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제5회 피지컬씨어터페스티벌: 몸,충돌하다 <댄스씨어터창-미친백조의 호수>

2010. 7. 18. 14:40Review

제5회 피지컬씨어터페스티벌

<몸, 충돌하다>





댄스씨어터창 - 미친백조의 호수

 

생태 보고서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밀듯 쓴 픽션 리뷰


글 │이현수




영이는 예쁘지는 않지만 예쁜 것을 좋아하는 여자이다. 영이가 오늘은 대학로에 공연을 보러 간다고 거울 앞에서 화장도 하고 무슨 옷을 입을까 고개를 갸웃갸웃 한다. 화장이 너무 과하진 않은지 옷은 자연스럽게 어울리는지, 골라 입은 옷도 다시 갈아입고 했던 화장도 살짝 흐리게 하는 걸 보면 영이의 미적 기준은 단순한 듯 보여도 꽤 까다롭다. 그런 영이에겐 한 가지 소원이 있다. 고전 발레인 ‘백조의 호수’를 보는 것이다. 마법에 걸린 백조와 왕자의 사랑 이야기가 아름다운 음악과 무용수들의 몸을 통해 펼쳐진다고 생각하면 영이는 잠시지만 꿈을 꾸는 것 같을 거라고 상상하곤 했다.


어느 날, 영이에게 환경운동을 하는 친구가 ‘백조의 호수’를 보러가자고 한다.


영이: 아니, 이게 꿈이야 생시야. 그래, 당장 갈게!

친구: 대신 조건이 있어. 보고나서 생태 보고서를 써야해.

영이: 느낀 그대로를 쓰면 되는 거지? 그래, 당장 갈게 =33 

그토록 단순한 영이는 그렇게 ‘미친 백조의 호수’로 가게 되는데...


호수 앞에서 만난 친구가 불안한 얼굴로 영이를 맞는다.


친구: 영이야, 근데... 저기... 호수가 오염 되어서 백조가 미쳤대. 괜찮겠니? 

영이: 그래? ...아쉽지만, 미친 백조도 아름답겠지? 백조는 백조니까. 슬프려나? 비극인거니? 


두 사람은 어두운 정보 소극장 숲으로 들어간다.


푸른 호수, 무대 정면에 관객을 마주한 수면 위로 관객들의 표정이 일렁인다. 수면은 우릴 흐릿하게 비춰. 그건 아름다워. 하지만 어쩐지 저 수면은 우릴 싫어하는 것 같이 사람들의 모습을 일그러뜨리고 있네? 특히 저기 수면 안에 있는 검은 머리의 붉은 백조는 왜 날 째려보고 있지? 내가 여기 객석에 앉아 있는 것이 어리석다는 듯 말이야. 아니, 나의 오해일거야. 관객으로서 우아함을 잃지 말아야지, 흠흠.    


백조는 노란 오리발을 끼고 갈망의 몸짓으로 바닥에서 춤을 추고는 이내 몸 속에서 황금빛 알들을 분출한다. 새끼 백조들이 나오려는 걸까. 하지만 새끼 백조들은 보이지 않고 쓰레기통에서 창백한 닭발들이 쏟아져 나온다. 저 백조는 닭 잡아먹고 오리발을 내민 건가? 백조들이 환경오염으로 닭이 된 건가? 어느 아기가 갖고 놀던 장난감일까, 닭 모양 장난감이 ‘삑삑’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울고 있는 것 같네?

이 모든 상황이 영이의 머리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일렁이는 수면 위로 굶주린 아이들의 얼굴이 지나가고 백조의 분노가 지나간다. 그리고 그 분노는 때로는 춤으로, 때로는 수면에 황금빛 알들을 집어 던지는 몸짓으로 표현된다.

백조야, 너는 지금 아프니? 화가 난거니? 나 역시 호수를 오염시키는데 일조했다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너의 절규와 분노가 나에겐 왜 실감이 나지 않는 걸까... 게다가 너의 분노는 너의 몸처럼 빨갛게 타올랐는데도 여기 이 극장은 왜 이리 추운 걸까... 에어컨이 쉴 새 없이 극장을 덥히고 있다.

마지막으로 백조는 장렬하게 전사한다. 온 몸에 검은 먹물을 당당히 맞으며 꼿꼿이 선 채로 점점 선명해지는 황금빛 조명 속에서 사라진다. 백조는 검은 눈물을 흘렸을까. 검은 먹은 황금빛으로 반짝거리며 백조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장식한다. 차이코프스키의 웅장한 음악과 함께.

짧은 시간동안에 많은 것들이 무대로 쏟아져 나왔고 위(胃)가 크지 않은 영이는 그것을 소화하느라 소화불량에 걸릴 것 같았다. 영이는 백조가 추었던 아름다운 춤 몇 장면을 소화제삼아 간신히 넘기며 다시금 호수를 천천히 거닐었다.      


 


이번에는 흰 머리의 검은 옷을 입은 백조가 작은 지구를 들고 무대에 등장한다. 이 백조는 몸에 장애를 갖고 태어난 것 같다. 백조가 들려준 자신의 탄생 이야기로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엄마 뱃속에서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은 희망이 없다고 했지만 점차 숨을 쉬고 생명을 얻어갔던 시간들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뱃속, 검은 구멍에서 태어난 백조에게도 희망을 권하며 날아보라고 말한다. 공중으로 띄워보는 털이 빠진 창백한 새끼 백조, 공중으로 띄워보는 희망, 칠면조를 닮은 백조였다. 하지만 새끼 백조는 말없이 털썩, 땅으로 떨어진다. 백조는 발레 슈즈를 신은 두 발을 꼿꼿이 세워보려 시도하지만 몸이 뜻한 대로 따라주질 않는다.

