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밥 5월 레터] 지갑 없이 걷기

2017. 5. 16. 09:28Letter

 

지갑 없이 걷기

 

5월의 시작은 상하이에서 맞이했습니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노동절은 큰 국경절 중 하나여서 노동절을 가운데로 3일 간의 휴일이 있었습니다. 원래는 더 오래 쉬었던 것이 줄어든 것인데, 여전히 학교 등에선 재량껏 일주일을 쉬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메이데이 자체가 재량휴일인 서울에 있는 친구들은 이날 생각보다 많이 일하러 갔습니다. 노동절은 황금연휴의 ‘운 좋으면 옵션으로 쉬는’ 정도의 날이었던 것이지 그 자체로 황금연휴의 일원이 되기엔 부족한 까만날이었음을 확인했습니다. 사람들이 휴가 때마다 그게 집에서 쉬는 것보다 많은 에너지를 소진하는 길이라는 걸 알면서도 여행을 떠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럴 만한 시간이 평소에는 거의 없기 때문이겠지요.

 

여행을 가기 전 여행책도 보고, 인터넷 블로그도 보고,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도 받았지만(가이드보다는 ‘상하이 트위스트 추기’ ‘상하이스파이시치킨버거 먹기’ 같은 미션 제안이 더 많았지만) 그럴싸하게 수행하지는 못했습니다. 그저 평소에는 만나지 못했던, 상하이와 그 인근에 살고 있는 친구들을 열심히 봤고, 많은 시간은 길거리와 공원을 걷는 것으로 보냈습니다.

 

아마 이 도시의 미세먼지 농도도 같은 시기의 서울과 얼추 비슷했던 것 같은데, 그럼에도 괜찮은 듯한 기분을 느끼게 만들었던 건 잎이 무성한 아름드리나무가 많기 때문이었습니다. 상하이의 길거리는 높은 비율로 플라타너스를 가로수로 두고 있습니다. 작은 가지를 솎지 않았기 때문에 길의 양변에 있는 나무가 포물선을 그리며 서로를 향해 가지를 드리워서, 자연스럽게 커다란 아치형의 차양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가지치기를 하지 않은 플라타너스는 그만큼 많은 씨앗털을 날리기 때문에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은 간질거리는 콧속과 간헐적으로 튀어나오는 재채기에 어질해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바람결에 사각사각 소리를 내면서 흔들리는 나뭇잎들, 넓게 펼친 손바닥 같은 이파리의 틈새로 조각조각 떨어진 빛의 살점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와이탄이나 빈장다다오에서 보는 황푸강과 더불어, 지금은 마천루가 즐비한 도시에서 가장 오랫동안 지켜온 풍광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상하이 풍경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또다른 곳은 공원입니다. 비단 상하이만이 아니라 중국의 도시에서 쉽사리 만날 수 있는 것이 광장과 공원입니다. 광장이나 화원이라는 명칭은 아파트에도 쓰이기 때문에 모든 ‘플라자’와 ‘가든’이 진짜 휴게공간이 아닐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걷기 지칠 때, 새소리를 듣고 싶을 때―오월의 상하이에서는 토요일마다 새 지저귐 대회도 열린다고 합니다, 참가하는 건 야생의 새가 아니라 개개인의 반려동물이지만요―, 그늘이 필요할 때, 모르는 사람들의 재잘거림을 듣고 싶을 때, 공원만한 곳이 없는 것 같습니다. 특히 중국의 공원 곳곳에선 광장무를 추는 사람들과 태극권을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시간을 정해 큰 카세트로 재생한 음악에 맞춰 체조, 라인댄스, 짝을 맞춰 포크댄스나 스윙댄스, 뭐라고 부르면 좋을지 알 수 없는 기타 등등의 춤사위는 보고만 있어도 재미있지만 따라하면 새로운 재미가 있습니다. 춤을 추고 있는 무리로부터 같이 해도 된다는 바디랭귀지를 받아 한 박자 늦게 동작을 흉내내는 것입니다.

 

이곳에서 저는 야외 공연과 전시 몇 개를 보았습니다. 공연은 상하이 정안구의 곳곳에서 열리는 재즈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제가 본 것은 정안공원 안의 잔디밭과 정안사역 근처 백화점 옆 광장에서 펼쳐지는 공연이었습니다. 사실 대단히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고, 개와 어린이가 춤을 추는 모습이 제일 기억에 남는 시간이었지만, 큰 공원이 도심에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서울에서 야외 공연장으로 선택되는 장소가 도시의 외곽에 위치한 경기장이나 대형 공원이 되어버린 것을 떠올리면서요.

 

물론 상하이는 물가가 높고 공기가 맑지도 않고, 당연하게도 여러 문제와 싸우고 있을 것이고, 베이징과 비교하면 독립예술공간이 훨씬 적은 도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꽤 오래 전부터, 잠시 어딘가에 앉아서 쉬고 싶을 때 갈 수 있는 곳이 소비 공간뿐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였던지, 여전히 1위안-170원 정도-에 찐빵을 사먹을 수가 있고, 공원에서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긴 휴일에 눈치를 보지 않고 쉴 수도 있는 도시에 반가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한편 중국 사람들은 정말로 ‘지갑 없이’ 다니는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백화점과 시장, 길거리 좌판을 막론하고 모바일 결제 사용이 보편화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업데이트할 타임라인이 너무나 많다는 걸 새삼스레 생각했습니다. 상하이에서 돌아온 다음날 대선 투표를 했습니다. 제가 사는 이곳의 타임라인을 심기일전 보고 말할 시간이 또 찾아왔어요.

 

2017년 5월 15일

인디언밥 필자

김 송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