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1. 30. 14:31ㆍFeature
스물 네 사람에게 다가올 열흘 동안 과연 무슨 일이 생길까?
-화천의 뛰다와 호주의 스너프 퍼펫이 여는 거대 인형 야외 퍼포먼스 「사람과 인형 프로젝트」①
글_ 엄현희(공연창작집단 뛰다 드라마터그)
내가 강원도의 산간오지 화천으로 이사 와서 자주 느끼게 되는 도시 삶과의 차이 하나는 사람을 귀하게 여긴다는 것의 체험이다. 도시에서는, 서울에서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랬을 것이다. 이용 가치를 증거 하는 내용들(나이, 학력, 경제력 등등)이 나의 뒤에 나보다 더 큰 레테르로 붙어 있는 것처럼 살아왔고, 나 역시 타인을 세상을 그렇게 대했다. 하지만 웬만한 도시의 한 구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도시민 전체인 여기 화천(총 인구 약 2만 오천 정도)에서 사람은 어느 누구든 존재하는 자체로 각자가 아주 귀한 존재들이다. 여기에서는 그/그녀 뒤에 붙어 있는 레테르를 응시하던 대신에, 사람들의 눈동자를 바라보게 된다. 타인에 대한 투명하고 정직한 시선이 열리는 것이다.
우리가 여는 거대 인형 야외 퍼포먼스 ‘사람과 인형’ 프로젝트도 이 같은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앞으로 열흘 동안, 시골 사람, 도시 사람, 일반인, 예술가, 청소년, 성인, 여자, 남자 등의 한데 모인 스물 네 사람이 열심히 인형을 만들어 열흘 후 거리에서 상연할 것이다. 인형의 디자인부터 제작, 스토리텔링, 상연까지 오롯이 스스로들이 주인이 되어서. 어떤 작품이 나오리라고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양한 스물 네 사람이, 필연적으로 부딪치며 만들어 갈 불협화음 속의 화음을,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을, 어떻게 짐작할 수 있을까. ‘사람과 인형 프로젝트’(People Puppet Project)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정직하고 투명한 시선을 통해 자유분방한 사건을 불 피우고자 하는 시도다.
'사람과 인형 프로젝트'는 제대로 사건을 발생시키기 위해 세심한 준비 기간을 가졌다. 이야기 발굴단이 꾸려져서 화천의 지역민들을 인터뷰해 화천의 역사를 재구성해 정리, 발표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여전히 살아 있는, 화천댐의 건설로 소실된 ‘옛 마을’의 존재감, 아픔과 절망을 품고 있는 화천의 거대한 인공 호수 파로호에 얽힌 갖가지 이야기들이 다름 아닌 그 시간들을 껴안고서 살아 온 사람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사람과 인형 프로젝트'의 첫 단계 이야기 발굴단의 지역 조사는 올 여름 광주 아시아 문화 중심 도시 창작 워크숍 기간 중에 발표되었다.
▲광주 아시아 문화 중심 도시 창작 워크숍
이야기 발굴단의 지역 조사는 이제 곧 시작 될 인형극 만들기에 다양한 방식으로 창작의 영감을 제공할 것이다. 작품의 서사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인터뷰에 열심히 응해 주신 화천의 사람들이 보여 준 갖가지 감정들, 풍부한 색깔의 다양한 정서들이 우리가 만들게 될 작품의 전체 톤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나올 것이란 이야기다. 앤디 프레이어는 이번에 우리와 함께 할 호주의 예술가인데, 사실 이미 싱가폴, 호주, 대만 등지에서 지역민들과 함께 인형을 만들어 퍼포먼스를 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 온 앤디는 사람과 인형 프로젝트의 핵심이 ‘어떤 방향성도 미리 정해놓지 않는 즉흥성’에 있다고 강조했었다. 그렇다면, 이번 화천의 사람과 인형 프로젝트는 앤디의 작업에 있어서도 다소 특수한 경우라 할 수 있기에 보다 더 예측불가의 흥미로움을 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스너프 퍼펫의 앤디 프레이어가 가진 즉흥성과 화천의 이야기, 그리고 프로젝트의 참가자 스물 네 사람이 가진 각자의 깊이가 당연히 부딪칠 수밖에 없으며 부딪침 속에서 최종적으로 무엇을 끄집어내게 될지 흥미롭지 않을 수가 없다.
