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민휘 솔로앨범 [빌린 입] 고독의 질감

2016. 12. 5. 22:41Review

 

고독의 질감

이민휘 솔로앨범> [빌린 입]

 

 

글_지혜로운 늑대의 전사

 

 

 

 

 

실은 한국행 비행기 안에서 이 글을 쓰려 했었다. 그녀가 언젠가의 한국행 비행기 안에서 ‘침묵의 빛’ 을 썼다 했듯이. 거기, 구름 위에서, 무릇 음악에 들러붙는 지상의 모든 빛깔과 온도와 냄새를 벗고, 떠나가면서, 잠시나마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상태로, 음악처럼 부유하며, 글을 써야지, 생각했었다. 그러나 비상하지 못한 채 지상의 밤에 남아, 여기에서, 쓴다.

 

애록(AEROK)에서 쓴다.

겨우 여기에서 쓴다.

여기에서 살다가 여기에서 죽을 거다.

겨우 여기에 이렇게 머물다 가려고.

미장원, 고시원, 병원, 은행, 식당, 휴대폰 판매상, 과일 가게, 늘어선 거리에서 머물다가 돌아와 다시 쓴다.

몇 번 버스를 타고, 몇 권의 책을 읽고, 몇 편의 영화를 보고, 몇 번 술을 마시고, 몇 번 엄마를 더 보고, 몇 번 울……것이 남았는가.

 

(김혜순, ‘애록에서’ 中에서)

 

시인은 망국의 이름을 거꾸로 불러보지만 그럴수록 그 이름에 들러붙는 애상은 깊다. 애록을 떠난 지 제법 오래인 우리도 애록의 그림자에 먹혀 겨우, 겨우 살아가는 날들이 많았다. 그녀는 브루클린의 작은 방에서 노래들을 녹음했고 나는 몇 계절이 지난 파리의 겨울 하늘 아래서 그 음악들을 들었다. 현을 타고 흐르는 선율이 심장을 서늘하게 하고, 느리지만 가파른 리듬들이 내장 깊은 곳까지 침투해 들어왔다. 마음을 혼미케 하는 선연한 목소리가 돌연 “이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에요 아버지” 하며 내 귀를 두드릴 때,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인지 그 사람으로부터 구해달라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기어이 그 하나의 늪으로 빠져들어가며 뻗어 올린 간절한 손. 목소리는 수백 개의 손이 되어 내 팔꿈치를 목덜미를 머리카락을 붙잡으려 넘실거렸다. 그 손들이 허공을 할퀴며 남긴 절박한 무늬들을 나는 감히 ‘받아쓰기 (Dictée)’ 할 수 없었다. 그녀의 음악들은 온통 늪의 결 같은, 질감, 질감일 뿐이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이 세상 모든 것은 기실 질감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을 나는 까마득히 기억할 수 있었다. 청명한 하늘이 멀고 서늘했다. 오늘은 “두 발 아닌 네 발로 거울에 들어” 가고, 어제는 “거울을 나와서 네 이름을 불러” 보는 우리. 거울 밖 사람도 거울 속의 사람도 모두 우리. 이름 부르는 자도 이름 불리는 자도 다 나 뿐인 고독. 그럼에도 기어이 호명을 위해 거울을 들고 날 때마다 온 몸에 생채기를 남긴 통과의 질감들. “네 발의 어머니” 가 옷감처럼 짓는 눈물과 미소. 쨍강거리는 파열이건, 지잉-징 늘어나는 기형의 혼돈이건, 그 질감들은 애록의 그림자처럼 우리를 물고 늘어져 아프게 했고, 말하자면 혀를 잘라가거나 발을 붓게 했고, 그러는 사이 우리는 산을 계속 기어오르며 “문지기를 만난다면 거짓말을” 해야 했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거짓말을” 해야 했다.

