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철없는 예술 or 철든 예술 : 물레아트페스티벌 (1)

2009. 10. 22. 16:43Review


 철없는 예술 or 철든 예술 : 물레아트페스티벌 (1)


                                                ▲ 들소리의 타악 퍼포먼스 '타오놀이'


일전에 말한 적 있다.

정말 여기에 예술이 있나 싶은 의문이 드는 곳들과의 인연이 계속 생긴다고.
그래서 나는, 요새 적잖이 ‘흥분’상태.

이번엔 ‘공장지대’이다.

바람이 제법 차졌다. 밤하늘과 섞여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저녁 7시, ‘움직이지 않는’ 기계들 속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을 만나고자 문래동을 찾았다.

바쁜 토끼를 따라 간 엘리스 앞에 나타난 이상한 나라.
                                            =
바닥의 붉은색 노란색 노끈을 따라 간 내 앞에 나타난 이상한 거리.

                                                        ▲ 철공장 거리를 찾은 사람들


얇은 카디건 아래 떨리는 몸을 문지르며 들어 선 문래동 철공장거리에는 쇳가루의 시큼한 냄새가 짙
게 깔려 있었다. 텅 빈 도시에 덩그러니 남은 느낌이 들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드문드문 사람이 보이니 그제야 안심. 곳곳에 비치된 비닐 장막과 작업복을 지나니 오늘의 판이 막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최소한의 조명 아래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제 3회 물레아트페스티벌' 개막제 현장에 대한 기억을 조심스레 꺼내어 본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게 인간이라 한다면, 쇠한 것들 가운데 살아남는 건 예술가임이 분명하다. 기운을 잃고 비워지거나 버려진 공간을 그들은 잘도 찾아낸다. 참으로 질긴 것이, 이걸 바퀴벌레 근성이라 하면 몰매를 맞을까나. 하여튼 삭막한 문래동 철공장에 춤과 그림 등 다양한 예술을 틔운 예술가들의 동네라는 새 별칭을 얻어 뿌리내리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축제가 단순한 행사가 아닌, 예술가들이 사는 동네, 문래동의 생일잔치라는 느낌이 들었던 걸까.

사방은 어둠으로 물들어 있었다. 춤공장과 개막제가 열리는 야외 공간 (따로 무대는 없었다.)에서 별을 잃은 도시인들의 두 눈이 그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났다. 그런데 나의 눈은 오직 의문의 불꽃만 일었다. ‘예술인들의 굿 한 판’이라는 이름을 내걸은 개막제는 정말 굿판을 벌일 요량이었던 것이다. 귀 큰 돼지머리가 허허 웃고 있는 제사상을 바라 본 첫 느낌은 ‘어럽쇼?’ 그러나 곧 오래 기억될 이름 하나가 마음에 새겨졌다. 한영애. 연극배우이자 퍼포머 그리고 무녀.

타악 퍼포먼스 팀 ‘들소리’가 축제의 장을 열었다. 그들의 북소리는 기계소리보다 더욱 웅장하고 깊이가 있었다. 소리로 주위를 밝힐 수 있다는 걸 바로 눈앞에서 확인한 순간이었다. 추위와 배고픔에 조금 지친 몸 안으로 힘찬 무언가가 흘러 들어왔다. 정신이 맑아지니 가장 궁금한, 공연인지 굿인지 알 수 없는 판을 준비한 한영애씨가 등장하였다. ‘여기 원한 맺힌 귀신이 엄청 많아.’ (헉!) 그러나 머리 위로 떠다니는 물음표들. 솔직히 김빠진 콜라를 연상해 버리기도 하였다. 다원예술의 힘을 가진 이곳을 보기 위해 모든 욕구 잠시 내려두고 찾아왔건만, 굿판이라니? 이게 뭥미? (당시 기분을 전달하기엔 이 표현이 제일 적합하다.) 언 손을 비비며 그렇게 나는 벼락 맞을 소리를 되뇌었던 것이다.
         


                                              ▲ 한영애의 굿 퍼포먼스 '인생은 굿이다'



아아, 그러나 그녀의 옷자락이 찬바람 따라 휘날릴 때마다, 종이를 태우고 천과 깃발을 휘두르며, 부채와 방울을 들고 춤추고, 돼지머리를 희롱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어깨가 들썩거렸다.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었군!) 허나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구토(하는 시늉)하면서 수상쩍다 싶어 가늘게 뜬 눈들을 향해 따끔한 한 마디를 날렸다.

- 얼마나 잘하나 이렇게 보시지들 말고, 기원하고 보세요.

신앙이 아닌 다른 측면으로 해석해 보면, 이건 ‘관객’의 태도를 지적한 것이라 생각한다. 순수한 감상 대신 피어나는 어떤 의심의 눈초리들. 마술도 그렇고 우리네 관객들은 어쩐지 ‘심사위원’의 입장으로 관람하는 경향이 있다. 1차적인 감상, 즐거움을 내려두고 말이다. 그녀의 말에 찡하게 공명하려는데, 별안간 또 한 번 따끔거렸다. 싸가지 없는 예술인과 그들 때문에 심통 난 주민들이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며 나눠서 이 쇠해가는 동네를 지켜내라는 말. 한영애씨에게 신이 전한 메시지일까.



                                            ▲ 한영애의 굿 퍼포먼스 '인생은 굿이다'


몸짓 하나하나에 대한 의미를 다 알 수는 없었다만, 전체적인 느낌은 확실히 전달되었다. 그녀의 퍼포먼스(어, 어쨌든 굿도 하나의 예술이라 생각한다면야. 음...)의 핵심은 ‘치성’과 ‘열정’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어떤 관객이 굿판에 취해 앞으로 나와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제재는 없었다. 이것이 굿판의 매력이 아닐까? 누구나 어울릴 수 있는, ‘열린 예술’로서 말이다.

