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5. 26. 15:44ㆍFeature
고재경의 마임 워크샵 - 열네 번째 기록
글| 강말금
홈플러스에서 커피 시음행사를 한 지 오 일 쯤 되었다. 손님이 안 오면 심심한데 오늘은 혼자서 잘 놀았다. 몰래몰래 어제 배운 공간 모으기를 했다. 오른손바닥을 오른쪽 공간의 어느 지점에 갖다 댄다. 공기를 내 가슴 앞으로 민다. 다음 왼손바닥을 왼쪽 공간의 어느 지점에 댄다. 공기를 내 가슴 앞으로 민다. 이젠 위의 어느 지점(코 앞)에 대고 가슴 앞으로 민다. 다음 아래 어느 지점(배꼽 앞)에 대고 가슴 앞으로 민다. 그러면 내 가슴 앞에 작은 공기의 모음이 생긴다. 내가 모은 입체의 공간이 만들어진다.
재미있다. 밀기도 하고 당기기도 하면서 공간을 만든다. 어떨 땐 진짜 같은 느낌이 온다. 어떨 땐 멋 내고 있는 것 같아 멈춘다. 작은 공기의 동그라미를 갖고 놀다가 사람들이 보는 것 같으면 멈춘다. 시간이 잘 흐른다.
어제 열 네 번째 수업을 했다. 그 동안 공연 때문에 두 번의 수업을 빠졌다. 지난주에는 낮술을 먹고 엉망으로 취해서 무단결석했다. 글도 두 편 밀렸다. 일주일동안 죄책감이 컸다. 그러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컨디션이 안 좋구나. 배우는 사람은 컨디션이 안 좋으면 안 된다. 부정으로 배우면 안 된다. 마음을 정화하고 열 네 번 째 수업에 갔고, 참 재밌게 놀았다.
현수씨 호경씨의 기막힌 글과 그림들이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데 큰 몫을 했다. 이렇게 다른 개성을 가진 매력적인 친구들과 함께하고 있구나.
선생님은 서울 진주를 왔다갔다하며 작업 중이다. 진주에서 낮술을 먹고 왔다고 한다. 하하 낮술을 먹었다니 반가웠다. 대충하고 놀자고 선생님께 제의했다. 나는 왜 그렇게 놀고 싶은지. 제의는 부드럽게 거절당했다. 이번에는 내내 워킹을 했고, 재미있었고, 마치고 나서 술을 먹었다. 현수 씨가 막걸리 두 통을 들고 왔길래. 마침 비도 오길래.
술을 벌컥벌컥 마시고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좋았다는 것은 기억한다.
1. 몸풀기
지난 시간에 열나게 한 거라고 하는데, 나는 그 때 술집에 있었다. 못 배운 것을 표내지 않으려고 다른 사람들을 훔쳐보며 흉내를 내었다. 뭐 이런 것 같다.
- 공간의 어느 한 점을 잡는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잡는다기보다는 오른손이나 왼 손을 어느 한 지점에 고정한다. 고정된 위치를 지키면서 몸을 비튼다. 팔꿈치 어깨 목 머리. 가슴 허리 골반 무릎. 역시 몸의 분리를 잊지 않는다.
- 고정점은 앞, 양 옆, 뒤, 위, 아래, 어디든 될 수 있다.
- 고정점에 의지하여 우리 몸을 움직인다.
- 고정점에 의지하여 움직이는 우리 몸이 어떤 공간을 창조한다.
어렵다. 고정점을 움직이지 않으려니 몸을 소극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하던 것을 하게 된다. 선생님은 새로운 곳에 고정점을 놓으라고 코멘트 한다. 몸을 다양하게 움직여보라고 코멘트 한다. 할수록 내가 뭐하는지 모르게 된다.
우리가 넋을 놓을 때 쯤 되면 선생님은 공간 모으기를 하라고 하였다. 그러면 집중이 잘 된다고. 오른손 왼손으로 가슴 앞에 공간을 모으다보면 뭔가가 구체적이어 진다. 그러고 나서 다시, 손으로 어딘가를 짚고, 고정점에 의지해 몸을 움직여본다.
우리가 처음에 고정점을 배운 것은 우리 몸 안에서였다. 우리 몸 - 코, 가슴, 골반 등 -을 어느 공간에 갖다 대었다 돌아왔었다. 그 다음엔 소위 말하는 벽 짚기로 더 구체적인 공간을 만들었다. 다음 단계에는 (좀 웃긴 표현이지만) 탁자 쓰다듬기를 하였는데, 그것을 하면서 우리 몸으로 만든 공간에 기대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 단계를 거쳐 이제는 그것에 기대어 몸을 비틀고, 펴고, 팔 사이로 넘고 등을 하는 것이다. 분명히 배움의 단계가 있었지만, 된다는 느낌이 3초가 지속되지 않을 정도로 접근이 어려웠다.
