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2. 6. 20:20ㆍFeature
나와 너의 구분이 무너지는 순간에
- 화천의 뛰다와 호주의 스너프 퍼펫이 여는 대형 야외 인형 퍼포먼스 「사람과 인형 프로젝트」②
글_ 엄현희(공연창작집단 뛰다 드라마터그)
연극은 예술가와 비예술가의 구분이 가장 쉽게 무너지는 장르이다. 예쁘게 보일 수 있는 기술을 소지한 사람이 예술가라면, 즉 형식화의 기술을 가진 이가 예술가라면, 연극은 협업의 특성 상 서로 소통하는 가운데 그 특수한 기술을 나누는 순간을 반드시 제공하기 때문이다. 즉 서로 소통하는 가운데에서, 누구의 아이디어 혹은 누구의 기술이었는지 잊어버리는 가운데에서, 갑자기 나의 것 혹은 너의 것도 아니며, 동시에 나와 너의 것이기도 한, 작품이란 '녀석'이 솟아오르는 것이 연극이다. 뛰어난 앙상블은 때때로 나와 너의 구분이 완전히 무너지는 순간에 나오기도 한다. 지금, 화천의 한 장소에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의기투합 중인 스물 네 사람에 의해 예술가와 비예술가, 기술자와 일반인, 그리고 나와 너의 구분이 무너지는 중이다.
스너프 퍼펫의 대표 앤디 프리어와 인형제작사 다니엘라의 작업도 이 같은 원칙에 의해 시작되었다. 앤디는 열흘 후에 벌어질 우리의 퍼포먼스의 기초 공사를 다수의 참가자들에게서 나온 상상력으로 세우고자 했다. 우리의 퍼포먼스의 내용과 형식 양쪽의 측면, 즉 캐릭터로부터 비롯되는 이야기와 인형의 스타일 및 이미지를 참가자들의 아이디어로부터 차용했다. 열흘 간의 우리의 작업은 작품의 기초 세우기 / 드라마타이즈 및 중간 점검 / 세부 디테일 이란 크게 세 단계로 나눠질 수 있는데, 앤디는 작품의 첫 단계에서부터 참가자들 다수를 단수의 저자의 자리에 놓은 것이다.
'사람과 인형 프로젝트'의 오프닝인 첫 삼일은 작품의 내용과 형식 양쪽 측면에서 기초 공사에 해당하는 부분들의 마련을 위해 투자되었다.
우리는 작품의 내용을 위해 여름에 꾸려진 이야기 발굴단의 발표물 '강물의 기억'을 함께 관람했다. PPP의 참가자 중에서 실제로 화천의 토박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고등학생 8명 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강물의 기억' 프리젠테이션이 우리가 만들 퍼포먼스를 위한, 파로호와 지역민에 관계된 사실 정보 재료에 해당한다면, 앤디는 참가자들 모두에게 우리나라의 유명한 물에 얽힌 신화나 유명한 옛날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부탁함으로써 상상 정보 재료들을 추가시켰다. 즉 '사람과 인형 프로젝트'의 내용을 위한 두 번째 재료는 '물'과 관계된 거짓의, 상상의 이야기들이었다.
하루종일 사실의, 상상의 물과 관련된 이야기들에 참가자들은 흠뻑 적셔진 후에, 그 날의 마무리 순간에 자신이 만들고 싶은 인형의 이미지를 그리도록 시간이 할애되었다. 앤디는 단어들의 자유 연상 게임을 통해 참가자들의 상상이 구체적 이미지로 화하게 되는 것을 돕기도 했다.
▲ 단어 연상 게임
▲ '내 마음 속의 물 이야기' 그림 전시회
참가자들이 그린 그림들은 연출부의 논의를 통해서 작품에 등장할 몇몇의 캐릭터들로 선별되었다. 대지의 여신과 왕과 여왕, 물고기와 사람들의 캐릭터가 선택되었다. 특별한 스타일들이 선택되기는 했지만, 그 날 나눈 이야기 중에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새겨진 이미지로부터 추출된 캐릭터들이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비슷한 인물을 표현하곤 했다. 어쨌든 많은 공감을 얻은 캐릭터가 보다 큰 인형으로 제작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 대지의 여신이 가장 큰 인형으로 제작될 것. 왕과 여왕은 2, 3m 정도로 중간 크기 정도가 될 것이다.
앤디는 각각의 캐릭터들이 대조되는 성질을 통해 서로 부딪치며 드라마타이즈를 만들어 갈 것이라 장담했다. 사람들이 인형을 만들어 가는 가운데, 이야기가 스스로 자라나게 되기를 기대하는 듯 했다.
우리가 '사람과 인형 프로젝트'의 형식을 위해 프로젝트의 오프닝 삼일 동안 한 대부분의 일은 인형의 구조를 만드는 일이었다. 인형의 뼈대는 등나무와 테이프만으로 만들어졌다. 쉽게 구부러지는 등나무의 성질 상, 등나무는 자유롭게 여러 형태들을 표현하기에 용이했고, 이 등나무들을 검은색 천 테이프로 붙여서 형태들을 만들어 갔다. 구조물의 외피 뿐 아니라, 조종을 위해 인형을 어깨에 매기 위한 지지대를 만들기 위해서 대나무로 내부의 구조물까지 만드는 과정은 손이 많이 가며, 꼼꼼하고 지난한 과정이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각자가 만들고 싶은 인형 별로 팀으로 나눠져서 각각의 팀 별로 인형의 뼈대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지속했다.
