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8. 28. 14:16ㆍReview
나무 스트링 쳄버 오케스트라 음악이야기
나무 스트링 챔버 오케스트라
1. Holst : Saint Paul Suite
2. Mozart : violin Concerto No.5 1악장
3. Elgar : Seranade for string
4. Grieg : Holberg Suites
7대의 바이올린과 4대의 비올라, 1대의 첼로로 구성된 나무 스트링 챔버 오케스트라가 서울프린지 페스티벌 축제의 BYOV(Bring your on venue : 창작자가 스스로 장소를 정해서 실연하는 공연 파트)의 한 꼭지로 실내악 공연을 펼쳤다. 그들이 택한 장소는 프린지 센터로 변신한 서교 예술센터 1층. 무대와 객석이 따로 분리되지 않은 열린 공간에서 잘 차려입은 클래식 연주자들과 시원하고 간편한 복장의 관객들이 모여 앉았다. 홍대 거리의 사람들, 아티스트들, 인디스트들, 지나가던 관객들, 그리고 동네 아이들과 주민들까지 각양각색의 관객들이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가까운 거리의 클래식 연주자들이 신기한지 연신 눈빛을 반짝인다.
순 우리말인 ‘나무’ 로 단체 이름을 지었다는 리더(vn.김무권)의 소개로 공연이 시작되었다. 잔잔히 들려오는 클래식 음악은 어지러운 센터의 조명과 분주하고 왁자지껄한 소음을 잠시 현악의 선율로 잠재운다.
첫 곡은 '행성(the Planet)' 으로 유명한 영국 작곡가 홀스트의 실내악 Saint Paul suite. 홀스트 선생이 세인트 폴 음악학교에 부임했을 때, 자기에게 ‘방’을 내어준 것이 기뻐서 작곡한 곡이다. 홀스트의 사연은 마치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마련해준 공간에서 공연하게 되어 즐거워하는 그네들의 모습과 겹친다. 리더는 기존의 연주회처럼 모든 악장을 이어서 들려주지 않고 중간 중간 짤막한 해설을 삽입하였다. 전체 곡 분량을 한 번에 소화하는 데 익숙치 못한 클래식 초보관객들을 위한 배려다. 3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곡은 한 대의 첼로를 중심에 두고 양 옆의 비올라와 바이올린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함께 '놀이(play)’ 를 표현한다. 음악학교의 학생들이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복도에서 어린 예술가를 피해 사뿐사뿐 발걸음으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는 홀스트의 모습이 떠오른다.
“타임머신을 타고 모차르트가 활동하던 1800년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로 돌아가 볼까요?”
리더는 이렇게 두 번째 곡의 서두를 뗀다. 허나 아무래도 시간 여행을 하기엔 환경이 열악하다. 프린지 축제 스태프들은 여기가 ‘연주회장’ 이라는 사실도 잊은 채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고, 축제 자원봉사에 여념이 없는 인디스트들은 열심히 떠들고 있으며, 때마침 연주공간 오른 편에선 열심히 빵 굽는 냄새가 피어오른다. 그렇다. 여기는 프린지 축제 센터다. 지하에선 연극이, 옥상에선 뮤지컬이, 그리고 ‘지금 여기’ 에는 클래식이 연주된다. 예술과 소비와 음악과 향락의 공간인 ‘홍대’ 의 거리 한 복판. 아마도 1800년대 번성했던 예술의 도시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도 그러했을까?
음악에 담겨있는 사연과 메시지를 찬찬히 풀어주는 리더의 해설이 현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그 쉬운 설명과 웃음 띤 이야기들은 딱딱한 연주회장 대신 느긋한 휴식 광장으로 지금, 여기를 바꾸어 놓는다.
모짜르트가 21살에 작곡했다는 두 번째 곡 바이올린 협주곡. 스물 한 살의 바이올린 연주자가 일어나 수줍은 미소를 흘린다. 친근하게 이해를 도와주는 리더의 모습에 객석과 무대 모두에 웃음이 번진다. 이 곡은 특별히 아마추어 협연자의 바이올린 참여가 있었다. 안과 원장님인 바이올리니스트가 협주곡 주자로 선발되었다.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지만, 협연자가 들려주는 솔로와 나무 체임버의 앙상블이 실로 경이롭다.
연인들을 위한 음악이라는 엘가의 “세레나데” 는 세 번째 곡목록을 장식했다. 위풍당당 행진곡으로 유명한 영국인 음악가 엘가의 꽤 알려진 실내악곡. 앞서 들었던 빠른 템포의 두 곡과는 다르게 느리게 이어지는 현의 떨림과 활의 흐름. 애절하게 우는 듯한 2악장은 잔잔하게 흐느끼기 시작했다가 점점 큰 울음으로 번진다. 여리고 작게 시작된 선율이 거대한 현악의 어울림을 만들어 내며 숭고함까지 들게 한다. 가볍고 달콤한 사랑만이 아니라, 애절하고 심각한 사랑의 무게를 사뭇 느끼게 해주는 2악장이 백미.
