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 5. 10:48ㆍReview
음악의 탈장르화, 과연 가능한 것일까.
비빙 가면극음악 프로젝트 이면공작 (裏面工作)
욤1 : 비빙은 <어어부 프로젝트>, <안은미의 현대무용>, <가야금 앙상블 사계>, <장영규의 영화음악> 등 다양한 장르에서의 작업으로 10여년 간 만나 온 뮤지션들이 2007년 결성한 단체래. 작곡가 한명과 연주자들, 그리고 음향엔지니어와 기획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 한명 한명의 프로필들이 대단해. 이렇게 잘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한국 전통 예술을 주제 삼아 이를 동시대적인 예술로 발전시킨대. 그런데 너, 지금 자고 있는 건가.
욤2: 음? 어? (약간의 죄책감을 드러내는 얼굴 이모티콘) 어. 공연을 떠올리니까 나도 모르게 잠이 와서 그만.
욤1 : 흠, 여기 팀 소개를 좀 더 읽어 볼 테니 들어봐. 비빙은, 한국 전통 음악의 요소들을 선택, 확대, 발전시키고 이를 다른 음악 장르의 요소들과 결합시키기도 하는 방식을 통해 정형화된 연주관행을 탈피하는 새로운 형식의 음악을 생산하고, 이렇게 생산된 음악을 무용, 영상, 연극 등의 장르와 결합시켜 한국 전통 음악과 함께 발달해 온 시각적 이미지를 무대화하는 다원예술 형태의 작업을 선보인다.
욤2 : 한번 들어서는 이해가 잘 안되는데.
욤1 : 쉽게 말하면 일단, 전통 음악을 섞고 지지고 볶아서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그리고 그걸 무용, 영상 같은 다른 장르와 또 섞어서 ‘다원예술’로 만든다는 얘기인 것 같아.
욤2 : 다원예술이라. 난 그 공연이 다원예술이라는 생각은 별로 안 들던데.
욤1 : 그래? 무대와 의상, 탈도 치밀하게 제작된 거고, 음악이랑 춤도 나오고, 영상도 나왔잖아. 조명도 멋들어지던걸.
욤2 : 여러 가지 장르가 나열 되어 있다고 해서 그 것이 다원예술일까. 사실 이건 내가 다원예술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궁금해해왔던 문제야. ‘다원예술’이라는 말에 합당한 작품을 뭔지 확실히 느껴본 적이 없거든. 연극엔 미술, 음악, 문학, 요즘엔 영상까지 모든 게 다 들어가지만 그 것을 다원예술이라고 부르지는 않아. 영화에도 그 모든 것이 다 들어가지만 다원예술이라고 하진 않지. 왜냐하면 ‘다원’ 이라는 말 속에는 각각의 장르의 예술들이 동등한 위치를 차지하고 결합해서 장르를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뜻이 숨어있거든. 내 제멋대로의 해석이지만 말이야.
욤1 : 음, 그렇군. 연극이나 영화는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사장님이고, 미술, 음악, 조명 등 무궁무진한 장르들은 팀장 같은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지.
욤2 : 맞아. 다른 예를 들자면 이야기가 아가씨고, 다른 장르들이 미용실원장님, 엄마, 의상실 실장님, 마사지 숍 박 선생님, 화술선생님 일수도 있어. 다 같이 힘을 합해 아가씨를 미스코리아에 내보내는 거야.
욤1 : 오, 그렇다면 아이돌 기획사 가수 지망생일 수도 있겠군. 이야기가 지망생이라면, 다른 장르들이 성형외과랑 피부과 의사, 보컬트레이너, 댄스트레이너, 개인 헬스 트레이너, 코디누나구나. 모두 맡은 바 열심히 노력해서, 꽃 같은 미소년이지만 벗겨보면 우람한 가슴을 가진 아이돌을 창조하는 거군. 하지만 아무리 주위 사람들이 열심히 해도 결국은 지망생 본인의 노력과 재능이 있어야 살아남지. 이 역시 연극이나 영화도 마찬가지야. 아무리 화려한 캐스팅에 비싼 기술력을 동원해도 이야기가 허술한 작품은 외면 받게 되어 있잖아?
욤2 : 응. 맞아. 삼천포로 빠지나 싶었는데, 제대로 돌아왔군. 그래서 연극이나 영화는 다원예술이라고 안하는 거야. 어디까지나 이건 내가 정의한 다원예술에 관한 얘기야. 사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다원예술소위원회에 따르면 문화예술지원정책에서 다원 예술은 기존의 장르체계와 예술개념으로 포착되지 않는 새로운 예술 창작활동이래.
욤1 : 내가 보기엔 네 얘기나 위원회의 얘기나 결국은 같은 얘기인 것 같아. 그냥 합친다고 다원 예술은 아니라는 거지.
