보다 훨씬 길고 아름답고 풍성한 당근의 잎을 살면서 처음으로 인식해 보는 일, 또 먹기 좋은 시기에 채취하지 않고 온전히 밭에서 썩고 시들며 수명을 다하도록 두는, ‘정상적이지 않은 작물 이전의 식물을 바라보는 일 같은 것. 

선물 받은, 아직 흙이 묻은 당근들의 긴 줄기를 손에 쥐고 걸어 돌아오며, 나는 이후 예정된 변방연극제의 공연과 축제들을 가늠해 보았다. 아마 이번 2023 변방연극제에서 내가 볼 공연들은 오늘 고양찬우물농장에서 본 정돈되지 않은 제각각의 텃밭들 같은 모습은 아닐까. 비가 와도 작물 아닌 식물들이 살아있고, 벌레, 더위, , 비 같은 것들과 이미 존재하는 극장 밖 텃밭 같은 영역들. -관객을 완벽히 보호하지 않는 변방의 영역들. 나는 마음속에 변방의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후 축제 내내 떠오를, 잎이 무성했던 흙 묻은 당근 (사진: 필자 제공)

2023서울변방연극제 정주행의 시작 (사진: 필자 제공)

 

#2

2023 7 9, <함께 살아가기 프로젝트 : ㅅㅅㅅㅅ> @충남 공주 복많네 

나와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마음과 마음이 닿을 때까지 끊임없이 기다려야 한다.”

어제의 다행스러운 날씨와는 달리, 서울엔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공중제B>를 본 바로 다음 날, 다음 변방의 작업을 보기 위해 충남 공주의 레지던시 복많네를 향해 차를 달렸다. 잠시 후 변방의 또 다른 공연을 보러 돌아올 평택을 지나 공주에 다다를 때, 앞이 보이지 않게 비가 오던 날씨는 흰 구름에 화창하고 맑은 날씨로 바뀌어 있었다. 운이 좋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차를 세우고 한적하고 평범한 시골집의 모습을 하고 있는 복많네에 들어갔다. 초록 대문에 마당이 있고, 작은 건물 두 채가 있는 아담한 집이었다. 편안한 얼굴의 축제 스태프들이 관객을 맞이했다. 티켓을 대신하는, 어제 첫 공연에서 받은 커다란 홍보물에 오늘 공연 관람을 확인하는 도장을 받았다. 스태프가 시원한 음료를 권했고, 마당에 앉아 잠시 숨을 돌렸다. 편안하고 차분했다.

 <함께 살아가기 프로젝트 : ㅅㅅㅅㅅ>은 작가 박소희가 본인의 발달장애인 쌍둥이 동생과 소정, 그리고 자신이 부른 동료 김섬, 이우성과 한 달 동안 공주의 레지던시 복많네에 거주하며 있었던 일들, 거기에 대한 단상과 흔적들을 전시 및 간단한 활동의 형식으로 관객들에게 공유하는 작업이었다. 숨을 돌리고 마련되어 있는 생활관과 전시관 중 우선 전시관으로 들어갔다. 전시관에는 구성원들이 함께 한 달을 살면서 있었던 일들과 단상들이, 영상, 그림, 글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공간 가장 깊숙한 한 평 남짓한 공간에서 나는 한참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는데, 작은 공간을 둘러싼 세 개의 벽에는 아마 작가 박소희가 직접 적었을 단상들이 색색의 크레파스로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벽에는 함께 태어난 발달장애인 동생과 어릴 적부터 살았고, 살아가고, 살아갈 작가의 생활과 내밀한 마음이 여과 없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동생과 함께 살았고, 살고, 살아가고 싶은 작가의 마음과 그 마음 안에서 생겨나는 어떤 힘들고 어려운 마음들. 서로 부딪치는 것 같은 마음들이 온통 적혀 있는 벽이 온전한 한 사람의 마음 같아서 쉽게 발을 뗄 수 없어 한참을 공간에서 머무르다, 전시관 옆 생활관으로 향했다.

생활관엔 앞서 전시에서 내가 훔쳐본 한 달 살기의 당사자들이 있었다. 소정은 다소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고, 소희는 그런 소정을 신경 쓰고 있었다. 과일과 음료를 또 대접받았다. 앞 전시 공간이 소희에 내면에 들어갔다 나온 느낌을 주었다면, 생활관은 낯선 사람의 가정집에 초대된 느낌이었다. 다른 사람의 생활과 가족 관계가 숨김없이 드러나는 공간에 초대되어 앉아 있는 기분. 긴장감이 올라갔다. 어색했다. 

