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밥 10월 레터] 책읽는 계절 - 상상하고, 행동하고, 응답하고

 

상상하고, 행동하고, 응답하고

 

책읽는 계절입니다. -라고 하지만 주변에서 여유롭게 페이지를 넘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마도 지금은 예술을 남발하는 축제의 계절인 것이고, 메르스(Mers)로 올리지 못한 공연들을 다시 준비하는 기간이기도 하며, 수혜 받았던 지원금을 해결해야 하는 시기인 것이지요. 생존과 잉여를 동시에 외치는 예술가들에게 어느덧 가을은 ‘그나마’ 벌이 혹은 빚갚음을 위한 시간으로 써야 하는 계절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인디언밥은 여러분과 '함께+모아+다시' 읽을 요량으로 세편의 책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다시' 읽는다는 표현보다는 '이제야' 읽는다는 말이 맞겠네요. 올해 봄과 여름에 각각 세상에 나온 책들입니다. 하나같이 ‘역사화’ 된 순간들을 통해 ‘지금, 여기’ 를 돌아보자는 의도를 갖고 있습니다. '밑도 끝도' 없이 힘든 지금의 예술가에게, 이 '총체적 난국' 의 정체를 찬찬히 조망해보자는 취지인 셈이지요. 한편으로 엄살과 굴종이 만연해진 이 시대의 주체들에게 냉철함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각각 책들의 제목은 이러합니다. 미학자 양효실이 쓴 <권력에 맞선 상상력, 문화운동연대기>(2015, 시대의 창)와 미디어학자 이광석의 <뉴아트행동주의 포스트 미디어, 횡단하는 문화실천>(2015, 안그라픽스) 그리고 미술사학자 고동연이 지은 <응답하라 작가들, 우리시대 미술가들은 어떻게 사는가?>(2015, 오뉴월)입니다.

 

 

<권력에 맞선 상상력, 문화운동 연대기>는 17개의 꼭지를 분류하여, 20세기 중반부터 21세기 초반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의 예술가들의 문화운동을 다루고 있습니다. 학생, 청년, 흑인, 노동자, 제3세계, 여성, 동성애자, 에이즈환자 그리고 가난한 예술가들의 주변부적 삶을 다루며, 이들이 중심부 권력에 어떻게 맞서왔는지를 연대기적으로 기술합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여성작가 캐서린 맨스필드의 사례를 들며, 타인을 동정하는 내 마음의 알리바이를 지적합니다. 즉, 소외된 대상을 가엾게 여기며 ‘아름답게’ 상황을 종료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의 논의를 좀 더 첨예하게 가져가고 싶다는 작가/독자의 마음을 내비치고 있지요.

 

 

<뉴아트행동주의->는 ‘전술미디어’ 라는 예술행동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이슈와 관련하여 예술 또는 문화의 현상을 경유하여 시대정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이라고 설명하면 될까요. 저자의 표현대로 신권위주의 통치와 속류 자본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활동가들이 맞서고 있는지를 18팀의 사례를 나열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사용한 ‘나열’ 의 방식이 타당하다고 느껴지는 건, 답 없는 한국사회를 풀어내는 공략법이 다양하고 많을수록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미술학도, 실업자, 아르바이트생, 문화기획자, 문화활동가, 시민운동가, 미디어활동가, 프로그램 개발자, 디자이너, 건축가, 해커, 게이머, 평론가” 를 아예 책이 바라는 독자로 호명하고 있습니다.

 

 

<응답하라 작가들->은 한국 미술계의 세대적 단면을 증언하는 책입니다. 사례로 기술된 작가들의 연령은 40대이거나 혹은 30대 후반이지만, 이를 주목하는 독자로 설정된 연령대는 그 아래인 ‘젊은 작가’ ‘예비 작가’ 입니다. 저자는 40대 문턱의 미술가들에게 - 작가로 인정받는 과정, 기금과 창작스튜디오라는 지원제도, 미술가들의 네트워크, 생존을 위한 세컨드잡과 미술가 자신과 결혼 등에 대해 - 질문을 던지고 이를 정리합니다. 다소 속물/민망/궁금어린 질문도 서슴지 않습니다. 그들의 진실한 대답은 젊은 작가들에게 삶의 정답은 되지 않을지언정, 생생한 참조는 될 수 있겠지요. 저자 서문의 제목은 “진퇴양난의 시대, 후배 미술인을 위하여” 라는 부제가 달려있습니다. 앞선 선배들의 실패와 고난이 후배들에게 재반복되지 않기를, 반복되더라도 좌절하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이 - 잠언 구절의 방식이 아니라 실태에 대한 분석의 방식으로 - 전달되고 있습니다.

 

▲ <응답하라 작가들->의 한 페이지. 미술작가들의 세컨드잡에 대해 대화하고 있다. 책 190쪽.

 

앞서 언급했듯 책들은 정신없이 소모되는 세월 속에서 '너' 의 자리를 잘 찾아보라는 저자의 권유가 느껴집니다. 지금, 나의 궁핍과 결핍은 앞서서 선배들'도' 겪었던/겪고 있는 위기의 단계들이며, 그 과정은 사회의 구조와 계급 속에서 실체적 면모를 드러낸다는 것. 그럼에도 (날든, 기든) 이를 넘어가는 방식들은 존재한다는 것. 그런 점에서 이 책들이 공통으로 탑재하고 있는 '역사화' 의 태도는 지금 - 여기 - 우리를 객관화하고 좌표를 설정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지요.

현재의 예술적 방법론이 되어버린, 선배들의 ‘전략전술’ 을 살펴보면서, 우리의 대응방식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후세는 우리를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그리하여,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고 실천할 것인가? 저자들이 예술가/독자에게 응답을 구하는 마음에 기대어 인디언밥도 여러분에게 독서를 권하는 바입니다. 부디 가을에 고(苦)독하시길. 더불어, 혁명의 예술사와 선배들의 방법론을 터득한다고, ‘아름답게’ 상황이 종료되는 것이 ‘아님’ 을 인디언밥도 명심하겠습니다.

 

2015년 10월

인디언밥 편집위원

 정진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