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30. 17:07ㆍReview
2009 가슴네트워크 축제 2
2000년대의 목소리 ‘시대의 목소리’
90년대 초중반의 대중음악계가 TV에 의한 전성시대였다면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에 이르면서는(물론 비할 바가 아닌 규모이지만) TV밖의 뮤지션들의 존재감을 극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 역시 매체를 통해 드러난 것이다. 다만 그러한 과정을 통해 조금 다르고, 작지만 알찬 음악이 존재한다는 것은 어느 새 모두가 아는 사실이 되었다. 또한 현재까지도 여러 경로를 언더 혹은 인디 음악이 조명되고 있다. 그리고 가슴 네트워크도 그러한 통로 중의 하나이다.
4일에 이어 찾은 5일의 공연장은 무척이나 한산했다. 어제의 공연을 통해 보건데 분명 정시에 도착해서는 앉을 자리가 없을 것이라는 예상은 산산이 부서졌다. 객석에는 관객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었다. 공연의 첫 프로그램으로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가슴네트워크의 지난 10년을 돌아보는 영상물로 시작되었다. 날이 무척이나 추웠지만 공연의 라인업으로 보자면 추위 따위는 무시할 수도 있을 만큼의 훌륭한 이들이었다. 5일 공연 역시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대부분 10년에 근접한 활동을 하였거나 10년을 훌쩍 넘긴 노장들의 공연이기도 하다. 그만큼 공연의 질은 보장이 되어 있었다.
플라스틱 피플 <사진출처: 가슴네트워크>
첫 무대에 오른 플라스틱 피플을 내가 처음 알게 된 시기는 2004년 즈음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들의 정규1집 [Songbags of the Plastic People]의 신선함을 잊지 못한다. 그 때는 내가 언니네 이발관을 처음 알게 된 때였고 그 덕에 TV만 틀면 들리는 음악이 아닌, 다른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신선한 음악을 찾기 위해 한창 안달이 난 때이기도 했다. 나는 스트리밍 사이트를 통해 그들의 음악을 몇 곡 듣고는 인터넷으로 CD를 구입했다. 그리고 몇 년 후 라이브클럽 빵에서 그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때 나는 그들이 자신들의 음악과 무척이나 닮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또 다시 몇 년이 흐른 뒤 보게 된 플라스틱 피플의 공연은 그 동안 흐른 세월을 다시금 되새기게 해준 기회이기도 했다. 세월은 이미 많이 흘렀고 이들의 새로운 앨범은 예전과 같은 신선함은 없었다. 대신 그 자리에는 농익은 목소리와 멘트가 자리하고 있었으며 한결 여유로운 무대매너가 있었다. 대체로 올해 발매한 앨범들의 곡들로 꾸며진 무대에서는 예전에 비해 좀 더 사이키델릭한 면이 드러났다. 예전과 같은 감흥이나 신선함은 없었지만 무대 위 그들은 여전히 멋있었다.
이장혁 <사진출처: 가슴네트워크>
이장혁의 음악은 진하다. 얼굴의 모든 근육을 사용하여 노래를 하고 자신의 음악을 스스로 체화시키는 모습은 보는 사람들이 그저 즐기거나 듣기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모습과 다름 아니다. 그의 음악이 어쩌면 이렇게도 진한 페이소스를 가질 수 있는가는 이장혁 홈페이지의 일상에 대한 글로도 확인할 수 있다. 두 번째로 무대에 오른 이장혁은 거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느껴지는 체크 남방에 빨강 비니를 쓰고 등장했으며 말보다는 음악으로 그에게 주어진 시간을 채웠다. 공연의 주제인 ‘시대의 목소리’에는 아마 이장혁과 함께 연영석이 가장 어울리는 뮤지션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공간을 꽉 채운 음악들이었다. 그는 여전히 음악을 통해 나를, 세상을 반성하게 했다.
코스모스 <사진출처: 가슴네트워크>
코스모스는 이번 공연을 통해 처음 보게 되었는데 몇 년 전 어느 커뮤니티를 통해 그들의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들은 2001년 2집 발표 이후 거의 8년 만에 새로운 앨범을 발매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공연을 위해 새로 영입한 멤버들과의 첫 공연이어서인지, 오랜 시간 관객을 만나지 못해 서먹한 것이 문제였는지 모르겠지만 공연은 너무 맨송맨송했다. 음악은 좋았으나 관객들과 눈을 맞추지 못했고 여성보컬은 허공을 응시한 채 무대 가운데에 서서 노래했다. 코스모스의 리더인 김상혁은 굉장히 반듯한 이미지였으며 꽤 수줍은 사람으로 보였다. 공연은 음반과 달리 관객을 직접 대면하는 것에 가장 큰 차이가 있으며 그만큼 현장에서 관객과의 호흡이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코스모스의 공연은 2% 부족했다. 그러나 각광받았던 밴드였고 이번 공연이 새로 내 딛는 발걸음의 시작점이었던 만큼 기대하고 지켜볼만하다. 마지막 곡은 현재 로다운 30의 기타리스트 윤병주가 함께 하며 마무리하였다.
