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바케레타> "연극(drama)을 연극(performance)하는 연극인(player)의 연극(演劇)"

2009. 12. 9. 12:16Review

 

연극(drama)을 연극(performance)하는 연극인(player)의 연극(演劇)


"세상으로 향하는 우리들에게"




세상으로 향하는 너희들에게.


말을 낮춤을 용서해다오. 교복을 입고 객석을 메웠던 너희들의 분주한 생기가 기억에서 가시지 않는구나. 이 연극을 제일 ‘잘’ 보았던 너희들에게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냐만, 극장 문을 나서는 얼굴에 궁금함이 서려있어 뭔가 대답을 해주고 싶어 말을 건넨다. 살짝 엿듣기론 연극을 처음 보는 것이라 했지. 너희들이 본 것은 ‘진짜’가 아닌 ‘연극’, 현실과는 다른 무대 위의 삶이란다.

 
극 중에서도, 극 바깥에서도, 우리들한테서도 연극의 위기를 말하곤 한단다. 슬픈 얘기지만 연극은 점점 힘들어지고 있어. 마치 우리가 본 연극에 나오는 그런 모습처럼. 이야기들처럼.


꿈나무 극단과 어린이 연극. 그런데 그들이 하는 연극은 꿈과 희망의 연극이 아니라 학교에 귀신이 나오는 공포와 쇼(show)가 가득한 연극이더라. 그래서 제목도 바케-레타잖아. 귀신과 오페레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그 황당한 합일이 상업성으로 치부되는 통속극와 순수연극을 이어주는 이 작품의 방식처럼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었어. 마치, 심각한 표정의 연극인들 사이에 꽃처럼 화사하게 핀 너희들처럼. 



무슨 얘기를 먼저 해야 할까? 이 작품을 쓴 정의신은 재일교포 출신의 작가란다. 게다가 연출까지 겸했지. 연출은 종이 위에 누운 인물을 무대 위에 세우는 사람이야. 마치 공연에서는 민규 (이원승)의 역할처럼, 그리고 빈자리를 이어받은 혜주(배종옥)처럼 고되고 힘든 자리지. 매번 밀려나는 미희(서주희)에겐 아쉬운 역할이기도 하고.  


참 너희들이 본 연극이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를거야. 작년에 우리 연극에서 뽑은 가장 잘된 작품이 <야끼니꾸 드래곤>인데 바로 그 작품을 쓰고 연출한 사람이란다. 게다가 연극무대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배종옥과 주로 무대에서 크게 모습을 드러냈던 우상전, 서주희, 이원승까지. 너희들의 첫 연극은 잘하는 사람들이 애써서 만든 작품이라는 걸 감춰야 할까, 고민이 되더라. 왜냐면, 앞으로 이런 작품을 만나는 게 잦은 일은 아닐테니. 어쨌든 연극은 재미있는 것이라는 인상을 심어주었기를.  








너희들이 본 것은 사실적인 세트를 표현한 ‘연습 무대’ 란다. 간이로 설치된 무대는 연습실 주변 같은 분위기로 사무실과 분장실을 형상화 했더구나. 간이 무대 위에는 남녀 화장실이 독채로 마련되어 있었지. 너무 웃기지 않니. 그들이 진지하게 준비하고 있는 작품이 어린이극 “고스트-학교귀신” 이라는 것이. 그렇지만, 관객들이 좋아하는 건 바로 저런 것들일텐데... 연극의 통속성이랄까. 간단히 말하면 그냥 재미있고, 쉽고, 웃기며, 한편으로는 울리는... 대중적인 연극. 그들에겐 너희같은  관객들이 더없이 소중하겠지. 




배우들은 무대 위에서 환상의 공간을 만들어 낸단다. 실제로 이 작품에서도 민규가 등장해서 ‘환상’을 보여주기도 하지. 배우들은 그 입을 열어 ‘꿈과 환상’ 에 대해 말하기도 하고. 그들이 하고 있는 연극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귀신’ 들의 연극이니까, 이 작품은 뭔가 ‘보이지 않는 것’ 을 ‘재현’ 하는, 연극하기 좋은 연극인 셈이지. 연극속의 연극이기도 하고. 이런 걸 극중극 이라고 한단다. 이처럼 이 작품은 한명의 ‘인간’ 이면서, 극단에 소속된 단원이자, <학교 귀신> 의 배역이 공종하는 세 가지 시점의 연극이야. 


