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7. 19. 21:45ㆍReview
<곶나들이>
작가 이상의 잃어버린 신체의 되살림
글 │김민관
2010년 4월 금천예술공장 PS333, 극연구소 마찰의 <곶나들이>쇼케이스
보안여관에서 이상을 만나다
작가 이상은 개인적으로는 도무지 접근할 수 없는 듯한 낯선 타자의 위치에 서있다. 그의 시들이 많이 회자되는 것과는 별개로 그의 시는 친숙하게는 다가오지 않는, 미궁을 헤매는 느낌을 준다. 천재 시인이란 호칭, 초현실주의적 시상들과 이십 칠세의 요절이 그와의 대화를 가로막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에 대한 아우라는 마치 안개처럼 불투명하고, 유리처럼 투명하게 나를 비춘다.
우연히 창덕궁 옆을 지나치다 벽보에 붙은 <곶나들이>라는 보안여관에서의 무료 공연의 소식을 접하고 들어가게 된 이 공연은 참고로 지난주 6일간 진행되고 막을 내렸다. 스무 명을 제한으로 ‘극연구소 마찰’의 클럽에서 미리 예약하고 볼 수 있는 형태여서 예고 없이 이곳을 찾은 나로서는 기다리다 오지 않는 사람의 자리를 대신했다.
허물어져 한때 여관 기능을 했으리라 잘 짐작되지 않는 통의동 보안여관의 좁다랗고 휑하며 낮은 천장의 뼈대와 거친 벽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독특한 내부 지형을 살피자면 여기가 전시장으로 쓰이든 퍼포먼스 장으로 펼쳐지든 장소 특정적(site-specific)인 성격의 작업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선다.
퍼포머로서 연출의 두드러짐
이 작업에서 가장 특이한 형태는 그럼에도 연출가의 개입이다. 퍼포머들이 방 안에 누워 자의식의 폐쇄적 장을 엉뚱하고도 무한하게 확장시켜 나가는 현실의 무화된 공간을 만드는 이들의 행위로부터 출발한 공연에서 연출은 북을 쳐 퍼포머들이 나옴을 알린다.
이는 이 좁은 공간에 사실상 스무 명이 넘는 관객들이 들어차 숨바꼭질을 하며 극을 바라보아야 하고, 극의 흐름에 따라 관객이 이동하고 또 공간에 적절하게 배치되어야 하기에 이를 조율하는 사람으로서, 극을 여닫는 지위를 처음부터 명시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후 연출은 퍼포머의 다음 노선을 조절하는 역할을 동시적으로 진행하게 된다.
게다가 연출은 중간 중간 내레이션을 통해 시간과 배경을 상정하여 맥락을 삽입한다. 배우들은 이상의 시구를 무의식적으로 체화해서 읊조리는 식으로 발화하기에 기실 이상의 언어는 시를 낭독하는 형태가 아니라 그것을 내포하는 신체에서부터 자동 출현하며 시에 투영된 이상의 자의식과 이상이 실제 발화했을 때를 짐작하여 모사하는 것 사이에서 묘한 접점을 이룬다.
육화되는 이상의 시구, 합창되는 이상의 자의식 공간
언어는 부유하는 신체를 통해, 그리고 이상의 시를 육화하는 캐릭터들의 무화된 경계에서 여러 신체들로 자연 퍼져나가게 됨을 통해, 마치 이상의 자의식적 분출이 현재화되는 느낌을 준다. 곧 초현실주의적이고 불가해하지만, 마치 자동기술법처럼 무의식에서 배태되어 나온 시어들 같지만 이는 신체로부터 발화되는 곧 몸의 언어로 체현되는 지점을 보여줌으로써 꽤나 단단하게 이상을 되살려 낸다.
신체 언어를 반복적으로 수행하고 서로 교차하며 발화를 점층적으로 고양시키거나 하는 배우들(사실 이상으로 상정된 남자 주인공 외에 몇 명의 여자가 똑같은 복장을 하고 등장하는데, 금홍이란 주체에 귀착되지 않는, 이들의 경계는 사실상 분간키 어렵다)에게 다가가 연출은 연기를 하는, 아니 그 자신이 퍼포머로서 무언가를 지시한다.
