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3. 1. 01:51ㆍReview
자유를 찾아 들이킨 숨. 무대에 긴 호흡으로 이야기 하다
<이광석 쿰바카>
와이즈발레단, 마포아트센터
글_양은혜
무용수가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올린 자전적 작품 <이광석 쿰바카> 공연이 2월 14, 15일 양일간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에 올랐다. 서울문화재단 공연장 상주예술단체 육성 지원 사업으로 만난 마포아트센터와 와이즈 발레단이 발표한 첫 기획 작품으로 유선식이 안무하였고 현대무용가 이광석이 주인공으로 무대에 섰다. 한국 무용가들의 삶을 무대에서 작품으로 재조명하는 시리즈로써 발레가 아닌 현대무용을 다룬 데에서 이색적이다.
고인이 된 안무자의 작품을 리메이크하여 재조명하는 무대는 흔히 봐왔어도 생존해 있는 무용가를 재조명하여 그의 삶뿐만 아니라 그가 겪고 있는 동시대의 무용흐름을 다시 바라볼 수 있는 것은 관객뿐 아니라 같은 무용인들에게도 새로운 시선을 안겨다 주었다. 더욱이 발레단에서 발레라는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타 장르의 무용가, 전기를 작품화한다는 것은 발레단으로써도 모던발레의 가능성을 넓혀 가는데 좋은 예시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한편으로 현역 무용수를 재조명하는 무대가 무용계 안에서 격려는 될 수 있어도, 대중의 시선으로 바라보았을 때 그들의 관심과 의도가 온전히 전달될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안무자는 작품의 주인공인 이광석의 일대기를 총6장으로 함축하였다. 요가로 인간의 호흡과 움직임에 대해 연구하여 그것을 안무에 적용시켜 온다는 그는 문맥상의 흐름을 읽고 인간의 심리와 현상을 무대에 표현해 내는 것에 타고난 자질을 가진 안무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무용수 이광석과 오랜 친분도 있지만 안무자로서 바라본 이광석의 이야기는 비발디의 음악과 대중음악을 통해 흐름을 연출, 서사를 살려 창작 발레와 함께 완성 지었다.
무용수 이광석은 46세의 나이로 무대에서 20대 못지않은 표현력과 에너지를 갖고 있다. 70분 작품 전막을 출 수 있다는 것은 20대의 무용수도 매우 버거운 일이다. 지치는 기색이 없이 탄력 있는 근육의 움직임과 작품에 임하는 집중력은 보는 사람에게도 흡입력을 선사한다. 20세에 무용을 다른 전공생들보다 늦게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인 최초로 요코하마 콩쿠르 최우수상, 나가노 콩쿠르와 홍콩 국제 콩쿠르 등에서 대상을 수상하여 해외에서 먼저 실력을 인정받은 그이다. 홍승엽이 이끌던 무용단 ‘댄스 시어터 온’에서 무용수로 활약하며 국내에서도 무용가로, 안무가로 이름을 알리며 “현대무용의 대중화”를 위한 활동을 꾸준히 펼쳐 왔다. 이는 2009년 그가 대표를 맡고 있는 ‘댄스컴퍼니 미디우스’에서 발레와 현대무용, 힙합(비보이)이 함께 어우러진 작품<보이즈 인 더 레인>이 그 일환이라 볼 수 있겠다. <이광석 쿰바카>에서도 그의 이야기를 다룬 데에서 이전 작품과 비슷한 면을 볼 수 있다.
이번 공연에서 와이즈 발레단이 그를 집중하게 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비롯된다. 세계적으로 뛰어난 무용 실력을 인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당면하는 생계의 어려움은 그의 무용인생을 앗아갈 수도 있다. 이에 이를 위로하고 힘을 실어주고자 한 의도에서 출발한 것이다. 공연예술가는 무대에서 관객에게 삶을 자각하여 되돌아볼 수 있게 하고, 삶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선사시켜주지만 무대 밖 현실세계에서는 힘없고 경제력 없는 딴따라로 인식된다. 그러하기에 <이광석 쿰파카>에서 이광석의 춤을 깨우고, 춤을 지휘하며, 그를 인도하는 광대는 어쩌면 이광석 자신이자 예술인들을 상징한다. 행복과 슬픔을 동시에 내재한 광대, 이광석 그의 호흡이 춤에서 진하게 배어나왔다.
‘쿰바카’는 요가 용어로 ‘숨을 참다’라는 의미이다. 이는 호흡을 통해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힐링 호흡법이다. 춤에서의 호흡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점프를 하기 전 숨을 들이켜고 참는 호흡, 턴(turn)을 돌며 참는 숨, 와이드 한 동선을 그리며 길게, 길게 쉬는 숨, 대사 없이 몸의 감정으로 연기할 때 쉬는 숨 등 움직임과 호흡은 늘 함께 한다. 움직임은 호흡으로 인도되고 호흡은 움직임으로 인도된다. 이광석은 춤에 의해 이끌리고 춤을 놓지 못하고 붙잡는다. 그와 춤은 늘 함께 한다.
작품의 시작, 이광석의 지인들의 영상편지가 무대에 상영되자 무용수들은 무대바닥에 테이핑을 하는데 이는 이후 장면에서 그에 맞춰 무대를 메우는 무용수들의 모습에서 무용계의 구조로 표현되는 것처럼 보인다. 무대에 홀로 쓰러져 있는 그에게 한 광대가 후레쉬로 앞을 밝히며 종을 들고 나와 실 양쪽으로 메여진 두 개의 종을 그의 왼손에 건다. 오른손을 움직일 때마다 종소리가 청아하게 극장으로 울려 퍼진다.