거대한 인형부터 작은 인형들까지 갖가지 인형들은 참가자들이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수정 보완해 나가는 가운데 조금씩 만들어져 갔고, 우리들의 장소는 삼일 만에 상상력의 실체화들로 가득하게 차게 되었다.
▲ 물고기, 입이 벌어지도록 작동해야 하기 때문에 만들기 힘들다.
▲ 왕의 뼈대, 완성되면 체육관 밖으로 나갈 수 있을지, 약간 걱정이다.
인형을 만드는 작업은 바로 가시적으로 성과물이 드러나기 때문에 참가자들이 작업을 꾸준하게 이어 나가는데 큰 장점이 있었다. '사람과 인형 프로젝트'의 기초 공사는 시간이 흐를수록 체력은 떨어져가지만, 흥과 열정은 살아나는 기이한 경험을 만들며 이어졌다.
이제, 우리에 의해 끄집어 내진 이 놈들(캐릭터)이 보다 구체적으로 발전되면서 충돌을 통해 이야기가 점차 드러나게 되는 것을 기다릴 순간이다. 이야기는 우리가 인형을 더 구체적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과 함께 자연발생적으로 자라날 것이다.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나와 너의 공유되는 마음속에서.
▲ 모두가 함께 인형 만드는 모습
사람과 인형 프로젝트
기간 : 2010년 11월 30일 ~ 12월 11일
발표 : 12월 11월 저녁 6시, 화천산천어축제점등식 행사
장소 : 화천공연예술텃밭, 화천청소년수련관
주관 : 스너프 퍼펫, 공연창작집단 뛰다
주최 : 공연창작집단 뛰다
후원 : 강원문화재단
창단 10년째인 공연창작집단 뛰다는 올해 강원도 화천으로 이주해 세 가지 실천이념을 실행 중에 있습니다. ‘진화하는 연극’, ‘저항과 치유의 연극’, ‘공동체 중심의 연극’이란 세 가지 방향성이 뛰다의 앞으로의 10년을 움직이게 할 힘입니다. 뛰다는 특유의 광대 메소드, 인형과 가면 등을 통해 독특하며 실험적인 창작 연극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호주의 스너프 퍼펫은 연출 및 인형 제작사 앤디 프레이어가 대표로, 거대 인형 야외 퍼포먼스를 주로 작업해 오고 있는 단체입니다. 싱가폴, 호주, 대만, 일본 등지에서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하는 인형 퍼포먼스를 2000년대 지속적으로 해 왔으며, 우리나라에도 방문한 바 있습니다. 스너프 퍼펫이란 이름이 시사하듯, 잔혹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 환상적이며 투박한 이미지의 인형이 인상적이며, 유쾌한 난장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벌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필자소개
엄현희. 77년생. 한예종 연극원 연극학과 전문사 과정에 재학 중 <연극평론>을 통해 등단, <컬처뉴스>, <공연과 리뷰>, 경기문화재단 전문가 모니터링 활동 등을 통해 비평 작업을 해오다가 아기를 낳은 후 <‘해체’로 바라본 박근형의 연극세계> 논문으로 졸업한 후, 공연창작집단 뛰다의 단원으로 들어가서 단원들과 함께 강원도 화천으로 이주함. 현재 극단 일을 열심히 배우고 있음.
'Featur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재] 화천 뛰다와 호주 스너프 퍼펫의 사람과 인형 프로젝트 - 인형이라는 몸을 통해 만나다 (1) | 2011.01.07 |
---|---|
[연재] 화천 뛰다와 호주 스너프 퍼펫의 사람과 인형 프로젝트 -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관련성을 만들어 가야 할까 (0) | 2010.12.22 |
[연재] 화천 뛰다와 호주 스너프 퍼펫의 사람과 인형 프로젝트 - 예술가가 포기하지 않는 것 (0) | 2010.12.16 |
[연재] 화천 뛰다와 호주 스너프 퍼펫의 사람과 인형 프로젝트 - 우리의 사소한 순간들에 대해 (0) | 2010.12.10 |
[연재] 화천 뛰다와 호주 스너프 퍼펫의 사람과 인형 프로젝트 - 스물 네 사람에게 다가올 열흘 동안 과연 무슨 일이 생길까? (1) | 2010.11.30 |
서울. 대혼란!!! 가난뱅이 다모여! 두리반, 20101002 (1) | 2010.10.29 |
“보는 연극에서 하는 연극으로” 우리는 오늘도 '연극을'한다 (1) | 2010.08.16 |
<도도댄스-시선> 아직 오르지 않은 공연을 함께 하며 담은 시선들 (0) | 2010.08.11 |
[고재경의 마임워크숍]-20. "5년 후에는 누가 거리에 서있을지도 모른다." (7) | 2010.08.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