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화천 뛰다와 호주 스너프 퍼펫의 「쏭노인 퐁당뎐」- ② 실패의 순간들이 만들어내는 별자리

2011. 3. 30. 18:00Feature

화천 뛰다와 호주 스너프 퍼펫의 대형거리인형퍼포먼스 「쏭노인 퐁당뎐」
- ② 실패의 순간들이 만들어내는 별자리

 

글_ 엄현희(공연창작집단 뛰다 드라마터그)

 

사실 5월이면 출범할 우리의 <쏭노인 퐁당뎐>은 우리가 결과물까지 가기 위해 거쳤던 수많은 과정과는 아주 동떨어진 모습일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결과물을 도출하기 위해 그렸던 거친 스케치들은 그냥 사라져 버리는 것일까. 결과물 속에 어떻게든 스며들어 있다고 여기며 연관성을 찾아내 위안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애써 한 점으로 연결시키는 대신에 산산이 흩어져 있는 실패의 순간들을 그 자체로 바라보길 원한다. 우리의 실패의 순간들은 마치 지금 하늘에 떠 있는 별빛들 중 사실은 이미 죽어버린 별들이 발산하는 별빛 같다. 나는 실존하지 않는 것들의 빛을 찾아내 별자리를 긋고 싶다. 우리가 쓸쓸한 어둠 속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갈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은 바로 점화되지 못한 사건들이 만들어내는 빛 때문이라 말하고 싶기에. 우리의 실패의 기록 중 제 일번은 지역민 혹은 일반인들을 창작으로 끌어들이려 한 대목이 채워야 할 듯하다. 우리가 지역민/일반인들을 끌어들이려 한 의도는 우리가 10년의 시간동안 길어 올린 소중한 획득물, '만남의 가치'에 대해 나누고 싶어서였다. 뛰다에게는 확실히 타 존재와의 접촉면적을 넓히는 연극적(혹은 예술적) 만남의 순간들이 결과적으로 '나'에게 변화와 풍요를 준다는 강한 신념이 존재한다. 만일, 이 시대 혹은 이 사회에서 연극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변화할 수 있으며 행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나'들로 주변을 조금씩 채워나가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따라서 우리가 보기에 가장 변화와 행복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만남의 대상들을 물색하는데 퍽 세심하게 고민했다. 꿈의 안착을 위해서는 늘 엄청난 계단이 필요한 법이니까.

 

<쏭노인 퐁당뎐>의 5월 달 상반기 공연일정은 안산국제거리극축제, 하이서울페스티벌, 의정부음악극축제, 국립극장청소년연극제이다. 이같이 일정이 확정되기까지 시간이 달려가며 즉 현실이 다가오며 꿈은 두 발을 갖기 시작했다. 우리는 만남의 대상을 물색하기 위한 중요한 기준으로 지역성에 주목했다. 지역성을 '사람들에게 스며들어 있는 공간의 흔적' 으로 이해하며 이 스며듦을 자연스럽게 서로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 즉 소규모의 커뮤니티에 주목함으로써 고민의 범위를 좁히고자 했다. 그러나 도시 속 커뮤니티는 예상보다 소수였으며, 그들 중 연극에 우리에 관심을 가지는 집단은 더욱 적었다. 스스로 디자인 해 인형을 직접 제작, 무대 상연까지 한다는 우리 작품의 느리고 고된 특성이 현대인에게는 너무 큰 모험이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우리는 지역민/일반인들을 작품의 창작의 영역에 끌어들이기 위한 갖은 방법을 궁리, 준비 - 시놉시스 단계에서의 준비, 인형제작 워크숍 프로그램 구성, 인형제작 마스터가 되기 위한 배우들의 직접 체험 등 - 했지만, 막상 지원자들이 모여들지 않아 여전히 꿈의 두 발은 절름대고 있다.

 

현재 안산은 이주민노동자 커뮤니티를 구하고자 했던 처음의 의지를 접고 해체, 빈곤가정의 아이들의 대안학교 들꽃학교 등으로 방향을 수정한 상태며, 서울은 홍은창작센터와 연계 홍은동주민들과 함께하려 한 계획이 무산, 대안학교 볍씨학교 청소년들로 확정되었으며, 의정부는 커뮤니티 모집 단계, 국립극장의 경우 실내공연인 점을 감안 배우들로 만남의 대상이 변경된 상태다. 우리는 그래서 지역 내의 아마추어 합창단을 장면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법(마치 플래시몹 같은!)을 궁리, 시도함으로써 우리가 원했던 만남의 가치 전도를 계속 밀고 갈 생각이다. <쏭노인 퐁당뎐>의 결과물에서 한 장면 전체를 순전히 일반인들이 꾸민다는 것은 변함없을 테지만, 우리가 일반인들을 끌어들였던 처음의 의지의 기준 '지역성'을 현실 속에서 어떻게든 지켜가기 위해서다.

 

갑자기 음악팀의 짐이 무거워진 듯 보이지만, 사실 음악팀의 짐은 처음부터 무거웠다. 야외에서 당연히 집중력이 매우 산만할 관객들을 집중시킬 음악은 우리 <쏭노인 퐁당뎐>에서 처음부터 매우 중요했는데, 음악팀은 이번에 합창단의 영역을 책임지는 것은 물론 지역 내 아마추어 밴드와의 협업을 통해 음악의 영역에서 '만남'을 위한 모험을 시도할 예정이다.

 

<쏭노인 퐁당뎐>의 과정 중 우리의 실패의 두 번째 기록은 현재 진행 중인 실제적인 장면 만들기와 연관돼 있다. 이 사건을 발생시킨 두 가지 요소는 '여기 없는 공동연출이자 인형디자이너 앤디'와 '뛰다 고유의 작품 만들기 방법' 이라 할 수 있다(스너프 퍼펫의 앤디와 다니엘레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어젯밤에 도착한 상태다).

