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6. 21. 07:02ㆍLetter
준비하는 사람
5월 11일부터 6월 11일까지 시청각에서 열린 김동희 작가의 전시 <3 Volumes>의 지킴이를 했습니다. 전시를 관람한 분들은 아시겠지만, <3 Volumes>는 아주 간단하고 거칠게 말하자면 시청각이라는 공간 위에 새 틀을 씌운 형태의 전시입니다. 원래 있던 마루와 샷시, 계단과 옥상을 치우거나 그 위로 새것을 덮고 기존의 공간을 증축하거나 탈바꿈하거나 그 성질을 극대화하면서, 장소와 관계 특정성에 의한 의미와 감흥, 경험과 선험을 바탕으로 한 판단력, 몸의 근육과 감각의 요모조모를 불러냅니다. 그러기 위해서 희게 페인트칠된 목조 바닥과 가벽, 계단이 사용되었고 저는 그것들을 매일 청소하면서 한 달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이번 편지는, 청소 일기입니다.
전시장의 문을 열기 전 조금 일찍 도착해 청소를 합니다. 어떤 날은 정전기를 이용해 먼지를 흡착하는 부직포청소포를 밀대에 끼워서 가볍게 쓸어내는 것만으로도 청소가 됩니다. 어떤 날은 부직포로 닦고 물걸레청소포를 새로 끼워서 걸레질을 해주고, 어떤 날은 비질을 꼼꼼하게 한 뒤에 손걸레로 큼지막한 흡집이나 발자국, 얼룩을 닦아주기도 합니다. 전날 비가 왔는지, 공기 중 미세먼지가 많았는지, 바람이 많이 불었는지 등에 따라 청소 방식과 청소에 걸리는 시간이 달라집니다. 날씨가 좋은 날엔 청소도 금방 끝납니다. 미세먼지가 적으니 청소할 양도 적어집니다. 심한 날엔 청소포를 다섯 개도 쓰는데, 맑은 날엔 한 겹의 청소포로 청소를 마치고 세제에 절인 것이 아닌 평범한 물티슈로 몇 군데만 훔치면 청소가 끝났습니다. 웃기게도 날씨가 좋으면 도리어 청소한 결과가 잘 보이기 때문에 청소를 더 하고 싶어집니다. 바닥에 퍼질러 앉아서 ‘매직’ ‘박사’같은 단어로 치장된 일회용 클리너로 난간과 꺾인 면, 틈새 등을 더 닦아냅니다. 꼭 그렇지 않아도 빗자루나 청소포가 잘 닿지 않는 곳은 손으로 치웁니다. 측량이 청소도구에 맞춤하면 청소하는 입장에서야 편하겠지만 작가가 인테리어 시공자나 공간 디자이너가 아니기 때문에 사용자 편의를 고려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람이 세게 부는 날엔 저만치서 씨앗이나 낙엽이 떨어져 날아오고는 합니다. 심하다는 생각이 드는 날엔 전시 중간에 들여다보고 비질을 해주기도 합니다. 떨어뜨린 양이 적은 경우엔 손으로 줍기도 했는데 잘 바스라져서 조금 귀찮더라도 빗자루로 쓸어주는 편이 좋습니다. 물걸레를 사용해서 청소를 하면 먼지가 싹 치워지지만 물이 덜 마른 자리에 발을 디디면 하도 자국이 나서, 혹시 하고 새 운동화를 신고 갔더니 참말 청소할 때 지저분한 자국이 남지 않아서 쾌적했습니다. 매일 새 신을 신고 갈 수는 없으니까 실내용 슬리퍼를 들고 가야지, 하고 오프닝부터 생각했는데 그건 결국 전시 마지막 날까지 챙기지 못했습니다.
샤워할 때 이런저런 생각이 들듯이, 여기서 청소를 하고 있으면 별별 생각이 떠오릅니다. 샤워할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좋은 생각이어도 맡은 바 끝내고 자리에 앉으면 금방 머릿속에서 휘발되고 말기는 하지만, 그래도 청소 중 했던 청소에 대한 생각은 꽤 기억납니다. 전시 초반 가장 많이 한 생각은 ‘미세먼지 극성 시대에 하얀색 야외 설치 작업하기’라는 주제로 작업을 하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오프닝부터 약 1주일 정도, 서울은 최악의 미세먼지 농도를 자랑했습니다. 그리하여 이 새하얀 곳… 이 전시는 본래의 의도가 그렇지 않았을지라도 어느덧 미세먼지 측정기가 되어 있었습니다. 먼지가 떠다니고 쌓이는 것은 알았지만 모서리마다 고이는 줄은 몰랐고, 장판이나 타일이면 모를까 미끈한 흰색 페인트칠이 된 바닥을 바로 물걸레질하면 도리어 더러운 흔적이 생긴다는 것도 청소를 하면서 알았습니다. 뉴스에서 화장을 촉촉하게 하면 미세먼지가 얼굴에 달라붙을 수 있으니까 뽀송뽀송하게 하라던 말을 들었을 땐 웬 웃긴 소리인가 했는데, 전시 일주일 만에 파우더로 화장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더라도 청소를 다 하고 화장실에 손을 씻으러 가서 거울을 보면 땀을 흘려 반질반질한 피부로 돌아오고는 했습니다. 걸레에 달라붙어 가시화된 미세먼지를 보면서 그나마 무광 흑색 페인트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미세먼지가 많다가 비가 오는 날이 가장 낭패였습니다. 미리 밀대로 빗물을 쓸어두려니 먼지가 거뭇하고 지저분한 자국을 만들었습니다. 걸레질은 상황을 악화시키고 물을 밀어내는 고무 밀대는 좀처럼 제 기능을 하지 못했습니다. 괴로운 마음을 부여잡고 다음날 여러 번에 걸친 걸레질로 땟국물 길을 지웠습니다. 그래도 그 다음 비 오는 날엔 대기가 맑아서 고인 물을 싹 밀어내고 스펀지로 쓸어주면 오히려 물청소를 한 효과를 볼 수 있어서 편리했습니다. 청소도 역시 할수록 응용력이 생기고 는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지요.
