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2010프린지페스티벌 실내공연예술 작품 중 주관적이고 한정적인 ‘베스트 초이스 3’

2010. 9. 19. 06:56Review


2010프린지페스티벌 실내공연예술 작품 중
주관적이고 한정적인 ‘베스트 초이스 3’


글_김민관

 

프린지페스티벌의 모든 실내공연예술 작품을 다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된 게 작년부터인 것 같다. 대부분의 작품이 한두 번의 공연이 치러지는 가운데 평일까지 3시의 실내 공연이 없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떤 작품이 괜찮을지는 대다수 신작, 초연 가운데서 보기 전에는 완전히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올해는 그다지 많은 작품을 보지 못한 가운데 정신없이 프린지페스티벌이 지나가고 말았다. 평가의 차원은 물론 아니지만, 소신껏 좋았던 작품을 공개적 장에서 발화하는 데는 내 스스로에 대한 솔직함과 나름의 신념이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한다.

개인적으로 본 모든 작품에 대한 리스트와 짧은 글들을 블로그(mikwa.blog.me)에 기록해보았다. 좋았거나 좋지 않았거나 하는. 그렇지만 그 모든 글에서 소개하고 싶은, 곧 좋았던 세 작품을 옮겨 본다.

그전에 다른 곳에서 이미 상연된 작품, 곧 상연되는 작품들은 제하는 게 맞는다고 본다.(이는 하나의 섹션 차원으로 구성될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프로로서의 전문성과 대가로서의 완벽함보다 참신한 시도와 아이디어, 열정의 무모함이 프린지에서 더 발현되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음 쓴 작품들을 어떤 하나의 범주에 묶을 수 없는 아쉬움이 있지만, 이는 오히려 다양한 개성을 지녀 긍정적이겠다 싶다.

 



Choice.1

대만 Sun-Shier Dance Theatre의 「Too Much Vinegar」,
 -현실을 마주하는 시도

 




이들의 춤은 매우 단출하고 투박하고 단순하고 아마추어 같기까지 하다. 이들에게서 주목할 만한 것은 그러한 어설픈 움직임들의 모양새가 아니라 공동체적인 움직임과 사유 관객의 의식을 긴장시키는 일련의 노력과 과정이다.

그 움직임이 서툰 듯 보이는 것은 이들 나름대로 움직임의 메소드를 계발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의 초기 단계에 아직 놓여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한 단계에서 이들은 이들 스스로의 움직임을 구가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음이 비춰진다.

 
그 몇 개의 장이 있는데 소극적 에피소드의 분절된 장 외에 마지막 즈음 와서 질문들을 던지는 시간이 좋았다. 추상과 구체적 현실을 모두 포함해 ‘이것이 너무 많으면 어떡하죠?’라는 말을 모두 훌륭하게 우리가 알아듣게 되는, 더듬거리는 우리말로 출현시킨다. 질문은 엉뚱하지만 우리의 의식에 숨고르기의 긴장을 유지시킨다. 이는 오히려 연기라기보다 실재로 치환되는 과정적 모사를 확인할 수 있어 더욱 그러하다. 질문은 질문 그 자체로 끊임없이 많은 답을 내재하고 또 숨기고 미래적 차원으로 나아가는 구실을 제공한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수렴하며 질문은 더 멀리 세계로 날아간다.


사실 공연 중간 중간 마이크를 들고 나와 춤추는 이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들은 무엇보다 말을 하는 방식으로 또 춤 역시 사실 언어의 일환이라는 것을 확인시키는 차원에서 그것의 기표를 우직하게 취하는 방식을 구사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신체는 이미지만이 아닌 목소리를 숨기고 있고 공기와 함께 호흡하며 공기의 마찰을 불러일으키며 존재한다는 관념적 사실마저 내재하는 듯한 명민함을 선사한다.

 







 

이들은 동그란 눈동자를 번뜩이며 관객에게 설레는 가슴으로 다가서는 모습을 보인다. 낯선 땅을 두려워하지 않고 많은 시간을 들여 물론 짧은 몇 문장을 외워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어찌 됐건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게 된다.

