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7. 30. 09:12ㆍReview
도시시민의 블루스
서울괴담 세 번째 정기공연 <북정블루스>
글_채 민
▲ 극단 서울괴담이 머물고 있는 성북동 고갯길을 가는 03번 마을버스 (사진=jin3)
아무래도 늦을 것 같아 택시를 잡았다. 장소에 대한 정보는 공연 포스터의 '성북동 북정마을'이 전부다. 문의할 수 있는 전화번호는 없었다. '서울괴담‘의 SNS 페이지에서 '03마을버스 종점'을 본 기억이 났다. 03버스의 종점은 '노인정'이다. 내비게이션에 '북정마을'이 0개 있다면, '노인정'은 228개. 택시기사는 짜증이 났고, 나는 진땀이 났다. '양씨가게앞', '슈퍼앞' 등 03번 버스의 정류장 이름을 보고 있자니, 마치 세상에 이 동네 하나만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오르막길에 접어드니 연희동을 떠오르게 하는 높은 담벼락의 문이 열리고 검은 세단 차량이 들어갔다. 그 길 위에 '서울에 하나 남은 달동네 북정마을' 이라고 쓰인 현수막이 펄럭였다. 모순적인 풍경이었다. 여하튼 현수막이 없었더라면 차를 멈추고 다른 길을 찾아보았을 것이다. 오르막길을 좀 더 올라가니 조바심에 열어두었던 차창을 통해 희미한 파전 냄새가 풍겼다. '북정카페' 앞, 삼거리가 만나는 곳에 마당을 둘러싸고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공연은 지연되어 여섯시 반에서 일곱 시로 미루어지고, 덕분에 나는 '카페'라기에는 오히려 '주막'에 가까운 곳에서 나누어 주는 전과 막걸리를 맛볼 수 있었다.
이제와 시작시간을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웃고 떠들고 마시는데, 오르막길에서 풍악소리가 들려왔다. '서울괴담'의 시그니처와 같은 ‘노인 탈’을 선두로 길놀이가 시작되었다. '서울괴담'의 '탈'은 주름이 많은 노인의 얼굴을 하고 있는데, 커다란 탈의 테두리에 사자 털을 연상시키는 길고 잘은 술이 붙어있어 전통적인 사자탈의 기능을 대신한다. 서울괴담의 '사자'는 짐승이 아닌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는데, 그 형태와 질감은 고정되어 있지만 보는 사람의 각도와 탈의 움직임에 따라 다양한 표정을 읽어낼 수 있다.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감정의 이입이 가능케 한다.
내가 유독 '서울괴담'의 오브제에 끌리는 이유는 특유의 그로테스크함 때문이다. 북정블루스의 ‘사자’는 커다란 머리만 움직이는 형상인데, 이는 어렸을 적 들었던 머리만 떠다니는 귀신을 상기시킨다. 2013년 ‘성북구민회관’에서 공연했던 <두-할,할망할망>에 등장한 할망은 머리 두 개의 샴쌍둥이다. 극중 할망은 폐휴지를 줍는 노인이었다. '서울괴담'은 세상에서 속된말로 병신취급을 받는 비정상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모습들, 그리고 괴담 속에서만 존재하는 비현실적이고 동화적인 형태의 오브제들을 만들어낸다. 소외 되고 금기시 된 존재로써의 오브제들과 배우가 만들어내는 묘한 감정의 화학작용은 ‘서울괴담’ 만의 매력이다.