청각의 핸디캡이 있는 그에게 소리와 움직임은 평생을 춰온 춤 인생과 핸디캡으로 함축된다. 하지만 필자는 그의 청각에 대해 거론하기보다 70여 분간 전막에서 자신의 삶을 춤춘 그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그의 핸디캡은 무대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그는 현재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여 춤추는 강한 무용수이기 때문이었다.
조용한 움직임과 종소리로만 이루어진 서막이 끝나자 비발디의 음악과 함께 펼쳐지는 군무가 이전의 장면과 대비되어 시작된다. 안무가 유선식의 음악 해석도 엿볼 수 있는데, Allegro(빠르게), Presto(매우 빠르게), Largo(느리게), 그리고 이어진 손성제의 ‘멀리서’, ‘얼음처럼 단단하게’, 에코 브릿지의 ‘부산에 가면’의 노래가 극 전체의 긴장과 이완의 역할을 해내면서 일종의 서사를 갖게 된다.
Allegro(빠르게)에서 무용수들의 군무와 이를 총괄하는 지휘자이자 광대 사이로 이광석은 그들과 함께 설 곳이 없다. 아마도 그가 처음으로 바라본 무용계의 구조적인 모습과 이질적인 모습으로 비춰진 것이라고 보여진다. 광대의 모습을 한 지휘자가 한 줄로 늘어선 무용수들에게 꽃을 한 송이씩 나누어 준다. 이광석에게 줄 꽃이 없는데서 그 사연이 더 돋보인다. 각각 한 사람에게 한 송이씩 갖게 된 이 꽃은 무용수로서의 자격, 그들의 희망, 욕망, 꿈, 대가 등의 상징적인 의미로 작품 전반에서 사용된다. 이러한 꽃이 무용수들의 가슴이 아닌 등에 꽂혀 있는 것에서 재미있는 발상이 엿보인다.
작품의 중간, 마임의 요소가 함께 어우러지는 장면에선 광대가 그에게 술과 담배를 알려준다. 무용계에 입문한 그는 현대무용뿐만 아니라 발레와 한국무용의 춤사위를 무용수들과 함께 군무로 반복하며 그의 끊임없는 무용인생에 대해서 표현한다. 그러던 중 그에게 한 여인이 나타나 그 둘은 각자가 갖고 있는 꽃의 색깔과 냄새를 비교하며 서로의 마음을 교차시킨다. 그들 각자를 '존재' 하게 하는, 내면적인 모티브이자 정체성은 상징적인 꽃을 통해 효과적으로 표현되었다.
Allegro(빠르게)로 시작된 사랑의 감정은 Andante(느리게, 걸음걸이 빠르기), Largo(아주 느리게)로 전개되며 빠른 속도로 서로에게 이끌리던 감정은 천천히 힘을 잃고 그들의 거리는 점점 벌어진다. 이렇게 감정의 흐름을 음악의 빠르기로 설정한데서 무용극다운 특징이 두드러진다. 손성제의 ‘멀리서’와 ‘얼음처럼 단단하게’의 노랫말과 함께, 무대에 서는 두 명의 무용수이자 연인 관계인 이들의 시선은 외부로 향하게 된다.
‘멀리서 네 모습 바라보는 가만히 힘없이 바라보는 미련한 내 가슴앓이 그대란 사람과 나 사이엔 켜켜이 무심히 쌓여 가는 세월의 껍데기만이…’
노랫말과 함께 일렬의 푸트 라이트(foot light)는 무대의 후방으로 역전됨으로써 관객이 그들의 심리상태에 동참해주길 바란다. 이는 카메라 앵글처럼 무대 앞뒤 조명으로 프로시니엄을 전환함으로써 관객들은 그들의 심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별 후에도 계속되는 그의 무대는 군무를 뒤로 하고 외줄을 타는 한 사람으로서 외롭고 불안하다. 녹음된 그의 독백과 함께 무대에서는 다운스테이지의 상, 하수를 왕복, 영상에서는 거울을 바라본다. 그의 삶을 함축하는 글씨들이 적힌 스티커를 거울에 붙이는 그와 무대에서는 무용수들이 그의 몸에 붙이는 행위를 통해 본연의 그의 모습은 껍데기로 표현된다. 이 껍데기로부터 정체성을 찾기 위해 그는 과감한 점프와 움직임을 시도하고, 결국 그는 이 단어들로부터 탈피하여 자유를 되찾고자 한다. 에코 브릿지의 ‘부산에 가면’ 을 배경음악으로 무용수들의 등 위로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자유를 향한 갈급함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장면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남은 전율의 정체는 전막에서 무대를 지킨 40대의 무용수에 대한 인상이었다. 쉼 없이 춤을 춘 그가 파도에 몸을 맡기고 넉넉한 자유를 누리는 그의 모습은 작품 제목 그대로 ‘쿰바카’ 스러웠다. 춤의 첫사랑에 아직도 설레는 그가 앞으로 무대에 더 긴 호흡으로 굳게 서기를. 이번 마포아트센터와 와이즈 발레단의 기획작이 그에게 큰 격려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경제적 고난으로 허덕이는 예술인들을 작품화한 이번 작품이 무용가들뿐만 아니라 보다 많은 이들에게 공감받기를 바라며, 앞으로 탄탄한 시리즈가 되기를 희망한다.
*사진출처 : . copyright@바바스마일
필자_양은혜 소개_나의 길고도 짧았던 무대 위에서의 시간은 이제 글로 영원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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