마지막 곡은 노르웨이 작곡가 그리그의 곡 "Holberg Suite". “일어서서 할까요?” 라고 리더는 오히려 관객들에게 묻는다. 앉아서 연주하는 것과 서서하는 연주 하는 것은 둘다 장단점이 있답니다, 라며 그 이유까지 살펴주는 리더의 말이 재치있다. 좁게 앉은 관객들에게 그들의 연주를 더욱 잘 보여주려는 배려. 단원들은 쉬지 않고 자리를 바꾸고 앉았다 섰다는 반복하지만 그들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다.
고전적인 스타일로 장엄하게 연주되는 1악장의 서두. 고전주의 시대로 돌아가는 낭만주의자의 발걸음일까. 고전적 형식 속에서 가만히 자리하고 있다가 불쑥 튀어나오는 낭만적 멜로디에 귀가 번쩍 트인다. 앞선 곡들과는 달리 조금은 강한 듯 거칠게 연주되는 실내악 구성이다. 악기들의 소리는 웅장하지만, 연주하는 자태는 바람에 흔들리는 꽃들같이 곱다. 곧이어 숨죽이는 마지막 악장이 이어진다. 소리가 점점 커지며 낭만주의의 본색을 서서히 드러내는 악장. 고전주의적인 형식 속에서 가리고 있던 격정적인 멜로디가 폭발하기 시작한다. 피치카토와 속주로 시작하는 마지막 5악장에 이르면 고전주의의 차분함을 모두 잊기라도 한 듯 낭만주의의 기교를 보여주기 여념이 없다. 현란한 손놀림에 관객들의 입가에도 탄성이 걸렸다. 호흡을 고르고 슬픈 기색을 띠었다가 다시 빠른 연주로 앙상블을 이어가는 나무 챔버 오케스트라의 활놀림이 일품이다.
곡이 끝나자 관객들은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이어지는 흥겨운 앵콜송. 60분간의 클래식 예술과의 편안한 만남. 휴식과도 같은 공연. 그러고 보면 휴(休)라는 글자는 나무 아래서 쉬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나무 스트링 챔버 오케스트라는 바로 그 “休” 의미에 합당한 공연이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모습은 음악이 너무 좋아 어쩔 줄 몰라 하는 리더의 해맑은 미소와 연주자들의 진지하고 차분한 연주 자세다. 동시대 클래식 연주자들이 얼마나 열려있는지, 고리타분하고 연주회장에서나 들을 수 있는 고급음악이라는 비아냥과 차별 속에서 그들은 언제, 어디서든, 상황에 맞게 관객에게 눈높이를 맞추어 연주할 준비가 되어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더 이상 주류가 아니라 변방(프린지)으로 밀려난 동시대의 젊은 클래식 주자들의 가지처럼 하늘을 향한 열린 모습과 뿌리처럼 뻗은 진지함이 관객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시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나무’를 베어 만들 수 있는 값진 것 두 가지는 바로 ‘책’ 과 ‘악기’ 가 아닐까. 사람에게 오래도록 유익한 것을 나누어 주기 때문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반(反)환경적인 컨셉으로 진행되는 이번 프린지 페스티벌은 사뭇 뜨악한 인상을 준다. 포스터의 이미지 자체도 나무 밑둥을 잘라놓더니, 개별극장과 프린지 센터는 몇 백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 비닐소재의 오브제로 도배를 해두었다. 소비의 거리 홍대에서 생산(生産)을 외쳤던 축제가 이젠 소비와 반환경의 아이콘을 활용한 모습이 안타깝다. 그런 점에서 그 이름대로 ‘acoustic' 과 ’인간‘을 향한 따뜻한 소리를 전해준 나무 챔버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더욱 귀중하다. 이들의 음악은 축제의 막판 같은 장소에서 한번 더 진행된다고 하니 또 한번 기대해 볼만하다. 여유와 배려가 돋보이는 나무 스트링 챔버 오케스트라. 앞으로도 그 활기찬 가지와 단단한 뿌리를 쭉쭉 더 뻗어나가시라.
클래식 100min 8.21(금) 18:00 / 8.28(금) 18:00 축제센터1층@서교예술실험센터 무료
음악감독 김무권 | 총괄기획 허균열
축제센터에서 만나는 ‘참 프린지스러운’ 클래식!
딱딱하고, 경직되고, 졸음은 쏟아지고, 하품은 끝도 없이, 끌날시간만 기다리는 음악회를 탈피하여 재미있고 흥미롭게 관람하는 이들의 기억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수 있는 ‘흥미로운 클래식’ 공연을 만들고자 한다.
시즌2 활동을 시작한 나무 스트링 체임버는 여타의 팀보다 강한 결속력과 파워풀한 역동성, 그리고 그들 특유의 하모니를 공연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http//cafe.naver.com/namucha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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