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화천 뛰다와 호주 스너프 퍼펫의 「쏭노인 퐁당뎐」- ① 출발에 부쳐

2011. 3. 11. 18:18Feature

화천 뛰다와 호주 스너프 퍼펫의 대형거리인형퍼포먼스 「쏭노인 퐁당뎐」
- ① 공연창작집단 뛰다의 축제형 유목연극 '쏭노인 퐁당뎐'의 출발에 부쳐

 

글_ 엄현희(공연창작집단 뛰다 드라마터그)

 

유목/정착

당신은 '유목'이란 단어를 보면 무엇을 떠올리는가? 여행, 방랑, 유랑, 자유, 여정, 비행 혹은 비상까지 등등 ……. 확실히 '유목'이란 말이 끌어당기는 심상들은 매혹적이다. 그 결코 머물지 않음의 속성에서 추출되는 ‘여기’가 아닌 ‘저기’라니, 늘 꿈을 꾸는 인간의 본능을 달콤하게 자극한다. 하지만 '유목'의 달콤함 뒤에는 전혀 다른 맛이 동전의 뒷면처럼 함께한다. 꿈이 현실의 반대항에 자리하기에 제의미를 지니는 것처럼, '유목'(유목(遊牧) : 일정한 거처를 정하지 아니하고 물과 풀밭을 찾아 옮겨 다니면서 목축을 하여 삶)에는 반드시 '정착'( 정착(定着) : 일정한 곳에 자리를 잡아 붙박이로 있거나 머물러 삶)이 선행한다.

 

공연창작집단 뛰다가 준비하는 2011년 신작 <쏭노인 퐁당뎐>의 부제이기도 한 '유목연극'이 나오기까지엔 아주 오랜 시간이 소진됐다. 계량적 시간으론 작년 7, 8월에 꾸려진 두달 간의 화천 이야기 발굴단 작업 및 화천의 <사람과 인형 프로젝트> 후의 3개월의 프리프로덕션 기간이 소비되었지만, 실제론 극단 뛰다가 걸어온 10년의 시간이란 비일상적 시간이 생경하게 튀어나와 우리 모두를 무시간의 드넓은 장으로 안내하는 가운데 맞닥뜨렸다. 뛰다는 백화점 앞 길거리에서 공연한 창단작 <상자 속 한 여름밤의 꿈>을 시작으로, 학교나 도서관 등을 찾아다니는 과정에서 다듬어진 <커다란 책속 이야기 고슬고슬>, <노래하듯이 햄릿> 혹은 야외극 <앨리스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극장 밖을 뛰쳐나가는 행위를 지속해왔다. 즉 뛰다의 한 줄기에는 안전하고 준비된 공간이 아닌, 위태롭고 새로운 공간을 원하는 모험 정신이 존재한다. 모험 정신과 '유목연극'? 쉽게 연결되는 듯도 하다.

 

그런데 이 가볍고 날렵한 모험 정신과는 전혀 다른 얼굴이 뛰다의 또 다른 줄기에는 존재하고 있다. 뛰다가 그렇게 극장 밖을 자꾸 뛰쳐나간 것은 사람들과 좀 더 깊숙이 만나고 싶어서였다. 무대와 객석을 가로지르는 경계를 넘어 그 밖의 존재들(소박하게 말하면 관객)과 녹아들고 싶어 하는 욕망은 존재와의 무겁고 둔탁한 만남을 원해서로, 이는 '광대'란 존재를 등장시킨 <하륵이야기>, <또채비 놀음놀이>, <내가 그랬다고 너는 말하지 못한다> 등을 낳았다. 가볍되, 무겁고자 하는 이 모순된 충동들이 어떻게 화해할 수 있을까(물론 개개의 공연들은 모두 모순 간의 화해를 지향하는 가운데 나왔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들이 언제나 매번 작품을 만들 때마다 서로 대립하며 갈등하는 가운데 꽤 즐거운(?) 창작의 고통을 안겨준다는 것이다).

 

화해를 위해 우리가 이번에 준비한 것은 <쏭노인 퐁당뎐>의 부제 ‘유목연극’에 녹아들어 있다. 우리는 이번에 뛰다 밖의 사람들 - 지역민 혹은 배우 - 을 작품의 창작의 영역 안으로 끌어안는 장치나, 공연 전 일주일동안 마치 진짜 유목민들처럼 도시 한 가운데에서 야영함으로써 사람들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여 우리를 한번이라도 더 되돌아볼 수밖에 없도록 유혹하는 갖은 도구를 사용하게 된다. 자유로운 이동을 뜻하는 '유목'이 말소시킨 '정착'의 의미가 우리가 사람들과 깊이 만나면 만날수록 되살아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부제의 정확한 표현은 '정착 유목을 지향하는 연극'일지도 모른다.

 

▲ 이동식 돔.
우리는 매 공연마다 공연 전 일주일가량 돔 주변에 설치된 천막에서 먹고 자며 공동생활을 할 예정이다.


