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질문 "누가 대한민국 20대를 구원할 것인가?"

2010. 4. 6. 19:10Review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질문
<누가 대한민국 20대를 구원할 것인가?>
누가 나를 구원해 줄 것인가?






 글| 아아시



 

386세대의 젊은이 시절로 현 세대의 젊은이들이 시간여행을 떠난 모습
누가 대한민국 20대를 구원할 것인가?
<극단 드림플레이> 김재엽 작/연출







20대.
최근에 들어서는 더더욱, 화두가 되어왔던 주제라 굳이 나마저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지겹고 식상하기 까지 하다.


88만원세대, 비정규직, 학자금 대출, 취업스펙, 무념무상, 열정의 결여, 청년실업, 투표율 저조, 촛불세대.
기성세대로부터 평가받는, 현 ‘대한민국 20대’와 관련한 몇 가지 키워드 들이다.

언젠가부터 인터넷세상에서는 ‘잉여인간’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웹상에 모인 잉여인간의 대부분은 20대 청년백수였고, 그들은 자신을 말 그대로 ‘잉여’의 쓸모없는 존재로 여기며 스스로를 자학해갔다.
이 신조어는 ‘대한민국 20대’의 자기 평가를 가장 잘 반영한 핫 키워드였다.




나 또한 잉여인간이었다. 소속도 없고, 딱히 하는 일도 없이 말이다.
아침에, 아니 정확하게는 해가 중천에 떠서 이미 질 채비를 할 무렵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발가락으로 컴퓨터 키기. 잉여인간 중에서도 방학 중 대학생, 휴학생과 같은 단기 잉여가 아닌, 언제 그 생활에서 벗어날지 나조차 기약을 할 수가 없는 장기 잉여, 레알 잉여였다. 나는 자신을 잉여라 칭하는 단기 잉여들에게 거드름을 피우며, 내가 바로 잉여킹이라 으스대기까지 했다.

그 날의 아침이 밝기 전, 나는 밤새 심즈라는 게임을 하였다. 인간 세상을 그대로 그려낸 그 게임 안에서, 내가 만든 인간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사람들을 만나고, 직장에 가고, 돈을 벌고, 평생 이루고 싶은 꿈을 이루고 하는 것을 보면 지금 이렇게 밤을 꼴딱 세워가며 게임을 하면서 잉여력을 뽐내고 있는 나의 현실이 더욱 코믹하게 느껴졌다. 별다른 목적도 없이 게임에 열중하던 나는 이제 해가 뜨자 잘 채비를 하려고 일단 하던 게임을 끄고, 컴퓨터 전원을 끄기 전 아쉬운 마음에 마지막으로 자주 가던 커뮤니티의 메인화면을 새로 고침 해 보았는데, 모니터 안에 뜨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라는 검은색 문구. 2009년 5월 23일. 전 대통령의 서거소식이었다.
내 잉여인생은 정점을 치달아, 나의 모습은 살아는 있었지만 시체에 가까워져 갔다. 그 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고들 하지만, 난 그 여름이 얼마나 어떻게 더웠는지 알지 못한다. 집 밖에 나가본 적이 없던 탓이다. 다만, 집 안 한구석에서 움직이지 않는 나의 모습은 습기 많고 끈적끈적한 방의 한 구석에서 썩고 있는 퀴퀴한 메주나 곰팡이 같았다. 나는 제발 누군가가 나를 살려주길, 구원해주길 바랬다.



누가 대한민국 20대를 구원할 것인가. 라는 공연의 제목에,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이였다.

공연은 고려대 자퇴생 김예슬씨의 대자보를 읽는 것 같은 느낌과 흡사했다.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쓸모없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이제 나에게는 이것들을 가질 자유보다는 이것들로부터의 자유가 더 필요하다. 자유의 대가로 나는 길을 잃을 것이고 도전에 부딪힐 것이고 상처 받을 것이다.”

세상은 한 명문대생의 선언에 시끌시끌해졌지만, 솔직히 나는 이에 어떠한 자극도 받지 못했었다. 그녀가 나보다 훨씬 똑똑하고 명석해 보이는 것과, 유려한 문장력을 가짐에 아주 조금의 시샘을 느꼈을 뿐, 내가 평소 해오던 생각과 별반 다를 바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보다 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에서 슬픔을 느꼈다.

RE: 나는 용기가 없어서 하지 못하는 행동인데, 멋지네요. 박수를 보냅니다.
RE: 저도 대학생인데 힘들어요. ㅠㅠ 우릴 이렇게 만든 대한민국이 너무 원망스럽네요.
RE: 저 학생이 아직 세상을 몰라 저러는거죠... 분명 나중에 후회할 듯.
RE: 그래도 명문대 생이니까 주목은 받네요.
RE: 저 학생 나중에 재입학 할 거라던데...운동권 학생이래요. 저거 쑈하는거임.

나는 고등학교 1학년에 탈학교를 하였고, 대안학교를 다녔던 경험이 있다. 그리고 20대 초중반인 지금까지 대학엘 가지 않고, 나 스스로 주체적인 삶을 살아보고자 같잖은 노력을 해왔는데, 이러한 사실들을 이야기하면 내게 보이는 뭇사람들의 반응들도 이러한 반응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난 못 하는걸 넌 해서 대단하다는 시선도, 넌 아직 철이 덜 들었다는 시선도, 호기심에 차서 날 실험하려 드는 시선도 모두 달갑지가 않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못났고 찌질한 것만 같은 나도 이런 삶을 사는데, 왜 당신이라고 못 해.