처음 만난 동생 소정이 나에게 친근하게 다가왔을 때, 내 얼굴은 웃고 있었을 테지만 아마 내 머리는 경보를 울리며 긴장감에 팽팽 돌고 있었을 것이다. 전혀 익숙하지 않은 일,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만남에 삐걱대는 나를 바라보는 일과 그 사이에서 생겨나는 자의식과, 아무튼 뭐가 되었건 낯선 것과 가까이에서 조우하고 잠시 멈춰 나를 바라보는 일이 오늘도 일어났다. 그리고 이내 다행히, 그래 오늘 우리는 모두 처음 만난 사이지, 라는 생각이 들었고, 긴장과 어색함이 특별한 일이 아님을 빨리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래, 함께 있는 것은 누구든 시간이 필요한 일이지. 처음 만나는 사람과는 더더욱.

이후의 시간에서 나는 드문드문 소정을 포함한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특별 것 없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함께 묵언 목걸이를 걸고 처음 만난 사람들과 말없이 방방이(트렘펄린)을 이상한 경험도 하고 잘 가라는 배웅을 받으며 공주 복많네의 대문을 나섰다. 다음 만남에선 좀 더 편할 수 있을까, 함께 사는 것엔 연습이 필요하구나. 문을 나서자 앞서 본 전시와 뒤이은 사람들과의 조우가 이윽고 하나의 작업으로 느껴졌다. 더 정확히는, 분리될 수도 있었던 두 경험이 나를 매개로 합쳐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마 남은 변방의 작업들, 특히 극장 밖 작업들은 나를 낯선 사람 혹은 존재 앞으로 나를 계속 밀어 넣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는 익숙하지 않은 곳으로.


글과 사진으로는 전시 공간에서의 체험을 전하기 어려워 아쉬울 뿐 (사진: 필자 제공)

"나와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마음과 마음이 닿을 때까지 끊임없이 기다려야 한다." (사진: 필자 제공)

 

#3

같은 날, 2023 7 9, <오프 리밋 off-limit> @평택 기지촌여성평화박물관_일곱집매

 오프 리밋(off-limit)은 주한미군의 K-6 캠프험프리즈 근방 소위 기지촌의 클럽에서 성병 확진자가 발생할 경우 내려졌던 미군의 출입금지 명령을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공주에서 차를 몰아, 오는 길에 지나왔던 평택으로 향했다. 또 운이 좋게도, 폭우가 내리고 있던 평택은 거짓말처럼 다시 맑아져 있었다. 차를 세우고, 집결 장소인 평택역 앞으로 향했다. <국화>, <장미>, <민들레> 깃발을 들고 분장을 한 배우들이 관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관객들은 방문확인증처럼 만들어진 티켓과 안내자료를 받아 각각 배정된 봉고차에 탑승하고, ‘기지촌여성평화박물관 일곱집매가 있는, 그리고 이모들이 기다리고 있는 안정리로 향했다. 

