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두산아트센터 <배수의 고도> "괴담의 시대"

2014. 7. 16. 08:14Review

 

괴담의 시대

두산아트센터 <배수의 고도>

나카츠루 아키히토 작 / 김재엽 연출

 

글_채민

 

‘괴담’은 괴기스러운 이야기, 기묘한 이야기를 지칭하는 단어로 쓰인다. 괴담은 당대의 의식이나 사건, 사고 등을 기반으로 한 가상의 이야기이다. 따라서 이것에는 시대정신이나 보편적인 의식이 전제에 있는데, 공포심을 자극하여 교훈적인 내용을 지니는 경우가 많다. (간혹 시각적인 참혹함에 관객이 그 의도를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나…) 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주위를 소요하는 괴담은 예전과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진다. 나는 김재엽 연출의 <배수의 고도>에서 현대적 의미의 괴담을 목도한다. 일본 정부의 철저한 언론통제로 인해 은폐되었던, 혹은 루머로 치부되었던 숨 막히는 비극을 본다. 이렇게 오늘날의 괴담은 ‘분명 실제 하지만 온전히 전해들을 수 없는 비극’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2011년 3월, 일본 지진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지진이 발생한다. 일본 열도를 덮친 쓰나미는 도호쿠 지방을 강타하고, 해변에 있는 후쿠시마 제1원전을 침수시킨다. 이로 인하여 모든 전원을 상실한 원전은 폭발한다. 원전을 설치한 동경전력은 원전사고에 대한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를 구축했다고 장담했지만 사실과는 달랐다. 어처구니없는 실수들로 제2의 재앙이 벌어진다. 기자 코모토(이윤재)가 이와 같은 일련의 사태를 이야기 하며 <배수의 고도>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무대 전면에 위치한 스크린에 사고 당시의 영상과 함께 코모토의 기자증이 영사된다. 그는 덤덤한 목소리로 관객들에게 사건을 전달하고, 관객은 쏟아져 나오는 정보에 귀를 기울인다. 동경전력의 어이없는 사고대처는 지난 4월, 전라남도 진도군에서 벌어진 ‘세월호 침몰 사고’를 떠오르게 한다. 당연히 갖추어져 있어야 하는 것들의 미비는 삼 년 전이나 지금이나 수많은 생명을 그 대가로 치르게 한다.

 

 

코모도는 그의 대학동기이자 국회의원인 오다기리(오대석)에게 참사 현장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외압으로 인해 보도의 한계를 느끼고, 쓰나미 피해지역인 이시노바키로 다큐멘터리 취재를 떠난다. 판자촌의 허름한 가정집에 노자키(하성광)와 그의 두 자녀 유우(김소진), 타이요(김시유)가 거주한다. 이야기는 이들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에 의해 전개된다. 무대에는 통로가 유독 많다. 등장인물들은 등퇴장를 반복하며, 끊임없이 엿듣고 서로를 훔쳐본다. 그들은 숨바꼭질 하듯 동선을 교차하며 진실을 은폐한다. 사생활이 존재할 수 없는 임시거주공간에서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그 날'에 대해 함구한다. 세상이 뒤집힌 날, 모든 질서와 도덕이 전복되었던 '그 날'을 건들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친다. 말이 없는 타이요는 자신의 공간, 판자집 지붕 위에서 조용히 어른들을 관찰한다.

타이요는 1막 전반을 감싸고 있던 불편한 공기를 찢고 나온다. 입을 열기 시작한 타이요가 캐내는 진실은 감자줄기처럼 줄줄이 딸려 나와 지면 위를 구른다. 쓰나미가 덮친 날,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통조림을 훔쳤던 선생님, 누나를 강간한 시청직원 노자키(하성광), 그에게 술과 음식을 받아먹으며 배상금을 기다리는 아버지... 타이요에게 그날의 비극은 현재 진행중이다.. 누나의 뱃속에는 노자키의 아이가 커가고, 어머니의 시체는 아직도 찾지 못했다. 금기도 없고 미래도 없는 이곳에서, 앵앵거리는 파리 소리는 등장인물들을 한층 더 무기력하게 만든다. 당사자들도 마주보기를 외면한 그 날을 다큐멘터리가 담아낼 리 만무하다. 이렇게 그들의 이야기는 떠도는 괴담이 될 뿐이다.

 

 

오늘날 ‘괴담’은 사실여부와 관계없이 어떤 이유에서든 사실을 은폐해야 할 때, 혹은 스스로 믿기 힘든 참혹한 현실을 지칭하는 용도로 쓰인다. 세월호 참사도 그 이후에 셀 수 없이 많은 괴담을 만들어 냈다. 숨겨진 진실과, 무엇 하나 명쾌하게 설명되지 않는 의혹들은 물론 사회의 구조적인 면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하지만 우리는 <배수의 고도>에서 제시하는 근본적인 지점을 사유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양면성이다.