곧 배우는 연출이 미리 상정한 맥락 안에 들어가 발화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것을 연출은 조심스레 들어가 깨고 다음 맥락 안에 배우들을 투여시키는 것이다. 이는 현실적으로 이상의 생애를 전반적으로 관통하며 그의 시어들을 그 속에서 배치하여 이상의 자의식을 전체적으로 유기적인 언어로 보여주는 데 있어 효율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로써 극적 몰입이 아닌 신체가 작동되고 있는 현재에 개입함으로써 새로운 맥락을 여는 것이다. 연출은 작위적인 출현이 아닌 일종의 현재의 지점을 극 속에서 선택하고 극에 투여하며 매개자의 입장에서 극의 집중을 오히려 강화시키는 측면이 크다.
이는 시간별로 사건이 놓이기는 하지만, 유기적으로 그것들이 엮이는 방식에 있어서는 결코 매끈한 매듭들을 찾을 수 없는 이 극에서 배우들의 신체 언어는 그 속에 단단하게 자리하고 대신 맥락을 계속 재배치하여 다시 시간의 경계를 무화시키는 가운데 언어들이 차곡차곡 쌓여 나중에는 그것이 꽤 단단하게 이상의 시세계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연출의 무한한 개입
주목할 만한 지점은 그러한 연출의 개입에 따른 현실과 극의 연결 지점의 생성이다. 퍼포머의 과장된 연기를 통한 퍼포먼스의 극적 양상을 벗어난, 시간을 머금는 현재적 지점에서의 연출가가 곧 퍼포머가 되는 것, 그리고 이상의 시를 이상의 자의식적 장에서부터 다시 신체언어의 발화에서부터 시작하여 그것을 하나로 엮어 만드는 것.
연출은 시 구절을 알려주는 것 같기도 하고, 장소를 지정하기도 하며 “하나. 둘. 셋. 넷!” 등을 통해 “제()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오감도)가 잇따라 나오는 배우의 말을 미리 지정해주기도 한다. 배우는 돌고 또 바닥에 털썩 앉으면서 발화했다. 한편 또 어디로 이동할 것을 신체 접촉으로 알려주기도 한다.
연출은 지시를 하지만 일종의 암시, 최면에 걸려 있다. 그리고 그것을 깨고 다음 퍼포머의 자의식을 갖는 출구 역할이 되기도 하고, 또 감독으로서 극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을 관객과 여기서는 일종의 극에 공모하는 참여자로 위치 지켜보기도 하는 것이다.
배우들은 곧 연기든 퍼포먼스든 시간을 측정하지 않는 상태, 곧 대부분 시어의 몸을 통한 발현을 수행하는 상태에서 시간을 개의치 않고 그것에 몰입하는 형태에 있고, 이에 감독의 디렉션이 일종의 조타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상을 현재적 순간에 마주하다
<곶나들이>는 내레이션과 대사를 통한 이상의 삶과 시어, 마치 합창과도 같은 시어의 울림, 보안여관의 역사적 공간에 느껴지는 존재성과 시간성, 신체언어들의 단단한 매듭, 연출의 현재성을 지정하고 선택하는 수행성(performativity)은 총체적으로 어우러져 짧지만 단단하게 이상의 자의식에 성큼 다가서게 만든다.
곧 이상의 생각과 이념, 행적이 아니라 그 반쪽을 구성하며 멀어져간 망령으로부터 되살림은 신체라는 모호하지만 실재적인 기제인 것이다.
극연구소 마찰, <곶나들이>
일시 : 10.07.06 ~07.11 (장소 : 보안여관)
Original_이상 作 <오감도>
Art director/Drawing_김철승
Executive director_배재휘
Stage manager_강민재
Set design_황인화
Music&Sound design_서정적 전위,숨(이상욱)
Cast_강민재, 김신록, 안병식, 유은지, 조아라
All production by 극연구소 마찰
사진 출처 : 극단 마찰 홈페이지
필자 | 김민관
mikwa@naver.com
공연예술 프리랜서 기자 및 자유기고가
문화예술 분야에 전반적인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현장을 쫓아다니며 기록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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