<오프 리밋>은 관객들이 배우들의 안내를 통해 기지촌여성평화박물관 일곱집매를 방문하여, 과거 미군 기지촌 위안부였던 여성 노인들에게 당사자로서의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꽃들의 이름으로 나어진 관객들이 박물관의 공간들을 오가며 공연을 관람하는 형태였는데, 각 공간에서는 이모들  오랫동안 관계를 맺고 있는 공연팀이 위안부 당사자분들을 부르는 말이다  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극, 더 정확히는 당사자로서의 구술을 수행했다. 구술의 내용은 이모들 각자가 기지촌에 오고, 있었고, 떠났던 경험이었고,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걸고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앞서 이모들의 이야기를 다루었고, 또 직접 참여하기도 했던 <일곱집매> <문밖에서> 등의 작업을 보았기 때문에, 나 스스로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이야기라고 처음엔 생각했다. 하지만 당사자 이모들과 좁은 공간에서 직접 얼굴을 맞대며 정돈된 서사가 아닌, 당사자의 구술로 이야기를 듣는 경험은 극장에서 거리를 두고 숨은 관객으로서 서사를 관망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설명하자면 한 당사자 이모의 이야기를 들으며 예전에 보았던 연극 <문밖에서>를 떠올리게 된 것이 그러한 다른 경험이었는데, 당시 나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장면이 있었던 것이 기났다. 그 장면은 한 이모가 자신을 한국에 두고 떠나버린 미군 남편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말하는 장면이었는데, 당시의 나는 어쩐지 그 장면을 납득하는 것을 어려워했었다.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을 공감할 수는 있지만, 과연 그 장면이 서사 안에서 필요했을까, 같은 식의 태도였는데 눈앞에서 이모의 회상을 직접 들으며 당시의 내가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마 당시 객석에 앉아 나는 이모들의 이야기를 작품으로만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 같다. 또 예의 연극을 보는 태도로 그 안의 이야기에서의 미군 남편을 일방적인 가해자로, 이모를 일방적인 피해자로 납작하게 도식화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눈앞에서 실재하는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순간, 무대와 객석 간의 거리에선 확인할 수 없고, 지워지기 쉬운 행간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위안부 당사자이기 이전에 느껴지는 한 사람. 어떤 선택과 그 선택을 하게 한 욕망과, 의도치 않은 결과와 성취와 실수가 뒤섞이게 되는 사실 하나의 보통의 삶, 을 말하는 사람. 멀리 두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앞에 두고 만나서야 이해가 되는 일들.  

집에 돌아오며 전날 마요농장에서 캐냈던 줄기와 잎사귀가 온전한 흙 묻은 당근을 떠올렸다. 필요에 의해 구획되기 이전의 온전한 당근. 그 당근처럼 한 사람의 삶과 경험은 구획 이전의 것이고, 중심에서 구획하기 곤란한 삶 혹은 존재일수록 시선 밖 변방에 두어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조금 무섭게도 중심과 극장은, 안전하고 깨끗한 자신들의 시선 안으로 잎사귀 없는 잘 씻긴 당근처럼 변방의 존재를 필요할 때만 호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렇게 중심과 객석의 편안한 자리에서 안전하게 변방이라 칭해지는 존재를 바라보며 이해하려는 시도는, 사실 불가능하거나 거의 의미가 없고,  취약-오염-더러움 위험한 공간으로 잠시나마 들어가아만 그 이해가 조금은 가능한 것이 아닐까.

취약한 곳에서 곰팡이가 퐁퐁 피어나 서로 연결되는 길을 따라, 내가 변방연극제를 따라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객 1인의 서사가 쌓이고 있었다.


이모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시간도 있었다. 조용필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사진: 필자 제공)

끝나고 관객들과 함께 걸었던 기지촌. 왜인지 나를 반기지 않는, 어떤 외국에 온 느낌이 들었다. (사진: 필자 제공)

 

#4

2023 7 18, <변방스포츠 : 예술, 과학, 운동의 경계에서 만나는 날 것의 몸> @노들섬 일대 

놀이는 돌봄의 최고 양식이다. 놀이가 없는 돌봄은 서로 괴로워지는 노동이 되고 만다. 우리 사회의 돌봄자·양육자에게 놀이할 수 있는 환경·권리를 보장해주는 것이 21세기 복지의 과제다.” 

그사이 세 편의 극장 공연을 보고, 거의 열흘 만에 다시 극장 바깥의 변방연극제에 참여했다. 

여전히 장마철이었고, 첫날의 <공중제B>처럼 우천 시에도 활동이 취소 없이 진행된다는 안내 문자를 받았다. 또 첫날의 다양한 준비물처럼, 우천 시 우비, 활동용 운동화, 여벌 옷과 신발, 수건 등등을 지참해달라는 요청 또한 받았다. 성실한 관객으로서 모두를 챙겨 두었지만, 다행히 운 좋게도, 또 거짓말처럼 시작 직전 노들섬엔 비가 그치고 해가 비치기 시작했다.

사실 이번 변방연극제의 여러 공연, 특히 극장 밖 작업 중 예매를 하고도 가장 고민이 많았던 것이 이번 <변방스포츠>였다. 올해 들어 부쩍 몸이 안 좋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을 때였기도 했지만, 사실 그 안에는 내가 내 몸을 움직인다는 것, 그것도 타인과 함께 몸을 움직인다는 것에 대한 어떤 공포 혹은 불편함이 있었던 것 같다. 과연 내 몸이 내 뜻대로 잘 움직여 줄까, 부족한 내 몸 때문에 내가 좌절하지는 않을까, 혹은 다른 사람들 실망하게 되지 않을까. 

