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2. 5. 18:20ㆍReview
형식이 태도를 만들 때
국립무용단 컬렉션 <기본활용법> 조용진+이재화+서영란+DJ소울스케이프
글_김송요
하늘극장은 소극장도 대극장도 아닌 중간 크기의 ‘기본’ 극장이다. <기본활용법>의 공연 날 극장은 완전히 ‘기본’ 상태처럼 보였다. 마루 역할을 할 흰색 간이 바닥과 스크리닝을 위해 설치된 흰색 간이 벽. 천장 중앙과 원형 골자의 테두리에 아치형의 호를 그리듯 설치된 여섯 대의 스피커. 은색 홀로그램 패턴의 디제이박스와 시계(視界) 끄트머리에서 간당거리는 맥북 사과 로고만 빼면 모두 하얗고 편평하고 무늬가 없었다. 선글라스를 끼고 희고 검은 옷을 차려입은, 맨발의 무용수들 역시 그렇다. 기본으로 점철된 공간에서 첫 사위가 시작된다. ‘기본’이다. 한국무용의 기본. 두 무용수는 먼저, 나중에 같은 포즈로 ‘기본’을 소화한다.
처음 ‘기본’의 반복은 마치 따라하기나 교정하기처럼 비춰진다. 거듭되는 ‘기본’ 주고받기는 리듬을 만든다. 웅성웅성, 궁싯궁싯. 목을 긁고 몸을 떨며. 바쁘게 진동하는 모양새에 따라붙을 수 있는 수식, ‘신경질부리는’ 듯한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이 반복은 테크닉의 정교화와 완벽화를 위한 강박적인 교정이나 강제적인 모방보다는, 어린아이가 제 앞의 어른을 따라하고 그러면 또 어른은 마주본 어린아이를 따라하는 것 같은, 본능적인 놀이와 더 닮았다. 따라하는 몸짓에는 따라하는 사람의 버릇이 배어 있다. 결국 몸짓들은 모두 달라지고, ‘기본’은 그것을 체득하는 사람의 체취와 근육과 여운에 맞추어 달라진다. 기본은 피드-백의 과정을 통해 면면 빛깔이 다른 ‘춤’으로 변모한다. 하기야 춤이 사람도 시간도 초월해 모두 같을 수가 있나. 하기야 춤이 언제고 같을 필요라도 있나. 얌전해 보였던 극장 역시 변화한다. 조명에 의해 색이 울긋불긋해지고, 디딤새에 맞춰 찡걱거리는 소리를 내고, 안쪽에서부터 빛을 뿜어내고, 움직이기도 하며, 사람들의 그림자를 늘어뜨려 비추는 흰 바닥과 흰 벽의 신통방통한 둔갑술 덕택이다.
동작이며 무대도 보기가 재미나지만, 소리도 듣기가 좋다. 이 공연엔 신경질적인 소리가 하나도 없다. 어떤 공연들 그리고 영화들은 소리로 사람을 충동질한다. 꼭 끽끽거리는 소리만이 신경질적인 것은 아니다. 긴장하길 종용하는 긴박한 소리, 눈물 흘리길 채근하는 숙연한 소리, 그것들은 종종 극의 분위기를 살리고자 하는 본래의 순수한 의도에서 이탈해 사람을 몰아붙인다. 이 공연에 쓰인 소리 중에는 그런 것이 전혀 없다. DJ가 찍어내는 것은 정형의 비트나 곡조가 아니라 공기를 스치고 가르는 소리들이다. 찻길의 쉭쉭거리고 빵빵거리는 현대의 소음이 저잣거리에서 소맷부리 펄럭이는 행인들의 소리를 갈음한다. DJ와 무용수가 박과 사위를 메기고 받는, 공감각적 피드-백의 순간 역시 신명나다.
