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0. 29. 15:42ㆍReview
극단 시우 <두더지들>
목격자, 구원의 문제에 부딪히다
익숙하게 보아왔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두더지들>이 보여주는 풍경도 그 중에 하나다. 공연을 보면서 나는 늦은 밤이면 좌석버스를 잡아타곤 했던 서울역을 단박에 떠올렸는데, 그곳에는 참 별별 인생들이 다 도착했다가 흩어지고 서성이기도 하는 그런 곳이다. 노숙자, 부랑자, 술에 취한 자, 좌판에서 떡과 쥐포를 구워 파는 할머니……, 서울역의 어둠은 오줌 지린내와 함께 짙어지곤 했다.
역시 별별 인생들이 다 모인 이 공연은 지하의 환풍구와 철조 구조물, 잿빛 배관부터 보여준다. 어둠을 가르는 빛은 어둠을 몰아내지는 않고 어둠의 안을 비춘다. 참 추운 느낌의 파란 천막과 철조 구조물. 거기에 아무렇게나 걸린 수건과 이불, 옷가지들은 이곳이 번듯한 곳은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공연은 그렇게 시작한다. 공간이 기대를 불러 모은다.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의 높이를 다시 살펴보게 하는 무대, 이 공간이 앞으로 무엇을 보여줄까 하는 두근두근한 기대. 지하의 공간임을 짜잔 알려주며 시작하는 배포. 하지만 너무 이른 기대였을까.
막장인생들이 모여서 지지고 볶는데, 그들이 이 지하에서 살고 있다기보다는 흉내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자주 스쳐 지났던 노숙자, 가짜 맹인, 창녀가 ‘과연 저런 말투를 가졌을까, 능청스런 손짓을 가졌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서이기도 했다. 지하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보다는, 그 인물들을 ‘연기하는 배우’들이 자주 먼저 보여서이기도 했다. 문득 배우들의 젊음이 곳곳에서 새어나오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이 연극의 뒷심을 확인할 때까지 관객으로서의 힘 또한 놓지 않았던 이유는……, 나는 익숙하고 낡은 풍경이라 생각했지만 실제로 서울역 등지에서 부랑의 현실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적어도 스스로를 ‘익숙하다’거나 ‘낡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두더지들>은 쉬이 부정할 수 없는 구저분하고 텁텁한 냄새를 포착함으로써, 관객이 ‘흉내 내고 있잖아.’ 생각하든 말든 자기 스스로가 가지는 윤리의식이 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지하의 어둠을 포착하는 태도가 직접 가르치려드는 태도에 살금살금 가 닿을 때,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화가가 오른쪽 구조물 위에 올라 마치 말씀을 전하는 듯이 후광을 받고 섰을 때,(덧. 조명기와 너무 가까워 극적 환상이 깨지는 측면이 있다.) 백지를 들고 ‘이 그림은 아무한테나 보이는 게 아니라 착한 사람에게 보인다’고 눙칠 때, ‘현실일까요, 환상일까요’를 직접 물어올 때 그랬다.
화가는 극중 인물이자 동시에 내레이터이다. 예술가, 불을 지른 범죄자, 눈을 빼서 팔라고 부추기는 위험인물일 때는 극 안에 있다. 그러다가 직접 소개하고 설명하거나 인물들의 갈등을 엿볼 때는 한 발을 극 바깥에 둔다. 그런데 극중 인물일 때는 다른 인물들과의 관계가 아리송하고, 한 발을 바깥에 두는 내레이터일 때도 그 역할이 매끄럽지가 않다. 더구나 선지자의 위치로 점프해서 다가올 때는 갑작스럽다. 극중 인물로서의 예술가가 가지는, 선악의 구분을 떠난 채집의 욕망이 연극 <두더지들>을 만든 실제 예술가들과 겹쳐져서 상상될 만큼 화가의 역할은 다소 과잉되어 있었다.
아무렇게나 신발로 이부자리를 밟고 지나가면서도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들. 쉬이 지나가는 이런 장면이 오히려 <두더지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나도 백지에서 그림을 발견해서 동례, 형순, 철기, 혜선의 불타오르는 삶을(불은 재를 남길 것이다.) 입체적으로 만날 수 있었더라면 좋았겠지만 어쩌나. 착하지 않은 건지 그림은 안 보이는 걸. 그런데 오히려 다른 곳에서 그림을 발견했다.