 

일종의 질문하는 방식으로서 삶을 깨닫게 하는 것은 ‘렉처 퍼포먼스’의 현재적 마찰과 교육적 메시지를 입는 형식으로 생각되는 부분이 크다. 마지막 장에 이들을 조금 더 주목하게 된 이유 중 하나다.

 




Choice.2

「극단 도마위뱀- 광장맨션스토리, 누가 이 아파트에 불을 질렀나?」 
 -지루함과 반복된 일상에서 불현듯이 나타나는 공포


 



이 연극은 일상의 반복이자 끝없는 시퀀스 단위로서 끊임없는 선회다. 따라서 적막은 친숙함의 영토 끝 낯섦에서 출현하는 리듬을 발생시킨다.

 

시간은 흐르지만 시간의 흐름은 일상에 내재하는 반복적 박자 개념으로 치환되어 타자로 버려진, 우리(관객)는 이곳에서 숨을 쉴 수 없다. 등장인물들의 비중은 모두 같되 이들의 의중은 알 수 없다. 내비치지 않는 게 아니라 단지 그것조차 이들에게는 인지할 수 없는 차원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현실적으로 폐쇄 공간에서 살아간다. 역설적으로 이곳은 미디어가 범람하는 시절에서 미디어를 입지 않은 환경이다.


이와 같은 원작의 전용은 원작이 발생시키는 효과를 차단하지 않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에 가까웠으리라 보인다. 단지 미디어는 신문에 즉각 실려 이들의 삶을 조명한다. 이들은 타인에게 파악되지 않고 어느 망각되어질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실은 가리어지고 하나의 프레임에 말끔하게 갇히는, 단지 미디어를 통해 중개되며 신화화될 뿐이다.

 






이들 모두는 행복이란 명제를 안고 사는 것 같지만 행복은 이들 바깥의 세계에 존재한다. 내재하지 않는 실재는 출현하지 않는다. 다만 이들은 돈이 아닌 일상을 소비하며 산다. 이러한 일상은 일견 우리 일상과 비슷해 보이는데 일상의 리듬 역시 고스란히 체현되고 있음이 그러하지만, 문득 낯선 것의 친숙함인 언캐니와 마주치게 된다.


곧 우스꽝스러움에도 진실의 무게를 형언할 수 없는 실재계의, 살을 비집고 들어오는 비천하지만 그 비천함이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현상에.

 





이 연극은 매우 지루하다. 지루함이 일상을 실재화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또는 감상적 극적 환경을 도출하지 않고 사유를 이끌어내는 유일한 방식이다.


지루함 끝에 연극은 연극을 벗어난다. 이미 그들의 낯선 친숙한 신체가 그것을 가동시키고 있었다. 또한 갇힌 환경이라는 실험적 조건이 바깥의 현실을 은폐하며 현실의 조건을 작동시키고 현실로 돌아오며 비껴날 수 없는 일상을 손에 쥐도록 만든다. 이는 진득진득 벗어날 수 없는 어두운 자취를 안긴다.


그 어두움은 그래서 바깥으로 나오지 않는 판도라의 상자처럼 바깥으로 나와서는 안 됐던 자아 바깥의 타자에 접속케 한다.


사건 식의 에피소드에는 종합되어진 초인종으로 개성이 상실된 현대인을 사실 망각되어진 주체들의 목소리를 재출현시켜 정치적인 테제를 일으키는 차원에서 다시 우리에게 제시된다.


 





이 초인종은 끊임없는 혼선을 일으키고 너에게로 접속은 나에게로 다가온다. 우리는 이 귀찮은 발신을 짜증으로 거부한다. 그에 응답하는 이, 순진한 개를 사랑하는 여자로, 이 여자는 현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 더해 일상을 나름 만족하며 일상에 퍼져 있는 체념과 무의지, 무의식의 망각, 현실의 부족분에 대한 체념의 현실적 선택조차 하지 않는 그야말로 순진한 사고방식의 사람이다. 이는 타자 안에 다시 타자를 넣어 이들의 의식을 현재화시키는 기제로 작동한다.



