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7. 8. 00:53ㆍReview
무간지옥에 핀 희망의 꽃
영화 <두 개의문> 리뷰
글_멘붕어
<두 개의 문>이 화제다. 소수의 상영관으로 시작해서, 전상영 매진과 입소문을 타고 조금씩 상영관을 늘려가는 추세가 예전 <워낭소리> 때를 떠오르게 한다. 그러나 포털의 영화데이타베이스에 등재된 이 영화의 평점은 7월 7일 현재 4점 초반대다. 좋은 영화라고 입소문 난 영화들 중 이런 경우는 여지껏 한 번도 없었다. 업계에 암묵적으로 알려진 대로 ‘타 영화사 알바’가 개입했을까? 그러나 별달리 이해관계도 걸려있지 않을 독립 다큐멘터리영화에 왜? 평점에 관한 이야기는 일단 뒤쪽으로 넘기기로 한다.
용산. 이제는 단순히 서울 특별시에 소속된 25개 구(區) 중 하나가 아닌, 고유명사가 된 그 이름. 2009년 용산참사 이후로 용산은 마치 80년 광주가 그랬듯, 어떤 특정한 이데올로기나 역사적 의미를 내포하는 이름이 되어버렸다. 진보주의자로 유명한 변영주 감독은 미야베 미유키 원작의 ‘화차’를 영화로 리메이크하면서, 대담하게 ‘용산’이라는 지역을 영화의 클라이막스 부분에 통째로 이식해 버린다. 심지어 여주인공의 최종 종착점은 그녀가 인간임을 스스로 포기하게 만든 차가운 세상이 고스란히 보여지는 ‘옥상’이다. ‘용산의 옥상’ 은, 이제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불지옥’ 의 심상으로 낙인처럼 찍혀버린 것이다.
영화의 홍보 포스터는, 대게 그 영화의 제작자 내지는 연출자가 영화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가 집약된 하나의 컷과 같다. (다양한 외부요인이 개입되는 상업영화판에서는 종종 어긋나는 경우도 있지만) 그림에서 보듯 <두 개의 문> 포스터는, 용산참사 당시 진압을 담당했을 법한 경찰특공대원 한 명의 얼굴을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세하게 뜯어보면 연출자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그가 착용하고 있는 진압복은 이곳저곳이 그을리거나 찢겨있으며, 헬멧은 이미 만신창이 상태다. 그리고 우리(관객)를 응시하는 그의 눈빛은 아무런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바라보는 ‘우리’가 위치한 곳, 특공대원의 헬멧유리에 반사되어 보이는 이 곳은 이미 불길이 넘실대는 무간지옥이다. 이 포스터 한 장은, 용산 참사 이후 3년이 지난 뒤 살고 있는, 당시 사건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었던 우리 일반인들을 그 곳으로 데려다 놓고 담담하게, 그러나 치밀하게 사태를 응시하게 만든다.
[두 개의 문] 영화의 흐름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영화는 시작부터 관객의 눈에 그 날의 불타오르는 망루의 영상을 들이댄다. 이미 자주 노출된 영상이지만 절대로 적응될 수 없는, 불지옥 그 자체. 참사 이후 사건의 추이와 검, 경찰, 그리고 현 정부의 이해할 수 없는 작태들이 보여지지만, 연출자의 진짜 의도는 이후, 그러니까 사건 발생 25시간 이전 경찰특공대의 작전 수행 시작 시점부터 드러나게 된다. 82년 아시안게임을 기점으로, ‘테러진압’ 을 목적으로 설립된 경찰특공대. 그들이 이 사건에 개입된 2009년 1월 18일부터 망루가 불타오르던 1월 19일 오전 7시까지의 이야기가 당시 채증영상들과 함께 당시 사건에 관련되있던 기자, 변호사, 범대위 대변인 등의 인터뷰를 통해 치밀하게 재구성된다.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되었던 용산참사 관련 법정에서, 경찰특공대원 1제대장을 비롯한 몇몇 경찰대원들은 사건의 과정을 묻는 변호사에게 이따금씩 거부반응을 보인다. 그들의 거부반응은 대체로 ‘왜 그런 상황에서 당연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가?’ 식의 질문에서 나온다. 실제로 특공대원들이 진압에 참여한 시점에서부터, 이성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이 무수히 많이 발생한다. 그런 일련의 상황들에 대해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내지는 ‘나는 내게 주어진 임무만을 다할 뿐 과정에 대해서는 모른다’ 는 대답을 할 뿐이었다. 시스템에 함몰되어 사회의 조그마한 부속품이 되어버린 인간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
‘대테러 진압’을 목적으로 창설된 경찰 소속 특수부대는, 2001년 호텔노조 진압, 2005년 오산택지지구진압, 울산플랜트노조 진압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에서 ‘소기의 목적’ 을 달성했다. 임무달성에 대한 성공적 평가는 그들을 더욱 목표 지향적으로 만들었을 것이고, 그런 일련의 흐름들이 결국 어느 추운 겨울날의 참사를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런 문제가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데 있다. 필자는 ‘두 개의 문’에서 경찰특공대로 대변된 ‘우리’를 본다. 자본주의라는 그물로 수십 년 동안 잘 짜여진 시스템, 그 안에서 우리는 욕망할 것 욕망하고 누릴 것 다 누리는 ‘자유’를 획득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각종 대기업이나 가진 자를 위한 ‘개발’의 명목으로, 한 개인의 평범하고 소박하던 삶이 송두리째 파괴되는 사례들이 얼마든지 널려있다. 너무나도 일상화된 파괴적이고 압도적인 폭력. 단지 나한테 날아온 돌멩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리고 나의 힘은 너무도 미약하다는 이유로 ‘그 날’ 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망루가 세워진 남일당 건물 옆을 지나갔다. 고개 한 번 들어보지 않고...
