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8. 5. 15:28ㆍReview
무엇이 삶으로부터 OO을 철저하게 감추려 하는가
- 이수영「Thanatonautes, 죽음 항해」
7월 21일 목요일, 섭씨 30도의 무더운 여름날,
이수영작가의 퍼포먼스 ‘죽음 항해’에 함께하고,
과정을 기록합니다.
글_ 홍은지
버스 앞, 출발5분전
2:00pm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1번 출구 앞. 소형 임대 버스가 정차해있다. 한여름 뙤약볕아래 하얀 소복을 입은 작가가 신청자 명단을 들고 도착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오늘 항해 참가자들이 모두 탑승하자 버스는 서울 외곽에 있는 벽제 화장장을 향해 도심을 빠져나간다.
승화원 내 봉안당 내부
벽제 화장장
(火葬場)의 공식명칭은 서울시립 승화원이다. 그곳은 평소의 심리적 거리만큼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다. 여기에서 우리는 화장시설과 봉안시설을 둘러볼 것이다. 안내 직원을 따라 우리는 승화원 안으로 들어가 접수처와 봉안용기 판매소를 거쳐 화장로 쪽으로 이동한다. 그곳에서 운구, 화장, 분골되는 화장의 진행절차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마침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영구차에서 내린 시신이 안치실로 옮겨진 후 화장실 전실로 운구 되는 시간이다. 유가족들 사이로 우리일행의 움직임이 혼잡을 더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척 조심스럽다. 대략 3-4미터 정도의 간격으로 8개의 안치실이 연달아 배치되어 있고, 여기에서 레일이 설치된 통로를 통해 관이 화장실 전실로 운구된다. 안치실 전면의 유리창문 너머로 8기의 화장로가 보이고, 승화원 직원분들이 레일을 따라 운구된 시신을 화장로로 옮기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이제, 승화원 본 건물에서 나와 유골이 안치되어 있는 봉안당으로 이동한다. (납골당이라는 일본식 표기 대신 이 말을 쓴다고 한다) 이곳에는 현재 만여기의 유골이 안치되어있다.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하루 100여회의 화장이 진행된다는 안내 직원의 설명처럼, 이곳은 삶의 현장만큼이나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3:30pm
인근 농가. 한때 축사였던 이 곳은 구제역 매몰지로 출입이 제한되어 있다. 텅 빈 칸막이 울타리, 멈춰있는 환풍 시설. 축사 한쪽에 슬레이트를 세워 막아 놓은 곳에 200여구의 젖소가 매몰되어 있다.
매몰지가 보이는 도로 옆 풀밭. 우리는 2인1조가 되어 작가가 준비해온 관을 트럭에서 내린다. 비좁은 우리에서 자라다가 구제역에 걸려 죽은 소들을 잠시라도 떠올려보자는 작가의 말과 함께 집단 입관(入棺)을 체험한다.
4:40pm
고양창작스튜디오. 이제 각자의 죽음을 맞이할 시간이다. 먼저 매몰지에서 다시 싣고 온 관들을 스튜디오 바닥에 일렬로 내려놓은 후, 우리는 줄을 서서 각자의 영정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필기도구와 양초가 준비된 책상에 모여 앉아 죽음준비교육 강사로부터 간략하게 압축된 강의를 받으며 각자의 죽음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본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그렇게 각자의 바람을 담은 ‘나의 장례계획’을 세우고 나면 유언장을 작성한다. 나는 참으로 사적인 죽음을 바라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공적인 것이 아닌 익숙하고 친숙한 나 개인의 것이기를. 존엄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수의로 갈아입고 자신의 영정사진과 유언장을 들고 관 앞에 서서 차례가 되면 작성한 유언장을 소리 내어 읽고 관 안으로 들어가 눕는다
. 염습은 시신이 바른 자세를 유지할 수 있도록 20여 곳을 묶어 고정시켜 놓는 것이라 한다. 이 과정에서는 발과 몸통, 두 군데만 약식으로 염을 한다. 관 뚜껑이 덮이고 밖에서 나무못을 박는 시늉을 하는 소리가 난다. 한동안 관 안에 누워있다. 다른 사람들이 유언장을 읽는 소리가 들린다. 관 안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밖에서 나는 모든 소리들이 세세한 것까지 크게 잘 들린다.......잠시 후. 관 뚜껑이 열리고 우리는 다시 살아난다. 축하하는 포옹을 받으며 관 밖으로 나온다.
수의를 입은 참가자들
입관체험
8:00pm
다시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앞. 소형 임대 버스는 정체된 도로 한쪽에 우리를 내려준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로 되돌아가기 위해 흩어진다.