욤2. 그래. 그래서 우리가 이번에 본 ‘비빙’의 <이면공작>은 다원예술은 아니라고 생각해. 음악은 위트 있었고, 국악기로 서양식의 편곡을 아름답게 소화했지. 연주와 음향도 완벽했어. 무대와 조명은 또 어땠고. 분위기를 압도했어. 연희도 볼 만 했고. 모든 요소가 그 각각으로 완결성이 있었어. 그래서 더 아쉽기도 했고. 그 각각의 장르가 다 훌륭했는데 분리도 그만큼 잘 되었지.
욤1 : 다원예술이냐 아니냐. 이건 그 단어의 개념이 워낙 모호하기 때문에 쉽게 정의내릴 수 없는 문제야. 하지만 내가 생각할 때도 이 공연은 다원예술은 아니었다고 생각해.
욤2 : 옹호하는 척 하더니 본색을 드러내는 군. 넌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거냐.
욤1 : 나의 경우는 공연을 보면서 깊은 공감과 고민에 빠져들었어. 나중엔 좀 우울해지기까지 했었지.
욤2 : 우울한 공연은 아니었는데.
욤1 : 응. 아니었지. 그냥 이 공연이 평소의 나의 고민과 겹쳐져서 그랬을 거야.
욤2 : 너의 고민은 곧 나의 고민이기도 하니 좀 더 말해보아.
욤1 : 다정히 대해주어서 고마워. 그게 무슨 고민이냐 하면. 음악이라는 것이 과연 탈장르화 될 수 있을까. 다른 말이지만 같은 뜻으로 말하자면, 음악이라는 것이 다른 예술장르와 섞일 때 과연 독립적인 주체가 될 수 있을까.
욤2 : 섞이는데 왜 독립적이어야 하지?
욤1 : 그러니까 내 말은, 음악이 다른 장르와 만나면 배경이 되어버린다는 거야. 내가 그동안 만나왔던, ‘다원예술’이라는 설명이 붙여진 많은 공연들에서 자꾸만 그런 장면을 목격하는 것이 우울해. 너 아는지 모르겠지만, 나... 음악해.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음악이지만, 탈장르를 꿈꾸고 있어. 그 쪽이 지원금 받기가 좋은 것 같거든. 좀 더 아티스틱하고 있어보이고 말이야. 그래서 뭔가 만들어보려고 구상을 하는데. 뭘 상상하던, 이미 내 머릿속에서 음악은 배경으로 깔아져버려.
욤2 : 엇! 사실은 나도 음악으로 먹고 살 궁리를 하고 있어. 이거 놀라운걸. 기왕 이렇게 된 거 같이 팀이라도 해볼까? 마침 우리 이름도 비슷하니까 팀 이름은 ‘욤’으로 하면 되겠다. (손을 내미는 플래시콘)
욤1 : 그래. 알았어. 하자. (악수하는 플래시콘) 그건 그렇고 공연 얘기 좀 마저 할게.
‘비빙’의 <이면공작>은 처음엔 연주만으로 시작했어. 연주를 할 때는 연주만 들렸지. 음악이 주인공이었어. 그런데 몇 곡이 끝나고 무대 위에 연희자들이 나와 줄타기 놀이를 시작하니까 삽시간에 음악은 주인공자리에서 물러나 버리는 거야.
욤2 : 맞아. 그랬었어.
욤1 : 그 순간 고민이 시작되었어. 음악부터 시작한 건 이 공연이 음악에서 출발한 다원예술프로젝트라는 걸 설명하는 연출이었어. 그런데 연희자들이 출입구 틈 사이로 얼굴 빼꼼 내민 후부터는 연희와 음악이 잘 어우러졌지. 참 잘 어우러졌어. 음악이 있다는 것을 잊을 만큼 어우러진 거야. 그 대목에 당연히 나와야 하는 그 노래가 역시나 나오고 있는 느낌. 내게는 그 것이 탈장르화나 실험이 아니라 재연이라고 느껴졌던 거야.
욤2 : 난 그 순간 잠이 확 깼어. 전환이 되었거든. 연희가 나오기 전까지는 온통 새하얀 도형 같은 무대에, 옷을 맞춰 입은 연주자들이 앉아서 음악을 연주했지. 무대 왼편에 해금, 피리, 가야금이 배치되었고, 오른편에는 타악과 가수가 있었는데 마치 축소판 오케스트라를 보는 것 같았어. 재미있게도, 공연하는 사람과 보는 사람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
욤1 : 오케스트라? 어째서 그렇지?
욤2 : 공연하는 쪽이나, 보는 쪽이나 상당히 격식이 있었다는 말이야. 마치 서양의 오케스트라 공연을 볼 때처럼 말이야. 조용하고 엄숙하게. 그런 클래식 공연을 볼 때 악장과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지 않잖아? 그런데서 모르고 잘못된 타이밍에 박수를 쳤다간 무식하단 소리 듣기 딱 좋지. 그런데 이 공연이 그랬어. 한 곡이 끝나고 누군가 박수를 치려다가 눈치를 보고 머쓱해진 손을 내린 거야. 그러곤 끝날 때까지 그랬지. 연주자들도 가만히 연주하다가 곡이 끝나면 조용히 악보를 넘기고.