우리는 이 여자에게서 답답함을 느낀다. 이 여자의 말은 명시지로 일상의 호흡을 고스란히 가져가며 그것을 전유하지만 실은 현실을 저편으로 보내는 다른 사람들의 의중을 들추어내는 것이다.




 

러닝타임을 훌쩍 넘어 두 시간이 넘는 이 연극은 정말 지루했지만, 그 지루함을 끝까지 관철시킨 문제적 실험작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그녀가 개의 죽음에 그토록 슬퍼하고 다시 금붕어를 키우기 위해 남편을 설득하는 지난한 노력을 펼치는 과정은 말 그대로 일상의 흐름을 떠안고 중간 중간 제시되며 결국 그것이 복선으로 인지될 틈 역시 놓치는 와중에 금붕어 어항을 만지다 사고사로 죽게 된 남편의 이야기를 펼쳐내며 이 웃지 못 할 일화에 개와 사람의 생명 가치를 등가시키는 묘한 순진성이 배합된 비참한 현실, 그리고 그것을 비극으로 떠안기보다 다시 일상으로 끌어내는 그녀의 모습에서 비극적 일상의 진면목을 성찰케 한다.

 

의중을 드러내지 않는 이들, 망각되는 이들, 폐쇄된 곳에서 사는 이들, 매체에 각종 사고로만 기억되는 이들은 곧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만은 않아 보인다는 것이 일상을 인지하는 하나의 사고체계를 경유하게 만드는 끝에 출현한다.




 

Choice.3

‘프로젝트 똑,똑,똑.’의 「창작극 똑, 똑, 똑」
 -입체화된 박민규의 소설

 


박민규의 소설, 『갑을고시체류기』는 연극의 무늬를 입고 입체화된다. 이는 연극이라기보다 소설의 현현이다. 아주 짧은 단편으로 기억되는 이 소설은 박민규의 우스꽝스러운 현실의 묘사와 에피소드 문체가 잘 살아나서 예전 어렴풋이 지나갔던 소설의 기억을 깨운다.

 




박민규 소설은 참 재미있다. 대학교 시절의 어렸을 적이니 참 오래도 됐다. 그 당시에 재미있었으니 지금도 기억이 나는 것이다. 다만 어렴풋한 인상으로.


그의 이야기는 현실의 긍정, 곧 자신이 가진 현실에 대한 긍정, 긍정적으로 말하자면 따스한 시선이라고도 할 수 있겠고, 그런 시선이 담겨 있었다. 조소가 아닌 풍자이지만, 자신의 문제로 귀결되는 측면이 솔직한 이야기로 읽혀졌다. 그의 문체는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지만 개성 있게 읊조리는 하나의 친숙한 주체를 상정케 했다.

 
나는 그래서 이 연극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다. 그 기억과 박민규에 대한 내 어렴풋한 판단이 더 확실해지기 때문이다. 다만 잘 표현했다고는 할 수 있겠다. 존재가 존재화되어 현현될 때 스스로에게 체현되어 조금 더 무게를 지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텍스트의 무게를 이 연극 역시 부정하고 있지는 않다. 텍스트가 군데군데 육면체에 적힌 제각각의 크기의 상자를 의자 용도 등으로 사용하지만 그것들이 한편의 소설을 이룸을 소설을 차용한다는 이중적 의미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이 연극을 참 잘 만들었다 생각했다. 우리가 소설을 보면서 상상하며 감각하는 즐거움과 연극에서 몸으로 표현할 때 어떤 것이 우월한가를 논할 수 없는 것과는 사실 다른 문제이다. 즉 소설이 매개하는 이 작품은 소설을 재매개하며 출현하기 때문이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 2010
2010 0812-0828


