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야기꾼의 책 공연 - 보여주는 이야기, 표현하는 이야기꾼

2010. 9. 22. 10:46Review


- 보여주는 이야기, 표현하는 이야기꾼

이야기꾼의 책 공연 <백만번 산 고양이 & 마쯔와 신기한 돌>


 

글_김지선

 


이야기꾼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세상만사를 꿰뚫을 것 같은 매서운 눈매와 연륜이 묻어나는 백발 및 기다란 수염, 고단한 여행길을 보여주는 상처투성이 맨발과 남루한 옷차림, 주름진 얼굴 사이에서 빛나는 하얀 치아. 그리고 어색하지 않은 인자하고 부드러운 미소. 지극히 상투적이고 고루한 인상이다. 언제 각인되었는지도 모를 이야기꾼의 정체는 방랑자의 형상으로 여기저기 떠돌며 이야기를 전파한다. 이야기꾼의 이야기들은 기록으로 남겨지고, ‘책’으로 세상을 떠돌기 시작한다.

음성이 아닌 글자로 들려지는 세상의 무수한 이야기들. 지금 또 다른 이야기꾼을 만나기 시작했다. <이야기꾼의 책 공연>팀은 요코사노의 ‘백만번이나 산 고양이’와 마르쿠스 피터스의 그림책 ‘마쯔와 신기한 돌’을 그들만의 언어로 재해석해 관객에게 들려준다.





요코 사노의 백만 번이나 산 고양이

 

‘난 누구의 고양이’도 아니라며 자아도취에 빠져있던 백만 번이나 산 고양이가 백만 번 죽고, 백만 번째 다시 살아난 어느 날 하얀 고양이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임금님의 고양이, 어린아이, 할머니의 고양이도 되어보았던 고양이가 그 누구의 고양이도 아닌 그저 자기 자신으로서 살아가던 어느 날이었다. 하얀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들을 낳고 비로소 자신보다 소중한 것들의 존재에 대해 눈뜨게 된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의 죽음 앞에 백만 년 동안 한 번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고양이는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








책에 담긴 이야기의 줄기는 대강 이러하다. 공연을 하는 이야기꾼은 이 이야기를 음악과 노래, 그리고 소리로 들려준다. 세 명의 악사는 각각의 장면에 어울리는 해설을 노래로 풀어낸다. 상황과 장면에 맞는 음악 연주와 노래는 또 다른 언어로 이야기를 들려주게 된다. 때론 웅장하게, 때론 장엄하게, 때론 장난스럽게 변주되는 음악은 마치 그림책 속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는 착각이 들게 한다. 책 속의 삽화가 스크린에 투사되면서 이러한 느낌은 더욱 배가 된다. 간혹 캐릭터가 그려진 종이 인형으로 묘사되는 재치있는 장면은 웃음과 미소를 유발한다. 이러한 묘사는 고양이가 죽는 장면에서 주로 나타나는데, 예를 들면 화살 맞은 고양이에 대한 노래가 나오면서 악사는 종이로 만든 고양이 캐릭터를 꺼낸다. 고양이가 화살을 맞아 죽는 장면을 들려주며 악사는 종이 인형의 팔 다리, 사지를 부르르 떠는 장면을 연출한다. 또 고양이가 하얀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를 많이 낳고 행복해 하는 장면을 들려줄 땐 하얀 고양이와 백만 번이나 산 고양이가 그려진 종이 인형 사이에 줄줄이 사탕처럼 엮여 나오는 새끼 고양이들을 선보여 객석의 웃음을 유발한다.







