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기택 님, 다시 뵈어 반갑습니다! : <故 임기택 님의 9개월이 2023년 9월 14일 00시 00분 별세하였기에 삼가 알려드립니다.>

2023. 12. 15. 13:31Review

 

 

기택 님, 다시 뵈어 반갑습니다!

<故 임기택 님의 9개월이 2023년 9월 14일 00시 00분 별세하였기에 삼가 알려드립니다.>

글_배선희

 

 

‘그 사람 요즘 어떻게 지내지?’ 연락할 사이는 아니지 싶다가도 문득 소식이 궁금한 사람들이 있다. 올해 내게 기택 님은 ‘그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극장에서 마주칠 때마다 반갑게 인사 나누던 기택 님이, 인스타를 켤 때마다 프로필 사진의 동그란 테두리가 빨갛게 빛나며 반짝이던 기택 님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는데, 나는 그가 요즘 통 안 보인다는 사실을 한참이나 지나서야 알아차렸다. 사람들은 종종 SNS를 지우기도 하니까, 기택 님도 인스타를 지우셨나 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에게 아주 오랜만에 DM을 받았을 때, 사뭇 놀라고 당황하였다.  

“제가 지난 9개월여 동안 잘 못 지냈는데요(?) 다행히 이제 어느 정도 일상생활은 가능할 정도로 회복이 되어서 가까운 몇 분을 모시는 자리를 가지려 해요.”

며칠 뒤, 그의 계정에 올라온 부고장 형식의 공연 포스터 2) 를 보았다. 게시물 아래에는 공연 소개 글을 대신한 ‘상주의 말’이 적혀 있었다.   

“작년 연말쯤, 어떤 전조증상이나 짐작 가는 이유도 없이 우울증과 무기력증, 대인기피증이 찾아왔습니다. 꽤 오랜 시간을 혼자 보냈습니다. 그러다 J의 결혼식에서 우연히 E를 만났고 저의 상태를 들은 E는 헤어지면서 “잘 지내.”라고 했다가 “아니다, 그냥 지내.”로 인사말을 고쳤습니다. 고친 인사말 뒤로 “누구 장례식에서나 보자.”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그렇게 이 장례식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부고를 가장한 SNS게시글

 

기택 님이 초대한 자리가 장례식이라는 걸 그제야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가 우울증과 무기력증, 대인기피증을 겪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세 번의 계절을 지나 보내야 하는 9개월이 다소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혼자였다니, 기택 님. 무척 외롭고 힘들었겠다, 고 생각 했다. 꼭 보러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죽음 가까이에 혼자 있던 사람이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와 치르는, 자신의 ‘죽(이)고 싶은 시간’에 대한 장례식인 만큼 그를 가까이서 잘 지켜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과 달리 가능한 한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비죽거리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공연 형식 및 홍보 이미지가 장례식과 부고장이어서 불편했던 건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기택 님이 어떤 퍼포먼스를 하실지 몰라 불안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그때까지 그의 공연을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기택 님의 공연이 혹시라도 나르시시즘적이거나 자기 연민적일까 봐(모두 다 괜찮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가 공연에서 사용할 언어들이 감정적으로 견디기 힘들까 봐 솔직히 걱정됐다. 오랫동안 말을 삼킨 사람이 외피를 벗고 솔직해지기로 작정했는데 그가 무슨 말을 할지 몰라 기다리는 동안 침을 꼴깍 삼키게 되는 사람처럼 괜히 겁도 났다. 공연장의 건물 계단을 오르면서도, ‘그가 자신을 장례 치르는 과정을 내가 왜 지켜봐야 하지?’라는 질문을 다시 재고했다. 고백하자면 ‘죽었다가 살아 돌아온 사람이 하는 일은 반드시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본다’가 그날의 하나뿐인 동력이었다. 

 

 

그런데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공연이 좋았다. 회색 시멘트 벽으로 둘러싸인 크고 넓은, 비교적 텅 빈 공간에 들어서니 검은색 옷차림으로 상주가 되어 조문객의 문상을 받고 있는 기택 님이 보였다. 이 공연의 리뷰를 쓰고 싶다고 결심한 장면이 내게 있는데, 쓰다 보니 문득 그의 면(面)을 아주 오랜만에 맞닥뜨린 그 순간부터 사실은 이 공연이 정말 좋았던 게 아닐까 싶어진다. 

기택 님을 뵈니 좋았다. 그가 몹시 진중했다. 그의 태도가 나를 이 의식의 중요한 목격자로 위치시켰다. 콜링을 받은 사람은 고개를 돌릴 수 없다. 아무리 힘들고 싫은 일이어도 콜링에 응답한다는 것은 그런 일이다. 기택 님은 나를 정확히 겨냥하여 콜링 했고, 나는 그 콜링의 힘에 붙들려 여기까지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퍼포먼스는 힘들었고, 끝날 때까지 계속 딴 생각 들며 멀어졌는데, 그것도 좋았다. 이곳에 오기까지 복잡했던 마음과 이 순간 체험되는 것들을 거리를 두고 찬찬히 살펴볼 수 있었다.       

관객들이 모두 입장하고 조문이 끝나자 기택 님은 하얀 수의로 갈아입으신 다음 관에 들어가 오랫동안 누워 계셨다. 잠시 후 일어나 상에 차려진 술과 음식을 드신 후 스스로 머리카락을 자르셨다(순서가 틀렸을 수 있다). 이후 그가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망자의 모습으로 관객들이 빙 둘러앉아 만들어진 동그랗고 너른 공간 가운데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는 관객을 스칠 듯 가까이서 걸으며 계속 움직였다. 체감 상 30분이 훌쩍 넘도록 비슷하게 느껴지는 움직임이 계속됐다. 대부분의 시간을 계속 걷기만 하였고 가끔씩 발로 바닥을 쓸거나, 뛰려다 멈췄고, 자주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다 다시, 걸었다. 그렇게 아무 일도 벌어지거나 진행되지 않는 움직임이 무한히 반복되었다.

