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6. 30. 16:29ㆍReview
강화정 프로젝트「오쏠로기획」
- 무지개가 떴습니다.
글_ 김바리 (후리랜스 춤꾼 / 임프로드 바닥)
6월 16일 강남역 lig극장 근처의 맥주집.
강화정연출의 <오솔로기획>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네 명이 모였다.
인디언밥이 주최한 수다회 자리였는데, 수다라기보다는 수타에 가까우리만치, 공연에서 뻗어나간 각자의 생각들이 내려치고 받아치는 열혈대화들로 맥주가 물처럼 흡입되는 시간이었다.
네 명의 소개 - 익명씨, 쏭, 정옥광, 김바리.
익명씨, 쏭, 옥광은 강화정과 그녀의 공연을 처음 접했고, 바리는 그녀의 작업을 알고 있었다.
참고로, 이 <오쏠로기획>에 대한 소개기사를 신문에서 접한 쏭과 옥광의 기대는 '대단'했었다고 한다. 바리도 그 신문 기사를 보았지만 기사보다는 연출자의 전작을 접한 경험에 의한 기대가 더 컸다고.
음. 그리고 그 서로 다른 기대들이 공연을 보러가기 전에 쓴 각자의 안경이었음은 분명할 터. 익명씨만이 안경 없이 온 상황. 그러나 익명씨에겐 '익명씨 본인의 기대'라는 소프트렌즈가 안구에 이미 착용되어 있었을 터.
사실, 순수관객은 없다. 공연 관람 중에 잠들어 꿈 속 에서 스스로의 공연을 만들지 않는 한.
'기대'라는 내 안의 연출가와 공연이 만나는 일이 '관람'인 것이다.
보는 행위는 결국, 자신이 만들어내는 창작행위인 셈.
이어지는 열 개의 솔로. 이것만이 <오솔로 기획>에 대한, 이견없는 명백한 사실이었다.
한마디로 말해, 공연을 보고서 맥주집에서 시종일관 진지하게 이뤄졌던 '토론'의 결과, 이것은 공적인 자리인 웹진에 올릴 수다의 흔적이기 보다는, 각자의 생각을 정리해서 글로 쓰는 기록의 방법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수다 그대로를 녹음하고 그대로의 현장감을 살려 글을 쓰기로 되어있었다)
각자 귀가 후 , 네 편의 공연 독후감을 보내왔고 여기에 내어본다.
오쏠로 기획 - 사진제공 : LIG 아트홀 (이하 동일)
첫 번째, 익명씨가 보내온 글
흥미롭지 않은 것에 대한 글쓰기는 고문이다. 간단히 쓴다.
비대칭, 불균형, 위태로움, 멈추지 않는 몸 이라구? 공연을 보니, 대칭, 균형, 안정, 정지 같은 것들에 대한 반대편, 혹은 그 이면이나 그림자 같은 것을 상정한 것 같은데... 이분법적 구도(나에게는 이분법으로 보였으니)가 참 단순하고 편리하구나.
기괴한(매우 뻔한, 무용수들이라면 한 번쯤 거친다는, 많은 사람들이 가볍게 기괴하다고 여기기에, 이제는 전혀 기괴하지도 않은) 동작들을 하고, 이상한(배우나 개그맨이나 할 것 없이 매우 흔하게 짓는 병신의) 표정을 짓고 피나 칼, 망사스타킹 등 (죽음이나 성 등 금기의 전형적인! 상징물들)을 오브제로 사용하면서, 조금 별난 것을 하는 양, 그래 맞다. '보란 듯이' 하는 걸로 보였다.
무대나 음악도 종종 접하는 요란스러움.. 공간 한 켠 이 들리고 큰 검이 공간을 뚫고 들어오는 것, 그런 발상은 어렵지 않지만 그것을 구현해 내는 것은 어렵다는 걸 안다. 그러나 무대 뒤편이 덜그덕 거리며 기계장치에 딸려 올라가는 것이나 오브제가 번들거리는 낚싯줄에 매달려 움직이는 걸 보는 건 조금 민망했다. 아니, 사실 그건 나름대로 재미있었지. 공연이 흥미롭지 않아서 그런 것이 코믹한 요소처럼 보였다.