공연창작집단 뛰다의 2011년 신작 <쏭노인 퐁당뎐>의 부제 '유목연극'은 유목/정착의 경계를 해체하는 가운데 우리의 2011년 작업을 출발시키고 있다. 그런데 과연 최종적으론 무엇이 남겨지게 될 것인가? 우리가 온몸으로 꽉꽉 눌러쓴 이 <쏭노인 퐁당뎐>이란 편지는 당신에게 과연 무엇으로 도착하게 될까?

 


물속에 흩어진 기억의 파편들

2011년 3월 둘째 주 현재 <쏭노인 퐁당뎐> 프로덕션은 장면 만들기가 한창이다. 배우들이 직접 물고기 자료를 수집해 물고기 캐릭터를 그림으로 스케치 한 후 종이상자 등을 이용, 간단하게 제작해 직접 움직여 보며 연출(배요섭)이 던져주는 상황 하 여러 씬들을 만들고 있다. 우리가 보여줄 세상이 물고기 세상이 아니기에, <쏭노인 퐁당뎐>의 물고기들의 기본 형태는 마그리뜨의 그림과 유사하게 상반신은 물고기에 하반신은 사람인, 반인반어의 형태를 기본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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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화천에서 함께 생활 중인 뛰다의 인턴인 17살의 조인영이 그린 <쏭노인 퐁당뎐>의 캐릭터 밑그림



인간의 동물성과 동물의 인간성이 교차된 우리의 이 신종 생명체들은 뭍에서 물속으로 흘러들어온 사람들의 갖은 기억들을 가지고 논다. 우리의 작품 속에서 특별히(과연 긍정적일까) 이성을 부여받은 물고기들은 사람처럼 뇌가 복잡하지 않아 오히려 영리한 인간들이 제 살기 위해 덧칠하거나 왜곡시켜 뇌에 저장시킨 세상의 모습의 본질을 단순 명쾌하게 꿰뚫어 펼쳐놓는다. 사실 원래 기억이란 것은 편집, 구성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쏭노인 퐁당뎐>은 사실들이 사람에게 흡수되어 기억으로 저장되기 이전의, 즉 서로 서로 연결되기 이전의 것들을 무대로 불러들이는 것으로서, 이는 순수하며 섬뜩한 기억의 결정체들이라 할 만하다.


<쏭노인 퐁당뎐>의 시놉은 작년 여름 화천의 어르신들을 찾아가 직접 수집, 정리한 화천의 이야기 발굴단 작업에서부터 자라난 것이다. 현재 캐릭터 확정 및 장면 7개의 뼈대가 거칠게 나온 상태다. 주로 우리의 근대화와 연관된 그 기억들은 물고기들의 눈을 통해서는 어떻게 응시되며 어떤 모습으로 나오게 될까. 낚시터 주인 송노인은 물속으로 들어가 무엇을 보게 될까. 그리고 과거의 환영을 불러내는 이유는? 단지 박제로서가 아닌, 과거는 열려서 현재와 길이 놓이게 될 것인가. 무엇보다도 우리가 애써 놓은 과거와 현재 사이의 길에 과연 당신은 얼만큼 발을 들여놓게 될까. 질문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며, <쏭노인 퐁당뎐> 프로덕션은 진행 중이다. 오늘은 작년 12월 <사람과 인형 프로젝트>에서 만들었던 인형을 개조 보수할 예정이다.

 

▲ 낚시터 주인 쏭씨의 낚시춤


심해어 물고기 장면 연습. 장면 제목 '세상을 향한 외침'

 


공연창작집단 뛰다 - 쏭노인 퐁당뎐
공연장소 및 일시 : 안산거리극축제(5월 5일), 하이서울페스티벌(5월 10일), 의정부음악극축제(5월 21일), 국립극장(5월 27, 28일)


창단 10년째인 공연창작집단 뛰다는 올해 강원도 화천으로 이주해 세 가지 실천이념을 실행 중에 있습니다. ‘진화하는 연극’, ‘저항과 치유의 연극’, ‘공동체 중심의 연극’이란 세 가지 방향성이 뛰다의 앞으로의 10년을 움직이게 할 힘입니다. 뛰다는 특유의 광대 메소드, 인형과 가면 등을 통해 독특하며 실험적인 창작 연극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호주의 스너프 퍼펫은 연출 및 인형 제작사 앤디 프레이어가 대표로, 거대 인형 야외 퍼포먼스를 주로 작업해 오고 있는 단체입니다. 싱가폴, 호주, 대만, 일본 등지에서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하는 인형 퍼포먼스를 2000년대 지속적으로 해 왔으며, 우리나라에도 방문한 바 있습니다. 스너프 퍼펫이란 이름이 시사하듯, 잔혹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 환상적이며 투박한 이미지의 인형이 인상적이며, 유쾌한 난장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벌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필자소개
엄현희. 77년생. 한예종 연극원 연극학과 전문사 과정에 재학 중 <연극평론>을 통해 등단, <컬처뉴스>, <공연과 리뷰>, 경기문화재단 전문가 모니터링 활동 등을 통해 비평 작업을 해오다가 아기를 낳은 후 <‘해체’로 바라본 박근형의 연극세계> 논문으로 졸업한 후, 공연창작집단 뛰다의 단원으로 들어가서 단원들과 함께 강원도 화천으로 이주함. 현재 극단 일을 열심히 배우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