욤1 : 맞아. 가면극음악 프로젝트인데, 전혀 가면극답지 못했지. 공연에서 재해석해 보여준 ‘자인팔광대의 줄타기’, ‘복청사자놀이의 거사춤’, ‘봉산탈춤의 사자춤’ 모두 조용한 데서 하는 춤은 아니잖아?
욤2 : 시장 바닥, 잔치에서 벌어지는 놀이들이지.
욤1 : 엇. 지금 떠오른 생각인데 혹시 그런 놀이들을 격식 있는 무대에서 감상하는 형식으로 재해석, 탈장르화 한 건 아닐까? 하긴 가면극이 예전엔 놀이로 연희되어졌다곤 하지만, 지금에 와서도 그럴 필요는 없지. 감상용 공연으로 재구성 할 수도 있다고.
욤2 : 뭐야. 설마. 그런가?
욤1 : 틀림없어. 게다가 북청사자놀이의 거사춤 장면에서는 거사들이 양복을 입고 나왔었다고! 양복이야말로 격식의 상징이잖아.
욤2 : 흠. 알았어. 그건 그렇다 칠게. 하지만 어쨌든 난 그 분위기가 맘에 들지 않아서 잠이 들 수밖에 없었던 거야. 사실 나 말고도 자는 사람이 꽤 많았다고. 그런데 연희자들이 나오니까 다들 웃고, 박수쳤지. 숨통이 트인 거야. 연희를 하는 동안만은 관객석이 자유로워졌어. 박수치고 싶을 때 칠 자유.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일에 반응할 자유를 얻었어. 그러다가 연희가 끝나고 다시 감상의 시간으로 돌아갔지.
욤1 : 넌 다시 잠으로 돌아갔고.
욤2 : 내 앞줄 오른쪽 끝에 있는 분도 나랑 똑같이 자다가 똑같이 깨고, 다시 똑같이 잠들던걸. 이건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욤1 : 그렇게 졸린 음악은 아니었는데.
욤2 : 그런 것 같기는 해.
욤1 : 그렇다면 연주자들도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거냐. 가만히 앉아서 연주만 하면 졸리다며. 그럼 연주자들도 퍼포먼스를 해야 하나. 그래봤자 여차피 연희자들이 나오면 배경이 되는데!
욤2 : 너 너무 극단적으로 말하는 거 아니야? 무대 한 켠에서 연주하는 것만으로 크나큰 포스를 주기도 하잖아. 네가 맨날 연주할 때 주인공이 못 되는 건 아직 네 내공이 부족해서가 아닌가 집에 가서 생각 좀 해봐.
욤1 : 그런가? 아 나 또 설득 당하려 하고 있군. 이 공연 이야기는 이쯤에서 그만 하는 것이 좋겠어. 홀짝홀짝 맥주를 마셨더니 마음이 너무 너그러워지는 군.
욤2 : 어, 안되는데. 이젠 이 공연에서 좋았던 점을 말할 차례야. 원래 병 주고 약 주는 게 내 스타일이라고.
욤1 : 좋은 말은 우리가 아니더라도 이미 많이 했을 거야.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아무 때나 그만 하면 어때. 난 이만 로그아웃하겠어. 다음에 보자규~
- 욤1 님이 대화를 종료하셨습니다 -
- 욤2 님이 대화방을 나갑니다 -
끝
2009년 12월 15일(화)~17일(목)/ LIG아트홀
비빙은 한국 전통 예술을 주제삼아 이를 동시대적인 예술로 발전시킨다. 비빙은, 한국 전통음악의 요소들을 선택, 확대, 발전시키고 이를 다른 음악 장르의 요소들과 결합시키기도 하는 방식을 통해 정형화된 연주관행을 탈피하는 새로운 형식의 음악을 생산하고, 이렇게 생산된 음악을 무용 ․영상 ․연극 등의 장르와 결합시켜 한국 전통 음악 과 함께 발달해 온 시각적 이미지를 무대화하는 다원예술 형태의 작업을 선보인다.
비빙은, 국악기, 다른 문화권의 악기, 녹음된 음향, 불교성악, 불교무용, 영상 등이 함께 하는 다원예술 형태의 불교음악 프로젝트 “이理Li와 事사Sa”를 2008년 10월, LIG 아트홀에서 초연을 올린 바 있다. 이 공연은 2010년과 2011년 유럽 순회공연과 호주, 프랑스, 덴마크로부터의 초청공연이 예정되어 있으며 그 음악을 실은 음반을 2010년에 발매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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