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있어요, 있습니다. 여기. 독립예술집담회 13th with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시대에게 쫓겨나기]

2023. 9. 26. 02:45Feature

있어요, 있습니다. 여기.

 

4. 독립예술뒷담회 13th with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시대에게 쫓겨나기]

 

예술계 동료들이 공간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소식이 자주 들리는 시절입니다. 지대 상승으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 얘기가 아닙니다. 기관장이나 담당자가 바뀌고 정책이 바뀌었다든지, 사실 원래 기관의 소유의 공간이고 이제 새 쓰임을 찾겠다든지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그 이유들 앞에선 공간을 조성하기까지의 맥락도, 그 공간을 꾸려온 예술가들의 노고도, 시민성 그 자체도 바람 앞의 촛불 같습니다. 문득, 자본에게 쫓겨나는 것을 넘어 한 시대에게 쫓겨나는 기분이 듭니다.

인디언밥 기획연재 <시대에게 쫓겨나기>는 독립예술에게 필요한 ‘창조적 공유지’와 비슷한 역할을 해온 공간들이 어떻게 지금 예술가들을 쫓아내고 있는지 살핍니다. 그 안에서 어떤 패턴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와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상상해보고자 합니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과 함께하는 독립예술집담회까지 이어지는 이번 시리즈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글: 유경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의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가 좋아했던, 우리가 만나고 싶었던, 우리에게 의미가 있었던 공간이, 역사가, 예술이 자꾸만 사라진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들이 생기는 법이지, 라고 넘겨짚기엔 뭔가 이상해서 자꾸만 왜? 라는 물음표를 붙였다. 간단한 이유들을 찾아볼 수도 있었던 것 같다. 어떨 때는 자본이었고, 어떨 때는 전염병이었고, 어떨 때는 저마다의 사정이었다. 아니, 그러면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가 아니라 ‘있었는데요, 이런 이유로 없습니다.’가 되어야 맞지 않나?

 

시선을 넓혀보자. 시대의 공기가 심상치 않다. 이 공기는 자꾸만 우리의 그것들을 밀치고, 내쫓는다. ‘우리의 그곳’을 ‘너희의 그곳’으로 바꾸고, ‘있었는데요’라는 그 앞말과 존재조차 지우려 한다. 독립예술집담회 13th with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시대에게 쫓겨나기>는 어느새 자연스럽게 깔려 있는 시대의 공기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모래성 위에 깃발을 꼽고, 깃발이 무너질 때까지 이야기를 하며 모래성 뺏기 놀이를 했다. 인디언밥은 앞서 세 편의 ‘[기획연재] 시대에게 쫓겨나기를 통해 사라졌거나, 사라질 위기에 처했거나, 사라지게 될 공간들을 다루었다. 그 이야기들은 황당했고, 그래서 무력해졌고, 그리고 화가 났다. 억지, 무논리와 권력으로 점철된 이 시대에서 쫓겨나고 있는 지금을 이 공기 속에 내뱉어 본다.

 

3회에 걸친 기획연재에 이어 8월 21일, 고라니특공대에서 서울프린지페스티벌과 함께한 독립예술집담회가 열렸다.

 

사라지는 공간들

 

50년간 운영되어 현존하는 소극장 중에 가장 오래된 소극장인 ‘삼일로창고극장’은 젊은 예술인들의 연극 실험실 같은 공간으로 과정과 시도를 지지하고, 극장의 문턱을 낮추었다. 민관 거버넌스로 함께 일궈온 공간이다. ‘홍대 앞 예술생태계’를 표방하는 ‘서교예술실험센터’ 역시 공동운영단과 함께 홍대라는 지역과 함께 숨 쉬며 예술인들의 다양한 예술 실험을 지원했다. 서울프린지네트워크가 위치한 ‘서울혁신파크’는 거쳐 가지 않은 사회적 기업과 청년단체가 없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단체들의 공간적 뿌리가 되어주었다. 1960년대부터 자리를 지켜오며 전쟁 이후의 삶을 위로했던 ‘원주 아카데미 극장’은 여전히 지역주민들의 삶과 기억 속에서 숨쉬고 있다. 출판인들이 성장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고 느슨한 네트워크의 자리를 만들어 준 ‘플랫폼P’ 역시 많은 상징성이 있는 공간이다.

