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앤드씨어터의 지도

2016. 10. 17. 19:56Review

 

앤드씨어터의 지도

 

 

 

글_전강희

 

극단 앤드씨어터(Analogue and Digital Theatre)를 처음 알게 된 건 2014년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극단 자체보다 전윤환이라는 연출가의 이름을 이 무렵 처음 알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2014년 겨울 20대 연극인들이 서울 대학로에 있는 마로니에 거리에서, 그것도 추운 겨울에 이십할페스티벌을 연다는 소문을 들었다. 거리에서 공연을 올리는 이유는 20대에게 극장을 쉽게 내주는 곳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자신들의 존재를 분명하게 각인시키기 위한 전략적인 선택이기도 했다. 연출가의 이름을 페스티벌의 기획자로서 먼저 접하게 되었다. 이후로 전윤환 연출가를 대면할 기회가 몇 차례 있었다. 그는 연극에 대해서 희망에 차서, 때로는 분노에 차서, 어느 때곤 변함없이, 많은 이야기들을 열정적으로 쏟아내고 있었다.

이 글은 2014년 겨울부터 지금까지 극단 앤드씨어터를 보아온 것에 대한 기록이 될 것이다. 극단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전윤환 연출가를 언급한 이유가 있다. 그의 열정을 단원들에게서도 보았기 때문이다. 작년 인천아트플랫폼의 6기 입주작가로 함께 하면서, 앤드씨어터를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들었던 느낌이다. 앤드씨어터의 활동 영역은 블랙박스에 연극을 올리는 것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전윤환 연출가가 6기 동인으로 있는 혜화동1번지에서 올린 작품들뿐만 아니라 인천지역에서 진행한 축제와 교육활동들도 상당하다. 아마 내가 이들과 반년 정도의 시간을 인천에서 함께 보내지 못했다면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지도 모를 결과물이다. 서울에서, 인천에서 이들이 내딛었던, 여기저기 점점이 박혀있는 발걸음들을 연결해서 여기에 하나의 지도처럼 내보이고자 한다.

 

'터무늬있는연극X인천' <인간문제>

 

현실과 꿈의 경계이서 길 찾기

 

앤드씨어터는 2015혜화동1번지봄페스티벌총체적난극에서 페터 바이스(Peter Weiss)<마라 사드(Marat/Sade)>를 선보였다. 따라가기 쉽지 않은 원작을 100년을 훨씬 뛰어넘은 관객이 만나기에 어렵지 않도록 명료하게 연출했다. 텍스트 전복하기 같은 눈에 띠는 실험이 크게 드러나는 작품은 아니었지만, 앤드씨어터가 앞으로 품을 고민의 단초를 충분히 엿볼 수 있었다. 특히 코러스의 활용에서 그러한 징후를 감지할 수 있었다. 정신을 점령당한 병자들의 몸, 말보다는 성적인 감각으로 소통하고자하는 몸, 이들이 내는 소리에서 텍스트의 문학성을 넘어서는 해석의 여지가 보였다. 포스트드라마에서 코러스의 몸은 언어 중심의 거대서사를 해체하는 요인이기도 하지 않은가? 뒤이어 나온 앤드씨어터의 <창조경제><봄은 숲에서 사는 것, 도시에는 오지 않네>처럼 원작이 없이, 참여자 모두가 작가가 되어 작품을 만들어 나가는 방식이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방향전환은 아닌 셈이다.

 

<창조경제>

이 작품은 2015혜화동1번지가을페스티벌-상업극으로 무대에 올랐다. 앤드씨어터의 배우와 스태프가 모두 작가가 되어 여러 번 길을 잃으면서 완성해나간 작품이다. 무대에 올랐으니 완성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지만, 이들은 실패를 무대에 올린 것이라고 여긴다. 실패해가는 과정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 결국에는 극의 전체적인 줄거리가 되었다.