 

이렇듯 그녀의 음악은 내게 뼈아픈 질감들을 환기했으나, 반대로 음악이라는 것은 본디 물성이 없는 예술. 이것이야, 저것이야, 손에 쥐어줄 수 없는 것. 음악가의 몸 안에서 흥얼거려질 때, 악보에 그려졌을 때, 처음 연주되었을 때, 계속되는 편곡과 변주로 옷을 갈아입을 때, 마침내 세상에 발표되었을 때, 그 수많은 때의 어귀마다 이미 존재하기도 하고, 아직 존재하지 않기도 하는 무언가. 예술의 근대적 체계가 자리잡기 한참 전, 고대에 음악은 테크네가 아니라 수학과 한 편에 속한 것으로 분류되었었다. 그리고 수학은 고대인들에게 있어 우주적인 무언가를 암시했었다. 수학. 음악. 물성이 없는 개념. 혀가 없는 소리들. 혀 잃은 입들이 살려달라 외치며 커다랗게 벌려질 때마다 우주에 파이는 까만 구멍 같은 것. 캄캄한 고독.

 

그러므로 음악의 양태란 한없이 희미하며, 다른 한 편 그 듬성듬성함은 무엇에든 쉬이 관성처럼 제 틈새를 벌리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게 우주의 틈새에 지상의 풍경들이 스며든다. 물성 없는 떠돎에 질감들이 스며든다. 결국 그 까만 고독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라면 애초부터 비행기보다 이 골방 안에서가 적합했을 것이다. 우주에 대해 말하기 위해 우리, 땅을 기는 것만이 옳은 방법이었다. “환속한 사람들 이 산을 오르네, 구름 속을 더듬어 가네, 그곳엔 우리가 기다려온 무언가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1958년 뉴욕의 한 레스토랑이 마크 로스코에게 벽화를 주문했고, 그림을 다 그린 화가는 끝내 작품을 철수하고 빈 벽을 남기기로 결정했다. 무언가 (chose) 가 아니라 아무것도 아님 (rien) 을 선택하는 예술가의 고독을 주제 삼으며, 2012년 연출가 로메오 카스텔루치는 저 우주 한 가운데 흑점의 고독을 무대 위로 소환했다 (TheFourSeasonsRestaurant).공연이 시작되면 아득한 굉음이 객석을 뒤흔들고, 무대에 드리운 검은 장막 위로 글자들이 투사된다. 우주 속 별들의 바람이 불어 일으키는 흑점의 소리는 본디 인간의 가청 영역을 넘어선 것이나, 그것을 겨우 가청적인 것으로 변환한 소리가 지금 객석에 울리고 있는 그 굉음이라고 문장들은 증언한다. 한참 뒤 바람이 멎고, 장막이 걷히면, 한 무리의 여자들이 하나 둘 걸어나와 조용히 자기 혀를 꺼내 들고 가위로 자르기 시작한다. 잘린 혀들이 붉은 피를 머금고 둔탁하게 바닥에 떨어진다. 길고 긴 혓바닥의 할례가 끝나면 여자들은 한 켠에 모여 동그랗게 손을 맞잡고, 검은 개 한 마리가 무대로 들어와 어슬렁거리며 바닥의 혀를 먹는다. 그 장면을 보며 나는 누추한 직업병으로 저 혀들은 햄으로 만들어졌겠거니 생각했었다. 그러나 햄이라면 더 무서운 일. 내 혀가 햄이라서, 나는 부지간에 그것을 씹어 삼킬지도 모르고, 또 호시탐탐 검은 개는 내 입을 노릴 것이 아닌가. 나는 후에 저 공연을 이탈리아의 체제나라는 작은 마을 체육관에서 또 한 번 보았다. 넓지 않은 체육관 마룻바닥에 매트를 놓고 관객들은 앉아있었다. 혀를 다 먹은 개는 훈련대로 이내 뒤돌아 나가야 했으나, 그날 밤 문득 관객 쪽을 바라보며 일순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 찰나의 정적 속에서 개와 우리의 눈높이는 무섭게도 동일했다. 저도 몰래 움찔하며 입을 가린 사람들이 스스로가 우스워 실소했고, 개는 다시 체육관 밖으로 유유히 걸어나갔지만, 나는 바닥에 앉아 홀로 이미 혀가 먹힌 기분이었다. 혀가 없는 기분이었다. 우주는 지금도 쉬지 않고 굉음을 내고 있다는데, 우리는 한 순간도 그것을 듣지 못하고, 오래 전부터 내 혀는 우주의 고독한 칼날에 잘려 나가고 없어, 우리는 빌린 혀로밖에는 말을 못한다. 노래를 못 부른다.