변화의월담 팀에서 준비한 <변방스포츠>는 노들섬 광장에서 사람들이 모여 함께 몸을 움직여 보고, 또 공을 가지고 놀이를 해보는 시간으로 구성되었다. 앞서 본 다른 작업들처럼 <변방스포츠> 또한 나에게 낯선 것을 대면하는 것에 대한 긴장감을 강하게 자아냈는데, 이번엔 그 낯선 것이 다름 아닌  자신의 몸, 그리고 거기에 더해 그 몸과 소통하는 타인의 몸이었다. 예매 취소를 고민을 할 정도로 아마도 티는 안 났겠지만, 노들섬으로 향하는 동안 긴장과 불안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긴장감은 이내 사라졌다.

처음에 모여 조금 쭈뼛거렸던 사람들은 창작자의 능숙한 진행을 따라가며 서서히 자신의 몸을 열어가기 시작했다. 나 또한 몸을 조금씩 움직이고, 상대와 맞닿아 보며 조금씩 불안을 지워나갔다. 나는 늘 내가 내 몸을 버거워하고, 또 내 몸이 타인에게 어떤 식으로든 부정적인 무언가를 줄 것이라는 고정된 인식이 있었는데, 프로그램을 따라가며 서서히 그 인식이 바뀌어 나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생각보다 잘 뛰고, 잘 점프하고, 수그리고 펼칠 수 있었다. 또 사람들과도 서로를 해치지 않고, 몸을 부딪치고 공을 주고받으며 움직일 수 있었다. 몸을 통해 촉발되는, 다른 나와 다른 관계에 대한 상상. 평소에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내 몸 안의 경계, 다른 몸과의 경계는 언제 어디서부터 구획된 것일까. 조금씩 더, 조금씩 더 세게 높이 힘차게 몸과 공을 움직여 보며 이런 생각들을 했다. 다른 사람과 부딪치기에 광장은 넓었고, 내가 바닥에 세게 농구공을 꽂으며 걱정하는 것보다 하늘은 더 높았다. 

<변방스포츠>의 백미는 변칙 피구였다. 피구를 좋아하냐는 질문에 모인 사람들은 절반 이상이  싫어 한다고 답했다. 나도 싫어하는 쪽으로 손을 들며, 유년 시절 늘 재미없고 불편했던 체육 시간의 피구를 떠올렸다. 맞으면 아프고, 던지면 또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체육. 누군가를 밖으로 밀어내기 위해 수행되는 몸 쓰기. 하지만 <변방스포츠>의 변칙 피구는 그러한 피구의 구조, 룰 자체를 고쳐버린다. 맞아도 다치지 않는 스지 공을 던지고, 그 공을 막아낼 수 있는 더 단단한 공을 사람들에게 준다. 공에 맞은 사람은 죽지 않고 다른 사람을 지키는 수호자가 되며, 머리 아래를 맞추는 것만이 정당한 던지기로 인정된다. 변칙 피구에 따르면 룰, 구조는 불변의 것이 아니라 수정될 수 있고, 전복될 수 있다. 그렇게 다시 정해진 룰 안에서 모였던 어린이와 어른, 큰 사람과 작은 사람들은 뒤섞여 해가 질 때까지, 땀을 흘리며 놀았다. 나는 도대체 얼마 만에 사람들과 힘껏 몸을 쓰며 놀았을까.

피구가 끝나고, 가로등 밑에 사람들이 모여 각자 적은 오늘의 놀이에 대한 문장을 나누어 읽고 헤어졌다. 밖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어두워져서야 헤어졌던, 오랜 기억이 떠올랐다. 돌아오는 길에 오늘의 경험에 대해 생각해 보다가, 모험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지난주에는 떠오르지 않았던 단어였다. 앞선 극장 밖 변방작업들이 낯선 사람 혹은 존재와 대면했던 경험을 주었다면, 오늘의 <변방스포츠>에선 내가 더 적극적으로 그 낯선 경계 안으로, 혹은 바깥으로, 넘어가는, 혹은 경계를 흐려보는 어떤 모험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와도 떠나는, 준비물이 필요한, 어떤 모험으로서의 축제.