공연이 시작되면 영상에 가장 먼저 보이는 말은 하이네 뮐러가 말한 나는 갈등을 믿는다. 그 외에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이다. 공연은 실제로 갈등의 연속이다. 그런데 갈등을 처리하는 방식이 기존의 극과는 차이가 있다. 평온한 상태로 극이 올랐다가 갈등을 겪고, 해결 과정을 거치고, 마지막에 다시 처음의 평온한 상태로 돌아오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는다. 갈등 후 얻게 되는 큰 깨달음 같은 것도 없다. 무대에는 여러 명의 배우가 등장하지만, 의견이 다른 순간에도 이들 사이에서 커다란 분쟁이나 갈등은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이 목격하는 갈등은 상대 배우와 상관없이 등장인물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사적인 갈등이다.

기획의도 나의 창조활동이 나의 경제생활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를 실현하기 위해서 배우들은 동의하건 아니건 간에, 극을 진행시키기 위해 본인의 경제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창조활동을 시작한다.”를 반복하며 행위를 이어나간다. 재현이 아닌 반복이라는 점에 주목해야한다. 이때 읊는 대사는 같은 문장일지라도 반복을 거듭하며 다양한 의미를 만들어 낸다. 차이들은 곧 본인들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갈등 양상과 겹쳐진다. 공연은 제작비 200만원을 상금으로 걸고 이루어지는 서바이벌 오디션 리얼리티 프로그램 형식으로 빠르게 전환되는데, 배우 각자가 행하는 창조적인 실천과 실제 원하는 꿈의 간극이 드러나면서 무수히 많은 차이가 생겨난다. 동시에 내적인 갈등도 그 수만큼 발생한다.

<창조경제>를 통해 관객이 목격하는 것은 앞서 언급했듯이 익숙한 서사가 아니다. 그렇다고 기존의 관습, 현재 체제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구조를 뒤엎자는 강렬한 메시지도 아니다. 그저 자본주의에 종속된 일상의 모습을 목격하도록 배우들을 통해서 늘어놓을 뿐이다. 관객이 작품의 의도를 간파하는 순간 일상의 사적인 고민거리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의 자리로 이동한다. 사적인 것이 공적인 것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취한 전략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서바이벌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라는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인기프로그램 형식이 큰 몫을 했다. 한 명만이 살아남는 냉정한 경쟁 체제를 개인의 꿈이라는 달콤한 이야기를 양념처럼 곁들여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구조가 창조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거대 서사이다. 이 극은 우리의 동시대를 떠받치고 있는 거대서사를 개인들의 서사를 통해 드러내 보이고 있다.

 

<봄은 숲에서 사는 것, 도시에는 오지 않네>

 

<봄은 숲에서 사는 것, 도시에는 오지 않네>

이 연극은 올해 있었던 혜화동1번지봄페스티벌-심시티에서 만난 작품이다. 극의 전체적인 골격은 <창조경제>의 연장선으로 공동창작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극에서도 역시 기획의도가 공개된다.

 

도시기행 연극. 서울에 주거하지 못한 채 언저리에서 서식하는 연극 활동가들이 있다. ... 그들이 만나는 서울의 일상과 봄에 대한 이야기이다. ... 연극 활동가들은 서울의 봄을 찾아 떠난다. 봄마저 빼앗겨 버린 상실의 도시. 그곳에서 봄을 찾아본다.

 

이 공연에서 관객의 몫은 봄을 찾는 것이겠구나, 라고 생각하고 기획의도를 공유하며 극을 끝까지 따라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이 그리 매끄럽게 일어나지 않는다. 기획의도가 등장하기 직전인 공연의 첫 부분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했던 이야기가 배치되어있다. 의도 뒤쪽에는 쌀쌀한 도시에서 / 손을 잡고 / 나란히 둘이 걷는 사람만 / 언젠가 봄을 볼 수 있으리라고 하는 릴케의 시가 놓여있다. ‘사랑, , 함께라는 작품의 중요 단어가 앞쪽에 모두 쏠려있지만, 말의 중요성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극을 따라가기에는 <창조경제>에 비해서 극적 장치들의 선택이 아쉬운 감이 있다.