연영석 <사진: indiefeel>
네 번째로 무대에 오른 연영석은 민중가수로 더 알려져 있고 그 덕인지 집회현장에서 자주 이름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는 라이브 클럽 빵의 공연 정보에서도 종종 그의 이름을 볼 수 있다. 직설적이고 솔직한 언어로 한국 사회를 비판하는 그의 노래들은 음악이 가질 수 있는 사회적 기능과 역할을 드러내는 가장 극명한 증거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불혹을 넘긴 나이에도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음악을 연주하는 그는, 가장 열정적으로 2000년대를 살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이 날 공연에 함께 오른 연주자들 역시도 그와 오랜 시간 동안 함께 한 동반자였으리라. 그래서인지 그들의 여유와 실력은 놀라울 정도였다. 테크닉에 매몰되지 않고 표정이, 눈이, 손이 이미 음악과 하나가 되어 연주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소위 말하는 진정성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 거라는 생각을 하게끔 만들었다. 그들은 한 순간도 지치지 않았고 진심으로 노래하지 않는 순간이 없는 듯 보였다. 그렇게 35분여의 공연이 끝나고 난 뒤 관객들은 그의 음악에 기꺼이 진심을 다해 박수를 쳤다.
럭스 <사진출처: 가슴네트워크>
오늘 공연의 마지막이자, 가슴 네트워크 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무대에 오른 팀은 럭스였다. 나는 몇 년 전 홍대앞 유일의 펑크클럽 스컹크가 문을 닫은 후 오랫동안 럭스의 공연을 보지 못했었다. 이제 30대가 된 럭스의 보컬이자 리더인 원종희는 여전했다. 에너지 넘치는 무대와 무대에 오르기 전 마시는 술,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무대까지. 청춘이 간다라는 노래를 부른 후 그는, 이제 우리도 나이가 많아져서 그런 아쉬움을 담아 만든 노래인데 오늘은 연배가 높은 분들이 많아서 그런 말이 무색하게 되었다는 우스갯소리도하며 공연을 즐겼다. 무대와 객석을 종횡무진 가르며 다닌 그는 갑작스럽게 공연장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무대로 돌아오는 등 예상치 못한 퍼포먼스로 관객들에게도 웃음을 주었다. 공연 시작 전, 가슴 네트워크에서 제작한 리플렛을 들여다보며 축하 인사로 시작했던 그는 이 모든 축제의 마지막 팀으로서도 손색이 없을 만큼의 공연을 보여주었다.
이틀 동안 공연을 한 사람도, 지켜본 사람도 각자 다른 이야기를 품고 다른 표정과 얼굴로 같은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형상화 된 그 어떤 것 보다 예술은 큰 에너지를 발휘한다. 특히 같은 것을 바라보면서 묘하게 다른 감정을 느끼고 자기만의 것으로 기억한 후 가져가는 사람들이 한 공간에 있는 경험 역시도 예술의 매력이다. 어쨌든 가슴 네트워크의 10주년 기념 축제는 그렇게 끝났다. 이틀 동안의 공연을 찾은 250여명의 관객들에는 각자에게 새로운 역사를 쓰는 장이었을 것이고 가슴 네트워크에는 새로운 10년을 맞이할 중요한 디딤돌이 되었으리라 본다.
가슴네트워크는 ‘문화기획그룹’이면서 ‘문화예술전문매체’이다. 1999년에 창간된 대중음악비평웹진 ‘가슴’이 모체이고, 현재는 문화예술 전반을 포괄하고 있다. 현재 가슴네트워크에서는 대중음악을 중심으로 축제, 공연, 전시, 매체, 출판, 아카이브, 아카데미 등에 대한 기획, 연구, 정책, 투자 작업을 통한 새롭고 대안적인 가능성을 한국문화예술계에 제시하려고 하며. 또한 매체들과의 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2007년 8월에 경향신문에서 시작한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 2008년 3월에 네이버의 네이버뮤직에서 시작한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 인터뷰’, 2008년 7월에 경향신문에서 시작한 ‘한국의 인디레이블’ 등이 그것이다. 2009년 11월 가슴네트워크 10주년이고, 이를 기념하여 공연, 전시, 세미나, 출판, 출반 프로그램으로 등으로 구성된 ‘2009 가슴네트워크축제’를 진행하였다. 앞으로 가슴네트워크축제는 ‘발굴, 네트워크 & 아카이브’를 모토로 연례 축제로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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