나는 버스 정류장 앞 골목에서 피자가게를 발견하고 오늘 저녁식사를 위해 피자 한판을 산다. 피자상자를 들고 버스에 탄 후, 운 좋게 자리에 앉아 따끈따끈한 상자를 피곤한 무릎 위에 놓는다.
어쩌다 죽음은 삶에서 이토록 분리되었을까.
어쩌다 오늘 처음 보는 사람들과 반나절 이상 죽음을 쫓아다니게 되었을까.
음... 다시 묻는다.
무엇이 삶으로부터 죽음을 철저하게 감추려 하는 걸까.
무엇이 작가로 하여금 우리를 죽음과 대면하도록 만든 걸까.
결국 이것은 같은 질문인지도 모르겠다.
생산적이지 못한 것들, 그러니까 생산적이어야만 하는 삶의 현장에 감히 발을 들여놓아서는 안 되는 것들이 어디 죽음뿐일까. 삶 안에 함께 뒤섞여 있던 것들이 야멸차게 밀려나 개선, 교육, 치료, 감시의 대상이 되는 과정은 우리 주위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그 격리가 삶의 청결과 안전을 보장해줄 것만 같은 불안한 마음이 만든 강박증. 헌데 그 과정은 위험하고 위협적인 것들을 나에게서 떼어놓는데 그치지 않는다. 개개인의 내면에서도 이 분리와 격리는 똑같이 되풀이되며 자신을 받아들이기보다 밀어내는 것에 익숙해진다. 그런데 이렇게 밀어내다 보면, 아까 유언서를 작성하며 내가 바라던 개인적이고 친숙한 죽음이 가능할까? 삶이 내 것이 아니라면, 죽음 역시 그러하지 않을까? 작가는 전시장이 아닌 죽음의 현장으로 우리의 손을 이끌고 나가서 몸으로 부딪치며 함께 나누기를 바랐다. 이것이 작품이든 퍼포먼스이든, 형식의 범주 안에서 이야기되기 이전에, 우리의 삶 안에서 분절된 다양한 죽음들을 삶과 다시 이어보자는 작가의 선택과 제안이 아니었을까.
2011 0721 - 0722 @경기도 고양시 벽제 화장터 일대
작가노트
내가 사는 동네인 고양시 벽제에는 오래된 큰 화장(火葬)터가 있다. 그 주위에 납골당, 비석을 깎는 석재소, 납골함을 파는 장례품 상점, 납골이나 묘역 등을 대행해 주는 장례대행 가게들이 몰려있다. 거대한 공동묘지가 있고, 조선시대 왕릉인 서삼릉, 고려 공양왕릉, 최영장군 묘, 6.25 필리핀 참전비도 있다. 옆 동네 사리현동에선 작년 7월 잣나무와 느티나무 벌목으로 3백여 마리 백로들이 떼죽음을 당하였는데, 마을 주민들이 그곳에 백로 위령비를 세웠다. 그 아래 마을인 신원동엔 구제역으로 살아있는 돼지, 사슴 465두를 살(殺)처분해 묻은 매몰지가 있다.
나는 동네를 돌아다니며 ‘죽음 하나하나가 생의 징검다리’라는 시(詩)를 떠올렸다. 한국에서 자살은 2010년 기준 청소년 사망원인 1위, 여성 사망원인 3위, 남성 사망원인 4위이다. 2009년 세브란스 병원 김할머니의 존엄사 논쟁은 뜨거웠다. 작년부터 올해 초까지 350여만 마리의 가축이 구제역으로 살처분 됐다. 소·돼지를 잃은 농가는 모두 6241가구이다. 살처분에 직접 관계한 공무원과 수의사 등을 셈하면 엄청난 사람들이 거대한 죽음의 쓰나미에 직접 휩쓸렸다. 쓰나미 먼 곳에 있는 듯 했던 우리도 매일 업데이트 되던 흉흉한 죽음에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북유럽 신화에는 이그드라실이라는 거대한 세계수(樹)가 있어 삼라만상 뭇 생명들이 땅 밑으로는 이 거대한 생명수에 뿌리를 같이 하고 있다한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언젠가는 죽는다. 선배 죽음들을 비추어 우리 생을 바라볼 수 있을까. 나의 죽음이 뒤에 남은 이들의 베이스캠프가 되어 줄 수 있을까. 죽음 하나하나를 징검다리로 우리 생을 싱싱하게 같이 건너갈 수 있을까.
필자소개_ 홍은지
연극연출가. 공연창작집단 <은빛창고>
그 동안 주로는 공연 문화 영역 안에서 사람들과 만나 함께 해 왔다. 이것저것 관심이 많고 다소 산만해서 여러 종류의 세계를 돌아다니며 비슷한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는 게 즐거운데, 아무래도 소심한 몽상가인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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