개인서사가 주로 연극적인 것으로만 모여지면서 거대서사를 드러내는 장치로서 갖는 이점을 온전히 획득하지 못했다. 봄이 오지 않는 이유를 사회구조문제에서 찾으려는 시도가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좀 더 다양한 일상의 모습이 흩뿌려져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또한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어구들도 전작이 주제를 강화시킨 것에 비해서 적절히 기능하지 못한 지점이 있었다. 그럼에도 이 작품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구조적 장점이 있다. 바로 연출가와 조연출의 역할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연출가와 조연출의 역할은 본인들이 직접 수행한다. 전작에 비해서 이들의 기능이 더 뚜렷해졌다. 무대 위에 자기이야기를 내보이기 위해서는 치밀한 선택과 편집 과정을 거친다. 배우가 아닌 스태프가 자신의 역할 그대로 무대에 오르는 경우는 관객이 장면에 감정이입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서가 주목적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연출가는 오히려 반대의 역할을 수행한다. 연출가는 여러 차례 자신의 이별에 대해서, 봄을 찾고 싶다는 소망에 대해서 여과 없이 관객에게 내보인다. 진지하게 작품에 임하지만, 때로는 배우들을 괴롭게 하는 원인제공자로서 괴팍한 모습도 보인다. 영웅보다는 반영웅으로서 자신을 연출한다. <봄은 숲에서 사는 것, 도시에는 오지 않네>가 연습과정을 보여주는 극이라는 사실은 조연출을 통해서 확인된다. 실제 연습 당시 날짜를 에피소드 직전에 언급하며 극의 진행이 앞으로 나아가도록 한다. 동화를 막는 전형적인 해설자의 입장을 연출하며, 극의 전개에 관여하고 있다.

 

앤드씨어터는 <창조경제><봄은 숲에서 사는 것, 도시에는 오지 않네>를 통해, 연극을 올리기까지 서로 소통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실제 자신들의 목소리를 소재삼아 관객들이 일상을 대면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보였다. 이 길 위에서, 현실을 인식할수록 원하는 꿈과의 격차를 확인하면서 연출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저는 실패가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실패하기로 하였습니다. ... 이 시점에서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 여기까지 무엇을 위해 달렸는데? ... 그것을 모르겠습니다. 그것을 알고 싶었습니다. 무엇을 위해 그토록 달려왔는지. 그래서 뭐? 결론은 무엇인지.

 

혹자는 말한다. 예술을 지속가능한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예술이 되는 세상이라고. 앤드씨어터가 내딛는 발걸음아래 놓인 길도 그러하다.

 

 

인천에서 만드는 지도

 

언젠가 전윤환 연출가가 인천에서 축제를 만들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다른 지역과 차별화되면서, 연극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인정받는 축제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열정을 담아 이야기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앤드씨어터가 인천에서 올리는 공연들은 축제를 포맷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장편 하나에 집중하기보다 짧은 공연 여러 개를 다양한 방식으로 선보일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 왔다. 인천에 자리 잡고 방법론을 모색한지도 올해로 3년째가 되어간다. 이 시간을 거치며 <15분연극제><한국근대문학극장>은 지역민들 사이에서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아직은 느린 걸음이지만 조만간 가속도가 붙을 거라 생각한다.

앤드씨어터의 구성원들은 전윤환 연출가가 기획자이기도 한 것처럼, 배우이면서 기획자이고, 프로듀서이면서 배우이고, 작가이면서 연출가이기도 하다. 자신의 역할을 다른 포지션으로 바꾸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 축제를 만들면서 생겨난 단단함 같은 것이 있다. 서울 활동에 비해서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앤드씨어터의 인천 이야기를 단원들에게서 직접 들었다.