철기와 혜선 커플이 동례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돈을 훔치려 할 때 막상 일을 치는 건 형순이다. 긴장감이 고조되었을 때 잠재되어있던 다른 갈등 상황이 펼쳐지면서 상황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간다. 그런데 또 형순이 동례의 눈을 찌른 순간, 극은 동례의 아름답고 긴 머리채와 함께 아들을 잃은 동례의 고통을 훑는다. 긴 머리를 풀고 가운데 앉은 여인을 비추는 조명은 성화(聖畵)를 연상시킨다. 철기와 혜선의 계략, 형순의 폭발, 동례의 기억, 이렇게 차례로 이어지는 그림은 서로의 꼬리를 물고 신음하는 지하의 두더지들을 보여준다.
무대 안 오른쪽으로 차갑고 파란 빛이 새어 들어오는 복도, 바깥으로 연결된 그 통로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밖에 나간 사람들에게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내가 서울역에서 버스를 잡아타기 전 스치듯 본 장면들 이외에, 정말로 그들은 어떤 생활을 할까? 연극인데 자꾸 실제를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공연 전체가 아직 내게 육박해오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 공연의 보폭만큼 나는 지하철역의 실제 풍경에 더욱 골몰한다.
화가라는 인물을 좀 더 깊고 높은 무대에서 보았다면 혹시 달리 보였을까. 어둠을 안내하는 묘한 구도자의 모습을 띄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만 무대의 크기 문제는 아니다. 무대를 활용하는 측면에서 보다 찾아낼 것들이 있어 보인다. 철조 구조물 아래에서도 여러 상황이 있을 법한데, 인물들은 굳이 철조 구조물로 구획되어진 무대 중앙에서 주로 움직인다. 파란 천막이 덧대어진 공간도 공연이 시작될 때는 무척 호기심을 자극했는데, 가려진 공간으로만 기능한다. 잘 만들어놓은 공간을 십분 활용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준다.
지난 9월 24일에 시작한 프로젝트 빅보이는 <십이분의 일>, <브리튼을 구출해라>에 이어 마지막 작품 <두더지들>에 이르렀다. 유다의 내면을 통해 시대의 불안을 세련되게 직소(直訴)한 <십이분의 일>, 코러스의 생기발랄한 힘으로 쓰레기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브리튼을 구출해라>, 부랑자들의 막장 인생을 통해 구원의 문제를 진득하게 다루는 <두더지들>. 그런데 지금 다시 떠올려보니 우연찮게도 세 작품 모두 ‘구원’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믿음이 사라진 이 시대에 개인들은 저마다 무엇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을까. 유다도, 브리튼과 개, 남자도, 철기, 혜선, 동례, 형순, 화가도, 나도 참 답답하다. 무엇을 기다리고 있나. 게다가 이 모든 인물들이 저마다의 동굴에서 아우성치는 모습을 모두 목격한 나로서는, 왠지 이제 가만히 있어선 안 될 것 같다.
PROJECT BIGBOY
프로젝트 빅보이는 독립예술가들의 지속적인 창작 활동을 돕고자 마련된 차세대 예술가 발굴 육성 프로젝트 입니다. 지난 3년간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 발표된 소극장 공연들 중에서 지금 시대에 관한 독창적인 시선을 작품을 찾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 <두더지들>, <브리튼을 구출해라>,<십이분의 일> 세 작품이 선정되었고 '동시대성'을 키워드로 한데 묶어 총 6주간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독립예술축제 서울프린지페스티벌과 아트 인큐베이터 두산아트센터가 소개하는 첫 번째 프로젝트 빅보이들로부터 우리 연극의 미래와 가능성을 점쳐보시기 바랍니다.
서울프린지네트워크 www.seoulfringe.net
두산아트센터 www.doosanartcenter.com
양손프로젝트&상상만발극장 <십이분의 일> 9.24(목)~10.2(금)
집단 움틈 <브리튼을 구출해라!> 10.8(목)~10.18(일)
극단 시우 <두더지들> 10.22(목)~11.1(일)
티켓| 일반 20,000 할인 15,000 (서울프린지네트워크, 두산아트센터 회원)
장소| 두산아트센터 Space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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