이유가 뭘까? 몸의 기능의 문제도 있겠지만 그것이 핵심은 아닌 것 같다. 선생님이 시범을 보일 때, 고정된 점 때문에 무게중심이 변했다가 돌아왔다가 하는 것을 보았다. 돌아오고 나서도 지난 움직임의 환영이 느껴졌다. 그런 환영들이 어떤 공간을 창조했다. 공간의 일루전을 만들기 위한 몸의 기술.
결국 공간 창조에 대한 엑서사이즈가 아닌가 싶다.
2. 워킹 1
우리가 첫 시간부터 해오던 것이 있었는데 이런 것이다.
제자리에서 즈려밟는 연습인데 온 무게를 다 실어서 천천히 밟는 것이기 때문에 역시 힘들다. ㅜㅠ 밟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고, 땅을 당겨오는 것이라 할 수도 있다.
워킹은 무엇일까? 로봇 만드는 기술 중에 가장 어려운 것이 직립보행 기술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는 걷고 있다. 다양한 균형 감각으로 걷고 있고, 심지어는 한 다리가 10cm 짧아도 걸을 수 있다. 우리가 고재경씨에게 배우는 것은 이 걷는 것의 원형이다.
걷는다는 것은 앞으로 혹은 뒤로 나아가는 것이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게중심의 이동이 필요하다. 최초의 무게중심의 이동을 만드는 것이 최초의 한 발이고, 이동된 무게중심을 받쳐서 다시 최초의 상태로 만드는 것이 다음 발이다. 이 교차가 워킹을 만든다. 그런데 이 발의 교차를 만드는 힘이, 우리가 첫 시간부터 연습해왔던 ‘밟는 힘’, ‘누르는 힘’ 이다.
최초의 한 발이 시작되는데, 즈려밟기 하기 전의 모양이다. 힘주어 천천히 밟는다. 이 누르는 힘에 의해서 다음 발이 당겨온다. 리듬 상으로 보면, 밟는 시간은 길고, 다리가 교차하는 시간은 한 순간이다.
우리는 우리 몸이 각도 큰 사선이 된 상태에서 연습했다. 몸이 사선이 되기 위해서는 보폭이 커야했지만, 보폭이 크면 뒤쪽 땅에 붙은 발이 바깥쪽으로 많이 틀어진다. 많이 틀어지면 골반이 비뚤어질 수 있으니 교정해가면서 하였다.
아니 좀 편하게 걸으면 안 되냐고 속으로 물어보았다. 답은 알고 있다. 원형과 원리를 연습하니까 그런 거지. 강한 사선, 큰 보폭, 과장된 힘, 과장된 리듬, 우리는 증폭된 갈등으로 연습했다. 아니 좀 편하게 걸으면 안 되냐고요 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부드럽게 끊기지 않고 걸어보라고 주문했다.
잘 했는지 못 했는지 모르겠고 편하다. 흐흐
3. 워킹 2
이번엔 포인트가 다르다. 순식간에 다리가 교차했던 앞의 워킹과는 달리 이번엔 ‘중’이 있다. ‘중’은 이런 것이다.
매순간 발의 교차가 있듯이, 매순간 ‘중’이 있다. 전혀 다른 리듬이다. 앞의 연습은 ‘밟고~~~~오른발. 밟고~~~~ 왼발’ 식으로 했었다. 이번에는 그냥 걸으면서, ‘중. 중. 중. 중.’ 하면서 갔다. ‘중’의 순간마다 멈춘다.
그 다음에는 ‘중, 중, 중, 중’ 하면서 간다. ‘중’의 순간을 느끼되 연결해서 간다.
‘중’의 순간은, 워킹이 스탠딩이 되는 순간이다. ‘중’을 인지함으로써 우리는, 소위 ‘막대기’를 유지하면서 걸을 수 있다. 마음이 급할 때는 상체가 하체보다 먼저 간다. 그런 것을 ‘급해 보인다.’고 한다. 느긋한 양반들은 발보다 몸이 느리게 간다. 그런 걸음들의 특징을 우리는 ‘중’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중’을 통해, ‘중’이 없는 걸음의 특징들, 우리가 직관적으로 인지해왔던, 급한 사람의 걸음, 느긋한 사람의 걸음을 만들어낼 수 있다.