생각보다 나는 공을 잘 다룰 수 있었다. 무엇이 그동안 나와 공을 멀리 떨어뜨려 놓았던 걸까. (사진: 필자 제공)

"놀이는 돌봄의 최고 양식이다. 놀이가 없는 돌봄은 서로 괴로워지는 노동이 되고 한다." (사진: 필자 제공)

 

#5

2023 7 20, <정전의 밤> @양수리 일대 

무덤이 된 극장의 뒤 켠 / 숨막혀 시든 작물 밟고 지나는 여름 날 / 어둠에 이미 익숙해진 사람들의 지도를 따라 / 멈추지도 않는 비를 그대로 맞고

<정전의 밤>은 점점 더 덥고 습해지는 어느 날, 양수리에서 진행되었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양수역에 모인 사람들은 차를 타고, 커다란 비닐하우스가 모여있는 농장으로 향한다. 이미 해가 지고 캄캄해지기 시작한 시간, 동행자로 불리는 관객들은 창작자의 안내에 따라 눈구멍이 뚫려 있는 흰색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창작자의 안내를 따라 맨발로, 거친 밭을 거닐고 돌아다닌다.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지만, 어두운 양수리를 동행인들과 무리 지어 돌아다니는 경험은 문명이 사라진 이후의 세계를 나에게 상상하게 했다. 전기가 사라진 세계의 밤. 하지만 그 세계에서도 사람들은 살아가야 한다. 나는 낯선 동행인들을 문명의 끝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이룬 하나의 부족으로 상상해 보았으며, 작업에서 제공하는 체험들을 이후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행위로 치환시켜 보았다. 퇴보된 문명에서도 사람들은 먹고, 움직이고, 이야기를 주고받아야 한다. 하지만 자연과 우리 사이를 벌려놓는 방식으로 안전을 확보해주 던 문명이 사라지는 순간, 우리는 느려지고 다치고 위험해진다. 

이날의 <정전의 밤>에서 나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처럼 작업이 의도적으로 관객들에게 제공하는 위험 혹은 의도적으로 제공하지 않는 안전이었다. 캄캄한 밤, 작은 눈구멍이 뚫린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맨발로 작물이 무성한 비닐하우스를 통과하는 경험은 <공중제B>에서 잎 달린 흙 묻은 당근을 수확하는 경험보다 몇 배는 강렬하게 내가 자연과 맺고 있는 관계를 인식하게 했다. 무수한 잎과 가지에 피부가 쓸리고, 온몸이 벌레에 쏘이며, 넘어지거나 무엇인가를 밟아 다칠까 봐 쉽게 발을 떼어놓지 못하는 경험은 관념이 아닌 체험의 형태로 내가 존재하는 안전한 세계가, 사실은 얼마나 부자연스러운 세계인지를 알게 한다. 위험이 본질인 세계에서 안전은 얼마나 깨어지기 쉬운 것인가, 또 우리는 자연 상태인 세계를 위험이라 부르고 그것과 거리두는 일에 얼마나 익숙해져 있는가. 고작 비닐하우스에서 빛이 없고, 맨발일 뿐인데, 이렇게 취약해지다니. 여긴 누가 살고 농사짓는 농장일 뿐인데, 사실은 문명이 사라진 세계도 아니라.

동행이 끝나고 농막에 모인 사람들은 함께 수박을 잘라 먹으며 그날의 경험을 나누었다. 나는 온 팔과 다리가 모기에 물려 쉴 새 없이 몸을 긁었다. 습한 날씨에 보자기까지 뒤집어쓴 채 머리는 땀에 젖어 있었다. 어서 에어컨이 나오는 쾌적한 차를 운전해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나는 어디까지를 허용하거나 포기할 수 있을까. 작업의 형태로 약간의 위험이 허락된 모험에 나는 기꺼이 동행했지만, 어떤 순간 의도한 대로 공연이 흘러가지 않는다는 느낌  어떤 것들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느낌 - 을 받았을 때 다소 불편한 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준비된 상태에서 내가 오늘의 체험과 사유를 경험할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 보았을 때, 오늘의 경험이 불쾌함보다는 어떤 성취로 다가왔다. 가보지 않았으면 없었을 것들. 축제와 공연은, 연극은 어디까지 가볼 수 있을까, 연약한 몸을 하고. 모기 물린 자국이 한동안 없어지지 않았다.