 

이민휘의 앨범 ‘빌린 입 (Borrowed Tongue)’ 의 영어 제목은 선명하게 입이 아니라 혀를 지시한다. 스무살 때 지었다는 동명의 노래는 그리하여 ‘받아쓰기’ 에 나오는 혀를 잃은 화자의 이야기와 연결 된다. “아버지 제가 어젯밤 혀를 도둑 맞았어요. 입이 비었으니 그 말조차 할 수가 없고. 창문을 열어두었다. 밤 동안 혀가 돌아오길 기원하면서.” 도둑맞은 그 혀는 누가 빌려갔을까. 우리는 모두 혀를 잃었거나, 빌린 혀를 끼워넣고 말하는 사람들. 서로를 고발하며 노래 부른다. 그렇게 이 앨범의 여덟 개 수록곡은 모두 얽혀 연결돼있다. 말하자면 하나의 골방에 갇힌 자들이,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의 혀를 빼내어 손에 쥐고, 그 누군가는 또 다른 이의 부은 발을 붙들고, 그렇게 차례로 꿰어져 거울 속에도 거울 밖에도 온통 몸들이 뭉쳐있는 것. 서로를 향해 어머니, 아버지, 대답 없는 호명을 일렬로 세우며, 구원을 찾아 산을 오르지만 결국 저마다의 몸을 밟고 바닥에서 하염없는 원을 그리는. 이 고독한 우주 속에서는 누구도 “그대 입과 귀는 그대 것이 아니었” 다는 비난을 피해갈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나도, ‘빌린 입’ 을 들으며 오래 부끄러웠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말할 수 없는 것을 저 홀로 말하려 하거나, 또는 끝끝내 침묵함으로써 오만을 부리는, 그게 나였으므로. 허나 그런 나 조차, 저 아름다운 여덟 곡이 그리는 질감들과 몸들의 엉킴 속에서, 미약한 일부를 이루고 있음은 커다란 위안이었다. 애록을 떠나 있는 내가 먼 이국 땅에서 홀로 아플 때, 지극히 걱정하고 위로해준 이들은 모두, 슬프게도, 이미 혼자 아파본 자들이었다. 마찬가지로 이미 부끄러웠던 자들만이,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아는 자들만이, 진실한 비난을 입에 담으며 서로의 몸의 끄트머리를 붙들고 엉켜있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나는 생각한다. 스무살 때부터의 부끄러움을 모아 세상에 내어놓은 자의 용기에 대해. 자기 혀가 일찍이 빌린 혀임을 알았지만, 그 입으로 계속 노래해온 자의 사랑에 대해. 그녀의 목소리가 울음의 질감을 품고 있는 것에 대해.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 혀를 빌려 나 대신 울어준 그녀의 울음이, 아득한, 우주 같은, 위로가 되는 일에 대해서. 부끄러움을 안고 우는 혀들의 정직이 귀한 겨울, ‘애록에서’ 라는 시는 이렇게 끝난다.

 

우주에 홀로 떠 있는 지구별의 고독.

이 고독한 별 한 귀퉁이에 붙은, 조그마한 뼈대 같은 산맥들을 품은 나라, 애록.

우주에서 유배 온 어느 곤충들처럼.

 

물 없는 우물에서 되돌아오는 메아리에 취한 것처럼, 고독에 취해 쓰는 것일까.

 

여기서

살아가기가.

사랑하기가.

 

 

 

 

 

이민휘 솔로앨범 [빌린 입]

 

Produced by 이민휘 Minhwee Lee

All songs composed and written by 이민휘 Minhwee Lee

Vocals & Arranged by 이민휘 Minhwee Lee (except for track6 - 고아침 Achim Koh)

 

Performed by

이민휘 Minhwee Lee (Piano, Synth, Acoustic/Electric guitar, Bass, Percussion)

김나은 Na-eun Kim (Guitar)

지윤해 G, 송시호 Siho Song (Bass)

조인철 Inchul Cho, 정원진 Won-jin Jung (Drums)

신영하 Brian Shin (Trumpet)

Zachary Hicks (Alto Flute)

Nadia Maudhoo, 방혜진 Debora Bang (Violin)

Yekaterina Barmotina (Viola)

남정현 Junghyun Nam, Tyler Michael James (Cello)

 

이민휘 웹페이지 바로가기 >>> http://minhwe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