해외초청작
Too Much Vinegar - 대만 Sun-Shier Dance Theatre
0820-0822 포스트극장

“Too Much Vinegar”는 대만 장개석국립문화센터의 위임을 받아 제작되어 2010년 초연되었다. Hsiu-Ping Chang이 안무를 맡고 Sun-Shier Dance Theatre가 공연한다. 식초 사용의 과용으로 빚어진 망가진 맛에서 영감을 얻어, 현대 삶의 소동과 과잉된 메시지의 한가운데서 일어나는 혼돈을 반영한다.
안무가 Hsiu-Ping Chang은 유머러스하고 역동적인 무용 표현형식의 별난 상상으로 이 불순한 조합을 표현하며, 여전한 유머감각 속에서 일상의 사소한 사건들을 당황스러움의 연속으로 옮겨놓는다. 공간을 자르고 나아가 다양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무대 디자인은 8개의 마이크로폰과 마이크로폰 스탠드를 세운다. 일상의 사소한 사건들과 마이크로폰의 활용의 믹스와 꼴라주에 의해, 부조리의 감각이 “과잉” 속에서 모든 안무로부터 전개된다.
마이크로폰은 미디어의 상징으로 쓰이며, 게다가 사람들에게 사랑의 감정 또는 편치 않은 고독의 목격자가 된다.

극단 도마위뱀 - 광장맨션스토리 '누가 이 아파트에 불을 질렀나?'
0823-24 산울림소극장

매일 매일이 새로울 게 없는 단조로운 일상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조용한 변두리 10층 임대아파트.
어느 날 밤… 조용한 아파트를 깨우는 개 짖는 소리로 시작되는 요절복통 좌충우돌 소동극!
애완견의 소음 때문에 시작된 주민들의 논쟁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재생산 되고,
그들의 아파트는 마약과 인종차별, 언어의 대립, 예술과 정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목소리의 난장이 된다.
결국 그들의 논쟁이 끝을 향해 치닫으면서 등장인물들은 그들 삶의 근원적 단서를 발견하게 된다.

프로젝트 똑,똑,똑. - 창작극 똑,똑,똑. 갑을고시원체류기
0824-25 성미산마을극장

1. 오늘을 산다는 것
<갑을고시원 체류기>는 고시원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오늘 하루 이리 저리 치이며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지금 이 순간 땀 흘리고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고통스런 오늘은 밝게 웃을 내일을 위한 것...... 이 작품을 통해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를 위로하고자한다.
2. 상처를 주는 친절, 약이 되는 폭력
가까운 이들의 친절이 나에겐 상처가 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그리고 주변에서 나에게 가해지는 폭력들이 더 강한 내가 되게 하는 약이 되곤 한다. <갑을고시원 체류기>에서도 “현재” 친구의 친절이 “현재”에겐 평생의 상처로 남게 된다. 하지만 “김 검사” 등 고시원 인물들의 보이지 않는 혹은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폭력은 “현재”가 나은 내일을 살 수 있게 하는 약이 된다.
3. 최소의 소도구를 이용하여 관객의 상상력 자극, 무한한 공간 창조
어린 시절 하던 병원놀이의 극대화를 하였다. 배우들의 완벽한 믿음으로 무대를 집, 고시원, 공원, 옥상으로 변화 시키며 날씨와 공기 심지어 냄새까지 변화 시켜 버린다. 인물들은 “현재”외엔 모두 1인 2역이상이며 무대에 배치된 다양한 싸이즈의 큐브들은 책상, 변기, 의자, 식탁, 컴퓨터, 등 수시로 변화하며 공간과 상황을 무한히 변화 시킨다. 상상 속 사건과 현실 속 사건들이 혼재시킴으로 보다 연극 적이고 모순일수 있으나 보다 리얼한 장면 들을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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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 김민관
mikwa@naver.com
공연예술 프리랜서 기자 및 자유기고가
문화예술 분야에 전반적인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현장을 쫓아다니며 기록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