뜬금없는 양수역 풍경은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없었던 터프한 경험 탓. 모기 물린 사진을 찍어 놓았어야 했다. (사진: 필자 제공)

"그리고 그 이야기가 계속되는데." (사진: 필자 제공)

 

#6

2023 7 22, <불온한 발표회 : ♥★ 나는 다나카가 부러워서 등장하기로 결심했다★♥> @신촌문화발전소 2F 스튜디오 창 

저도 한때 다나카가 진짜인 줄 알았는데요. ‘가짜인 다나카에게는 모두 웃는 얼굴이지만, ‘진짜 존재 앞에서는 우리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요? 여기 등장한 진짜 존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2주 동안 변방을 좇아가다 보니 어느새 하나의 극장 밖 작업만이 남아있었다. 매번 다른 작가의 이야기로 3회차가 진행되었던 <불온한 발표회>의 마치막 회차, 사랑해 작가의 발표회에 참여했다. 앞선 두 회차를 보진 못했지만, 사랑해 작가의 발표회는 작가가 둥그렇게 모여 앉은 관객들 앞에서 직접 자신의 글을 낭독하고, 이후 지정토론자의 진행으로 관객들과 창작자가 함께 대화를 나누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앞선 다른 극장 밖 작업들처럼, <불온한 발표회> 또한 관객에게 이런저런 준비를 요구했는데, 참여하는 모두는 이름을 밝힌다, 관객-독자의 적극적 참여를 원한다, 자신의 발언은 자신이 책임진다, ‘동료 시민으로서 타인의 발언을 경청해달라는 요구들이었다.  240분으로 예고된 러닝타임, 거기에 던져질 불온한 감각에 대한 리액션을 기다리고 있다는 안내 문자는 또 무언가 낯선 것을 마주할 관객으로서의 나에게 긴장감을 또 한껏 올려두었고, 적극적으로 내가 어떤 취약을 마주하게 될 것인지를 우선 상상하게 했다.

작가가 참여했던 성평등전주의 <3회 페미니즘 예술제 지구탈출’>에서 작가 사랑해가 성산업 종사자로서 검열 및 퇴출당했던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해당 사안에 대한 나름의 태도도 있었고, 또 엔터테이너 다나카가 보여주는 여러 징후에 대한 생각들도 이것저것 평소에 해둔 상태였지만 적극적으로 호명된 당사자와 직접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앞선 공주 복많네에서 소정을 만났던 일과 평택에서 이모들을 마주했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걱정했던 것보다 240분은 빠르게 흘러갔다. 작가 사랑해가 가짜 성산업 종사자 다나카의 존재를 지렛대 삼아 소수자로서의 자신의 정체성과 그것이 사회에서 재단되는 방식을 능수능란하게 이야기했다. ‘다나카를 보면서는 웃지만 실제 성산업 종사자를 보고서는 웃지 않는 사람들. 하지만 모인 관객들은 자신 위에서 교차하는 수많은 정체성을 모두 자신의 본캐로 받아들이며 발화하는 작가 사랑해를 보며 크게 웃기도 하며 다양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직접 듣지 않으면, 자르지 않고 길게, 압축하지 않고 넓게 듣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들. 평택 일곱집매에서 있었던 이모와의 만남, 고양찬우물농장에서의 잎이 긴 온전한 흙 묻은 당근. 내가 하나의 축제를 따라왔구나.

작가의 발표 이후의 관객들이 참여하는 대화는 기대보다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아마도 기획의도처럼 관객에게 던져진 불온한 감각을, 관객이 소화하고 통용될 수 있는 자신의 말로 옮길 수 있는 시간, 그리고 각자에겐 그 말을 해도 괜찮다는 확신 같은 것이 부족했을 것이다. 공연에 참여하기 전 미리 생각했던 것  사실은 불안 - 들이 낯선 존재와 대면하며 다른 국면으로 나아가는 일, 안전하고 내밀한 사유의 공간에서 대면하고 관계 맺는 실제의, 취약한 현실의 공간으로 나아가며 생기는 일종의 고장, 같은 것이었다고 나를 복기해 본다. 

