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7. 6. 20:41ㆍLetter
축제의 계절
일 년 열두 달의 절반이 가고 어느덧 장마와 무더위, 그리고 축제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팔도 곳곳 별별 축제가 사시사철 성황이지만 그중에서도 7월엔 유독 많은 축제가 열리는 듯합니다. 축제 자체와 프로그램의 규모와 성격은 사뭇 다를지라도, 말하자면 모두 독립예술잔치는 아닐지언정 다양한 장르, 다양한 종류의 축제가 하루가 멀다하고 시작을 알립니다. 연극 축제만 해도 밀양, 거창, 통영에 서울에서는 변방연극제와 프린지페스티벌이 열립니다. 평창대관령음악제, 여우락페스티벌, 미쟝센단편영화제, 상상마당의 음악영화제와 서울국제실험영화제, 충무로뮤지컬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천국제만화축제, 시카프 등 독립, 기관, 상업, 지역 등 여러 분류로 나뉘기도 여러 부문에 걸쳐 있기도 한 축제들이 7월 무대와 상영관, 전시장을 밝힐 것입니다. 못해도 유월부터 격무에 매달렸을 스태프들, 아무리 순탄해도 괜한 불안감에 시달렸을 참가자들, 시간표와 예매일정 업데이트를 기다렸을 관객들이 맞이할 (여러 의미에서) 해방의 날 또한 가까워졌습니다.
6월 28일 개막한 서울변방연극제는 한창 곳곳의 극장을 채우고 있습니다. 어느덧 18회를 맞이한 변방연극제는 ‘25시-극장전’이라는 큰 제목 아래 열 편의 작품과 포럼 극장전, 변방클럽데이 등의 행사를 준비했습니다. 서울 곳곳에 흩어진 채 각자의 쓰임을 다하는 극장, 그리고 극장을 둘러싼 사람과 이야기와 역사, 극장 안에서 완성되는 공연과 공간의 의미 같은 것이 ‘극장전’의 장구하고도 별의별난 내용이 될 것입니다. 매해 각 축제에 붙는 슬로건은 벽에 걸어둔 그림처럼, 일부러 자꾸만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는 않더라도 마음에 곰곰함을 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붙일 때는 어렵습니다.) 그리하여 이번 변방연극제 역시, 각 작품의 화제, 소재, 주제와 별개로 반드시 또 비로소 극장을 응시하게 되는 시간으로 흘러가면 좋겠다고도 생각합니다.
미쟝센단편영화제도 6월 29일 막을 올렸습니다. 기업 자본으로 운영되는 경쟁 영화제지만 독립 단편을 만든 이들이 줄곧 영화를 선보이고 싶어하는 자리인 만큼 매년 유심히 보게 됩니다. 올해도 제작 단계서부터의 기대작, 혜성처럼 등장한 신작, 귀에 익은 이름들의 차기작 등이 속속 이름을 올렸습니다. 궁금했던 작품이 여럿 눈에 띕니다. 미쟝센은 장르별로 작품이 묶여 있다 보니 관객의 반응이 항상 재미있습니다. 공포영화를, 로맨스영화를, 느와르를, 코미디를 볼 때의 리액션이 상영관마다, 시간대마다, 개인마다 다른 것이 퍽 흥미롭습니다. 단편과 단편 사이 흘끗 바라보는 객석의 상황이 유대감을 주기도 의외로움을 느끼게 하기도 합니다.
이제는 꽤 집처럼 느껴지는 상암에서 이어가는 프린지는 7월 중순이면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합니다. 팝업프린지로 예열한 공기에 각종 참가작 공연을 필두로 마이크로포럼 올모스트프린지와 독립예술집담회, 아카이브 전시, 워크샵 등을 속속 채울 예정입니다. 프린지빌리지를 통해 한 달간 스카이박스에서 생활한 예술가들의 일기와 대화, 작품으로 완성된 레지던시 결과물도 볼 수 있습니다. 그동안 스카이박스에서 공연하는 프린지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샤워실을 사용하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레지던시라는 쓰임이 마침맞다 싶습니다.