 

이 공간들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고 한다. 극복할 수 있음을 내포한 듯한 ‘위기’라는 말이 오히려 낫게 느껴질 정도로, ‘예정’되어 있는 공간도 있다. 이 공간들이 물리적으로 사라진다는 것을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사실 이 공간들이 그 공간으로 기능할 수 있게 만든 가치와 사람들이 사라진다는 의미가 조금 더 정확하다. 각각의 공간이 무슨 상황에 처해있는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가장 많이 들리는 말은 ‘어, 저희도 그랬어요.’이다.

 

사라지게 만드는 이유, 무엇이 무엇이 똑같았나.

 

‘정해진 바가 없다.’ ‘아는 바가 없다’는 말이 메아리처럼 들렸다. 지난 7월 열린 2023년 제5차 민간 위탁 운영평가위원회에서 서울문화재단이 위탁 운영하던 삼일로창고극장이 ‘재위탁’ 결정되었다. 이미 예견이 되어있었고, 행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운영위원들이 공공극장의 새로운 민간 위탁을 함께 투명하게 준비할 것을 요청했을 때 재단은 ‘결정한 바 없다.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라는 태도였고, 이는 운영위원이 직접 정보 공개 청구로 운영평가위원회의 결과를 알아내기 전까지 이어졌다. 운영위원들과의 대화는 빠진 상태였다. 서울시가 마포구에 공간을 빌려 운영되었던 서교예술실험센터 역시 같은 말을 들어야 했다. 마포구는 계약이 끝나가는데도 운영계획이 없다고 일축했고, 서울시는 이에 정해진 바가 없다고 전했다.

 

2016년부터 민관 거버넌스로 운영되어 시에서 매입까지 진행한 원주 아카데미극장 역시 상황은 비슷했다. 문체부의 유휴공간문화재생사업에 선정되어 극장 보존을 위한 국비 지원도 가능한 상황이었으나, 시장이 바뀐 이후 사업을 전면 중단했다. 작년 12월, 시민들의 끊임없는 요청으로 공개 여론 수립 과정을 거치겠다는 답변까지 받아냈지만, 시는 미온적 태도를 유지하며 이에 대해 ‘아는 바가, 정해진 바가 없다’는 의견을 고수했다.

 

기획연재에 참여한 필자,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참여 예술가 뿐 아니라 아카데미의 친구들 등 많은 이들이 모래성 앞에 둘러앉았다.

 

행정은 운영위원과 시민의 목소리를 전혀 듣지 않았다. 서울혁신파크는 올해 운영 종료가 예정되어 있으며 입주 기업은 이번 10월까지 퇴거해야 한다. 시민을 대상으로 한 개발 반대 서명과, 새 건물 착공 전까지 2년 만이라도 연장 운영할 수 있게 해달라는 서명에 수많은 시민이 참여하고 의견을 냈음에도 서울시는 듣지 않았다. 원주 아카데미극장은 시정 정책토론을 위해 원주에 선거권이 있는 시민 250명을 모아 서명을 전달했지만, 시에서는 선거권을 확인하기 위해 본적지가 원주인지까지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플랫폼P는 현 입주사 중 ‘마포구에 1년 이상 거주한 구민’이 대표인 입주사만 연장심사를 하겠다고 통보했고 (14개 중 2개 입주사), 운영위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전체 입주사에 대한 연장심사를 취소했다.

 

폭력적으로 밀어붙이기까지 했다. 플랫폼P 입주사 협의회는 운영 지속을 위한 연대 서명 전달을 위해 마포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바로 다음, 구청장에게 서명을 전달하러 건물로 들어가려는 순간 앞에 서 있는 많은 수의 공무원을 마주해야 했다. 협의회를 막으려는 듯, 가장 어린 여성 공무원이 맨 앞에 세워졌다. 원주 아카데미극장은 상황이 더욱 심각했다. 아카데미극장을 지키기 위한 시민들과 공무원이 대립했다. 공무원들은 극장으로 진입하기 위해 문을 밀쳤다. 시청에서는 남성 공무원들에게 민방위복을 입고 아카데미극장으로 오라는 방송을 했다. 그 문을 막고 서있던 것은 아주 한 줌의 시민들이었고, 반대편의 공무원들 역시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갈라치기, 무시하기, 없애기

 