연출가나 안무가가 '시력'이 나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삶을 섣부르게 읽어댄달까. 혼자 그러면 누가 뭐라겠는가, 그걸 우리에게, '작품'이라며, 읽어준다는 게 우스운 것이지. 읽어줄 때 목소리(그러니까 움직임이나 여러 단편적인 부분들 말이다.)라도 좋으면, 내용 안 듣고 목소리 감상이라도 할 텐데, 그러지도 않았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무용이나 움직임극 같은 걸 볼 때면, 무용수 혹은 무용이 작품으로 녹아들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이점에 대해선, 그랬었다고, 언급만 한다.).
<오쏠로 기획>이 무용수들 각각을 살리려고 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여기서도 경험 많고 기량 있는 무용수들이 전혀 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무용이나 무용수가 살려면, 그 둘 다를 내내 강조해서는 안 될 때가 많구나 싶다. 이런 면에서, 무용수와의 작업이 어땠는지, 연출가에게 묻고 싶긴 하다. 아 또 하나, 비대칭, 불균형 위태로움, 에 대해서도. 연출가나 퍼포머들에게 이건 무엇이었는가 말이다.
마지막으로, 저런 걸 다른 장소에서 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역시 삐딱하게 말이다. 저런 '나 쏠로합니다' 식의 평면적 무대 말고, 그냥 사람들이 사는 동네나 사람들이 다니는 길... 너무 혼잡한 데 말고 약간 고적한 주택가 같은... 그런 데서 사흘밤낮 한다면, 봐 줄 수 있겠다, 의 심정이랄까.
총체극이라는데, 나는 총체적으로 흥미롭지 않았다. 이런 싸가지 없는 투로 글을 써야한다는 것도 난감하다. 한편으로는 오랜만에 싸가지 없을 수 있어서 시원하기도 하고.
두 번째, 쏭이 보내온 글
- 공연 시간의 70%정도를 차지하고 있던 그로데스크하게 보이고 싶어 하는 듯 한 몸짓들이 주는 지루함. 비슷한 자극이 비슷한 템포로 이어지는 것의 아쉬움.
- 불편하게 보이는 몸짓들과 표정들을 통해서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그냥 나는 그것을 불편하게 받아들이면 됐던 건가? 나는 불편하고 싶지 않았는데? 내가 불편해짐으로써 나한테 얻어지는 건 뭘까? ‘이런 공연은 나에게 불편하구나’하는 깨달음일까?
- 중간 중간 지나치게 크고 찢어지는 소리들이 내 귀에 가하는 아픔은 정말 참기 힘들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그 부분은 정말 관객으로서 좀 화가 난다. 공연 중간 일어서서 ‘그만 좀 하라고 쫌!’ 외치고 싶었던 순간 여러 번.
세 번째, 옥광의 글
비틀어짐을 의도한 건가, 싶은데 덜 비틀어졌다 진짜로 비틀어진 것을 보고 싶다는 욕구만 더 강해졌다.
그러나 한 순간, 희번득한 눈깔. 피 냄새.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단어들이 가슴으로 돌진해오는 한 컷이 있어 나는 그 순간에는 좀 숨을 가다듬었다. 그렇게 좀 내게 말을 걸어줬으면 했다.
네 번째, 바리의 글
낄낄낄... 재미있다!
목청이 터져라 깔깔거리며 웃는 것보다. 속으로 이렇게 낄낄거리면서 웃는데 더 변태적이라 더 찐하다.
웃음에도 여러 개의 층들이 있을 터. 이번 공연이 내 웃음에 낀 피하지방들을 레이저로 침투해가면서 건드린 부분, 그래서 살아나게 된 감각, 드러낸 웃음의 얼굴은 '지하 9층의 검은 농담'이었다.
뭐냐. 지하9층의 검은 농담은!
9층 정도의 깊은 지하라면 어둡고 음습한 느낌이 있고, 9층이라면 무언가 층들이 있을 테니 건물의 일부라는 얘기인 듯 하면서, 농담이라면 지하 9층이라는 사실이 농담이라는 건지, 지하9층에서 일어난 어떤 농담을 얘기하는 건지, 무엇보다도 검다. 검은 무엇.
이런 거다.
알듯모를 듯 언어가 품는 ‘어조’자체로 놀고 있는 것이다.
어조, 어휘가 품고 있는 분위기를 칭하는 요 단어의 사전적 분류(아래참조)중에
* 어조의 종류
㈀ 해학적 어조 : 익살 해학이 중심을 이루는 어조(김유정의 일련의 소설)
㈁ 냉소적 어조 : 차가운 냉소가 주조를 이루는 어조(손창섭의 소설)
㈂ 반어적 어조 : 진술의 표리를 가지거나 상황이 대조에 의한 어조(현진건의 소설)
㈃ 풍자적 어조 : 사물에 대한 풍자가 나타나는 어조(채만식의 소설)
(ㄱ)해학적 어조, (ㄴ)냉소적 어조, (ㄷ)반어적 어조, 이 세가지를 포함하고 있는 공연이었던 것이다. 나에게는!