이중 인디언밥과 함께하는 독립예술집담회 ‘독립예술, 앞으로 어떻게 할 거니?’에선 프린지가 도달할 구조, 나아갈 방향 등 프린지라는 구체적이고 특정한 세계를 시발점이자 상징 삼아 독립예술 전반의 미래를 생각하고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장엄하지는 않아도 정직하기는 하는 것이 커다란 목표입니다.
올해는 또 구깃구깃한 타임테이블을 든 채 경기장을 몇 바퀴나 돌게 될까요. 뺑글뺑글 돌면서 어떤 사람을 마주치게 될까요. 사람은 제가 프린지에서 무엇보다 특별히 궁금해하는 것입니다. 하늘공원을 산책 왔다가 유모차를 세워두고 공연을 보는 관객, 상황실과 각 공연장에 흩어져 있는 대신 경기장을 종횡무진하며 무더위에 상기된 뺨으로 공연 시작을 알리는 인디스트를 보는 것은 이전과는 또 다른, 상암에서 열리는 프린지의 즐거움입니다.
작년 프린지 때, 서울프린지페스티벌 20주년 파일럿 프로그램인 ‘나와 프린지와 2012년’에 참여했습니다. 저는 2012년 인디스트였는데 사실 그때 술도 너무 많이 마시고 밥도 너무 많이 먹었습니다. 왠지 변명처럼 들리기는 하지만 굳이 그 폭식폭음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찾자면, 그 먹고 마신 기억이 모두 축제로 환원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 아무리 걷고싶은거리가 절대 안 걷고 싶어도, 9번출구가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붐벼도, 서교동교회의 오르막이 아무리 가파르게 느껴져도 상쇄할 만한 (물론 상쇄가 안 될 때도 있긴 합니다) 추억이 생겼다는 것이지요. 이듬해 프린지 터가 상암으로 옮겨가면서, 마치 폐간한 잡지, 기록으로만 남은 영화, 전설의 음악가, 불세출의 배우, 윤색된 첫사랑처럼 ‘홍대 시절 프린지’라는 존재는 긍정과 향수로 채워졌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상암을 ‘이제는 꽤 집처럼’ 여기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같이 살던 집은 홍대에 있고, 독립해서 나와 살게 된 사이 가족이 이사한 집이 상암이다, 같은 느낌으로요.
네 명의 참가자가 아무런 방식으로든 10분을 도맡아 한 해 프린지에 대해 말하는 이 시간에 저는 2012년에 인터넷에다 (정확히는 저의 SNS에) 써둔 일기를 읽었습니다. 매일 실내와 야외 공연을 보고, 리뷰를 쓰고, 펼친 상태로 인쇄된 축제통신지를 일일이 접고, 서교예술실험센터를 거점으로 여기저기를 뛰어다닌 이야기가 한참 적혀 있었습니다. 그때는 조금 더 솔직하기도 하고 감동도 잘 받고, 비하인드씬이나 백스테이지의 사정 같은 건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고, 의욕은 많고 책임은 적고, 낭만은 하염이 없고 냉소는 지금보다 드물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쓸 수 있었던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그대로 읽으려니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래도 굳이 더하거나 빼지는 않았습니다. 축제에는 체계적인 준비도 필요하고 객관적인 파악도 필요하지만, 나중에 들춰보기엔 조금 수줍을 만큼의 열기를 동력 삼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축제의 계절은 무더위의 계절, 이 정도는 과격하지 않은 이열치열이 아닌가 하면서요.
마지막 문장을 적고 나면 얼른 문서 창을 닫고 바깥으로 나가야겠습니다. 오늘은 서울변방연극제에 가는 날입니다. 어제도 축제에 갔고 다음주도 그 다음주도 축제에 갈 것입니다. 벌써 시작된 축제의 계절을 더 열심히 맞이해야겠습니다.
2017년 7월 6일
인디언밥 필자
김 송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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