공연을 보는 내내 마음 한 구석에서 샘솟는 불편한 마음에 나는 당황을 했다. '누가 20대를 구원 할 것인가'라는 제목은 훼이크고, 결국 20대 스스로가 자신을 구원해야 할 뿐. 무대 위엔, 우리를 구원해주는 ‘누가’가 빠져 있었다.
이는, 내가 명절날이면 사촌동생들을 모아다놓고, ‘엄마 아빠 말 이라고 다 잘 들으면 안 된다. 엄마아빠가 지금 옳은 소리를 하는지 그른 소리를 하는지 네 스스로 판단해 가면서 들어야지.’ 라고 선동을 하지만 그것은 정말 그 아이들이 부모님 말씀을 안 들었을 때 그들에게 생길 문제까지 책임지고 하는 말이 아님과 같다.

대안적인 삶을 살아보고자 발버둥쳐왔던,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까지의 삶에서 느꼈던 나의 감정도 이와 같다. 날 선동했던 어른들도, 날 결코 책임져주진 않았다. 애초에 책임져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내가 우둔할 탓일 테지만 난 이러한 상황 속에서 크게 당황했고 어쩔 줄을 몰랐고 혼자 남겨졌다. 내 주위엔 나와 같은 상황의 친구들이 많았다. 나는 우리가 연대를 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를 해왔지만, 그건 말과 생각 뿐. 친구들을 모으고 연대라는 것을 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공연이 끝나고, 연출가와 공연 관련자, 몇 명 되지 않는 관람객이 모여 대화를 나누었다. 많은 대화들이 오고갔다.
공연 내용 중 하나였던, 취업에 필요한 6종 세트(학벌, 영어, 인턴경험 등)와 같은 사례를 예로 들으며 이와 같은 것이 정말 실제의 일인가? 라고 묻는 순진한 20대도 있었고, 요즘 20대들은 나와 같은 386세대보다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지 않냐 는 기성세대의 질문에서 결코 그렇지 않다, 경험을 할 기회가 오히려 적다고 말하는 20대의 답변이 있었다.
기성세대들은 기존의 운동권의 방식을 우리에게 강요한다는 20대의 말과, 우리는 폭력적이지 않고 지치지 않는 우리만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다른 20대의 말도 있었다.
요즘 20대는 우리 젊었을 때에 비해 낭만과 꿈이 없는 게 안타까웠다는 연출가님의 말에, 나는 오히려 열정 없음에 죄의식을 느낄 정도로 기성세대로부터 열정을 강요받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대화가 마무리 되는 시점에서, 한 20대 친구는 말이 통하지 않는 기성세대들과 스펙만 추구하는 친구들이 이 공연을 보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했다.
대화가 오고가면서 그 전까지의 불편했던 마음은 녹아내렸다. 연대라는 것은 어려운 게 아니었다. 나는 그 때, 그 자리, 그 시점에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연대라고 느꼈다.


그냥 집에 가기가 아쉬운 마음에, 그 자리에서 만난 20대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우리가 세상을 바꿔보고자 노력하고 있는 멋진 친구들이었다. 마포FM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빨을 드러낸 20대’(http://cafe.naver.com/mapo20)와 유쾌한 방식으로 20대 정치참여를 외치는 ‘휴먼파탈’(http://club.cyworld.com/polisseum)의 친구들이였다. 느끼한 소리를 한번 해보자면, 그들을 알게 된 것 자체로, 나는 내가 좀 더 행복에 가까워졌다고 느꼈다. 혼자 방구석에서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하는 고민이라면 즐겁게 세상을 바꿔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우리의 전세대가 우리를 위해 그러했던 것처럼 나는 나의 후세가 좀 더 나은 세상을 살 길 바라며 노력 할 것이다. 그러기엔 아직 나는 너무나도 무지하고 부족하고 힘이 없기에 좀 더 나은 내가 되길 바라며 공부 할 것이다. 지금 이 글을 보며 나와 함께 하고 싶은 젊은이가 있다면 부담 없이 내게 다가와 주시길 바란다. 나와 당신의 공연이 막 오를 것이다.





 

극단 드림플레이 "누가 대한민국 20대를 구원할 것인가?"

코믹-다큐-파노라마
<누가 대한민국 20대…>는 코믹-다큐-파노라마라는 형식을 빌어 오늘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현상들을 코믹하게 이야기한다.
또한 20대 자신 그리고 20대를 둘러싼 타자들의 관점과 시선을 끊임없이 교차시키며, 20대와 다른 세대 간의 몰이해와 소통부재 상황을 보여준다.

유쾌하지만, 솔직해서 아픈 오늘날의 20대
IMF 이후 강화된 경쟁구조, 대학을 제외하고는 삶의 방향을 찾을 수 없는 사고방식, 하늘 높은 줄은 모르고 치솟는 대학 등록금, 비정규직 문제…
<누가 대한민국 20대…>는 20대들이 다른 세대와는 다른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보여주며 이에 대한 관객들의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공연명: 누가 대한민국 20대를 구원할 것인가?
공연일시: 2010 3월 26-27일 (2008년 초연)
공연장소: 성미산 마을극장

*<드림플레이>는
인디 퍼포머 그룹으로 독립적인 창작 무대 공연을 지향하는 젊은 예술가들의 그룹입니다. 2009년부터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성미산마을극장의 상주예술단체로서 '오늘의 책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청소년 연극- 삐뚤어질테다' 등을 공연했으며 5월에는 성미산마을주민들과 함께하는 '커뮤니티 씨어터(제목 미정)'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필자 아아시

다정한 사람을 좋아하고,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
장래희망은 따뜻한 할머니.

홍시의 '홍'을 90도 각도 시계방향으로 돌리면 '아아'가 되어 아아시이다. 
아직은 덜 익은 감이지만 어서 잘 익은 홍시가 되고 싶은 떫은 20대.


최근 한 은혜로운 30대로부터 '구원' 되어 인디언밥 운영진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