지켜보는 이들이 실시간으로 지쳐가고 있었다. ‘이걸 왜 봐야 하지?’ ’언제까지?’라는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 않을 뿐,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나를 포함한 사람들의 몸이 급속도로 달라지며 곤란해하거나 무감각해지는 표정을 살펴보는 일에 묘한 쾌감을 느꼈다. 놀랍게도 아무도 자리를 빠져나가지 않았다(한 명 빼고. 그분은 주차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강제하지 않았는데도 모두 여기 계속 있기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가끔은 불편하고 멀기도 한 그의 퍼포먼스를 오랫동안 함께 지켜봤다. 그래서 그날의 그 시간이 참 좋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공연 때 본 기택 님의 뒤를 돌아보던 옆얼굴이 계속 생각났다. 저 사람은 왜 자꾸 뒤를 돌아보는 걸까? 무얼 보는 걸까? 저 방향은 뒤일까? 앞일까? 여기일까? 여기가 아닌 어디일까? 큰 원을 따라 돌며 걷다 보니 그가 돌아보는 방향은 계속 달라졌다. 사방이 뒤였고 앞이었다. 그의 옆모습을 아주 가까이서 지켜볼 때가 있었는데, 기택 님이 연약했다. 그렇게 연약한 사람의 옆모습에 마음이 말랑해졌다. 그 얼굴은 여기 와야지만 만날 수 있는 종류의 몸이었다. 그리고 그런 얼굴은 힘이 셌다. 마음에 남더니 결국 내 앞에 낯설고 궁금한 동시에 마주하기 힘든 타자를 불러들였다. 나는 그 옆모습에 이끌려 이 리뷰를 쓰고 싶었다. 앞으로도 종종 기억날. 기택 님이었지만 기택 님이 아니기도 한 취약하고 연약하며 아름다운, 알 수 없는 무언가를 계속 바라보고 돌아보며 움직이는 한 사람의 분투하고 있는 말간 옆얼굴이었다.  

퍼포먼스가 끝나자 한눈에도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이 재빨리 세팅됐다. 뭐부터 접시에 담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사이, 퍼포먼스는 오직 자신만을 위한 거였다고 기택 님이 말씀하였다. 그래서 죄송하다고. 마련한 식사는 오실 분들을 위해 차렸고 앞의 퍼포먼스보다 더 오랜 시간 공들여 준비했다고. 그러니 맛있게 먹어달라고 하셨다. 그가 준비한 채개장과 도토리 버섯전, 묵무침, 알감자 샐러드 등 모든 비건식의 장례식장 음식들 앞에서 공연의 좋음과 싫음을 견주던 마음이 겸손해졌다. 오직 자신만을 위해 퍼포먼스 했다는 말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가장 상대하기 힘든 대상이 저 자신 아니던가. 가장 죽이고 싶을 정도로 밉고 혐오하는 것이 바로 저 자신이기도 했다. 기택 님이 장례 치르고 싶었던 ‘나’에 대해 알 것만도 같았다.  

 

 

 

장 뤽 낭시의 <나를 만지지 마라 : 몸의 들림에 관한 에세이>에는 이런 글이 있다. 

“ “나는 죽었다”와 “나는 부활하였다”는 같은 걸 말한다. (…) 그러나 두 언술의 일치는 죽음이거나 삶이거나 단순히 그 자체에로 귀속될 수는 없음을 증거한다. 죽은 자도, 산 자도, 단순히 하나의 ‘현재’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각자가 서로 상대방을 향해 자신을 제시한다는 의미에서의 현재이다. 떠남의 인사를 통해 현존을 드러내는 것.” 2) 

나는 이 책에서 멀어짐(떠남)은 동시에 나타남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렇기에 기택 님이 자신을 장례 치름으로써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난 게 몹시 기뻤다. 이제 더는 그가 저 스스로 죽음을 선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비슷한 처지로서 앞으로도 성불되지 않고 꾸준히 공연예술계(界)를 오가며 반갑게 인사 나눌 수 있길 바란다. 

기택 님, 다시 뵈어 반갑습니다!   

 

 

 

 

1) 기택 님이 장례식이라고 부르신 <故 임기택 님의 9개월이 2023년 9월 14일 00시 00분 별세하였기에 삼가 알려드립니다.>를 본인은 편의상 공연으로 부르겠다. 하지만 이 공연이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퍼포먼스가 아니라는 점이 여타의 공연과 구별됨을 밝히고 싶다.  

2) 장 뤽 낭시, <나를 만지지 마라>(2015), p40, 문학과지성사

 

 

필자 소개

배선희

신발 끈을 고쳐 묶는 사람. 주로 연기를 한다.   

sunheebae85@gmail.com /@ssunheeee

 

작품 소개


[故 임기택 님의 9개월이 2023년 9월 14일 00시 00분 별세하였기에 삼가 알려드립니다.]




일시 : 2023.9.15 ~ 9.17. 19:30
장소 : 스튜디오 오픈셋
기획, 연출, 출연 : 임기택
사운드 시스템 : 김서영
사운드 디자인 : 박한결
조명 디자인 : 정지영
진행 : 전규연
의상 : 성아리
기록사진 : 송유경
주최, 주관 : 임기택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