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극단 <목요일오후한시>의 즉흥극 ‘생명 평화 상생을 위한 49일간의 정진’ 中

2010. 7. 16. 13:29Review

 

‘생명, 평화, 상생을 위한 49일간의 정진’ 中,

극단 <목요일오후한시>의 즉흥극


"내일이 계속 될 줄 알았단 말이지. 사람이 그래 어리석더라"



 

글/사진 │삐삐롱스타킹

 



조계사 앞마당에서 즉흥연기중인 목요일오후한시

 


할매전상서


 

얼마 전 할매가 할배하고 꿈에 찾아왔을 때 너무 좋았데이. 할매 보고 싶어서. 가끔 혼자 “상큼상큼 쌍가락지 먼데 보니 달일래라 잩에 보니 처잘래라..”이 노래 흥얼거린다 아이가. 옆에 누워서 맨날 이야기 해달라고 졸랐는데. 이야기 할매의 손녀는 어른이 되어도 허구한 날 얘기꺼리를 쫓아다닌다. 할매가 옛날이야기 좋아하면 가난해진다고 했는데 진짜 그리됐다. 내 억수로 가난하다.


살아계실 때 한번 안 썼던 편지를 와 쓰고 있냐고? 며칠 전 7월 8일에 할매가 좋아하는 부처님 계신 곳인 절에 공연을 보러 갔거든. 공연을 보는데 우리 할매하고 같이 와서 봤으면 진짜 좋았겠다 싶고 할매 생각이 많이 나더라.


연극하는 사람들은 ‘목요일오후한시’라는 극단인데, 할매처럼 이야기를 쭈우욱 해주면 귀신같이 뚝딱 연극으로 만들어가 짠하고 보여주는 젊은 처자들이다. 희한하게도 쫄깃쫄깃하게 만들더라.



할매야 젊은 사람들이 와 절에 와서 연극을 하는지 그 사연을 쪼매만 말할게. 할매가 옛날에 얼굴에 덕이 없다고 별로 안 좋아하던 이명박씨가 대통령이 됐거든. 마, 그리 됐다. 그래가 요새 낙동강부터 온 강을 다 뒤집고 있다 아이가. 강하고 강가에 살던 생명이 우수수 죽어나가고 있고.. 할매가 봤으면 혀를 끌끌 차고 차마 눈뜨고 못볼끼다.


또 40여일 전에 문수스님이 죽은 생명을 끌어안고 소신공양을 하셨다 아이가. 우야꼬!! 불교신도들이 문수스님 49제인 7월 17일까지 매주 4대강을 살리기 위한 기도와 문화행사를 하고 있는 중이라. 나도 연극도 볼 겸 그 기도회도 궁금해서 가봤제. 마음이 되게 아프더라. 맞다 할매야, 그 스님이 무지몽매한 중생들 많이 깨쳐주고 계신다. 그야말로 소신공양이구만.


조계사 앞마당의 문수스님 소신공양 분향소

  


할매도 들어봤제? 서울에 있는 큰 절, 조계사. 거기 딱 도착했더니 비가 부시부실 오는데. 대웅전의 큰 부처님이 내려다보고, 내 팔로 두 아름은 족히 될법한 회화나무가 있는 마당에서 하더라고. 사람들은 문수스님 모셔놓은 단상에 요래 가지런히 앉아 계시고. 꼭 문수스님 품안에 안겨 있는 것 같더라.


배우들이 비를 맞으면서도 눈썹 하나 까닥않고 사람들한테 얘기를 들려달라고 안하나. 마, 사람들이 얘기를 시작하더라. 낙동강 건너다니던 배위에서 수박이 깨져서 모타 다 같이 묵었는 얘기, 반짝거리는 조약돌하고 해지는 모습이 사라질까봐 한숨 쉰 얘기. 그것뿐이가 할매 겨울강 걸어봤나? 우리 고향이 남쪽이라 꽁꽁 얼었는 강을 본적이 있을 턱이 없제, 맞제? 할매하고 한번 강화도라도 가봤어야 됐는데, 미안테이. 나는 한번 겨울 강에 갔는데 쩌엉, 쩌엉 하는 소리에 얼마나 무서운지 설설 기어가 강을 건넜다 아이가. 한 젊은 처자가 얼음땡이 동강을 걸어가면서 그 소리를 들었다고 그걸 연극으로 만들어달라고 하더라.