물레아트페스티벌 개막무대는 무대가 없는, 이동형 무대였다. 무슨 말이냐면, 한 공연이 끝나면 관객들의 공간에도 변화가 생겼다. 관객들에게도 ‘움직임’을 부여한 것이다. 덕분에 몸에 달라붙은 쌀쌀함도 그 틈에 털어낼 수 있었다. 가만 둘러보니 관객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으나, 다양한 세대가 분포하고 있었다. 특히 어린 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와서 이 공연들을 보고 있을까, 난 저 때 만화삼매경에 빠져 있었건만. 그러나 몹시도 ‘싱싱한’ 상태로(?) 흥미진진하게 관람하는 어린이 관객들. 얼쑤! 우리 예술의 미래는 밝구나! (정말 그리되기를 바란다.)

                                            ▲ 키미요 오가와의 반도네온 연주 모습


                                                ▲ 극단 동숭무대의 '신청울림'


어딘가에서 접시가 돌았다. 접시 안에는 따뜻한 시루떡이 담겨 있었다. 축제 측에서 준비한 음식이었다. 한 점 떼먹었을 뿐인데도 무척이나 든든하였다. (늦게나마 감사인사 전합니다.) 해물파전도, 막걸리와 커피도 마련되어있었다. 평소엔 별 거 아닌 음식이 그 날은 어찌나 진수성찬처럼 보이던지. 아무튼 다시 한 번 들소리가 고조된 분위기를 더욱 폭발시켰고, 이후엔 일본에서 온 반도네온 연주자 키미요 오가와의 신비감 가득한 연주 (즉흥연주였다고 생각한다.), 마당놀이 형식의 공연으로 관객과의 어울림은 최고였으나 개인적으로 문래동 예술가들의 이미지가 이거였나 헷갈린 극단 동숭무대의 “신청울림”까지 스트레이트로 진행되었다. 

결국 추위를 못 참고 잠시 ‘춤공장’을 찾았다. 지하에서는 ‘철공장 블루스’이라는 이름의 전시그룹전을, 3층 온앤오프무용단 스튜디오에서는 ‘물레별곡’이라는 미술작품을 만날 수 있다. 시간이 얼마 없어 급히 훑어보기만 한 지라, 이후에 다시 찾아가 자세한 감상을 적겠다. 그 날은 ‘춤공장’건물에 대한 인상이 강렬하게 나를 흔들었다. 폭이 좁고 휘어진 계단, 지린내 나는 화장실, 좁은 복도, 차갑게 식은 실내. 이런 곳을 예술가들은 예술가 자신과 작품으로 가득 메워놓았다. 물론 화이트큐브 안에 안전하게 자리 잡은 예술은 사랑스럽다. 그러나 이렇게 안전과 거리가 먼 공간들 이를 테면 길거리나 심지어 폐허와 같은 곳에 자리 잡은 예술에겐 특별한 무언가가 읽혀진다. 절실함. 그리고 더욱 강한 존재감. 보안여관에서 만났던 미술품들의 기운이 이 곳, 춤공장에서도 깃들어 있었다.





                                                     ▲ 온앤오프무용단의 '몽환'


마지막 공연인 온앤오프무용단의 ‘몽환’은 가장 부푼 기대를 안고 기다린 작품이었다. 15분 남짓한 공연 시간, 좁은 골목 어귀에서 펼쳐진 여타의 공연과 달리 이 무대는 뻥 뚫린 공장의 골목을 배경으로 삼았다. 그리고 돗자리 위의 두 남녀 무용가. 사랑은 한 때의 꿈과 같은 것, 만남에서 이별까지 사랑의 과정이 두 사람의 몸짓 속에 걸러내지 않은 사랑 그 본연의 에너지를 가득 담아 휑한 골목에 끈적이면서도 뜨거운 바람을 만들어내었다. 사실 무용가라고 하기에 두 사람은 어딘지 무용가스러운 느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에게 시적 감상을 불러일으킨 것은, 역시 그들에게서도 ‘절실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번 물레아트페스티벌은 ‘철, 사람과 함께 서다.’이란 테마를 갖고 있다. 철이 쇠하는 도심의 어느 공간과 철없는 예술가(통상적인 사회의 잣대로 본다면)와의 만남. 둘 다 ‘없기’는 마찬가지지만 그 곳엔 분명 물질의 ‘철’과 정신의 ‘철’이 존재하고 있다. 그 ‘철’의 기운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노동의 현장에 예술이 어울릴까 싶은데, 그것이 미묘하게 잘 맞아 떨어진다. 문래동 예술가들이 ‘노동과정으로서의 행위정신’을 현대의 예술정신에 투영시켰다고 프로그램북에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페스티벌은 모두와의 ‘나눔’을 전제로 한다. 이 축제, 한 번으로는 부족하다. 마지막 날까지 좀 더 맛보련다. 개막제에서 보여준 것처럼, 아주 활짝 '열려'있지 않은가.


그동안 접할 기회가 적었던 행위예술을 중심으로 문래동 예술가들과 친해져 봐야겠다.

철, 철, 철.

차갑고 날카로운 금속을 다시 녹이고 있는, 철없는 또는 철든 예술이 움트는 현장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 몸 안, 어딘가가 뜨겁다. 과연 나는 철들 것인가. 아니면 철없는 나로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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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ㅣ 스카링 scar★wing 프린지에서 '익살'을 맡고 있다.
        and 고양이와 초코우유, 통기타, 온갖 기묘한 것에 꽂힌 글제조견습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