이렇듯 요코 사노의 <백만번이나 산 고양이>는 이야기 꾼 공연팀 안에서 ‘노래’와 ‘음악’을 주 언어로 하여 새롭게 이야기된다. 엄밀히 말해 이야기는 같다. 표현의 언어와 수단이 달라졌다. 그러나 같은 이야기가 들려지는 방식에 의해 감동과 느낌도 완전히 달라진다. 세 악사는 마치 책 속의 캐릭터처럼 비춰지는데, 가운데 악사는 백만 번이나 산 고양이를 연기하고, 하얀 고양이는 우측의 악사가 연기한다. 스크린 속의 고양이들, 그리고 악사가 연기하는 고양이, 종이로 만들어진 인형 고양이들이 서로 교차되면서 고양이의 이미지가 더욱 생동감있고, 감각적으로 느껴진다. 이야기를 듣는 것인지 노래를 듣는 것인지 신선한 아리송을 남겨준 이 공연은 요코 사노의 <백만번이나 산 고양이>를 그들의 언어로 맘껏 표현해 냈으며, 한껏 보여준 공연이었다.








마르쿠스 피터스의 그림책 마쯔와 신기한 돌







언어라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일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목소리. 음악등 청각적 언어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에게 그림책을 몸짓언어로 표현해 낸 <마쯔와 신기한 돌>은 퍽 귀여운 공연이다. 배경음악이라 할 수 있는 건 피아노 건반에 불과하다. 처얼썩 쏴아아아--- 파도소리부터 갈매기 소리까지 이야기의 대부분이 배우들의 몸짓과 함께 표현된다.


네 명의 배우는 작고 단단한 바위섬을 보여주고, 어느새 그 안에 사는 생쥐들이 되어 무대를 휘젓는다. 바위섬에서 사는 생쥐들이 주인공인데, 어느 날 마쯔가 발견한 신기한 돌로 인해 생쥐들은 탐욕에 눈뜨고, 결국 바위섬은 황폐해 지고 만다는 것이 이야기의 줄거리이다.









언뜻 보면 배우 훈련 워크샵 과정처럼 느껴질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 무대 위에서 많은 것들을 만들고 표현하는 배우들을 보고 있자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열정이라는 것은 멀리 있는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오로지 그들의 언어로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온 몸으로 말하고, 서로가 서로의 몸을 나누고, 지탱하고 의지하며 그려내는 스쳐지나간 수많은 오브제들의 순수함에 절로 열정이 느껴지는 것이다. 각각의 생쥐들을 표현해 가는 배우들의 표정도 볼 만하다. 귀여운 생쥐부터, 욕심 많은 생쥐, 나이 많은 생쥐등 배우들은 돌아가면서 캐릭터를 연기한다.

서로 많은 돌을 차지하기 위해 피아노 건반의 빠른 연주와 더불어 재빠르게 달리는 생쥐들의 경주 장면은 배우들의 표정과 행동, 동선으로 웃음을 불러오는 대표적인 장면이다.

 








욕심나는 이야기를 보면 표현하고픈 것은 공연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마음일 것이다. 우리는 항상 재미난 이야기, 새로운 이야기를 좇는다. 그것은 관객과 창작자의 공공의 욕구이다. 관객이 새로운 이야기를 원하는 것처럼 창작자 역시 재밌는 이야기에 욕심을 낸다. 일단 재밌는 이야기를 만나면, 그 다음은 어떻게 표현할까? 를 고민하는 것이 새로운 이야기꾼들의 과제인 것 같다. 표현하고 싶어 안달 난 이야기꾼들.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를 들려주고파 몸이 근질한 영혼들. 이들로 인해 이야기들은 들려지기보다 보여지고, 말해지기보다 표현되고 있다. 관객은 이야기의 또 다른 주인이 되어 보여지는 이야기, 표현되는 이야기를 좇을 것이다. 같은 이야기일지라도 보여지는 것에 따라 다른 감동을 주는 것이 표현되는 이야기의 매력이니 말이다.

 


이야기꾼의 책공연 <이야기꾼의 책공연>
2010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참가작

0823-0824 가톨릭 청년회관 지하 CY 씨어터

이야기꾼의 책공연은
만약 어린이, 청소년 시절부터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즐기고 그들이 직접 자신만의 표현양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이야기꾼이 된다면? 이라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습니다.
독서를 종합적인 체험으로 확장하는 서비스이자 신개념의 창작활동입니다. '책'을 통해 이야기의 힘을 발견하고, 세상을 들여다보고, 소통하고,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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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지선

여름과 사람과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