동시에 누구보다도 이 공연을 완성시키는 주역은 (시상식장에 선 여배우가 하는 말 같지만 정말 그러한데) 관객들이다. <기본활용법>의 무대 대신 객석을 영상으로 기록해 남겨둔다면 아마 그건 그 자체로 또 다른 공연 실황이 될 것이다. 팔짱을 끼고 테크닉을 심사하는 대신, 마치 경청할 때, 신나게 수다를 떨 때의 자세로 앉은 관객들. 배꼽이 앞을 향하고 상체도 무대를 들여다보며 고개도 앞으로 숙였다. 언제든 피드-백의 현장에 투입될 수 있게끔 준비 자세를 취하는 것 마냥. 그리고 이들은 정말로 공연의 삼 분의 일 지점 무대에 등장한 카메라에 의해 기본활용의 실전에 뛰어든다. 길게 연장된 케이블에 매달린 캠코더는 처음엔 땀 흘린 무용수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무용수의 얼굴은 벽의 역할을 하는 흰 스크린에 생방송으로 영사된다. 이후 카메라가 겨냥하는 것은 바로 관객이다. 이제 무용수들은 스크린에 비친 관객의 움직임을 따라한다. 처음엔 어색하게 머리를 만지거나 어깨를 으쓱이던 관객들은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피드-백을 확인하고는 조금씩 대범해진다. 부러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거나 따라하기 어려운 포즈를 취하기도 한다.
금요일 공연에선 여기서 재밌는 일이 벌어졌다. 관객이 무용수들이 하던 동작을 그대로 따라해 보인 것이다. 무용수를 따라하는 관객을 따라하는 무용수. 사위의 연쇄성은 극에 달하고, 각각의 몸짓들은 액션과 리액션의 선후관계가 무의미해지도록 한데 질펀하게 섞여든다. 관객은 이제 제대로 사위의 주체가 되었다. 무용수들이 관객들의 손뼉 소리에 몸을 떨어 보이자 이후 동작이 시작되었는데도 아랑곳 않고 손뼉을 친다. 결국 무대에서 그만해 달라는 말이 들리자 꺄르르 웃어버린다. 장단에, 손짓 발짓에 ‘얼쑤’하고 추임새도 넣는다. 눈치 보지 않고 공연에 전력으로 임하는 이들의 모습, 어떤… 걷잡을 수 없는 난입의 마당춤!
‘기본’이 교과서라면 ‘기본활용법’은 ‘기본’을 씹어 삼키고 개념-유형-심화를 차곡차곡 내딛는 자기주도적 학습―혹은 수련이나 수행, 아니면 ‘practice’나 ‘etude’나 ‘canon’, 그도 아니면 제시부-발전부-재현부의 소나타라고 해도 제각기 다른 의미로 좋을―이다. 이것이 한국무용이기도 현대무용이기도 하다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소리를 여기서 또 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그냥 이건 춤이다! 하고 뭉뚱그리려니 못지않게 무책임하다. 그런데도 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별명이 서너 개인 개구쟁이 공연에게 어찌 한 장르의 이름을 붙일 수가 있을까. 이건 그냥 (시시하다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춤이다. 그리고 이건 완전히 동시대적인 무용이기도 하다. 더불어 이 춤은 감히 한국무용이라고 선언할 만하다. 한 번도 마당에서 와르르 벌어지는 춤판을 보지는 못했지만, 여기서 무대와 객석이 분리된 이 공간이 문턱 없는 마당으로 변하는 환영을 분명 체험했기 때문이다. 색동저고리 입고 오색 천과 깃털 부채 알록달록 옥춘 사탕으로 장식하지 않아도 오색찬란해지는 이 신비의 들썩임이란.
공연이 모두 끝나고 무용수들이 인사를 한다. 마지막 인사도 먼저 하면 꼭같이 뒤따라 이어진다. 똑같은 인사, 그러나 무언가 하나가 추가된다. ‘씨익’하는 웃음이다. 그래 그 웃음, 완전한 천연의 것!
**사진제공_국립극장 / 국립극장 페이스북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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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_김송요 소개_느낄 수 있는 모든 것에 호기심도 애정도 욕심도 많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에 혹해 대학에서 미술이론을 공부했습니다. 꾸준히 감각의 그릇을 키워서 넉넉한 감정을, 이야기를 고봉으로 담아내고 싶습니다 |
2014 '국립' 무용단의 새로운 변화! + '전통'을 낯설게하라!! 조용진+이재화+서영란+DJ소울스케이프+조화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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