사람들 얘기를 처연히 듣고 있자니 별별 생각이 다 나더라. 할매하고 하서(주. 필자의 고향마을 지명) 그랑(주. 사투리. 도랑보다 크고 강보다 작은 물)에 앉아 수박 먹던 거, 빨래 하던 거, 그랑가를 타박타박 걷다가 “할매 내 힘들다.”하면 “다 큰기! 으이구야, 요 온나 업히라.” 등 내밀어주던 해질 무렵.


나도 강하면 할 얘기 하늘만큼 땅만큼 많테이... 사람들도 할 얘기가 참 많은가 보더라.

그기 다 기억이고 가슴에 얹혀 있는 그림아이가. 그쟈?


나는 할매하고 같이 걷던 강가, 바닷가, 울 동네 골목길이 쫌 변하더라도 그 자리에 있어줬으면 좋겠다. 통째로 사라지면 할매하고 나도 통째로 없어지는 것 같아가지고 너무 가슴 아프다. 봐래이!! 벌써 할매하고 같이 서있었던 바닷가 모래언덕도 해안도로 만들면서 없어짔고, 봉길 가는 길 쪽의 해안선 일부도 경주방사능폐기장 만든다꼬 바다를 막았데이. 상계폭포 있는 쪽에는 골프장이 들어와가 맘대로 가보지도 못한다.

희한하다.
위에 계시는 분들이나 돈 많은 사람들은 자연이 없어지는 거라고 생각을 못하는 게 분명타. 사람들이 이래 가슴아파하는데. 모르면 가만이나 있던가 참내.


‘목요일오후한시’ 배우들이 이래 안타깝고 재밌는 추억을 척척 극으로 만드는데 할매가 봤으면 “하이고, 그래. 우째 이래 잘 하노. 용타, 용테이”했을 끼다. 앉아서 보던 사람들도 자기들이 얘기 해놓고 넋이 빠지라고 보더라고. 을마나 재밌는지. 한 시간이 후딱 갔네. 4개 이야기가 모아져가 배우들이 한 개의 이야기로 쪼로미 쌓기 시작하는데, 어렵지 어렵고말고. 4대강 공사하는 게 요즘 신문에 오르락내리락하고,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고 결론 내리기가 힘든 일이라.


어쨌거나 지금 개발하려는 사람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딱 오늘의 모습만큼 보이더라. 할매 혀 끌끌 차는 소리가 들린다. 흐흐.


옛날에 폭풍치던 날 거북이 한 마리가 나타났던 거 기억나나? 그때 마을 아저씨들은 잡아먹자고 난리를 치는데 동네 어르신들이 호통을 쳐서 멈췄던거. 용왕이 잠깐 들어오신 거라고, 그거 잡아먹고 동네 말아먹고 싶으면 해보라고. 내는 가끔 그 생각이 난다. 할매야.


진짜 용왕이 온 거는 아이더라도 목숨이 있는 거를 함부로 대하지 않았던 할매들이 지혜롭다고 해야 하나. 자연스러운 그 모습, 마음이 부족하고 그립고 글타. 지금은 아무도 우리한테 할매들처럼 몸에 배이도록 갈켜주지를 않는다. 학교? 그런 거 안가르쳐준다.


할매들하고 ‘목요일오후한시’ 배우들하고 만나서 얘기를 만들어보라고 하면 밤새워도 밑천이 안 떨어질 것 같은데, 할매는 여기에 없네. 할매들이 떠나는 만큼 하늘이랑 땅, 물, 사람이 같이 어울려 있는 얘기들이랑 생활습관들도 자꾸 더 사라지고 있고. 나도 마 서울 사람 다 됐다 아이가. 할매가 보면 슬퍼할랑가.