이와 같은 고장, 의 순간은 <불온한 발표회> 뿐만 아니라, 2023 변방연극제의 극장 밖 작업들에서 계속 내가 마주했던 순간이었다. 안전한 나의 중심에서 떠밀려 나와 낯선 존재를 마주했을 때의 고장 , 혹은 취약에 노출된 나를 바라보게 되는 일. 낯선 것 앞에서 삐걱대고 긴장하며 불안을 느끼고 위험하다고 느끼는 순간과 그 순간을 넘기는 경험들. 물론 나는 다시 안전한 집으로 에어컨을 켠 차를 운전해서 돌아가겠지만, 가려움으로 서울의 나를 한참 고생시켰던 양수리의 건강한 모기들처럼 대면 이후 한동안 남게 되는 것들. 공주 복많네에서의 삐걱댔던 어색한 첫 만남이 이후 우리가 계속 함께 살기 위해 거쳐야 할 연습으로 기억되고, 용주골에 대한 기사를 볼 때마다 태도를 빠르게 정리하고 싶은 나의 충동을 느끼며 동시에, 작가 사랑해와 파주의 이모가 던져 준, 곤혹스럽고 복잡하고 구획되지 않아, 그래서 온전한 개인의 이야기들을 떠올리는 일. 문제없이 깔끔한 세계에 대한 비전 같은 것을 어디선가 들을 때마다 <공중제B>의 잎이 무성한 흙 묻은 당근을 불쑥 떠올리고, 고장 난 것 같고, 왠지 취약한 나 혹은 세계를 느낄 때마다 노들섬에서의 몸의 경험, 사실 나는 생각보다 잘 움직이며, 룰과 구조를 바꾸면 같이 행복할 수 있었다는 실재의 경험을 떠올리게 되는, 그날 이후의 나. 


작가 사랑해의 발표를 듣고 나면, 새삼 '가짜' 다나까의 책임이 무거움을 알게 된다. 아마 '가짜'일 연극도 그렇다. (사진: 필자 제공)

포스터를 싣는다는 것은 역시 사진을 많이 찍지 못했다는 의미다. 그만큼 - 좋은 의미로 - 불온했던 자리. (사진: 필자 제공)

 

#7

2023년 가을, 축제가 끝나고 두 달이 훌쩍 지난 @안전한나의집

2023 서울변방연극제를 하나의 모험으로, 관객인 나에게 모험을 권유하는 축제로 나만의 서사를 그려보았을 때, 이것이 모험담이라면 나는 그 여름에 무엇을 얻고 돌아온 것일까. 아마 관객을 위험에서 완벽하게 보호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이 축제에서 나는, 변방에 대한 내성을 얻고 돌아온 것 같다. ‘취약-오염-더러움으로 상징되는 변방의 공간과 존재  여기엔 억압되었던 내 신체도 포함된다 - 들을 마주할 때 나에게 생겼던 파고  혹은 고장, 삐걱, 긴장, 위험, 내적 경보 - 는 역설적으로 내가 안주하고 있는 중심이라는 것이 사실은 그 자체로 취약한 것임을 인지하게 했는데, 취약함을 마주할 때 취약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형식으로 그 순간들은 체험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체험은 거리를 두고 대상을 관조하는 극장에선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며, 이는 극장 밖의 모험적인, 의도된 낯선 대면을 설계해 둔 이번 2023 변방연극제의 기획에 의해 성취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변방에 대한 내성은 다시 말하면, 다른 존재와 관계 맺을 수 있는 힘이다. 낯선 존재와 대면하는 법, 대면에 취약한 나를 직시하는 법. 그렇게 첫 대면의 어색함과 위태로움을 버티고 다음 만남을 기대하게 하는 힘. 인식과 사유의 차원을 넘어 얼굴을 맞대고 그 인식과 사유를 경험의 언어로 말하게, 대화할 수 있게 하는 힘. 그 대화가 다시 나-중심과 변방의 존재와의 경계를 흐려놓고, 그제야 무엇인가를 실제로, 함께 모색하게 할 것이다. 어쩌면 2023 변방연극제의 이러한 극장 밖 모험은, 언젠가부터 수많은 변방의 담론들이 극장에 머물러 있지만 극장 밖으로 나아가 못한다는 답답함, 혹은 변방의 담론을 전유한 채 현실이 아닌 연극의 중심으로 향하는 예술가들의 관성을 차고 나아간 힘이 아니었을까. 만약 그것이 기획 의도가 아니었더라도, 축제를 행복하게 따라다닌 관객 1인은, 그 힘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안전한 극장과 중심의 연극을 떠나 극장도 없고 연극이 아닐 수도 있는, ‘취약-오염-더러움의 온전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변방으로 향하는 힘. 가서 나의 취약함을 맞대러, 만나러 가는 힘. 함께 살아보려 한 번 더 발버둥 치는 힘. 중심을 떠나는, 모험의 힘.