무생물을 닦아주는 동안 생물 친구도 많이 만났습니다. 전시에는 향기로운 나무 몇 그루의 화분이 놓였고 저는 로즈마리와, 귤나무와, 등나무와, 라일락나무 노각나무 올리브나무와 매일 인사를 했습니다. 이 화분들에는 급수가 필요했는데, 해가 중천일 때 물을 주면 흙이 금세 말라 버리기 때문에 이른 시간 도착해 미리 물을 주거나 저녁에 문을 닫아걸고 주어야 했습니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면서 벌레들도 자주 찾아왔습니다. 하루는 문가에 다친 것 같은 꿀벌이 비척비척 기어 다니고 있었습니다. 포도주스를 조금 주었더니 잘 먹고 붕붕 날아서 갔습니다. 한편으로 비 오는 날엔 흰 계단에 달라붙어 있던 날벌레들이 수재를 입고는 했는데 그것을 수습하는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하얗고 밝게 빛나는 것을 만드는 이들은 자신의 작업이 벌레의 생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한번쯤은 생각해 보면 좋겠다는 의견이 생겼습니다. 비가 온 다음날 웅덩이에다 반드시 발자국을 남기고 가는 동네 고양이들도 있었는데, 아침에 이들의 발자국을 지우면서 그냥 남겨두는 게 좋았으려나, 전시 중에 생겨난 고양이 발자국의 존폐 여부는 작가와 기획자와 지킴이 중 누가 판단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청소는 전시가 시작되기 전 이미 마무리되므로 저의 일기는 청소로 시작되지만 결국 그곳에 앉아 있는 시간으로 흘러갑니다. 전시장에는 종종 어린이들이 와서 달렸고 자주 셔터 소리가 났습니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사실은 이들을 위해서 밟으면 미끄러운 빗물을 치우고 얼룩덜룩한 곳을 닦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어떤 날엔 중간에 정리를 하려고 바깥으로 나갔다가 지붕 근처 좁은 틈에서 나는 기척에 나갔다가 마을의 동물들을 만나기도 하고, 조기축구회에서 뻥 찼다가 잃어버린 공을 같이 찾기도 하고, 어쩌다 이 골목길 안쪽 한옥까지 들어와 본 분께 리플렛을 보여드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개의 순간 저는 사무실 안에 고요하게, 마치 게임의 npc처럼 있습니다. 사람을 소리로 만나는 것은 재미난 일입니다. 둘이서 온 사람들 중 몇은 티가 날 정도로 설레게 웃고 목청이 커지고, 어린이들은 물길이나 그림자, 숨죽인 공간을 유독 잘 발견해서 의기양양 일러주곤 합니다. 아마도 하지만 분명히 좋아하는 사람과 전시를 보러 왔을 사람의 웃음소리, 두 사람도 그걸 느꼈을까요? 소리만 듣는 제가 더 금방 알아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엿듣는 건 절대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사뭇 좋은 말을 듣기도 합니다. 전시장의 한쪽 벽에 거울이 있었는데, 누군가 실내로 들어서면서 “거울에 이 집이 다 보이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이 참 좋았습니다. 또 다른 날엔 여덟아홉 살로 추정되는 관객 분이 “비밀을 알았어. 옥상에서 나무를 내려다보면 물줄기가 흐른 길이 보여”라고 말했습니다. 아침에 화분 아래로 물이 흐를 정도로 넉넉히 분무기를 드리운 흔적이었는데, 들킨 것 같기도 하고 발견된 것 같기도 하고 재미가 있었습니다.
이 일에는 약간의 인류애가 필요합니다. 필요하다기 보다는 있으면 좋습니다. 사람들에게 좋은 걸 보여주고 싶고 잘 보여주고 싶어야 그 건강한 의욕으로 준비를 하니까요. 일은 일이라고 생각하려고 해도, 결국 작품이고 전시고 관객이고 무생물이고 생물이고 사랑을 해버리게 됩니다. 이 사랑에 중독된 사람들이 축제 스태프와 자원활동가를 하고 전시장을 지키고 하우스어셔를 하게 되는 걸 자주 봅니다. 이 일, 지킴이와 스태프와 자원활동가가 하는 일은 만드는 것과는 다른 일일지 몰라도 그만큼 즐겁고 꾸준한 일이고, 지금보다 많이 이야기하고 이야기되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작품이 있어야 공연/전시/축제가 있지만, 운영하는 사람이 없으면 공연/전시/축제는 이어질 수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청소 일기를 써 봤습니다. 리뷰에는 들어갈 수 없겠지만 분명 거기 존재했던 것들을, 적어 봤습니다.
2017년 6월 15일
인디언밥 필자
김 송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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