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5. 31. 09:40ㆍReview
도시인에서 지구인으로, 지구인에서 우주인으로
아해프로젝트, 낭독 퍼포먼스 <우주인>
오세혁 작 / 김해리 연출
글_율
다양한 시간과 공간을 연극 무대 위에서 표현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작업이다. 하지만 연극은 불가능해 보이는 작업을 여러 가지 방법을 빌려 구현해낸다. 관객들이 앉아 있는 그 곳은 여느 물리적 공간과 같이 시간에 마모되어 가는 소박한 무대일 뿐이다. 하지만 조명이 들어오고, 음악이 켜지고, 배우가 등장해서 연기를 하기 시작하면 그 시공간은 여러 차원의 이야기와 사연들이 겹쳐서 나타나는 세계로 변화한다. 그 곳은 과거의 어느 시점이 되기도 하고, 숲 속이 되기도 하고, 심지어 인물의 머릿속이 되기도 한다.
연극이 관객들에게 와서 구현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고 있으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낭만이 아닐까란 생각을 감히 하게 된다. 연극은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시간축에서 잠시 건져져 다른 세상을 ‘체험하고’ 그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활동의 모음이다. 물론 의도하고자 한 시공간을 완벽히 표현해내기엔 빈 곳이 많다. 그 공백은 배우들의 호흡과 움직임으로 채워지고, 마지막으로 관객들의 상상력으로 마감되어 하나의 세계가 된다. 극이 끝나면 사라져 버릴 세계란 걸 알면서도 배우들은 자신의 연기에 집중하고 관객들은 배우의 족적을 따라 좇는다. 결국 사라질 것임을 알면서도 무대 위 인물들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시간, 멋지지 않은가.
<우주인>이라는 극의 이름과 달리 극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지구인, 아니, 지극히 도시인스러운 인물들이다. 그들은 도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부단히 노력한다. 한 인물은 때때로 좋은 시상이 떠오르면 노트에 적는 방식으로 도시로부터 일시적인 일탈을 꾀하기도 하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또 다른 인물은 자신이 낙오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위해 더욱 격렬하게 근무하는 회사의 물을 홍보하는 행동을 보여준다. 그리고 다른 인물은 자신을 얽매고 있는 도시 공간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무도 오지 않았을 공간을 찾아 헤맨다. 표현 방식은 모두 다 다르지만, 이 세 인물의 공통점은 결국 도시인으로서 강요되어지는 법칙과 논리 구조에 자유롭지 못한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그 법칙과 논리 구조는 모든 인간이 다 함께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굳은 믿음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엔 제도라는 이름으로 호명되는 그것들은 사람들이 사회 속에서 원만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끄는 이정표가 아니라 그들이 속해 있는 사회 속에서만 살 수 있게끔 얽매는 것들로 변해버린 지 오래다. 제도가 사람을 먹어버린 시간 속에서 가족, 직장, 국가, 신자유주의 등 여러 가지의 이름으로 호명되는 무언가는 낙오자들에게 엄하게 말한다. -너의 실패는 너의 탓이다. 네가 더 노력하지 않은 탓이다.- 개인을 향해 엄하게 호령하는 목소리는 인물과 인물 사이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엄중한 목소리보다 더 또렷하게 관객들을 향해 전해지는 것들은 오히려 인물들이 의연한 목소리로 얘기하는 사연들이다. 그 이야기들은 사회생활 속에서 감내할 수밖에 없었던 굴욕감, 스스로를 무릎을 꿇어 자신을 낮추고 자본을 높이는 과정에서 잊으려고 애썼던 모멸감, 그리고 가끔은 사랑하는 사람마저 뒤로 밀어야 한 데에서 비롯된 고독감 등 익숙해져야 했던 감정들에 대한 것들이다. 사회의 법칙이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과 맞지 않게 설계되어 있다면 그 안에서 일어나는 많은 수의 사건도 부조리한 구조를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부조리에 대항할 힘이 없는 개인들은 사회 속을 살아나가기 위해 그것을 체득하고 익숙해지는 방법을 택한다.
<우주인> 속에서는 익숙해진 굴욕감에서 잠시 벗어나 회복하는 모습들도 그려진다. 그 회복의 모습은 추위 속에서 서로를 끌어안는 행위, 그리고 평소에는 억눌러왔던 공격적인 말과 행동들을 취하는 행위로 나타난다. 하지만 그 일련의 행위는 진지하게, 혹은 슬프게 다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우습고 속된 방식으로 표현되어진다. 이 점이 바로 회복의 범위가 극 내 인물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극을 보고 있는 관중들로까지 확장될 수 있는 이유이다.
물론 과장되어 묘사되긴 하지만 극 중 인물들이 살아가는 시대는 관객들이 살아가고 있는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배우들의 입을 통해 뱉어지는 우주, 꿈, 별과 같은 단어들은 낯설게 느껴지고 부채, 채무, 압류와 같은 종류의 단어들은 덤덤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각 인물들이 갖고 있는 속성은 곧 동시대의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점이자 고난이다. 그렇기에 인물들의 일탈의 방법으로써 진이 빠질 정도로 격한 한 바탕 싸움만을 제시하는 것은 조금 안타깝다.
평소에 써 본 적도 없었을 솜방망이 주먹을 서로에게 날리는 행위는 허례과 위선으로 짜여져 있는 관계를 타파하여 모두가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게 하고, 그로 인해 비로소 약자 사이의 연대가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후반부에 약간 소란스러운 방식으로 이루어진 연대는 부조리한 사회의 모습의 일면을 보여주는 데에는 성공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결국 연대의 장이자 꿈을 꾸게 만들었던 미지의 공간이 결국 도심의 가로수 아래였다는 결말은, 어딘가 씁쓸하긴 하다.
도시인에서 지구인으로, 지구인에서 우주인으로
앞서 말했듯이 연극은 살아가고 있는 세계를 자신이 속해 있는 시공간보다 더 높은 고도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물론 극이 끝나면 그 인물들의 이야기는 현실 속에선 휘발되어 사라진다. 하지만 그 연극의 잔상은 모두 각기 다른 의미로 관객들의 기억 속에 새겨진다. 공연의 공간이 바뀐 것일 뿐, 그들의 흔적은 모두 다른 형태로 재생되는 것이다.
우리는 결국 도심의 가로수 아래를 맴돌 도시인의 생활로 돌아갈테다. 하지만 우리는 연극을 보는 동안 아주 잠깐, 아무 잠깐 동안 우주를 보고 돌아왔던 기억을 품은 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모두가 춤과 움직임으로 아픔을 덜어냈던 시간을, 너무 넓어서 모든 아픔과 소음도 모두 품을 수 있었던 공간을, 가로등 불빛 대신 별과 달이 떠오르는 우주를 안다는 것 자체로도 이전과는 조금 다른 도시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사진제공_아해프로젝트
**아해프로젝트 SNS페이지 바로가기 >>> https://www.facebook.com/ahhaeproject
필자_율 소개_ 더 많은 것들을 읽어낼 수 있게 되길 바라는 마음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
“〈우주인〉을 예약한 모든 분들께 알립니다. 〈우주인〉은 텐트에 누워서, 도시락을 까먹으면서, 수다를 떨면서 볼 수 있는 공연으로 진행됩니다. 고로 텐트에서 까먹을 가벼운 음식과 음료를 지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옆 사람과 나누어 먹어도 좋아요. (아, 안타깝게도 술은 안돼요)” - 아해프로젝트 페이스북 페이지 중에서 (글&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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