 

제3회 '15분연극제X인천'

 

<15분연극제> - 권근영(프로듀서, 15분연극제 예술감독)

올해로 3년째가 되었는데, 처음 같이 시작했던 사람들을 아직도 만나볼 수 있어요. 이번에는 인천 극단 하나도 같이 하게 되었어요. 작은 공연들을 모아서 만드는 다른 연극제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 있다면, 작가 한 사람의 작품을 8팀이 올린다는 거예요. 다함께 모여서 한 작가의 작품을 토론하는 과정을 가져요. 작가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작가는 아니고요. 미국 작가예요. 1회 때 연출님이 페이스북 보고 연락해 보았는데, 그게 인연이 되어 이어져오고 있어요. 매년 다른 작가가 추천되어 오는데요. 한국과 미국이라는 다른 두 세계가 그것도 인천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 재밌어요. 생존하는 작가의 작품을 가지고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다뤄보는 거죠. 공간을 뛰어 넘는 것, 이것이 동시대성이 아닐까요?

공연은 인천아트플랫폼 주변 야외공간에서 시작해서 점점 실내로 들어오는 형식으로 이루어져요. 연극을 보는 것이 그리 익숙한 문화는 아니니까, 밖에서 시작해서 블랙박스 안으로 들어오는 구조를 만들었어요. 관객이 극장이라는 공간을 좀 더 편안하게 느낄 수 있게 하려고요. 1, 2회 때 찾아주었던 관객들을 다시 만날 때 보람을 느껴요.

 

<한국근대문학극장> - 고홍진(배우, 한국근대문학극장 예술감독)

젊은 극단이 근대 문학에 관심을 가져서 신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제가 개인적으로 근대 문학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시작했어요. 좋아하는 것을 무대에 올려보자는 생각에서 2014년에 윤환 연출과 시작했어요. 작년에는 페스티벌처럼 여러 팀과 같이 했었는데, 이번에는 단원들을 중심으로 꾸려가 보려고 해요. 공부를 좀 더 깊게 해보려고요. 이효석 작가의 작품 4개만 무대에 올리기로 했어요. 많이 연구해서 우선 내실을 좀 다져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게 남녀노소가 모두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연령대별로 다른 해석도 재미있고요. 가장 좋은 점은 청소년 관객을 만날 수 있다는 거예요. 저희가 문학을 소재로 삼다보니 인천고등학교에서 매년 열리는 문학캠프에 초대를 받습니다. 문학을 소재로 한 연극을 보는 건데, 관극하기 전에 책을 먼저 읽고 와요. 연극을 보고나서 감상을 적어내는 백일장이 열리고요. 이때 10대 관객을 만나게 되는데, 이 친구들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연극이 우리가 만든 연극일 수도 있거든요. 이게 인천에서 연극하는 매력이죠.

 

'한국근대문학극장' <나는 파리입니다>

 

전윤환 연출가는 인천을 거점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작업이 있다는 말을 전했다. 사례로 <터 무늬 있는 연극×인천>을 들었다. 2014년 학습공동체 활동을 시작하면서 기획했던 것으로, 20151년에 걸친 장기프로젝트로 발전시켰다. 관광단지화가 되어가고 재개발 열풍이 몰아치는 인천에서 고유의 무늬를 찾아가는 작업이었다. 이런 사유가 시작된 인천아트플랫폼을 출발지로 삼고, 배다리 스페이스빔을 지나, 십정동 우물마을을 거쳐, 송도신도시에 있는 트라이볼까지 관광버스를 대절하여 관객과 투어하는 것으로 공연이 구성되었다.

 

앤드씨어터의 행보를 보며, 인천에서 앞으로 추구하게 될 작업의 방향이 여러 극단들이 함께 커나갈 수 있도록 서울과 인천의 접점을 마련하는 플랫폼 구축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서울극단이야, 인천극단이야, 라는 질문을 받았던 것과 달리 올해는 열심히 하는 극단으로 인정해주는 분위기라고 한다. 올해 남아있는 두 개의 계절을 보내고 난 후에는 밑그림의 윤곽이 조금 더 진해져 있기를. 더 선명해진 지도를 볼 수 있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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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제공_극단 앤드씨어터

** 극단 앤드씨어터 SNS페이지 >>https://www.facebook.com/ANDTheatre

*** 이 글은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이론가 매칭 프로그램의 지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