실상을 알리고자 마을에 들어간 다큐멘터리 팀은 재난의 피해자들의 모습을 담으려고 노력한다. 자원활동을 온 쇼코(이진희)가 유우에게 세탁기를 구해다 줄 수 있다고 하지만 코모토는 극구 말린다. 그가 찾는 것은 다큐멘터리를 극적으로 보이기 위한 자극적인 요소다. 그들은 한 가족의 삶에 집요하게 카메라를 들이댄다. 그들을 돕기 위해 그들의 삶을 침해하는 꼴이다. 마을사람들의 영웅이자 유우의 연인인 이시즈카 선생(이종무)은 유우의 임신 사실을 알고 그녀를 힐난한다. 흥분한 이시즈카 선생에게 무릎을 꿇고 참회하는 시청직원 노자키는 유우에게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가 맞느냐며 재차 묻던 유부남이다. 엄습하는 죽음의 공포와 절망 앞에 유우와 노자키는 함께 있었다. 생(生)보다 먼저 자신을 포기한 유우는 저항하지 않고 노자키를 받아들였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순간, 유우도 함께 있던 노자키에게서 어느 정도는 위로를 받았던 게 아닐까. 기적적으로 구출된 유우는 이시즈카 선생에게 비밀로 한 채, 노자키를 압박한다. 노자키는 유우의 수술비를 구하기 위해 원전에서 일을 하다가 방사능에 피폭된다. 유우는 죄책감에 노자키와 같이 방사능에 피폭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연구를 한다. 재앙으로 인해 전복된 삶의 복구는 이와 같은 인간의 양면성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십년 후, 2막의 무대는 큰 구조를 바꾸지 않고 영상과 소품만으로 현대적인 공간을 연출한다. 타이요는 원전 설치를 막기 위해 폭탄 테러를 가장한 해프닝을 벌인다. 치명적인 양의 방사능을 탑재한 차량이 도쿄를 향해 들어오고 있지만, 오다기리는 국민들에게 이를 은폐하려 한다. 그의 태도는 십년 전 원전폭발 때 동경전력의 대응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국채를 발행하고 원전설립을 통한 경제회복 그에 따르는 정권의 유지만을 노린다. 타이요는 오다기리를 협박하여 국채발행을 중단시킨다. 이때 타이요가 오다기리에게 총을 겨눈 채, 대체 에너지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장면은 긴장감을 한층 더 떨어트리는 요소가 되지만, 그가 자리한 2층에서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소리치는 타이요의 모습은 불편한 진실을 드러냈던 1막의 한 바탕 난장을 상기시킨다. 타이요의 대사처럼 일본은 십년 전과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 정부는 주먹구구식으로 경제를 살리기 위해 국채를 발행하고, 재앙의 근원이었던 원전을 설치하려 한다. 방사능 피폭 때문에 사망률이 높아졌다는 사실은 국회의원 오다기리에게 괴담에 불과한 것이다. 진실은 종종 이해당사자의 필요에 의해 괴담이 된다.

오다기리는 타이요의 대체에너지 방안이 동화 같은 이야기라고 비아냥거린다. 극의 막바지에 다다른 시점에서 이 장면은 나에게 또 다시 깊은 좌절감을 안겨준다. 비록 타이요의 제안이 얼마나 현실 가능성이 있는지는 판단할 수 없으나 이해하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 오다기리의 모습은 마치 오늘날의 정치판을 보는 듯 하다. 지독하게도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기성세대와 지레 소통과 설득 자체를 포기해 버리는 젊은 세대가 그것이다. 판을 뒤집어엎고, 불만을 소리치는 타이요도 결국에는 십 년 전과 똑같은 모습이다. 타이요의 재간으로 당장은 국채 발행이 의미 없어져버렸지만, 힘을 쥐고 있는 기성세대들이 결국엔 그들의 뜻을 관철시킬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타이요의 청사진을 등지고, 소파에 앉은 알렉스와 코모토에게는 지친기색이 역력하다. 마지막으로 한국 원전의 현재와 개발계획을 경고하며 <배수의 고도>는 막을 내린다.

 

 

<배수의 고도>는 많은 양의 정보를 담고 있다. 전달되는 정보들이 하나같이 충격적인 탓에 극에 집중을 하고 있노라면 1막, 80분이라는 시간이 훌쩍 흐른다. 하지만 코모토의 대사와 영상이 함께 반복되는 다큐멘터리 형식에서 연극성 보다는 영화의 익숙한 미장센이 보인다. 십년 후, 그들이 모두 정부의 요직에서 다시 만난다는 비현실적인 설정을 차치하고서라도, 핵 테러의 위협 앞에 놓인 일본 열도에 대한 긴장감은 영상만으로는 쉽게 조성되지 못한다. 게다가 CIA의 비밀요원인 알렉스(이정수)가 어리숙한 연기로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냄으로서 이야기의 허구성이 더욱 도드라진다. 본 작품의 소재는 양날의 검이 아닌가 싶다.

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괴담이 많은 시대에 살고 있는가. 아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 과연 괴담이 맞는가. 극 중, 끝나지 않은 쓰나미를 직시하는 인물은 타이요 뿐이다. 진실과 맞닥뜨린 그는 상황을 환기 시키고, 되풀이되는 재앙에 제동을 거는 인물이다. 어쩌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많은 괴담 중 상당수가 진실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도 비극의 종식을 염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안함와 세월호의 참사가 되풀이되는 이유는 우리가 현실을 직시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위험과 고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사진제공_두산아트센터

*** 연극 <배수의 고도> 다른리뷰 보러가기 >>> http://indienbob.tistory.com/847

 필자_채 민

 소개_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가치를 믿습니다. 아직 부족하지만, 시간을 가지고 충분히 고민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