사람들이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타죽었는데 그 현장에 있었던 기자는 ‘1면 특종 잡았다’며 축하를 받는 세상. 그 날의 참사를 사람들의 관심에서 묻어버리기 위해 청와대가 연쇄살인사건에 대해 적극적으로 홍보하라고 경찰청에 하달하는 세상.
그리고 그런 일련의 비인간적인 사태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눈에 띄는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던 세상... 우리 역시,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땅이 어느 새 활활 불타오르는 지옥도가 되어버린 줄도 모르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 자신이 들어가야만 하는, 저 처참한 불길을 바라보고 있는 특공대원의 넋나간 듯한 얼굴은 바로 우리 자신들의 그것이 아닐까.
100여분 동안의 무간지옥도를 보면서 필자가 그나마 아주 사소하고도 소박한 위안을 받았던 부분은 [다 죽어]에 대한 어느 특공대원의 법정 진술이었다. 불타오르는 망루 안에서 ‘다 죽어’ 라는 외침을 들었다는 것이 이 특공대원의 진술이었고, 이 진술은 철거민들의 시위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이들에게는 훌륭한 떡밥이 되었다. 유증기 후유증과 함께 불타오르는 불지옥을 경험하고 살아나온 이 대원은, 그러나 법정에서는 자신의 진술을 번복한다.
‘다 죽어’ 라는 농성자의 외침은, ‘다 죽어버리자’ 라는 느낌보다는 ‘큰일이다, 이대로는 다 죽는다’ 라는 느낌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농성자들의 폭력성을 강조해야 하는 경찰과 정부측 증언으로써는 실패한 증언이다. 잘 짜여진 시스템 밖으로 튀어나와 버린 특공대원의 증언 번복. 이유는 단순했다. ‘진술서를 쓸 때는 농성자들에 대한 분노가 심했으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들이 그렇지 않았던 것 같았다’ 는 것.
집단에 함몰되어 부품처럼 살아가는 삶이라도 인간 본연의 양심이 남아있다... 는 사실, 이 사실은 분명 소박하지만 따스한 위안이었다.
한 번의 클릭질로 쉽게 이루어지는 평점에 너무 연연할 필요는 없지만, 평가인원이 수천 수만명이 되면 그 평균값은 어떤 식으로든 의미를 갖게 된다. 이 영화가 처음 개봉했을 때의 네이버 평점은 9점을 넘나들었으나, 이후 ‘1점 악평’이 줄지어 등장하면서 평점은 단숨에 3점대로 곤두박질쳤다. 필자가 어처구니 없어 ‘평점마저 슬픈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이라고 트윗을 했던 날이 6월 29일. 이 날의 평점은 3.97이었다.
그로부터 9일이 지난 오늘, 영화의 평점은 4.33 으로 소폭 상승했고, 이맘때쯤 ‘0’이 될 거라고 예상되던 상영관 수는 다음 주부터 2배로 늘어난다. 조금씩이지만, 아주 사소한 변화들이 느릿느릿 쌓이고 쌓여 세상을 바꾼다. 고리타분한 표현이지만 진실과 정의는 반드시 믿는 자에게 따라온다. 그렇게 믿고 싶다. [두 개의 문]은, 그런 믿음에 조그맣지만 강한 의지를 더해 얹어주는 그런 영화였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글_멘붕어
영화판에서 기웃거리며 삼선동에 서식하는 괴생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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