기대했던 희망이 사라진 걸까, 이제 백조는 발레 슈즈도 벗고 흰 가발도 벗고 검은 옷도 벗는다. 그리고 자신의 등 뒤로 영상을 투사한다. 살아서 꿈틀거리는 흙, 그 흙을 어루만지고 주무르고 그 사이로 삐져나온 꿈틀거림이 마른 등 위에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나의 몸도 언젠가는 흙이 되겠지. 더 오랜 시간이 흐르면 바위가 될 수도 있겠고. 그전에 먼저 부서져야 하겠지. 그리고 나서 백조는 바닥에 흥건한 검은 먹물을 몸에 적신다. 무대 바닥을 뜯고 그 안에 있던 흰 깃털들을 몸에 덧붙인다. 앙상한 백조의 뼈 위로 붙은 깃털들. 탈모에 걸린 백조처럼 힘없이 깃털들이 자란다. 음악과 함께 춤이 흐르고 차이코프스키 씨는 이번에도 장면의 마지막을 장식해 주신다.      




숲에서 빠져나온 영이와 친구는 대학로를 걷는다. 예술의 향기가 살아있다는 구호 사이로 가게의 조명들은 저마다 자기를 뽐내느라 여념이 없다. 흰 쓰레기봉투에 담긴 묵직한 것들이 여기저기 더미를 이루고 있다.

백조들이 춤을 추었다는 건 언제 적 이야기지? 아주 오래전인 것 같아. 오늘 미친 백조의 호수에 있던 백조들은 언제 춤을 춘거지? 외마디 비명 사이로 추었지. 영이는 미친 백조의 호수에 흩어져 있던 흔적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떠올리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난 전혀 그런 걸 알 능력이 없어. 단지 느끼고 싶어. 백조의 호수는 나에게 생명을 느끼게 해. 예술도 자연도 나에게 생명을 느끼게 해. 살아 숨 쉬며 두근거리는 심장을 느끼게 해. 난 그걸 느끼고 싶어. 삶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다는 게 철 없는 행동이 될 수도 있겠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상처를 줄 수도 있겠지? 아니, 백조는 여전히 아름다울 거야. 백조는 백조가 되어 가고 있을 거야. 자신이 태어난 그곳으로 돌아가고 있으니까. 백조의 호수로...


밤의 한강을 보는 영이, 강물 위에 오리배가 둥둥 떠 있다. 반짝이는 수면, 검은 강물에서 가로등 금빛이 춤을 춘다. 밤의 강가는 아름다워. 집들은 잠들고 검은 몸의 사람들은 작아져. 감상에 젖어 있던 영이 앞으로, 물결을 타고 쓰레기들이 둥실둥실 다가온다. 이곳은 모든 걸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있어. 밥도, 옷도, 차도, 전기도, 가스도, 종이도, 비닐봉지도, 사람도, 관계도, 문화도, 예술도, 사랑도, 그리고 꿈조차도... 그런데 백조는 사실 그조차 모를 거야. 백조는 분노조차 할 줄 모를 거야. 단지 아프겠지.  


친구: 영이야, 보고서 다 썼니? 마감이 내일까지야.

영이: 응... 다 썼어. 근데 거기에 있던 백조에게 묻고 싶은 게 있어.

친구: 뭔데? 내가 다음에 만나면 물어봐 줄게.

영이: 어, 그건... 어떤 걸 보고 이 작품을 만들게 되었는지 묻고 싶어. 아주 사소하고 작은 거라고 해도 뭔가 백조에게 충격을 준 무언가가 있어서 그렇게 절규를 했던 게 아니겠니? 난 그게 궁금해.

친구: 에이, 뭐 그런 걸 묻냐?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냐, 빨리 원고나 넘겨! 

      




제5회 피지컬씨어터페스티벌
댄스씨어터 창
미친백조의 호수
7월 3일~4일 정보소극장

움직임으로 환경문제를 이야기한다!
댄스씨어터 창의 <미친백조의 호수>는 환경오염에 대한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이번 작품은 보다 사실적인 시각으로 작품을 구성해 선보인다. <미친백조의 호수>는 현대무용을 바탕으로 그 위에 연극적인 스토리 구조를 덧입히고 공연의 시각적 요소를 통해 구체적인 메시지로 소통하려 한다.

장애우와 비장애우의 만남
<미친백조의 호수>는 작품주제의 효과적인 전달뿐 아니라 움직임이 갖는 다양함을 보여주기 위해 안무가 김남진과 장애인 행위예술가 강성국의 협업으로 만들어졌다. 이를 통해 인간의 각기 다른 몸의 탐구와 움직임을 보여주며 작품창작과 실현자의 보다 폭넓은 경계를 선보인다. 두 개의 상반된 방식을 통해 인간 몸의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없애고, 인간의 몸이 삶의 다양한 이슈와 맞닿아 있음을 보여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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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이현수. 춤추는 것을 좋아하고 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