 배우들이 연극을 하다가도 연습이 끝나면 인물로 돌아오고, 연기하고 있는 인물의 특성을 빌어 평소에도 그렇게 행동하기도 하고. 이처럼 무대는 환상의 공간으로 인도하는 문의 역할을 하기도 해. 그러나 그 문 틈 사이로 삐져나오는 건 환상만 있는 건 아냐. 삼류배우들의 연기가, 그들의 너절한 인생이, 당장 하루를 살아가는 인간이 보여지기도 하지. 무대 위의 무대는 환상과 꿈의 공간이지만, 좌절과 슬픔과 갈등이 숨쉬는 공간이야. 과거는 기억 속에 잠기고, 미래는 불투명한 전망으로 염려를 더해주는 현재적인 공간이기도 하지. 난장의 쇼가 펼쳐지는 박수가 가득한 무대이면서, 배우들이 그만두고 싶어할때는 누추한 연극인들의 현주소가 된단다. 


 그런 점에서 이젠 나이를 먹은 혜주가 밀려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참 인상적이었어. 그치? TV와 무대에서 강렬한 카리스마를 보여주었던 여배우 배종옥이 구질구질한 연극인의 일상을 풀어가는 방식도 참 진실하더라. 한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배우들이 점점 나이를 먹고, 인기에서 멀어지며 배역에서 밀려나는 모습과 여전히 연극을 향한 열정이 존재하는 이중적 모습을 엿볼 수 있었지. 연극은 관객의 관심을 받아야 하는 숙명 속에서 살아간단다. 계속 갱신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고, 갱신한다고 해도, 그것에 대한 평가는 늘 관객들의 몫이지. 


 젊은 여자가 없는 극단의 현실도 참으로 딱하지. 그래서 젋은 남자 배우가 그 역을 대신하는 모습이 참으로 어이없으면서도, 점점 그가 여성으로 변해가는 모습에서 웃음이 나더라. 무대에 대한 욕심은 결국, 자신이 한마디라도 더하고 이름이 불리며 예뻐 보이려는(?) 행위로 변해가지. 주위의 놀림과 비아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화장에 열중하는 그의 모습이 희극적이더라. 허나, 그 이유가 민규형이 써준 대사를 오롯이 해내겠다는 그런 마음으로 드러날 때 슬픈 기분이 들었어.


역할에 따른 외양은 오히려 이러한 작품속의 희비극성을 고스란히 보여 주었어. 뚱뚱해서 옷이 맞지 않는 배우, 늙었지만, 아니 늙었기에 도깨비 분장을 한 배우. 배가 무척이나 나온 교장 선생님 분장의 여배우. 그런 역을 할 수밖에 없는 선배들의 서글픔과 젊고 거침없는 코러스들이 대비되더라. 젊은 코러스들은 시종일관 무대를 유쾌하게 해주었는데, 너희들이 가장 환호한 장면도 그들의 장면이었지, 아마.



연기를 연기하는 연기자들은 오히려 못하는 모습, 과장된 표현을 보여준단다. 그래서 더욱 실감났지. 중간에 펼쳐지는 퍼포먼스도 흥을 돋구었지. “Over the rainbow” 노래와 “My heart will go on" 노래가 나오는 장면에서 보여준 반복의 요소는 '대중극의 속성’ 으로 실제 공연 중에 그 효과가 점차적으로 발휘, 강렬한 재미를 주었단다. 그런데 그거 아니? 반복이 계속될수록 그 의미가 점차 변해간다는 거. 처음에 몇 번의 반복은 웃기고 말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반복은 참으로 서글퍼졌단다. 참아내며 연기하는 배우들과 그 웃음의 너머의 의미까지 알아버린 탓일까? 정의신 작가의 ‘반복’의 미학은 바로 이러한 ‘의미’ 의 전달을 넘어, 어떤 변화의 지경에 이르게 한단다. 저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의 불가피성을 보여주는 것이랄까? 단순, 반복되는 그들의 모습은 처음에는 우습다가, 서글퍼지고, 짜증이 났다가, 결국 그들을 이해하게 되는, 의미의 상승작용을 일으키지. 얼핏 보면 희극이지만, 계속 보면 비극인 게 그들의 모습이야.