할매야, 그래도 절에서 연극도 보고 돌아가신 스님도 뵙고 해서 마음이 죽을만치 슬프지는 않다. 내가 안 잊으면 되니까. 문수스님도 기억하고 그분 마음도 헤아려볼라꼬 노력도 하고. ‘생명, 평화, 상생을 위한 49일간의 정진’(이름이 쪼매 어렵제?) 기도회에 온 분들의 정성도 가슴에 잘 담아뒀다. ‘목요일오후한시’ 배우들은 또 쫌 있다가 극장에 가서 만날라꼬.


7월 17일에 문수스님 49제라 큰 행사를 한다던데 혹시 못가면 극랑왕생하시라고 가까운 절에 가서 불교신도 흉내라도 내볼까 싶다.


오늘이 지나서 내일이 오면 변한다는 것을, 영영 사라질 지도 모른다는 것을 사람들이 잘 기억했으면 좋겠구만. 할매한테 이번 여름에는 꼭 부산에 가서 할매 인생내력 인터뷰한다하고 약속해놓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마 못했다 아이가. 할매가 을매나 기다렸는지 다 아는데. 내일이 계속 될 줄 알았단 말이지. 사람이 그래 어리석더라. 나도 그렇고.


조계사에서 나오는데 불경을 걸어놨더라. 그게 딱 할매 떠나고, 세상의 많은 것들을 지키지 못하고 보내는 내 맘 같아서 할매한테 불경 한자락 남기고 편지를 접을라칸다.

또 꿈에 한번 찾아온나. 할매, 너무 보고 싶고 그립다.


 

“수천의 생을 반복한다 해도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만난다는 것은 드문 일이다.

 '지금' 후회 없이 사랑하라.

 사랑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입보리행론-





 

 

필자왈)

할머니와 저는 돌아가는 그 즈음까지도 이렇게 반말로 대화하면서 지냈습니다.

아버지께 반말하던 버릇은 사춘기때 고쳤는데
할머니와는 돌아가시는 날까지도 고치지 못했습니다.
아니, 별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인디언밥 덕분에 제게는 둘도 없는 동무였고 스승이셨던 할머니께 편지를 써보게 되네요.

할머니들의 지혜와 정신이 그리운 나날입니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위한 진혼곡을 매일매일 불러야 할까요? ^^;






생명, 평화, 상생을 위한
49일간의 정진
2010. 6. 8(화) ~ 7. 21(수)
매일 저녁 7~9시 조계사 앞마당
4대강 생명살림 불교연대



극단 목요일 오후 한시 소개

극단 목요일오후한시
라는 극단명의 유래는,
창단 멤버들이 매주 목요일 오후 한 시마다 퍼포먼스를 하던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즐거움과 호기심을 원동력으로 하는 목요일오후한시는 즉흥연극을 전문으로 하는 공연예술창작집단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며, 이 밖에도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퍼포먼스와 게릴라 공연, 공동창작극, 즉흥연극 워크숍, 다양한 대상과 만나는 문화예술교육 등 다양한 실험적 활동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습니다.

목요일오후한시의 즉흥연극은
관객의 이야기를 듣고 즉흥적으로 만들어지는 독자적인 형태의 공연으로서, 관객과의 대화는, 극장 무대는 물론이고 교실이나 카페, 시장 등 일상 속 생활공간에서 때론 엉뚱하고 때룬 진지하게 이어져갑니다.

목요일오후한시의 즉흥연극은
연극입니다. 다섯 명의 배우와 한 명의 악사가 마련한 연극입니다.
즉흥입니다. 미리 만들어진 연극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어갑니다.
관객입니다. 이 연극의 작가이자 주인공은 관객입니다. 관객의 이야기로부터 극은 시작됩니다.
대화입니다. 이야기하는 사람을 향해, 그 자리에 함께 모인 모든 이들이 귀 기울입니다. 그리고 배우들과 다른 관객들은 함께 응답합니다. 눈빛으로, 손짓으로, 그리고 말없는 미소와 박수로.

목요일오후한시는
즉흥연극과 다양한 형태의 실험 활동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며 척하면 척하는 공연을 할 수 있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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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삐삐롱스타킹
이것저것 재미난 걸 하지만 딱히 뭘 한다고 말하긴 어렵네요.
제가 뭘 하는 사람일까요. 알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