2023 서울변방연극제 정주행의 기록. 아마 저 티켓을 다시 펼칠 일은 한동안 없겠지만, 도장을 찍어나갔던 변방에서의 뿌듯하고 낯설었던 순간들은 관객 1인에게 변화의 힘으로 실재할 것이다. (사진: 필자 제공)

2023 서울변방연극제를 어쩌다 보니 정주행하게 되었다. 모험담이라는 관객의 서사를 따라가다 보니 극장 안 작업을 이야기하진 못했지만, 극장 밖 작업만큼이나 극장 안 작업도 변방이라는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인상 깊은 작업들이었다. 하지만 축제가 끝나고 2개월이 훌쩍 지난 지금, 몸과 마음에 오래 남아있는 작업들은 대부분 심지어 서울도 아니고 연극이라기엔 낯선 극장 밖의 작업들 임을 부정할 수가 없다. 

축제를 좇아가며 기획의 과감함에 대해 생각했다. 어느 순간 우리는 안전이란 말을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작업에서 지켜져야 할 안전과 우리를 관성과 편견에 머물게 하는 안전은 다를 것이다. 특히 그것이 관객에게 정돈된 서비스로 제공되는 순간 발생하는 위계, 특히 그 작업이 어떤 변방-소수를 다룰 때 생기게 되는 대상화와 관객 시선의 문제를 이번 변방연극제를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변방은 바라볼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 안으로 들어가 함께 변방이란 경계를 지워내야 하는 것인가. 애초에 왜 예술가는 변방을 바라보는가? 

과감하게 모험을 권유해 준 축제에 감사하며, 다가올 다음 축제의 정주행러 관객 1인이 되길 다시 한번 기대해 본다. 축제가 가르쳐 준 것처럼, 이 글이 떨어져 재단하는 비평이 아니라 차라리 관계 맺는 일기가 되길 바라며, 계절이 바뀐 이제야 2023 서울변방연극제 속 관객 1인의 나름의 모험을 끝내 본다. 참 좋은 모험이었다. 너무 늦지 않게, 다음 모험을 또 권유해 주길.

 

필자소개

김기일

주로 연극을 만들고, 글도 쓰고, 극장 혹은 극장을 닮은 어딘가에 기웃거리기도 합니다. 올해는 성실한 관객이 되어 여러 공연과 축제를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다음은 무엇이 되어 있을까요.

인스타그램 @windfisher_


2023 서울변방연극제 Seoul Marginal Theatre Festival

2023 서울변방연극제
는 "취약-오염-더러움" 이 언어들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태,만들어지는 세계를 읽어볼 것을 제안합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관계 아래 놓인 상태이자 생성의 범주를 나타내는 이 언어들이 갖는 힘.그리고 날카로움, 가냘픔과 부서짐, 그 너머의 팽창을 동시대와 나누고자 합니다.
이 기획은 존재로 수렴하는 것이 아닌 관계 안에서 변화하고 분출하는 '상태'에 대한 담론과 그 확장을 기대합니다.
2023 서울변방연극제는 기존 서울변방연극제의 선언을 존중하는 한편, 그 목소리가 구성되는 맥락을 사유합니다. 사회적 승인을 요청하는 목소리들이, 목소리 그 자체로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다시 살펴보고, 그 목소리가 제기하는 논란과 불편함에 대해 과감하게 질문하며 껴안을 것입니다.

2023.07.07. - 07.23.


고양찬우물농장 내 텃밭 ‘마요문명’, 기지촌여성평화박물관_일곱집매, 복많네(충남 공주), 신촌문화발전소, 여행자극장, 자각몽, 탈영역우정국 외

주최_서울변방연극제
후원_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신촌문화발전소, 평택도시공사
협력_여행자극장, 자각몽, 탈영역우정국, 수어통역협동조합, 고양찬우물농장

예술감독: 김진이
프로그래머/기술감독: 유성희
프로그래머: 윤소희, 원지영
프로그래머/홍보: 한민주
PD: 권서령
PD/홍보: 염한별
PD: 장윤하
그래픽디자이너: 김유나
협력PD: 조유림
에디터: 계피
무대감독: CREATIVE 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