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8. 4. 11:14ㆍReview
연희집단 THE광대
<아비찾아 뱅뱅돌아>
은유의 힘
글│ 조원석
뱅뱅 돌고 도는 세상. 붉은 점은 아비를 찾아 뱅- 하고 한번 돌고, 광대들의 버나도 뱅뱅 돌고, 이집트 수피춤의 치맛자락도 빙글빙글 돌고, 저글링의 공도 오르락내리락 돌고, 상모 끝에 매달린 끈도 휙휙 돈다. 돌아도 이렇게 심하게 도는 연극은 처음이다.
80먹은 점쟁이 노파가 애를 낳고 죽기 직전에 점을 친다. 직업의식이 투철하다. 그래서 자식의 이름도 붉은점이다. 붉은점은 아비가 셋이다. 아비가 셋이라는 것은 진짜 아비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80먹은 노파는 알고 있겠지만 점을 쳐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는다. 정말이지 직업의식이 투철하다. 점을 쳐서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미래의 일이다. 그래서 노파는 앞날에 대해서 만 이야기 한다. 세 아비들에게 15년 후에 붉은점이 아비를 찾아 갈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동안은 그냥 버려 두랜다. 아비들은 울면서 붉은점을 버린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붉은점은 지리산에서 무럭무럭 짐승처럼 잘 자란다.
어느 날 짐승 같은 붉은점 앞에 가련한 한 소녀가 나타난다. 소녀는 총총 잘도 뛰어다닌다. 그래서 이름도 총총이다. 대뜸 짐승처럼 총총에게 대쉬하는 붉은점. 총총은 자기를 찾아오면 같이 살아줄 것이라고 말하며 달아난다. 짐승처럼 달리는 붉은점은 총총 달아나는 총총을 쫓아가지 못하고 모범생처럼 질문을 한다. 어디로 가야 만날 수 있냐는 붉은점의 질문에 붉은점의 아버지 옆집에 산다고 답하는 총총.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붉은점은 아비를 찾아 뱅- 하고 돌아야 한다.
첫 번째 아비를 찾는 것은 쉽다. 손등에 있는 붉은점에게 물으면 가르쳐줄 거라는 80먹은 노파 점쟁이 엄마에게서 들은 말이다. 이 말은 붉은점이 태어난 날 들려준 말이다. 태어난 날 엄마가 한 말을 기억하고 있는 붉은점의 기억력은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그리고 진짜 이빨로 붉은 점을 물어서 아비를 찾아가는 응용력도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첫 번째 아비는 버나놀이를 통해 붉은점이 네발이 아닌 두발로 걷고, 인간답게 행동하도록 가르쳐준다. 가르치다가 아비는 속이 타서 죽는다.
두 번째 아비를 찾는 것도 쉽다. 반복학습에 의해서 붉은 점을 이빨고 물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붉은점은 알고 있다. 두 번째 아비는 수피춤을 추면서 붉은점에게 글과 예절을 가르쳐준다. 갑자기 붉은점은 예의바른 짐승이 되고 아비는 머리가 터져 죽는다. 어느 덧 붉은점은 죽음을 부르는 무시무시한 사나이가 됐지만 관객들은 은유와 해학 사이에서 웃다가 웃다가 한다.
세 번째 아비를 찾는 것도 쉽다. 이제 붉은점이 이빨로 붉은 점을 무는 장면은 재미없다. 그래도 붉은 점을 물어야 하는 붉은점의 연기는 반복되는 지루한 행위를 예술로 승화시켜야 만하는 배우의 비장함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더욱 야무지게 물어대는 붉은점은 세 번째 아비를 찾게 되는 데.... 어라? 아비와 총총이 함께 있다. 총총은 세 번째 아비와 그렇고 그런 관계다. 세 번째 아비는 총총을 아내로 맞이할 생각이다. 붉은 점은 지금까지 배워온 인간다운 행동과 언어와 예의를 다해 아비에게 대든다. 결국 총총을 두고 오줌발 멀리 쏘기 내기를 한다. 오줌발은 상모로 대체되고 거대한 상모를 돌리는 아비에게 내기에서 지지만 아비는 죽음을 부르는 사나이 붉은점의 기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상모를 돌리다가 기운이 빠져 죽는다.
죽은 세 아비들을 어머니 무덤으로 가 장례를 치르는 붉은점과 총총은 장례와 함께 결혼식도 한다. 이 때 죽은 아비와 엄마가 나타나 결혼식을 축하하는 이해불가한 일들이 벌어지지만 이 연극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놀이로 탈바꿈해 버린다.
