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 29. 11:41ㆍReview
연극이 은유를 지배할 때
- 젊은 연출가에게 젊은 비평가가 쓰는 편지
NEWStage 선정작 <생이 사를 지배할 때>
글_채민
‘보내주신 원고는 연출가에게 전달됩니다.’
아니 뭐 그렇게까지... 희곡 한 편을 써내고, 그것을 무대에 올리는 작업이 무엇을 요하는 일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리뷰가 본인에게 직접 전달된다는 말이 부담스럽게 다가 왔다. 언제나 연출자 보다는 관객을 염두에 두고 리뷰를 써왔지만, ‘젊은 연출가’라는 이름을 가진 한명의 독자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결국에는 그에게 보내는 편지 같은 리뷰를 쓰게 되었다. 젊은 비평가로서 전하고 싶은, 그와 함께 하고 싶은 고민거리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무협의 세계로 풀어내는 현실’
<생이 사를 지배할 때>는 현실을 이야기하기 위해 무림이라는 판타지 공간을 가져온다. 연출가는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이곳에서 오늘날의 문제의식을 다루어도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세계라는 것을 발견했다. 연출은 관객으로 하여금 대사를 읽게 하여 무대 위의 인물에게, 관객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생이 사를 지배할 때>는 배우의 입을 통해 비교적 많은 양의 정보가 전달된다. 더하여 무림과 관련된 생소한 단어들이 다수 사용되어 줄거리를 따라가기에 버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점들이 관객에게 인물 간의 관계 및 각 캐릭터의 내면적 고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연극으로 풀어내는 무협’
공연을 보기 전, <생이 사를 지배했을 때>가 광활한 무림과 강호를 어떻게 극장에 가지고 들어왔을지 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우선, 흥미로웠던 점은 연극 고유의 매력이자 최대 장점이 ‘현장성’에 있다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이 ‘현장성’을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현장성'은 관객과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순간에 온다.
‘영사기에 갇혀 스크린에 쏘아지는 웰 메이드 액션이 아니라 내 눈앞에서 실제로 검이 부딪히고 코앞 무대 위로 진한 피가 뿌려지는 생동한 무협의 현장을 소개하고자 한다.’
본 작품은 ‘현장성’의 의미를 ‘생동함’에 국한 한 듯이 보인다. 주어진 공간의 한계(물리적인 것이 아닌)와 배우들의 미숙한 몸놀림과 어색한 의상은 극에 대한 몰입을 계속 방해하여 스크린의 ‘웰 메이드’ 액션이 아닌 연극의 ‘생동한 무협의 현장’만이 갖는 의미를 보여주지 못했다. ‘생동함’은 관객의 반응이 동반되어야 즉 소통이 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만약 뛰어나게 훈련된 배우가 관객의 눈앞에서 날아다니고,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캉캉 나고, 코앞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더라도 ‘연극성’이 없다면 스토리를 가진 격투 경기와 다름없을 것이다.
이제까지 관객으로서 아쉬운 점을 이야기 했다면, 지금부터는 젊은 비평가로서의 공유하고자 하는 고민을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첫째, 연극으로 다룰 수 있는 소재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광범위하고 물리적인 규모가 큰 것이나, 끊임없이 빠른 속도감을 필요로 하는 것들은 연극의 특성에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 했었던 것이다. 슬로베니아 류블리아나 국립극단의 <폭주 기관차>를 보고 나서, 나는 경험의 빈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폭주 기관차>는 별다른 무대장치 없이 두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 그리고 피아노 한 대가 폭주하는 기관차의 광기어린 긴장감을 표현해 내었다.
둘째, 스펙터클을 위해서는 시각적 부피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다. 이와 같은 경험적 빈곤은 대학로 예술생태프로젝트의 다원극 <공집합>을 통해 해소할 수 있었다. 이들은 전자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데스크 두 대와 설치미술(스프링에 매달린 공)로 극장을 가득 채우는 부피감을 표현했던 것이다.
<폭주 기관차>에서 발견한 것은 ‘은유’이다. 희곡을 무대화 할 때, 우리는 은유가 커다란 힘을 가지는 것을 목격한다. 은유는 물리적인 공간을 한계 없는 심리적 공간으로 확장 시키는 역할을 하며, 연출가가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세계관을 한 눈에 보여주기도 한다. 그것은 텍스트에 대한 연출의 해석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한 연극은 놀이이며, 놀이는 약속의 연속이다. 즉 연극은 약속의 연속인 것이다. 연극이 은유를 통하여 몇 가지 약속을 제안하면, 관객은 그 약속을 받아들인다. 즉 몰입하고 소통하는 것이다.
<공집합>에서 발견한 것은 자신만의 ‘무대 언어’ 였다. 음악이나 무용을 전공한 사람들이 텍스트를 자신의 언어로 탁월하게 치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연극은 종합 예술이다. 음악과 빛 그리고 움직임 등.. 연극은 다양한 무대 언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할 수 있는 이야기를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이 사를 지배할 때>를 보며 줄 곧 연출가에게 건네고 싶었던 고민은 이것이었다. 관객들에게 매체에 의해 학습된 무림을 표현하기 위하여 ‘모방’이 아닌 자유로운 ‘은유’와 ‘무대 언어’를 이용했더라면 <생이 사를 지배할 때>는 스크린의 웰 메이드 액션과는 다른, 그만의 의미를 가진 무협극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
어쩌면
이렇게 연극이 은유를 지배하게 되었을 때,
우리의 비루한 표현력도 지겨운 반복을 멈추고,
단 한걸음이라도 나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본 리뷰는 서울연극센터 ‘뉴스테이지(NEWStage : 서울문화재단 유망예술지원사업 연극분야)'의 연출가-젊은비평가 매칭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사진제공_서울문화재단
필자_채민 소개_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가치를 믿습니다. 아직 부족하지만, 시간을 가지고 충분히 고민하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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