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8. 2. 20:12ㆍReview
백호울 「Nothing for Body」
- 무대위의 사람에겐 몸이 곧 '얼'굴이 된다
글_ 이현수
까만 무대가 더욱 넓게 느껴진다.
작은 체구의 무용수가 몸을 웅크리고 거북이처럼 고개를 파묻고 있는 것을 보니.
웅크린 몸 사이사이로 손과 발이 나왔다가 들어가기를 반복한다
전자 음악과 움직임이 한 호흡을 이룬다. 음악이 변하는 듯 변하지 않는 듯 반복되는 리듬 속에서 서서히 변해가듯 움직임 또한 단조로운 반복 속에서 조금씩 변화해 간다. 단순 반복되던 음악이 풍성해져 갈수록 작은 몸도 점차 커지는 것 같다. 보이지 않는 음악이 빈 공간을 채우고 몸짓의 파동은 빈 무대를 채워나간다. 몸이 이리저리 무대를 누비는 공연이 있는가 하면 이 공연은 몸으로 무대를 데려온다. 한 발자국도 떼지 않고 처음 그 자리에서. 몸이 곧 무대가 된다.
얼굴이 안 보이니까 얼굴이 보고 싶다. 예쁜지 안 예쁜지 보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얼굴이 보고 싶다. 얼굴에서 더 직접적으로 사람의 감정과 생각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까. 몸에서 얼굴은 무엇일까 싶다. 얼굴은 ‘얼’굴. 그런데 몸과 음악이 하나가 될수록 몸짓이 표정을 드러내는 것 같다. 무대 위의 사람에겐 몸 전체가 얼굴인가 싶다. 몸이 곧 ‘얼’굴이 된다.
움직임에서 호흡, 숨이 중요하다고 한다. 기본이라고 한다. 그 호흡은 몸의 중심으로부터 뻗어나간다. 그곳이 어딘지 정확히는 몰라도 어느 중심, 그 엔진에서부터 힘의 동력이 출발하여 몸의 곳곳으로 뻗어나간다. 이 공연에서는 그 중심이 서서히 드러난다. 중심부터 보여주지 않고 끝부터 보여준다. 마치 몸의 각 부위들이 각자의 중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가 그것이 몸 전체의 중심으로 통합되는 것 같다. 말초신경들이 충동질해서 깨어난 몸통이 웅크린 몸을 풀고 일어서더니 몸 전체를 무대로 팔 다리들이 춤을 춘다. 팔 다리들이 몸 전체에서 나왔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몸이라는 땅에 작은 생명체들이 출현하고 그것이 번식해가는 것 같다고 말하면 지나친 비유일까.
공연을 곱씹으며 묘사를 하다 보니 여러 비유들이 떠오르지만
공연장에서 본 것은 사실 몸과 몸짓 그 자체.
사실 다른 건 찾을 필요가 없다.
Nothing for Body.
이 공연은 네 개의 묶음 공연 중 하나였다.
어떤 공연은 집중이 잘 안 되고 자꾸 딴 생각이 났다.
‘피지컬 씨어터 페스티벌, 신체? 극? 몸을 주제로 하는 것일까? 몸을 통해 표현되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말이 없는 움직임은 모두 해당되는 건가? 만약 대사가 있는 희곡인데 그 내용이 몸에 대한 것이라면 이 페스티벌에 해당 된다고 할까 아니라고 할까, 피지컬 씨어터에서 몸은 형식인가 내용인가, 그 둘 다 인가, 몸을 내용으로 할 경우, 몸을 생물학적으로 분석하는 것 혹은 의학적으로 탐구하는 것 혹은 사회적으로 조사 연구하는 것 등등 왜 이런 것들이 주로 떠오를까, 예술가에게 몸은 하나의 매개이고 수단인데, 수단으로서 몸은 어떻게 다가가는 것이 좋을까, 무언가가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면 몸의 어떤 가치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일까 ...
나는 예술 작품에서 무엇을 기대하는 것일까, 빠져들기를 기대하는 걸까.
공연을 보는 순간 나의 몸이 빠져들면 생각은 나중에 조금씩 그 여운을 곱씹으며 절로 찾아오는 것이 아닐까, 공연을 보는 순간에는 머리가 아닌 몸으로 만나고 싶은 것이 아닐까, 하지만 꼭 그런 공연만 있는 건 아니지 않을까, 그런데 나의 몸이 즐거워하기 이전에는 아무것도 배울 줄 모르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제 6회 피지컬 씨어터 페스티벌
백호울 - Nothing fot Body
2011 0716 - 0717 @원더스페이스 네모극장
<Nothing for Body>는 백호울과 Matthias Erian의 라이브 미디어 퍼포먼스 <Nothing>을 순수한 몸 버전으로 발전시킨 작업으로, 2010년 Tanz Hotel에서 3개월간의 레지던스 기간 중 만든 작품이다. 몸으로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 안에서 손과 발의 섬세한 움직임이 이루어진다. 특히 손의 다양한 움직임들에 집중하였으며, 열 개의 손가락과 손목 등 관절을 활용한 다양한 형태의 움직임을 통해 무수한 느낌과 이야기를 표현하였다.
백호울
백호울은 보여주기 위한 작업이 아닌 마음이 담긴 작업을 하는 젊은 안무가이다. 첫 안무 작업 <관계-당신과 이야기하고 싶어요>로 2007년 CJ Young Festival 우수 작품상 및 2008년 춘천마임축제 도깨비 어워드를 수상하였으며, <관계-빛이 바래다>는 국제안무경연대회인 No Ballet(독일, 2009년)와 Yocohama Dance Collection Moving Space Project와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Artist at Resort에 참여하여 타장르 작가들과 협업 및 개인 작업을 하였다. 2009년 독일 및 오스트리아 4개 도시 투어를 시작으로 벨기에, 오스트리아, 포르투갈 등에서 작업을 선보이며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관객들과 마음으로 소통하고 있다.
필자소개_ 이현수
춤추는 것을 좋아하고 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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