‘중’은 워킹이 스탠딩이 되는 순간이다. 우리는 ‘중, 중, 중, 중’하면서 걷다가, 어느 ‘중’에서 멈춰서는 연습을 했다. ‘중’이 있으면 다시 균형을 잡을 필요가 없다. 어느 ‘중’. 그것이 스탠딩이 되는 순간이다. 우리는 ‘중’을 통해서 다시 스탠딩을 배웠다.
무대에서의 움직임 - 앞, 뒤 어느 방향성을 가진 움직임 - 이 수평으로 확장되는 순간. 그 에너지를 소멸시키지 않고 설 수 있는 순간. 중.
다음은 속도다. 빠르게 걸어본다. ‘급하게’가 아니라 빠르게. 그러려면 ‘중’을 지켜야 한다. 천천히 걸어본다. 보통의 속도대로 걸어본다.
빠르게 걷다가 느리게 걸어본다. 속도가 변하는 순간이 있다. 보통은 ‘갑자기 느리게 걷는 순간을 만들어야지’하는 의도 때문에 실패하고 만다. 속도가 변하는 순간이 중요한데, 여러 차례 사람들 앞에서 걸었지만 성공한 순간이 있었던 것 같지 않다.
하도 안 되니까 선생님은 게임을 썼다. 양 편에서 두 사람이 빠르게 걸어온다. 마주치는 순간부터 속도가 느려진다. 마주치는 순간이 속도가 변하는 순간이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을 했고, 멋진 장면이 이루어졌다. 영화 ‘화양연화’에서 두 주인공이 마주치는 순간 같은 일루전이 만들어졌다.
선생님은 이 게임이 성공하는 것을 보면서, ‘이래서 하면 안 돼’라고 한다. 게임으로 성공하면 배우들은 자기들이 되는 줄 안다는 것. 저 정공법의 선생님. 어쨌거나 그 순간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의미가 있다. 그 비밀은 무엇일까? 빠르게 걸으면서 ‘저기서부터는 느리게 가야지’ 하는 의도 혹은 노력이 긴장을 만들어내는 것 아닐까? 긴장이 그 순간에 몸이 반응하려는 것을 방해하는 것 아닐까? 그러면 마음을 비워야하나?
아직 그 순간을 제대로 안 마주쳐봐서 모르겠다. 기다려봐야지.
4. 워킹 3
모두들 한 벽에 길게 섰다.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가쁜 호흡을 한다. 역시 과장된 호흡이다. 이 호흡은 가슴에서부터가 아니라 배아래 쪽에서 근원이 된 호흡이다. 어떤 기분인지는 모른다. 가쁜 호흡이다.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호흡을 멈추고 이동하기 시작한다. 보통은 뛴다. 호흡이 우리를 뛰게 만들었다. 선생님은 호흡을 두고 내적충동이라고 불렀었다. 호흡이 우리를 어떻게 움직이게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정서가 아니라 호흡.
역시 다음에도 우리는 가쁜 호흡을 했는데 이번에는 기분 좋은 표정을 지어보라고 하였다. 그리고 출발. 나는 뛰었는데 다른 사람은 어찌했는지 모르겠다.
이것은 걷는 이유에 대한 연습인 것 같다. ‘시험에 합격하고 엄마에게 뛰어가는 길이야’와는 다른 방식의 수업. 그것을 알면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원형에 대한 탐구를 늘 권한다. 고재경씨는.
* 느낀 점
열 네 번 째 수업이다. 반을 넘었구나, 하는 순간 거의 마무리 단계가 되었다. 수업이 종합되는 것을 느낀다. 동시에 많이 해이해졌다. 선생님도 놀고 싶어하는 것 같다. 시작이 늦다. 그 대신 얘기를 많이 하고, 몸과 마음이 풀리고, 낄낄거릴 수 있어서 좋다. 익숙해지니까 사람들 앞에서 하는 것도 별로 안 부끄럽다. 사람들의 결을 느낄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조금만 더 연습하면 될텐데, 하는 것도 많다. 그러면서 가고 있다.
수업에서 자주 쓰이는 개념들을 나열하면서 끝맺겠다.
(더 많을 텐데 댓글로 달아주세요.)
몸의 분리
작용점
임의의 점
접촉
공간
리듬과 속도와 강약
대상물(외부)과 의지(내부) - 힘의 방향
수직과 수평 - 에너지의 방향
동사와 형용사
호흡 - 내적충동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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