열리지 않은 화장실이 열려야 되는 순간에, 열리지 않은 화장실문을 열리게 만들어야 하는 선배는 후배의 꾸지람을 듣게 되고, 왜 열리지 않은 화장실이 열려야 하는지, 를 헷갈려 하는 선배로부터 갈등은 커지지. 열리지 않은 화장실이 열리는 순간과 열리지 않는 순간에서 매번 연습이 중단되고 단원들의 갈등이 폭발하게 돼. 제대로 연습조차 하지 못하는 현실이 턱하니 드러나고, 연습을 강행하려는 연출은 좌절하고... 늘 묵묵히 감내하던 조연출마저 연습을 포기하게 되고.... 그들은 왜 그렇게 힘들까. 우리(그들)가 우리(그들)에게 힘든 것은 세상앞에 초라한 우리 자신의 모습이란다. 실체를 드러낸 학교귀신이 똥푸는 아버지를 부끄러워하는 것처럼, 연극을 하는 우리들도 부끄러움과 가깝지. 그렇게 명예가 없고, 또한 가난하다는 것. 하지만 똥을 푸는 아버지나, 무대에 서는 우리나 세상을 향하고 정화(淨化)하려는 목적은 모두 동일하단다.


그들이 민규의 죽음을 들었을 때, 연극을 중단하고 연습실을 하나씩 떠나는 장면이 기억나. 죽음은 모든 것을 그만두게 만들지. 무대 위에서 오열하는 남자의 모습은 우리에게도 한줄기 눈물을 주었어. 시종일관 웃고 즐기던 너희들도 숙연해지더구나. 


눈물을 당황스런 선물처럼 관객들에게 안겨주는 ‘죽음’ 의 ‘감상주의’ 적 해결은 어떤 거대한 결론을 내리는 대신, 연극을 계속하자는 다짐으로 마무리 돼. 왜냐면, 죽음 이후에도 할말은 계속되니까, 연극 속에서도 연극의 연극 속에서도. 연습이 중단되고 모두가 빠져나간 순간, 귀신연극을 하던 자리에 영혼이 찾아와 연극의 첫 순간을 되새기지. 이름과 배역을 불러주고, 당부의 말을 전하는 순간, 연극의 가장 첫 순간이야. 이번에는 잘해봅시다, 라고 힘을 넣어 강조하는 그 모습. 다시, 연극을 생각하게 되었어.






<바케레타>는 연극의 연극이야. 정의신의 반복을 흉내내자면, 연극을 연극하는 연극인의 연극이랄까. 게다가 귀신연극이지. 소재가 참 흥미롭지 않니? 길게 늘어뜨린 머리, 길게 잡아뺀 팔과 다리. 일부러 조악하고 유치하게 만든 의상들과 소품들은 오히려 지방의 어린이 연극의 소소함을 잘 드러냈다고 생각해. 하지만 중요한 건 ‘귀신연극’ 이라는 대중적 장르가 애초부터 의도했던, 현장감이 주는 생생함과 물리적인 쇼킹함이 오히려 지금을 멍하게 살아가는 우리 정신과 감각을 흔들어 깨워주는 다른 의미작용으로 더해졌던 거지. 다만 쇼킹보다는 감동이 연극에서는 더욱 오래 지속된다는 것. 민규형을 위해서라면 우리는 공연을 할 수 있다는 여자 귀신의 말. 단 1명만 있어도 할 수 있는 것이 연극이라는 것. 서로가 지켜보고, 서로를 지켜주는 연극. 이제 연극은 호명과 추모와 애도의 장르가 되어 버리지. 