▲스너프 퍼펫의 공연사진
▲강원도 화천의 파로호
열흘 동안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한 장소에서 인형을 만드는 작업이기에 참가자들을 모으는 과정은 프로젝트의 출발이자 녹록치 않은 작업이었다. 우리는 화천 외 지역의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지원 동기를 글을 통해 받았으며, 화천 사람들의 경우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생각들을 공유하고자 했다. 돌봐야 할 아기가 있어서, 이런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 손재주가 없어서, 현재 상황을 떨칠 수가 없어서, 사람들 앞에 나서기가 주저되어서, 불편한 공동생활 등등, 우리의 사람과 인형 프로젝트에 열정을 갖고서 신청서를 냈지만, 또 한편으로는 망설이게 하는 사람들 각자의 이유들에 대해 최대한 조율하고자 노력한 가운데, 결과적으로 고등학생, 목사님, 아기 엄마, 회사 인턴 직원, 대학로의 연극배우, 대학생 등이 최종적으로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낯선 세계를 향한 사람들의 의지는 벌써부터 거칠게 드라이브하며 프로젝트를 굴러가게 하는 것 같다.
▲스너프 퍼펫의 인형 만드는 모습
▲화천-뛰다와 호주-스너프 퍼펫의 사전미팅
한편, 뛰다의 배우들에게도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체험하게 될 낯선 경험에 대한 두려움 섞인 설레임이 여지없이 존재한다. 꾸준히 자체 메소드 훈련을 받아 작품 만들기를 해 온 그간의 전력 상,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들과 한데 어울려 작품을 만들며, 또한 스너프 퍼펫의 인형인 3~4 m 짜리 거대 인형과 함께 하는 연기는 뛰다의 배우들에게 색다른 도전이자 모험이 될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모든 낯설은 요소들은 11월 30일부터 항해를 시작해 12월 11일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12월 11일 저녁 여섯 시에 화천의 시내에서 즉흥 음악 연주를 배경으로 거리 퍼포먼스로 완결, 일단락 될 것이다. 다가올 열흘 동안 스물 네 사람에게 과연 무슨 일이 생길까? 지금으로선 우리의 퍼포먼스가 행해질 화천의 산천어 축제 점등식이 예년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뒤집히길 바랄 뿐이다.
사람과 인형 프로젝트
기간 : 2010년 11월 30일 ~ 12월 11일
발표 : 12월 11월 저녁 6시, 화천산천어축제점등식 행사
장소 : 화천공연예술텃밭, 화천청소년수련관
주관 : 스너프 퍼펫, 공연창작집단 뛰다
주최 : 공연창작집단 뛰다
후원 : 강원문화재단
창단 10년째인 공연창작집단 뛰다는 올해 강원도 화천으로 이주해 세 가지 실천이념을 실행 중에 있습니다. ‘진화하는 연극’, ‘저항과 치유의 연극’, ‘공동체 중심의 연극’이란 세 가지 방향성이 뛰다의 앞으로의 10년을 움직이게 할 힘입니다. 뛰다는 특유의 광대 메소드, 인형과 가면 등을 통해 독특하며 실험적인 창작 연극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호주의 스너프 퍼펫은 연출 및 인형 제작사 앤디 프레이어가 대표로, 거대 인형 야외 퍼포먼스를 주로 작업해 오고 있는 단체입니다. 싱가폴, 호주, 대만, 일본 등지에서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하는 인형 퍼포먼스를 2000년대 지속적으로 해 왔으며, 우리나라에도 방문한 바 있습니다. 스너프 퍼펫이란 이름이 시사하듯, 잔혹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 환상적이며 투박한 이미지의 인형이 인상적이며, 유쾌한 난장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벌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필자소개
엄현희. 77년생. 한예종 연극원 연극학과 전문사 과정에 재학 중 <연극평론>을 통해 등단, <컬처뉴스>, <공연과 리뷰>, 경기문화재단 전문가 모니터링 활동 등을 통해 비평 작업을 해오다가 아기를 낳은 후 <‘해체’로 바라본 박근형의 연극세계> 논문으로 졸업한 후, 공연창작집단 뛰다의 단원으로 들어가서 단원들과 함께 강원도 화천으로 이주함. 현재 극단 일을 열심히 배우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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