원주 아카데미 극장에서 공무원들을 대치했을 때, ‘저 범죄자도 아니고, 빨갱이도 아니고, 그냥 단구동 사는 누구 엄마예요.’라고 말했다던 목소리가 맴돈다. 행정은 시민들을 갈라치고, 무시하고, 없앴다. 플랫폼P의 공간을 없애려는 이유는 ‘일부 출판인’을 위한 공간이 아닌 ‘마포구민을 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했다. 원주시는 아카데미 극장을 유지한다면 ‘특정 문화예술인이 독점’하게 된다며, 이를 철거했을 때는 ‘시민 전체가 혜택’을 보게 된다고 이야기했다. 시청에서 용역을 받아 일을 하던 문화예술인들이 보조금을 남용한다고 인식하는 듯했다. 그들이 한 기획들은 쉽게 빼앗겼다. ‘일방적인 정부 주도적 경향에서 벗어나 다양한 행위자가 공동의 관심사에 대한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문제를 해결한다’라는 뜻의 거버넌스를 위해 뽑힌 공동운영단에게 의사결정 권한은 없었고, 의사결정 과정 참관조차 하지 못했다. 무슨 대표성이 있냐는 태도로 ‘광의의 거버넌스’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할 뿐이다. 현장과 가장 닿아 있는 사람들은 소수이며 이권을 차지했거나 차지하려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예술가는, 출판인은, 극장을 지키려는 활동가들은 시민이 아니었다.

 

이런 일들은 시대를 반복하며 계속되었다. 정확히는 선출직 공무원이 바뀐 시점에 일어났다. 새삼 그 한 명의 힘이 그렇게 셀 수 있다는 점에 놀라기도 했다. 이전 시장의 행정을 모두 지우고 밀어내고, 몰아내면서 어떤 가치가 있었던 것들이 사라진다. 그가 선출되었다는 것이 마치 ‘시대 정신’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더욱 무력해진다.

 

그 무력감 속에서도 우리가 이 공간을 지키고 싶어 하는 이유가 너무나도 많다. 전쟁이 끝나고 폐허가 된 삶, 원주 아카데미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희로애락을 느끼고 새로운 꿈을 꾸었던 여성들이 있다. 삼일로창고극장과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예술을 실험하고 시작했던 사람들이 있다. 서울혁신파크를 기반으로 더 멋진 활동을 펼쳐나갔던 시민단체들과 매일 공원에서 조깅하며 일상을 마무리하는 시민들도 있고, 플랫폼 P에서 탄생해 저마다의 색이 반짝이는 책과 그 독자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시민이다. 시민이고, 다시 시대가 되어간다.

 

 

‘지더라도’ ‘나아갈 수 있는’ ‘힘’

 

소중한 공간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고, 할 수 있냐고 물었을 때 ‘지더라도’에 초점을 맞추기도 했다. 한국여성민우회에서 개최한 한 원례 토크쇼에서 플랫폼P 입주사 협의회 박초롱 작가는 ‘이길 거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정권이 끝냈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재밌게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말을 전했던 삼일로창고극장 김기일 운영위원은 이곳이 어떤 극장이 되어야 하는지를 모두 주목하게 하려 한다고 전했다. 더 안 좋아질 듯한 미래에 그들이 했던 지금의 시도와 도전, 의미들을 떠올릴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나아갈 수 있는’에 두 발을 딛고 서 있기도 했다. 먼저 자성이 있었다. 이 공간을 지킬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지 못한 것에 대한 것이었다. 또, 단절된 세대를 이야기했다. 우리와 이전 세대는 가졌었던 이 공간들의 힘이 현재 세대에서는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가지지 조차 못 했던 것’으로 느껴지지 않나 하는 생각이었다. 계속해서 패배하는 경험을 반복하며, 스스로 약자로 자신을 설정하고 연대하기를 포기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다. 하지만 다음 단계는 역시 그 ‘연대’였다. 원주 아카데미극장을 지키며 ‘아름다움’을 느꼈던 부분도 바로 선배 세대와의 연대였다고 한다. 더 힘든 몸으로 앞에서 맞서며, 극장을 다음 세대로 넘겨주려는 이들의 노력에 손을 내어준 선배 세대가 있었다. 전적으로 일임하고 따르겠다고 말하는 그 지지의 ‘아름다움’은 다른 곳에서 느껴볼 수 없는 것이었다.