 

<쏭노인 퐁당뎐>은 연출부의 회의 및 전체와의 공유 과정을 거친 후 7개의 장면으로 이뤄진 시놉시스부터 출발했다. 내가 보기에 시놉시스는 그야말로 뼈대라고 할 수밖에 없이 아주 거칠었고 줄거리는 커녕 전체 톤이나 분위기 뉘앙스조차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뛰다의 고유한 작품 만들기 방법은 더 이상 생각을 전진시키는 것을 정지시켰고, 곧바로 배우들이 움직이며 찾아가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몸으로 움직이며 나아가는 것이 현재 뛰다의 스타일을 낳은 힘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태까지의 뛰다의 인형들은 연출 혹은 배우가 직접(디자이너가 만들기도 하지만, 학창시절부터 깊이 교류한 사람들이기에 거의 직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만들었지만, 이번에는 인형 디자이너가 외부에 그것도 저 멀리 호주에 있다는 변수가 있었다(물론 앤디와는 메일과 화상통화를 통해 작품 및 디자인의 기본 컨셉을 꾸준히 공유해 왔다). 우리는 작년 12월에 제작한 <사람과 인형 프로젝트 in 화천>의 인형들을 개조해 배우들이 뒤집어쓰고 장면 만들기를 시도했지만, 온몸을 뒤집어쓰는 인형의 특성 상 우리가 원하는 어떤 퀄리티 있는 느낌을 뿜어내는 장면에 다다르기는 무척 어려웠다. 배우들은 자신의 움직임조차 보기 힘든 낯선 인형과 익숙해 져야 하는 힘듦과 더불어 인형과 일체감이 느껴질 정도로 친해지기 위해 몇 번이나 되풀이해 인형을 직접 제작하며 일상을 고스란히 바쳐야 했다. 그 동안의 작품에서는 인형 조종자로서의 배우가 무대에 드러남으로써 존재감을 발산했지만, 이번의 <쏭노인 퐁당뎐>에서 배우는 전혀 다른 방식의 생존법을 찾아야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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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는 몸이 인형 밖으로 드러나든 드러나지 않든, 언제나 인형을 살아있게 하는 것은 배우의 몸이란 뛰다의 처음의 믿음으로 현재에도 배우들의 움직임을 통한 장면 만들기 방법을 밀고 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우리는 배우들이 인형의 형태로부터 비롯된 자극을 몸의 충동으로 흡수, 다시 그 인형 그 캐릭터 고유의 움직임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을 돕기 위해 움직임 명상 등의 뛰다의 고유 연기 메소드를 활용하고 있다. 배우들은 '상상의 신체'를 통해 인형의 비어있는 육체를 채워내 움직임으로 연결시키는 과정에 이르기 위해 고민 중이다. 어쩌면 지난 4 주간의 과정에서 사용된 갖은 인형들은 그 동안의 뛰다의 가면, 작은 인형, 혹은 사물들이 이번의 <쏭노인 퐁당뎐>에서 만난, 온몸을 뒤집어써야하는 거대 인형과 다르지 않다는 인식을 발견하기 위한 여정을 견디게 해 준 빛들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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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 번째로 만든 물고기 인형들의 휴식. 물고기가 무슨 말을 할까.

 
 

시야가 제안되고, 허리는 굽혀졌으며, 팔은 움츠러든 채, 다리만 민망하게 노출되고 있다는, 굉장히 불안한 상태로 무대에 고스란히 노출된 배우는 과연 어떤 에너지를 뿜어댈 것인가. 어떤 분위기를 전달할 것인가. 그리고 그/그녀의 에너지가 과연 당신을 어떻게 만들까. 5월을 위해 <쏭노인 퐁당뎐>은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실패한 사건들이 밝혀주는 빛은 우리를 계속 걷게 한다.

 

공연창작집단 뛰다 - 쏭노인 퐁당뎐
공연장소 및 일시 : 안산거리극축제(5월 5일), 하이서울페스티벌(5월 10일), 의정부음악극축제(5월 21일), 국립극장(5월 27, 28일)


창단 10년째인 공연창작집단 뛰다는 올해 강원도 화천으로 이주해 세 가지 실천이념을 실행 중에 있습니다. ‘진화하는 연극’, ‘저항과 치유의 연극’, ‘공동체 중심의 연극’이란 세 가지 방향성이 뛰다의 앞으로의 10년을 움직이게 할 힘입니다. 뛰다는 특유의 광대 메소드, 인형과 가면 등을 통해 독특하며 실험적인 창작 연극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호주의 스너프 퍼펫은 연출 및 인형 제작사 앤디 프레이어가 대표로, 거대 인형 야외 퍼포먼스를 주로 작업해 오고 있는 단체입니다. 싱가폴, 호주, 대만, 일본 등지에서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하는 인형 퍼포먼스를 2000년대 지속적으로 해 왔으며, 우리나라에도 방문한 바 있습니다. 스너프 퍼펫이란 이름이 시사하듯, 잔혹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 환상적이며 투박한 이미지의 인형이 인상적이며, 유쾌한 난장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벌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필자소개
엄현희. 77년생. 한예종 연극원 연극학과 전문사 과정에 재학 중 <연극평론>을 통해 등단, <컬처뉴스>, <공연과 리뷰>, 경기문화재단 전문가 모니터링 활동 등을 통해 비평 작업을 해오다가 아기를 낳은 후 <‘해체’로 바라본 박근형의 연극세계> 논문으로 졸업한 후, 공연창작집단 뛰다의 단원으로 들어가서 단원들과 함께 강원도 화천으로 이주함. 현재 극단 일을 열심히 배우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