사자가 마당을 가로질러 파란 대문 안으로 사라지고, 문 위에 색동저고리를 입은 두 명의 배우가 걸터앉았다. 둘은 둘러앉은 사람들을 보고 씩 웃더니 뒤로 드러눕는다. 이윽고 발을 쳐드는데 우둘투둘하고 못생긴 탈이 씌워져 있다. 옷차림새와 족두리가 영락없는 신랑 각시다. 턱이 없는 탈에 배우들의 발꿈치가 턱 구실을 한다. 첫날밤의 밀고 당기기를 보며 동네사람들이 웃어젖히는 동안 시간은 훌쩍 흐르고, 이미 몇 해는 지지고 볶고 했을법한 부부가 우당탕 대문 밖으로 달려 나온다. 이제 본격적으로 마당에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마당을 둘러싼 관객은 서로의 표정을 살필 수 있는 메타적 구조를 가진다,
서로의 표정을 인식할 수 있는 구조 안에서 관객은 동일한 감정에 쉽게 동화된다. 남편이 바람을 피운 모양이다. 시어머니에게 넋두리를 늘어놓는 며느리의 말에 여기저기에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온다. 며느리에게 달려드는 아들을 바닥에 메다꽂는 시어머니는 건장한 남자배우다. 배역과 배우의 부조화가 위트를 배가 시킨다. 소싯적 남편이 바람을 피워 속을 썩인 이야기를 하는 모습은 어느 순간 스스로의 고백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부조화에서 오는 효과는 다음의 장면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여배우가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태우고 마당으로 들어온다. 그녀는 휠체어 위에 늘어진 환자복을 걸치고 촌스러운 모자를 눌러쓴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노쇠한 노인이 되어 딸을 회상하는 독백을 시작한다. 노인의 연기를 하는 여배우는 동시에 노인의 딸처럼 보이는 효과를 가진다. 따라서 여배우의 입을 통해 나오는 아버지의 독백은 딸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이야기가 전해진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노인이 되었던 여배우의 몸이 풀리면 ‘와다다사운드’의 연주와 함께 한바탕 춤판이 벌어진다. 배우들은 앉아있던 관객들을 마당으로 이끌고, 몇 번이고 손사래를 치던 사람들이 결국에는 함께 어우러진다.
마당이 정리되면 파란대문으로 사라졌던 사자가 다시 등장한다. 이때 어딘가 모르게 촌스러운 차림의 ‘국회의원’이라는 자도 함께 마당으로 들어선다. 그는 북정마을을 재개발하여 한옥마을로 만들겠다고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다, 동네사람들은 미리 준비해 둔 물풍선을 그에게 신나게 집어던진다. 소란이 잠잠해 지면 웅크리고 있던 사자가 일어나 남자를 삼키는데, 그 때문인지 비틀거리는 사자의 기운을 북돋기 위해 다시 한 번 춤판이 벌어진다. 사자는 마을의 수호신과 같은 이미지를 지닌다.
북정마을 사람들은 마이크를 잡고 저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 이곳을 지키고 싶고, 이곳에서 오래 살고 싶다고 소리친다. 머릿속에 불현듯 서울시청 1층에 전시물이 떠올랐다. <서울과 오랜 시간을 함께한, 도시서민의 마을 이야기> 주제의 첫 번째 전시 ‘북정마을’ 그때 나는 ‘도시서민’이라는 단어가 무척 거슬렸었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이 되는 지역에서, 신분적 특권을 갖지 못하고,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한 생활을 하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다.
도시의 주인은 시민이다. 세금을 내는 시민들이 살고 있는 북정마을 사람들도 서울의 시민이다. 왜 굳이 '도시서민'이라는 단어로 분류하여 도시의 이방인처럼 낙인찍고, 그들의 삶을 전시하는 것인가. 전시 문구에 따라 ‘서울과 오랜 시간을 함께한’ 마을 사람들이 살던 터전에서 밀려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이렇듯 오래된 마을을 대상으로 하는 ‘도시재생정책’은 오히려 그들을 교묘하게 소외시키고 있었다.
<북정블루스>가 한창인 삼거리는 마을버스의 종점이다. 바깥쪽에 선 사람들은 차가 올라오면 구경하는 사람들을 안쪽으로 밀어 길을 터준다. 소리 지르지 않아도 사람들은 움직이고, 빵빵거리지 않아도 차는 지나간다. 마을은 마을 고유의 박자에 맞추어 살아가고 있었다. 그곳에 녹아든 ‘서울괴담’은 마을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 둘씩 불러가며 말장난을 주고받는다. 누군가 시(時)이며 소박하고 아름다운 마음의 노래라고 했던 ‘블루스.’ 나는 어슴푸레 해가지면 서울의 불빛이 반딧불이처럼 내려다보이는 그곳에서, ‘서울괴담’이 건져 올리고 싶었던 ‘북정블루스’의 감정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사진제공_유영록 작가
**서울괴담 SNS페이지 바로가기 >>>> https://www.facebook.com/seoulkedam
필자_채민 소개_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가치를 믿습니다. 아직 부족하지만, 시간을 가지고 충분히 고민하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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