부모님 앞에서 '오빠는 더럽고 유치한 만화를 좋아하는 변태'라고 오빠를 폄하하고 놀리다가도 몰래 오빠 방에 흘러들어가, 그(똥 얘기가 대부분인)일본만화를 보면서 느꼈던 은밀한 희열과 특유의 음습한 낄낄거림을 오랜만에 다시 느꼈다!
공연 내내 ‘오타쿠계의 선수들끼리 공유할 수 있다고 느끼는’농담을 베이스로 깔아주시고, 뭐 중간에 서프라이즈로 후추처럼 뿌려주시기도 하면서! 거기다 워낙 소리에 예민한 강화정 연출의 진득하고 철저히 계산된 선택이라고 여겨지는 음악과 움직임의 사용으로 공연이라는 신뢰감까지 자리를 잡고 있으니, 뭐 나는 그냥 낄낄거릴 수 있었다. 고맙게도.
이 얘기는 <오쏠로기획>이 코미디공연이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신의 취향을 넘들 신경 안쓰고 무대화시켰고, 나는 그녀의 취향에 공감했다는 면에서 반갑게 낄낄거렸다는 얘기다. 심지어 연출가가 이 작업을 하면서 그녀 스스로 낄낄거렸을 모습까지 상상이 된다. 내가 좋아하는 코드를 남들이 보여주지 않으니, 그것을 내가 스스로 만들어 낸다. 이 얼마나 재미있겠는가.
관능과 그로테스크가 주를 이루는<오쏠로기획>은 연출가라면 누구나 꿈꾸는(나는 그렇다고 믿는다!)자신이 만든 인물들을 갈라쇼처럼 선보이는 자리, 그녀가 만든 인물들의 런웨이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공연에서는 눈을 열고, 인물의 전사를 상상하면서 인물이 갖고 있는 매력에 빠져들면 된다. 아마도 강화정 연출은 이 작업을 통해 자신의 작업과정을 더욱 공공히 할 것이고, 나는 관객으로서 신체적 표현으로 하나의 뚜렷한 어휘를 구사하는 인물들을 만나 즐거웠고, 또 그 인물들이 어떤 드라마의 숲에서 노니게 될지 기대하며 계속 즐거워 할 것이다.
이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낄낄낄
<오쏠로기획>공연에 대한 넷의 의견이외에도 현장에서는 더욱 다양한 의견과 다양한 표현들이 있었고, 이런 다양함이 더 다양해지길 바래본다.
무지개는 일곱 빛깔밖에 없을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서로의 색과 정체성을 자신에게 비추어 분류하고 경계하기보다는, 빨강에서 주황으로 넘어가는 그 수많은 다양한 색의 스펙트럼속에서 서로를 보고 아름다움을 인정할 수 있을 때 ‘자유롭게’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
창작자도 관객도 너도 나도 다 다르다. 그 다른 색들이 모여야 만들어 질 수 있는 것이 무지개가 아니겠는가. 무지개 너머의 세상(somewhere over the rainbow~)을 바라는 우리는. 결국 무지개를 보며 아름다움과 너머에 대한 무엇을 꿈꾸게 된다.
꿈을 꿀 수 있게 만드는 등대와 같은 무지개를 만드는 수 만 가지 색들이여!
그 색의 주인인 창작자와 관객들이여,
앞으로도 쭈욱 아름답게 영원하라!!!!!!!!!! 팍팍!
누군가는 좋아할 것이고, 누군가는 닭살 돋아 고개를 돌릴 수 있을, 이 글도 무지개다! 팍팍!
2011 0616 - 0618 | LIG아트홀
멈추지 않는 몸 : 비대칭 불균형 위태로움
솔로 레퍼토리
강화정 연출 | 출연 배유리, 이소영, 권택기, 정영민, 김동욱
필자소개
김바리
공연을 연출하고 안무한다.
즉흥그룹<임프로드 바닥>의 일꾼이자 춤꾼이다.
춤추고 노래하고 글쓰고 무언가를 만들며
사람으로의 진화를 꾀하는 중이다.
imthinki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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