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 18. 15:31ㆍReview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_인디극단 판의 ‘B1’을 보고
이혜정
그곳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은 지하 일 층. 인디극단 판이 무대에 올린 ‘B1’은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은 지하 일 층에 관한 80분짜리 안타까운 무대였다.
"프린지 페스티벌 같은 예술축제는 지나치게 관대해."
"뭐가 관대해?"
"가까이서 예술을 즐기고 만나는 거 다 좋지. 그런데 그게 함정일 수도 있단 말이야. 예술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는 건 훌륭한데, 열정이 넘친다는 이유로 다 무대에 오를 수는 없다는 거지."
"하고 싶은 말을 정확히 하라고."
"연습 단계에 지나지 않은 무대를 봐야하는 관객들 입장도 알아야 한다는 말이야. 예술축제이기 때문에 관객들 대부분이 관대한 시선으로 무대를 평가하는 건 사실이잖아."
"네 말은 그런 관대한 시선으로도 이해하기 힘든 무대가 있다는 거지?"
"그래. 다양한 창작도 좋고 실험정신도 필요한데, 기본적인 건 갖추고 있어야 되는 거 아니야?"
"그렇게 조금씩 발전해 가는 거지.”
"네가 하는 말 여기 오는 사람들 다 아는 얘기야. 나도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축제에 참여해서 발전하기를 바라. 그렇다고 기본적인 대사 전달도 안 되고, 개연성도 없는 구성을 창작이니 실험정신이니 하는 말로 덮을 수는 없다고. 관객들이 지지하는 만큼 관객들에게 기본을 갖춘 무대를 보여줄 의무가 있는 거 아닌가!"
어쩌면, 인디극단 판의 무대가 시작되기도 전에 동행한 이와 나눈 이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무대를 지켜보는 내내 불편하고 어색했던 것은.
사실 ‘B1’이 말하고자 한 것은 이미 드라마와 영화, 소설을 통해 수차례 논의되었던 것이었고, 이번 무대를 통해 극단 판만의 새로운 시선으로 재해석한 흔적을 찾기도 힘들었다. 공연을 보는 동안, 보고나서도 아주 오랫동안 내가 놓친 게 있는 건 아닌지 고민에 빠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한 번 무대를 떠올려 보기도 했다.
존재 자체가 희미해질 대로 희미해진, 지하 일 층에 사는 남자는 남는 시간에 무얼 할 지 모르겠다는 여자를 납치한다. 그리고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혹은 스스로 소외된 남자가 벌일 피가 낭자한 살인극이 일어날 거라 상상하겠지만, 이야기는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다. 무시무시한 살인극 대신 두 사람은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 구린내 나는 사회와 지리멸렬한 생활에 대해 털어놓는다. 납치한 자와 납치당한 자가 아니라 깜깜한 내 속을 털어놓을 수 있는 동맹관계가 되어버린 두 사람. 결국 웃을 수밖에 없는 불륜관계(세상은 혼자 사는 남자와 남편이 있는 여자가 만드는 관계를 이렇게 표현한다)를 맺기에 이른다.
그런데 아무리 돌이켜봐도, 머리를 굴려 봐도 없다.
납치된 여자라면 누구나 느낄, 자신을 납치한 남자에 대한 미칠 것 같은 두려움이 없다. 그 두려움이 점점 서로에 대한 이해와 동질감으로 변해가는 과정도 없다. 마치 여자는 누군가 자신을 납치해주기를 기다렸다는 듯 공포에 떨지도 않고 이유 없는 죽음을 무서워하지도 않았다. 극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마치 친절한 목소리를 지닌 텔러마케터처럼 감정의 변화가 없는 일정한 톤의 목소리와 단순한 몸짓만을 보여주었다.
소심하고 불안하며 본인의 주장과는 달리 자신조차 믿지 못하는 것 같은 남자는 배역에 제격인 훌륭한 외모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부족한 대사 전달력으로 대사 대부분을 공중부양 시키고 말았다. 왜 나는 그의 대사를 짐작하고 추측해야 한단 말인가!
연극은 조명이 비추는 무대에 오른 배우가 느끼고 깨달은 것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배우의 감정을 전해 받은 관객은 그것을 자신의 세계에서 다시 해석해 배우에게 되돌려 주어야 한다. 그게 예술이 바탕이 된 소통이 아닌가!
그러나 인디극단 판의 ‘B1’은 엄청난 일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냥, 추리 가능한 구성과 심심한 연기력으로 관객인 내게 어떤 것도 전해주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난, 동행한 이에게 두 가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나는 프린지 페스티벌의 안내책자가 좀 더 담백하게 공연을 소개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었고, 다른 한 가지는,
“어쩌면 일부러 그렇게 연기한 게 아닐까? 일종의 새로운 형식이나 독특한 모습을 지닌 무대라고 해야 하나?”
내 말에, 동행한 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지하철역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_8월 23일 오후 7시 축제센터에서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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