 

이 다음엔 ‘힘’이다. 눈에 보이는 단단한 힘은 바로 법이다. 원주 아카데미 극장은 행정을 넘어서는 법을 제정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한다. 이렇게 입법된 조례가 이렇듯 비슷한 사례에서도 쓰일 수 있기를, 새로운 시스템과 안전한 울타리를 만들어줄 수 있는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들은 멈출 수 없다고 말한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우리 곁에 항상 존재할 수 있는 힘은 바로 역사다. 이 문화예술 공간에서의 경험과 정신이 다른 곳에서도 뻗어나갈 수 있다면 이 역시 힘이 된다. 이 공간을 지켜내고, 다음 공간을 이어 나갈 수 있게 한다. 

 

모래성뺏기 놀이는 '사라지는 공간들', '공간의 조건', '창조적 공유지', '(실패하겠지만 Next' 같은 깃발을 쓰러뜨리며 이어질 예정이었다.

 

깃발을 꼽고 모래성 뺏기 놀이를 하려던 손들은 모두 멈추었다. 빼앗기는 이유를 찾으며 뒷담화를 하고, 영토를 만들고, 서로 합치려고 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서로 너무나도 닮아있어서 어디서부터 어느 공간과 합쳐야 할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모래성은 무너지지 않았고,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이제 이 모래가, 마음이 모여 만든 모래성 위로 ‘창조적 공유지’ 깃발이 꽂혔다. 어떤 사적인 공간, 공적인 공간으로 보지 않고 “공통의 공간”으로 보는 것. 그리고 이 공통의 공간은 파괴되지 않고 다음 세대, 그다음 세대로 연결되어야 한다. 과거가 쌓아온 경험들 위로 새로운 창조적 경험이 쌓아 올려질 수 있는 ‘커먼즈’가 이 시대에는 필요하다. 

 

시대 속에서 어떤 좌절을 경험하고, 분노하면서 동시에 무력함을 느끼고는 한다. 그럴 때마다 연대 말고, 투쟁했던 기억 말고, 그냥 누가 나타나서 나쁜 세상을 물리쳐 다 이겨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모래성을 지키는 멋진 히어로가 나타나서 공격하는 힘들을 무찌르면 좋겠다고. 모두 같은 마음일지도 모른다. 아, 돈이 진짜 많아서 이 공간들 우리가 사버렸으면 좋겠다는 웃음소리가 여전히 들린다. 그렇지만 “있어요, 있는데요.”  말하는 그 노력이 더 힘이 세다는 생각을 해본다. 히어로는 시대 속에 있을테지만, 이 노력은 언젠가 시대를 만들어 갈 테니까. 나도 이 글로 있어요, 있는데요. 목소리를 내어본다. 

 

 

*집담회부터 이 글을 쓰기까지 한 달의 시간 동안 원주 아카데미극장에선 아카데미극장을 지키는 이들의 단식, 노숙 농성이 이어지고 있다. 철거 작업을 위한 강제적인 기초공사가 진행되는 중이다. 플랫폼P입주사 협의회는 마포구청의 실체를 알리는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서교예술실험센터는 <이대로라면 서교예술실험센터는 사라진다> 공론장을 계속해서 열고 있다. 그 밖의 여러 공간도 시대에게 쫓겨나지 않기 위한 노력을 하는 중이다.

 

필자소개

유경_조금은 묘한 이야기를 미묘한 마음으로 씁니다. 한 권의 책을 만들었고, 오래된 이야기가 되고 싶어요. 우리가 서로의 이야기를 사랑할 수 있기를. 




독립예술집담회 13th with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시대에게 쫓겨나기>

독립예술과 예술계의 현안을 돌아보고 미래에 대해 논하는 포럼.

모래성 뺏기 놀이를 합니다. 뒷담회처럼 이야기를 나누며 각자의 영토를 만들고 합쳐보며 어떤 질문을 쓰러뜨려봅니다.

기획 | 김민수, 남하나, 채민
토론 | 김기일, 김민수, 남하나, 류혜리, 문도현, 박상미, 박한결, 백교희, 설유진, 성수연, 신동화, 이다혜, 이혜윤, 채민, 
일시 | 2023. 08.21
장소 | 고라니특공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