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밥 4월 레터] 4월을 봄

2017. 4. 20. 11:48Letter

 

4월을 봄

 

4월을 목전에 두고부터, 이 달이 또 왔구나 생각했고, 올해도 4월은 이만큼의 어려움과 무게를 꼭 지니고 있구나 되뇌었습니다. 세상은 새로운 것을 바삐 준비하면서 기대감을 안기는 한편 필연적인 불안을 피워냈고, 저는 종종 이 순간 가져야 할 감정이 어떤 것인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엉거주춤 서 있고는 했습니다.

 

-4월이 되기 직전에는 ‘두 번째 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 포럼에 다녀왔습니다. 신인 여성 다큐멘터리 감독 다섯 명이 ‘두 번째 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라는 큰 주제를 각자의 세부 주제를 통해 풀어내는 시간이었습니다. 돈도 시간도 없는 청년 노동자이자 다큐멘터리스트가 영화를 찍는다는 것, 아이를 키우며 여성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활동한다는 것, 젊은 여성 다큐멘터리 감독의 사적 다큐멘터리에 드리워지는 시선들, 20대인 여성 감독에게 선명하게 다가오는 독립다큐멘터리계의 위계질서, 여성 다큐멘터리 감독이 현장에서 느끼는 여성혐오와 취재 과정의 어려움을 전해 들었습니다. 저는 현장 활동가로 신인 여성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들을 만나면서 이들의 이야기를 제법 접한 편이었지만, 그럼에도 다시금 공감하게 되는 이야기나 새로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육아와 작업을 병행하는 감독에게 잠을 줄이고 더욱 노력하면 할 수 있는 일을 아이 핑계로 하지 않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 중장년 남성 활동가나 인터뷰이의 불편한 행동에 차마 항의하지 못하고 도리어 죄책감을 갖게 되는 상황 등이 그러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이 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이 이야기를 할 곳이 더 많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4월에 열리는 올모스트 프린지에서도 ‘두영찍’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니 많은 분들이 귀와 입을 더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더 많은 목소리가 더 큰 힘이 될 테니까요.

 

 

 

 

-4월의 초입에는 피아니스트 정한빈의 토크콘서트에서 드뷔시의 쁘띠 스위트 1번과 4번을 들었습니다. 네 개의 손으로 연주하는 포핸즈four hands 곡으로, 이 공연에서는 게스트로 참여한 김정원 피아니스트와 정한빈 두 사람이 함께 연주를 했습니다.

포핸즈는 보통 재미삼아 손을 풀며 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무리 뛰어난 연주자 둘이어도 제대로 맞춰 보지 않은 채 포핸즈를 연주하곤 하고, 그때 생겨나는 불협이나 실수도 조크로 받아들여진다고 합니다. 유튜브에서 유명한 피아니스트의 실연 영상을 검색해도 엉망인 연주를 볼 수 있는 게 포핸즈라고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 포핸즈도, 계속 연습을 해서 두 사람의 합의점을 찾고 호흡을 맞추면 그 재미가 남다르다고 합니다. 이 두 연주자는 공연을 위해 미리 많은 연습을 해서 그 정확한 합치의 재미를 보여주었는데, 두 사람이 약속한 것도 아닌데 같은 동작을 취하고 같은 부분에서 숨을 쉬면서 건반을 누르는 것은 어딘지 감동적이어서, 잠시 숨을 멈추고 그 모습을 보았습니다. 서로의 리듬을, 습관을,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익히는 일은 얼마나 다정하고 아름다운지요.

 

-4월의 가운데에는 강릉에 갔습니다. 강릉에 있는 친구를 만나고, 재개관한 독립예술극장 신영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술영화전용관 지원사업이 중단되면서 재정난을 겪다 지난해 2월 29일 휴관했던 신영은 강릉시의 지원과 관객의 성원에 힘입어 올해 3월 24일 재개관을 했습니다. 강릉 중앙시장 바로 앞, 번화한 대로변에 있어서 이전부터 강릉 사람들은 ‘신영극장 앞에서 만나’ ‘신영극장 앞에서 기다릴게’를 예삿말로 나누었다고 합니다. 저는 신영극장이 폐관하기 전 처음 그곳에 갔었어요. 단편선을 보았는데 작품과 작품 사이에 잠시 암전이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그 길이가 길어서 어느 순간 주위에 앉은 사람들이 극장을 두리번거리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어떻게 그 순간을 잊을 수 있을까요? 스크린 앞의 공간, 나무 바닥, 의자, 계단, 문 밖의 로비에서 나는 미세한 소음까지, 그때 영화 바깥에서 영화를 채우던 극장의 늙었지만 생기있는 몸통과 숨소리를요.

새 단장해 다시 문을 연 신영극장을 배경으로 한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며칠 전 종영했고, 극장 안에선 한참 <퍼스널 쇼퍼>가 상영되고 있었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감지합니다. 며칠 전 광주극장에 다녀온 이에게서 들은 얘기도 생각이 났습니다. ‘관객은 아홉 명 왔지만, 극장이 80년 되었다고 하니까, 왠지 영혼들이 북적북적 앉아서 보는 것 같았다’던 말이요. 이 극장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만났을까요.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작별했을까요. 지금 이 자리에 물리적으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어떻게든 남아 있을 그 흔적을, 어떻게든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극장에서 나와서는 4.16 기억전시관에 갔습니다. 3년의 시간을 응축한 몇 장의 사진과 글을 보고 안산의 분향소로 보내는 엽서를 썼습니다. 그곳에는 저 말고도 여러 사람이 있었는데, 한 어린이가 아빠한테 삭발 사진을 보고 왜 이 사람들은 머리를 깎는 거냐고 물어보고 아빠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표현하는 데는 여러 방법이 있는데..."로 시작하는 설명을 하는 것을 몰래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왠지 더 많이 울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화장실로 도망가서 손을 씻었습니다. 인양 기간 내내 밤에 뒤척이다가 분향소 모니터에 전송되는 문자를 한 통씩 보내고야 잠이 들곤 했습니다. 많은 날을 더 이렇게 보내야 할 것이고 다만 절망하지 않고 심기일전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기억하기를 멈추지 말아야겠다고 또 어느 순간엔 아주 싸우기도 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또다시 4월 16일을 맞았습니다.

강릉을 떠나기 전, 그곳에 사는 친구가 노란 리본 목걸이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펜던트가 뒤집히거나 목뒤로 돌아가지 않게 매듭도 새로 지어 주었습니다. 저는 목걸이를 걸고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모든 것이 미워지고 지겨워질 때 한 번씩 이렇게, 어김없이 남아있는 사랑과 희망과 용기를 발견하고 말아요. 최악의 미세먼지 농도로 뿌옇게 변한 하늘에 찾아오는 봄비 같은, 그리웠고 반가운 것.

내리 온 비에 꽃은 져도 봄은 이렇게 또 왔습니다.

 

2017년 4월 16일

인디언밥 필자

김 송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