 연극의 마지막 장면은 아직 시도하지 않은 장면을 가장 뺀질거리던 여자 선생님의 대사로, 그리고 한번도 무대에 서지 않았던 미희의 연기로 마무리 되지. 문을 열었을 때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너희들의 해석의 몫으로 남겨둘게. 각자 받은 인상으로 그 빈 공간을 채우길 바래. 


 한 여름밤의 ‘꿈’은 한겨울 밤의 ‘꿈’ 이 되고, 기약없이 한 봄밤의 ‘꿈’ 을 기약하며 그들은 MT를 떠나자고 해. 창고 문을 열어을 때, 내리는 눈이 그들을 맞이하고 있지. 너무 감상적인 장면이라 조금은 못마땅했지만, 입가에 환한 미소로 눈을 바라보는 너희들의 눈을 보니, 나도 날카로운 눈을 거두게 되더구나. 연극의 통속성이란, 가짜 눈이라 할지라도, 위에서 내려주는 소박한 종이 눈으로 하여금 이 초라한 세계를 낭만으로 채워주는 건 아닐까. 낭만이 자본주의 경쟁시대에 너희들을 주저하게 만들지라도. 기성에게서 그런 나약한 것 따위는 치워버리라는 말을 들을지언정. 세상의 한쪽은 순수가 지탱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 이 연극은 바로 그런 지점에서 통속을 내세워 순수를 강조하고, 싸구려 예술을 통해 현대 예술이 나아가야 할 의미를 밝혀낸단다. 




 말이 너무 많아서 미안하구나. 연극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바로 감사합니다. 수고했어요. 미안합니다. 그리고 파이팅! 이라는 것을 너희에게 일러주고 싶구나. 이 네 가지 말이 세상을 바꾸고 사회를 올곧게 만드는 연극을 시작하는 구호라는 것. 순수하지만 강력한 대화. 이것이 바로 드라마의 힘이란다. <바케레타>는 너희, 아니 이제 우리가 이것을 꼭 기억하고 간직했으면 하는 바람이 드러난 연극이라고 생각해. 극중에서 세상으로 나가는 배우들처럼, 앞으로 세상으로 뻗어나갈 너희들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구나. 어딘가 너머에는 분명 무지개가 있을 거고, 순수를 향한 우리의 마음은 앞으로도 계속 되기를! 



<바케레타!>

노래와 춤이 유혹하는 정의신의 새로운 연극+오페레타
1989년《천년의 고독》의 충격, 1993년《인어전설》의 감동, 2005년《피와 뼈》의 잔혹, 2006년《행인두부의 마음》의 서정 그리고 2008년《야키니꾸드래곤》의 해학과 슬픔.
2008년《야키니꾸드래곤》으로 일본 요미우리연극상 대상과 최우수작품상 및 우수연출상, 아사히무대예술상 그랑프리, 기노쿠니야 연극상, 쓰루야난보쿠 희곡상, 문화청예술선장 문부과학대신상 등 주요 연극대상을 휩쓸며 한국과 일본을 매혹시킨 재일교포 극작가 정의신. 경계와 절망에 선, 그러나 희망을 놓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독특한 시선과 화법으로 응축하여 무대에 올리는 정의신이 기존의 작품 세계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연극《바케레타!》를 한국에서 선보인다.

연극에 취하여라! 오레레타에 열광하라!
《바케레타!》는 '귀신'이라는 뜻인 일본어 ‘바케’와 희극적인 요소를 담은 ‘소규모 오페라’라는 뜻인 ‘오페레타’의 합성어이다. 《바케레타!》는 기존의 노래와 춤이 낯선 즐거움으로 다가오는 오페레타 형식으로 연극의 꿈 냄새에 취한 작은 시골 극단의 이야기다. 작품을 준비하던 중 연출가가 암으로 세상을 뜨고 여배우가 대신 연출을 맡게 되면서 겪게 되는 에피소드들이 그려진다. 귀신이야기를 노래와 춤이 가미된 극중극 형식으로 풀어내며 ‘보이지 않는 것’, ‘저 너머에 있는 것’에 대해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진다.

공연기간: 2009년 11월 26일(목)~11월 29일(일)
공연장소: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주최: 대학로예술극장, 극단 중앙연극


글 | 정진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