분명 이 연극은 비논리적인 이야기의 전개와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들을 많이 갖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비논리적인 이야기의 전개가 왜 거북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은유에 대한 추억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이 소꿉장난을 할 때 놀라운 상상력으로 밥도 만들고 반찬도 만들고 아빠와 엄마를 만들 때 사용하는 것이 은유다. 모래가 밥이 되는 것과 버나가 애기가 되는 것에는 차이가 없다. 아이들에게 은유는 곧 놀이였고, 이 연극에서도 은유는 놀이다. 아마도 이 연극을 보면서 저절로 입이 벌어지는 웃음을 짓는 것은 잊고 있었던 놀이에 대한 그리움일 지도 모른다.
점점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고 현실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서 사람들은 점점 은유와 해학은 전문가들의 영역이라고 치부하기 시작한다. 문학 작품에나 나오는 것이라고 말이다. 다 큰 어른이 은유와 해학을 일상 속으로 끌어들인다면 조금은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 볼 것이다. 아마도 그런 어른이 있다면 어쩌면 광대 같을 지도 모르겠다.
리뷰는 여기까지 입니다. 지금부터는 이 연극과 큰 연관성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이 리뷰에서 연극의 스토리를 설명하는 부분은 해학적으로 쓸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해학과 재미가 있는 연극을 보았으니 그렇게 쓰는 것이 이 연극의 리뷰로써 알맞은 색깔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는 이 연극을 통해 확장된 생각들을 쓸 겁니다.
어른들의 놀이라는 것은 술과 잡담 외에 여러 취미 활동이 있겠지만 그 어느 것에서도 은유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것은 현실을 즐기는 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현실에서 느끼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목적을 둔 행위들일 것이다. 그 행위들이 즐거울 수는 있지만 현실을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현실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자신을 변화시킨다는 것과 같다. 자신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자아를 강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아를 약화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詩를 쓰는 것과 같다.
나는 나룻배가 되기도 하고, 산유화가 되기도 한다. 세상 속에서 나를 발견 할 수 있는 것은 곧 세상이 거대한 은유이기 때문이다.
나를 통해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 있는 나를 발견하는 것. 그것이 은유의 놀이다. 나를 통해 세상을 보는 것은 세상 속에 나를 가두는 것이다. 반면에 세상 속에 있는 나를 발견하는 것은 나를 세상 속에 풀어 놓는 것이다. 그래야 세상 속에서 놀 수 있는 것이다.
<아비찾아 뱅뱅돌아>
경민선 작/김서진 연출
2010년 7월 22일- 7월 25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신통력 있는 다섯 개의 붉은색 점을 물려받은 아이, '붉은점'은 태어나자마자 어머니가 죽고 세 명의 아버지에게 버림받아 지리산 금강 소나무 숲에 남겨진다. 다행히 산신령의 도움으로 자라나서 십오 세가 된 붉은점. 그는 짐승처럼 걷고 짐승처럼 말하며 짐승처럼 운다.
그러던 어느 찌는 듯한 여름 날, 붉은점은 건강한 소녀 총총을 보고 반한다. 붉은점은 다짜고짜 총총에게 같이 살자고 졸라댄다. 그러나 총총은 '나는 네 아버지 옆집에 살고 있으니 따라와 볼 테면 따라와봐'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만 남기고 사라진다.
결국 붉은점은 총총을 다시 만나기 위해 아버지들을 찾아가는 긴 여행을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첫 번째 아버지에게는 인간다운 몸놀림을, 두 번째 아버지에게는 삶에 필요한 지식과 예절을 배우게 되고 세 번째 아버지와 만나서는 인생의 아이러니와 희비를 나눈다.
아버지들을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붉은점은 점차 인간다운 모습으로 성장을 하게 되고 그토록 그리워하던 총총과 다시 만나 행복을 맛본다.
글쓴이 조원석은 서울 271번 버스 승객, 진로 마켓 손님, 이 현수의 남편. 상추를 키우는 정원사. 구피 열아홉마리를 키우는 어부. 도장 자격증이 있는 페인트공. 시나리오 '벽에 기대다'를 50만원에 팔고 남들한테 자랑하는 사람. "현실"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쓰다가 말다가 하는 게으른 사람.
그 외에도 수많은 "나"가 있어 어떻게 소개해야 할 지 모르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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