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4. 19. 13:14ㆍReview
글_ 조원석
인생은 연극이라고 하더라. 그러면 ‘나’의 인생에서 ‘나’는 주인공이겠구나. 무대와 배우들 사이에서 ‘나’는 그럴듯한 대사를 하면서 살고 있는 거겠지. 그런데 관객은 어디에 있는 걸까? ‘나’의 인생의 막이 오르고 막이 내릴 때까지, ‘나’의 연기에 눈을 떼지 않는 ‘나’의 관객은 어디에 있는 걸까?
지구에서 멀지 않는 곳, 대학로에서 연극 ‘장석조네 사람들’이 연극을 하고 있다.
연극의 원작은 김소진의 소설 ‘장석조네 사람들’이다. 소설의 원작은 개발이 되기 전에 성북구 길음동에 살던 사람들이다. 성북구 길음동에 살던 사람들의 원작은 없다. 그러므로 최초의 창작자는 그 사람들이다.
성북구 길음동에 살던 사람들. 집주인 장석조의 집에 세를 들어 살던 사람들의 생활이 이야기가 되고 연극이 되었다. 주말드라마 같은 극적인 설정이 없는 이야기. 중동 붐이 일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겪어 봤을 그런 이야기가 지금은 웃음과 눈물이 되어 돌아왔다.
왜 그럴까? 단순한 향수일까?
노름을 하고, 뒷돈을 챙기고, 오리가 먹은 금반지에 욕심을 내고, 남의 험담을 하는 사람들. 가난을 뿌리 삼아 열매를 가꾸는 사람들. 열매는 보잘 것 없지만 그것을 나눌 줄 아는 사람들. 이름을 가진 사람들. 고향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 선도 악도 아닌 사람들. 연극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고 있다.
연극 ‘장석조네 사람들’에는 눈이 달려 있다. 따뜻한 시선이나 차가운 시선 같은 온도도 없고, 위에서 내려 보거나 아래에서 올려 보는 높낮이도 없다. 감정이나 생각을 담아 사물을 보는 눈이 아니라 먼 풍경을 보는 눈이다. 산의 능선과 하늘의 경계가 희미하게 보이는 거리. 바다의 수평선과 하늘의 경계가 희미하게 보이는 거리. 그것은 그리움의 거리다.
그리움에는 거리가 있다. 그 거리에 있는 사람들. 시간들, 공간들. 이제는 환영이 돼 버린 현실들. 한때 고유의 색깔을 뽐내며 ‘나’의 바깥에 있던 것들이 이제는 ‘나’의 안에 들어와 ‘내’가 되었다. ‘나’는 한 사람의 ‘나’가 아니라 ‘그들’이다. 그리움의 덩어리이고, 그 덩어리가 빚어내는 미소의 빛과 그늘이 ‘나’의 표정이 된 것이다. 그래서 연극 ‘장석조네 사람들’은 장석조‘네’ ‘사람들’이다. 그들은 하나의 덩어리이고, 서로 마주 보며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공간이든, 자신에게 표정을 짓게 했던 것들이 이제는 그리움이 된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움은 혼자 살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그리움일 수 있다. ‘나’는 그리움이다.
현실은 부서지기 쉽다. 단단하고 강한 것 같지만 현실은 한 순간에 무너지기도 한다. 현실은 꽃조차 꺾을 힘이 없다. 현실은 사람을 꺾을 수 없다.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의 죽음은 각박한 현실 때문이 아니다. 각박한 사람들 때문이다. ‘혼자 사는 사람들’, 그 누구에게도 그리움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장석조네 사람들’은 잘난 사람들이 아니다. 기부를 하는 사람들도 아니고, 현실을 분석하고 시대의 흐름을 탈 줄 아는 사람들도 아니고, 법을 잘 알아서 법망을 피할 줄 아는 사람들도 아니다. 그들은 법을 어기기도 하고, 자기에게 손해가 되는 거래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누군가에게 그리운 존재가 되었다. 장석조네 사람들은 상대방의 표정에 반응하는 사람들이다. 사람의 능력이나 신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표정을 보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이 그리운 것이다.
연극 ‘장석조네 사람들’에는 ‘나’가 없다.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그러면 ‘나’는 어디에 있는 걸까? ‘나’는 ‘사람들’ 속에 있다. ‘사람들’이 그리움이듯이 ‘나’도 그리움이 되었다. ‘사람들’ 속에 있는 ‘나’를 그리워하는 나. 인생이 연극이라면 ‘그리운 나’를 지켜보고 있는 나는 관객이다. 무대 위의 ‘나’를 지켜보는 나. ‘나’의 관객은 나다. 그리고 정작 무대 위에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인생이 연극이라면 나는 관객이다.
2011 0317 - 0327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김소진 자신의 유년 시절을 보낸 기찻집 사람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장석조네 사람들>은 살아 있는 생활어와 토착어, 아름다운 우리말 방언의 향연으로 흥겨운 말의 잔치를 보여준다.
소설가가 쓴 대화로 믿을 수 없을 만큼 생생한 입말의 울림과 탁월한 인물 묘사는 극중 인물들이 눈앞에 살아 있는 듯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작가 자신의 체험과 기억에 의해 되살아난 우리 말 방언들은 문자로 포착하기 힘들만큼, 입말의 특유의 "날 것" 그대로 펄떡거린다. 습작시절, 신기철, 신용철 씨의 [새우리말큰사전]을 독파하여 우리말 어휘, 어구, 속담 등을 습득하였고, 극 중 철원댁으로 등장하는 어머니의 입심이 합쳐져서 문체가 형성되었다는 김소진의 언어는 아름다운 순우리말 방언의 살아 있는 보고이다.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등 팔도 사투리에 함경도를 비롯한 북한 방언까지 맛깔스럽게 비벼진 감칠맛 나는 사투리는 그 특유의 표현들로 은유와 비유가 살아 있으며, 다양한 의성어와 의태어까지 더해 1970년대 미아리에 살았던 도시빈민들의 숱한 애환과 사연들을 그대로 생생하게 복원시킨다.
글쓴이 조원석은 서울 271번 버스 승객, 진로 마켓 손님, 이 현수의 남편. 상추를 키우는 정원사. 구피 열아홉마리를 키우는 어부. 도장 자격증이 있는 페인트공. 시나리오 '벽에 기대다'를 50만원에 팔고 남들한테 자랑하는 사람. "현실"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쓰다가 말다가 하는 게으른 사람.
그 외에도 수많은 "나"가 있어 어떻게 소개해야 할 지 모르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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